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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백두대간 대장정] 제1구간-백두대간 지형지질③

월간산
  • 입력 2005.01.25 14:12
  • 수정 2018.12.17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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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변동으로 융기한 후 침식으로 백두대간 형성
태백산맥은 지질학적 구조선, 백두대간은 분수계에 근거한 산줄기 체계

한민족 우리 겨레의 영산인 백두산에서 뿌리를 내리고 두류산-낭림산-백산-북대봉-금강산-설악산-오대산-태백산-소백산-속리산-덕유산-지리산까지 줄기차게 달려온 장엄하고도 유장한 산줄기, 바로 백두대간이다. 단 한 번도 물줄기에 의해 잘리지 않고 이어져 내려온, 국토의 등뼈를 이루는 산줄기다. 따라서 백두대간에 대한 이해 없이 이 나라 이 땅에 대한 이해는 전적으로 불가능하다.

대관령이 위치한 횡계 고원 일대는 우리나라에서 고위평탄면이 가장 전형적으로 발달한 곳으로, 해발 고도 800~1,300m에 이르는 곳에 50~100m의 소기복을 이룬 구릉성 지형이 나타나고 있다. 고원 한 가운데로 영동고속도로가 통과하고 있다.
대관령이 위치한 횡계 고원 일대는 우리나라에서 고위평탄면이 가장 전형적으로 발달한 곳으로, 해발 고도 800~1,300m에 이르는 곳에 50~100m의 소기복을 이룬 구릉성 지형이 나타나고 있다. 고원 한 가운데로 영동고속도로가 통과하고 있다.
일찍이 우리 선조들은 이 땅을 산과 강이 정연한 원칙에 따라 어우러져 있는 유기체와 같은 존재로 보았다. 그러므로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장대한 산줄기를 이어오며 이 땅을 동서로 크게 갈라놓은 산줄기인 백두대간에는 이 땅위에 발을 내리고 사는 사람들의 정서와 기상, 그리고 자연관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우리나라 산줄기의 근간으로서 한반도 대자연의 한 가운데서 있는 이 백두대간은 어떻게 형성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으며, 또 우리 민족과 생을 함께 해온 동반자로서 백두대간은 어떤 모습을 이루고 있는 것일까.

태백산맥은 없다?
10여 년 전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산악계에서는 과거 우리 선조들이 전통적으로 인식해왔던 이 땅의 산줄기 백두대간의 의미를 되살리려는 움직임이 크게 일었다. 그 중심에는 1997년 의사 출신 산악인 조석필씨가 세상에 내놓은 <태백산맥은 없다>라는 책이 있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지질구조에 근거한 현행 산맥체계를 표현한 태백산맥을 과거 우리 선조들이 인식했던 전통적인 지리 개념에 근거한 백두대간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백두대간의 석회석 채굴 광산. 산림과 동·식물 자원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유역 하천의 수질 오염과 산사태를 유발하는 등 폐해가 매우 크다.
백두대간의 석회석 채굴 광산. 산림과 동·식물 자원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유역 하천의 수질 오염과 산사태를 유발하는 등 폐해가 매우 크다.
백두대간이라는 말은 조선 후기 실학자 신경준(申景濬·1712-1781)이 저술한 것으로 알려진 산경표(山徑表)에 처음 나온다. 백두대간은 ‘산은 물을 건너지 못하고, 물은 산을 넘지 못한다(山自分水嶺)’는 개념을 중심으로 산의 흐름을 정한 것이기 때문에 산줄기가 계곡이나 강에 의해 끊어짐 없이 이어진다. 그래서 이 땅의 모든 산줄기가 백두산과 통한다는 것이다.

