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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주말산행코스] 오지의 산 - 가부산

월간산
  • 입력 2005.11.15 09:31
  • 수정 2005.11.16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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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1m 강원 삼척 가곡면
황장목이 하늘 찌르고,
그 아래 군락 이룬 꼬리진달래

▲ 가부터골 하산길. 길흔적이 없어 계류를 타고 내려서게 된다.
▲ 가부터골 하산길. 길흔적이 없어 계류를 타고 내려서게 된다.
‘자손도 없이 세상을 뜨면
누가 제사를 지내줄꼬…’

대를 이어갈 자손이 없는 사람이 소유재산을 마을에 헌납하면 그 사람이 죽은 후 제사를 지내주는 풍습을 무후제(無後祭)라고 하는데, 강원 삼척시 가곡면 가부산 아래 오목리의 무후제는 특이하게도 이름도 성도 모르는 묘 4기에 벌초도 하고 제사도 지내준다.
마을 사정에 따라 날짜가 변경될 수도 있으나, 매년 이장 집에서 신위가 없는 4명의 무후제를 음력 10월20일로 정해 놓고, 200여 년 동안 지내왔다.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해오는 오목리가 가부산 산행의 들머리가 되겠다.

가부산, 또는 가북기산(?富山,加富山·841m)은 낙동정맥 상의 최고봉 백병산(1,259.3m)을 조산으로 하여 동으로 뻗은 지맥의 사금산(1,092m) 남쪽에 무명봉으로 솟아 있던 산이다. 그래서 아직도 마을 사람들조차도 가부산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모를 정도니 산악인들의 발걸음 또한 전무한 것은 뻔한 이치다. 가부산의 이름은 옛날 부자가 살았었다는 가부터에서 유래됐다. 지금 가부터골은 무인지경에 흉물스러운 잔해만 집터에 남아있다.

옛터골로 올라 가부터골로 하산

▲ 오목리 이장 김연복씨와 부인 김선녀씨(가운데).
▲ 오목리 이장 김연복씨와 부인 김선녀씨(가운데).

옛날부터 오동나무가 많이 서식하고 있어 오목리라 했던가. 조용한 오목리 삼가촌 삼거리에서 태백여성산악회 권영희 회장, 안순란씨와 속닥하게 산행을 시작한다. 대치촌, 옛터골 마을이 위치한 서쪽 방향으로 뚫린 길을 따라간다. 지금 한창 송이버섯이 나는 기간이라 조금은 껄쩍지근한 걸음걸이다. 허지만 벽계 따라 흐르는 산삼 섞은 물은 노래를 부르고, 여름내 뜨거운 햇살을 용케도 견뎌낸 고개 숙인 벼, 가부산 등허리를 지고 졸고 있는 농가들, 가을의 전령사 쑥부쟁이와 꽃향유, 나도송이풀의 함박웃음, 입안에 톡하고 터지는 달콤한 다래나무 열매…. 이 모든 것이 아스라한 영원의 세계로 들게 한다.

모롱이를 들자 벼이삭을 쪼아 먹던 새떼가 화들짝 놀라 산으로 날아오른다.

‘휴여 어이 / 아랫녘 새 웃녘 새 / 천지고불 녹두새야 / 우리 밭에 쭤 먹지 말고 / 저 건너 장자집 밭에 가 쭤 먹어라. / 휴여 어이 / 멀리 멀리 가라. / 휴여-’

▲ 771m봉 오르기 직전에 만난 어린아이 무덤 크기의 개미무덤.
▲ 771m봉 오르기 직전에 만난 어린아이 무덤 크기의 개미무덤.

또 한 번 산허리를 끼고 돌아들자 소담스런 감이 주저리 가지가 찢어져라 달려있다. 한 켠에서는 손톱만한 다랑논에서 할머니 셋이서 낫으로 나락을 베고 있다. 젊은이들은 어디로 갔는지?

“할머니 땅에 떨어진 홍시 주워 먹어도 돼요?” 허리를 천천히 두드리며 “에이 그걸 어떻게 먹어, 잘 익은 걸로 골라 따 잡셔.”

모두 합해야 세 집이 전부인 오목리 4반 고기(옛터골) 마을에 닿았다. 알밤이 뒹굴고 감나무 아래 평상이 자리한 오목리 이장 김연복씨(44) 농가다. 농촌의 시월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달이다. 마침 이장은 송이 따러 나가는 참이고 부인 김선녀씨는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논에서 일하는 할머니들의 새참을 가지고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있다.

▲ 권영희씨와 안순락씨가 옛터골로 들어서고 있다.
▲ 권영희씨와 안순락씨가 옛터골로 들어서고 있다.

이장집 뒤 옛터골로 밤 껍질을 퉤퉤 뱉으며 오른다. 방공호 같은 옛터골에 들자 길은 오른쪽으로 급히 구불텅 올라가더니 외딴 농가 한 채 내려다보이는 지능선이다. 여기서 농가로 이어진 길로 가지 않고 왼쪽  등성이 소나무 사이로 771m봉을 향해 마루금을 따라간다.

마을 사람들이 많이 다닌 듯 의외로 길은 잘 나 있으나 간벌하고 마구 버린 나무들 때문에 보행이 느려진다. 풍산 진씨 묘를 지나도 여전하다. 구절초가 핀 능선 마루금을 놓치지 않도록 신경을 쓴다. 가르마 같은 길 양쪽으로 소나무, 굴참나무들이 편을 갈랐다.

바위지대는 우회한다. 바위틈바구니를 좋아하는 꼬리진달래 군락을 지나고, 아름드리 황장목이 하늘을 찌르는 아래 진달래, 철쭉, 싸리나무 사이를 비집고 계속 고도를 높여간다. 어린아이 무덤처럼 생긴 3개의 개미무덤(집)을 지나자 숲이 빼곡히 들어차 조망은커녕 하늘도 보이지 않는 봉분 같은 771m봉이다.

정상으로 이어진 능선은 잠시 내려가는 듯하더니 이내 평탄한 능선이다. 똬리를 틀고 길을 차지하고 꼼짝도 하지 않고 눈을 부라려 혀를 날름거리는 살무사 한 마리. “네 이놈 어느 안전이라고. 냉큼 길을 트지 않으면 경을 칠 것이다” 하고는 나이프를 꺼내 스틱에다 칼날을 슬슬 문지르는 시늉을 하니 한참만에야 못이기는 척 똬리를 풀고 슬그머니 돌틈으로 들어간다.

▲ 구부러진 소나무가 지형지물이 되는 가부산 정상.
▲ 구부러진 소나무가 지형지물이 되는 가부산 정상.
멋들어진 노송들을 천천히 구경하며 771m봉을 떠난 지 40여 분에 자연