산경표에 의하면 분수계를 따라 대간과 정간 그리고 13개의 정맥으로 분류했는데, 이러한 분수계를 따라 언어·풍속·생활 습관·기후 등 인문 및 자연 현상에 큰 차이를 나타내어 자연스럽게 지역을 구분 짓는 경계선이 되었다. 그러므로 백두대간이란 개념에는 이 땅에 터를 잡고 살아온 우리 조상들이 땅과 물을 바라보는 시각, 자연과 우주를 바라보는 관점이 포함돼 있다고 할 것이다.

반면, 태백산맥을 포함한 산맥체계는 일본의 지질학자 고토 분지로(小藤文次郞·1856-1935)가 지질 구조에 근거하여 제시한 것으로, 실제 지형과 일치하지 않는 인위적인 구분이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의 삶과 크게 동떨어진 것이며, 여기에는 민족 정기를 말살하기 위한 일본인에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하여 사회 일각으로부터 신랄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그 비판의 화살은 지질 구조에 근거하여 산맥을 가르치는 필자가 몸담고 있는 지리 교육계로 곧장 날아들었다.

그러나 오늘날 지리 교과서에 실려 있는 산맥 지도는 일제 강점기에 교육용으로 단순화시킨 것으로, 고토가 제시한 것과는 사뭇 다르다. 만약 백두대간 개념에만 매달린다면 산맥의 성인(成因)과 관련하여 우리나라의 산맥 체계를 이해하고자 할 때는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지형학과 지질학의 과학적인 지식에 기초한 사실을 전적으로 부정한 상태에서는 이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질 구조에 근거한 현행 산맥 체계와 산줄기, 즉 분수계에 근거한 백두대간 체계는 나름대로의 장단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태백산맥인가, 백두대간인가에 대한 논의는 하나를 없앤다고 해결될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에게는 태백산맥도 중요하고 백두대간도 중요하다. 그러나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이 땅이 힘겨운 산고(産苦) 끝에 만들어낸 산줄기, 백두대간에는 우리 민족의 정기와 생명이 살아 숨쉰다는 사실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한반도 위성 사진. 동부로 고산지대가 몰려 있음을 볼 수 있다.
한반도 위성 사진. 동부로 고산지대가 몰려 있음을 볼 수 있다.
 2300만 년 전 동해의 해저 지각이 융기하며 형성
그렇다면 이 땅의 조화와 질서를 한 아름에 품고 있는 백두대간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고생대 이래로 중생대에 여러 차례에 걸친 화산활동으로 큰 지각변동을 겪은 이후, 오랜 세월 동안 침식과 풍화를 받아 평탄화되어 준평원 지형을 유지해오고 있던 한반도는 신생대 제3기 중신세에 들어 다시 한 번 큰 격변을 겪게 된다.

한반도의 산지 지형은 지구를 덮고 있는 여러 개의 지각판들 가운데 유라시아 대륙 지각판과 태평양의 해양 지각판이 서로 수렴·충돌하는 지대에서 직·간접적으로 전달되어 오는 횡압력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았다. 지금으로부터 약 2,300만 년 전에서 1,500만 년 전 사이에 태평양 해저 지각판과 유라시아 대륙 지각판이 충돌하며 대륙에 붙어 있던 일본 열도가 남쪽으로 떨어져 나가면서 대륙과 일본 열도 사이에 저지대의 분지를 이루는 새로운 지각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이 분지에 해수가 밀려들어오면서 동해가 생겨났다.

이후 동해 지각은 중심부의 연약대를 따라 해저가 점차 확장되었는데, 이때의 수평으로 밀쳐진 횡압력은 한반도가 위치한 서쪽 대륙 연변부를 들어올리는 힘으로 작용하였다. 이 과정에서 한반도는 융기축이 동쪽으로 치우쳐 동해안 쪽은 높이 융기하여 급경사를 이루고, 서해안쪽은 동해안에 비하여 적게 융기하여 완경사를 이루는 비대칭적인 동고서저의 경동(傾東) 지형을 이루게 되었다. 백두대간의 금강산, 설악산, 오대산, 태백산 등 고산들이 동해안 쪽에 집중 분포하게 된 이유는 바로 동쪽으로 치우친 지반의 융기 즉, 태백산맥의 형성으로 인하여 높이 솟아올랐기 때문이다.

고위평탄면은 산맥의 융기를 말해주는 증거 지형
한반도의 동쪽으로 치우쳐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태백산맥은 서울서 대관령 정상까지 직선거리로 약 200km인데 비해 대관령에서 동해까지는 약 20km로 그 비(比)가 10:1에 달할 만큼 동쪽으로는 급경사, 서쪽으로는 완경사를 이룬다. 동해안쪽에서는 마치 병풍을 두른 것처럼 가파르게 솟아 있지만, 정상부에 올라서면 기복이 작고 사면 경사가 완만한 구릉성 지형과 평탄한 고원성 지형이 곳곳에 넓게 분포함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지형을 두고 지형학 용어로 ‘고위평탄면’ 혹은 ‘고위침식면’이라고 한다.

이러한 지형들은 설악산, 오대산, 황병산, 태백산 등 태백산맥으로 이어지는 산지 곳곳의 정상부 능선 상에서 흔하게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삼양목장이 위치한 대관령과 평창군 도암면 횡계리 사이에 발달한 고위평탄면은 가장 전형적인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들 지형은 중생대 백악기 말 이래로 약 4,500만 년 동안의 오랜 세월에 걸쳐 침식을 받아 평탄해졌으며, 해수면과 큰 차이가 없는 저지대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다 신생대 제3기 중신세로 접어들면서 태백산맥이 융기하는 과정에서 다른 지역과는 달리 습곡작용을 적게 받은 가운데 융기하였으며, 이후 침식과 풍화를 거치면서 현재의 구릉성 저기복 산지를 이루게 되었다. 해발 고도 500~900m의 고위면을 따라 발달한 이러한 저기복의 구릉성 평탄 지형들은 과거 한반도가 융기하기 이전의 지형을 보여주는 증거 지형으로, 태백산맥이 융기하여 형성되었음을 말해준다.

백두대간은 곧 문화적 차이의 경계

백두대간의 삼도봉. 충청(영동군)·전라(무주군)·경상(김천시)의 삼도(三道)를 구분 짓는 접점에 위치하여 삼도봉(1,176m)이라 일컫는다.
백두대간의 삼도봉. 충청(영동군)·전라(무주군)·경상(김천시)의 삼도(三道)를 구분 짓는 접점에 위치하여 삼도봉(1,176m)이라 일컫는다.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전 구간이 약 1,400km이고, 강원도 향로봉에서 지리산까지 남한만은 약 690km에 달한다. 남한만을 보면 남한 최북단의 향로봉(1,296m)을 비롯하여 설악산(1,708m), 오대산(1,563m), 태백산(1,567m), 소백산(1,439m), 속리산(1,058m), 덕유산(1,594m), 지리산(1,915m) 등 1,500m 안팎의 높은 산들이 연봉을 이루며 솟아 있다.

이렇게 험준한 백두대간이 남북으로 길게 이어져 내려갔기 때문에 생활상도 대간을 중심으로 동과 서로 자연스럽게 양분되었다. 지질구조선에 따라 말하면, 태백산맥을 기준으로 동쪽의 영동(嶺東)과 서쪽의 영서(嶺西) 지역으로 구분되고, 소백산맥을 기준으로 호남권(전라도)과 영남권(경상도)으로 나누어지게 된 것이다.

영동과 영서의 지역 구분에서 영(嶺)의 의미는 물론 단순한 고갯길이 아니라 장벽으로 이어진 산체, 즉 백두대간 자체를 말한다. 영남(嶺南)은 백두대간의 중부, 달리 말하면 소백산맥 중의 새재, 즉 조령(鳥嶺)을 기준으로 그 남쪽을 말한다. 호남(湖南)의 개념은 백두대간(소백산맥)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전북 장수에 위치한 덕유산 자락에서 발원하여 황해로 흘러드는 금강(과거에는 호강 湖江이라고 불렀음) 이남의 지역을 두고 일컫는 말이다.

이렇듯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라는 자연적인 장벽과 거기서 발원한 강으로 인하여 우리나라는 영동과 영서, 호남과 영남 지방 등으로 나뉘었다. 원활한 교통, 교류가 막히며 백두대간 동·서 양 지방 간에는 기후·풍토·언어·생활 습관 등에 큰 차이가 발생했다. 동서 간에 사람들의 말투를 갈라놓았으며, 음식 맛을 다르게 하였고, 가옥 구조와 영농 방식을 변화시키는 등, 동서 지방 간의 문화적 경계를 이루었다.

죽어 가는 백두대간을 살려야 한다

삼양목장이 위치한 횡계고원은 우리나라에서 고위평탄면 지형이 가장 모식적으로 나타나는 곳으로 최근 각종 영화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삼양목장이 위치한 횡계고원은 우리나라에서 고위평탄면 지형이 가장 모식적으로 나타나는 곳으로 최근 각종 영화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1990년대 초부터 일기 시작한 백두대간에 대한 관심과 열기는 강원도 향로봉에서 지리산까지 국토의 등뼈를 밟아보려는 사람들의 종주로 이어졌다. 이로 인하여 등산로가 넓혀지고 토사의 유출이 심해지는 등 백두대간의 자연성이 위협받는 결과를 낳기도 하여 최근에는 백두대간의 종주를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현재 백두대간이 앓고 있는 환경 문제 가운데 등산객들에 의해 발생하는 환경 훼손 정도는 ‘새 발의 피’일 뿐이다. 1999년 백두대간의 환경 실태를 사례별로 조사·연구하여 발표한 녹색연합 서재철 생태보전국장은 백두대간의 환경 문제가 이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밝히고 있다.

지리산은 성삼재 도로개설로 자연 환경 파괴 및 생태계가 교란이 심화되고 있으며, 덕유산은 무주리조트 스키장 건설로 주목과 구상나무 군락의 훼손과 구천동계곡이 오염되고 있다. 속리산은 용화온천 개발로 남한강 상류 지역의 수질이 급격히 오염되고 있으며, 태백산에서 구룡산으로 이어지는 서북측 계곡은 군사 폭격 훈련장으로 이용되어 야생 동식물의 서식처가 크게 훼손되고 있다. 자병산은 한라시멘트 석회광산 개발로 보존 가치가 큰 임계 카르스트 지형이 파괴되고 있으며, 점봉산은 양수댐 건설로 천연림 보호구역의 파괴 및 남대천 수질 오염이 심화되는 등 백두대간 전 구간에 걸쳐 각종 난개발로 인하여 자연 환경이 크게 훼손되었다.

이처럼 백두대간이 흉물스럽게 파헤쳐지자 여러 환경단체들이 백두대간의 보호를 위해 한 목소리를 내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정부 차원에서도 생태의 보존과 보호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정부는 한반도의 핵심 산줄기이며 생태계의 보고인 백두대간을 잘 보전하여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하여 2003년 12월31일 ‘백두대간 보호에 관한 법률(법률 제7038호)’을 제정·공포하고, 2005년 1월1일자로 시행에 들어간다. 그러나 백두대간이 통과하는 6개도의 30여 개 시군 자치단체들은 백두대간 보전의 필요성은 크게 공감하고 있지만, 백두대간 보호법이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하고 지역 현실을 무시한 가운데 보호구역이 설정되었다며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백두대간의 온전한 보전은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아온 주민들의 협력 없이는 결코 성공을 거둘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는 우리나라 자연환경의 상징적 존재이기도 한 백두대간의 보전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시점에 와 있다. 주민들의 요구를 합리적으로 수용·조절하여 백두대간 보호법의 문제점을 보완, 이를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데 우리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글 이우평 지질학자·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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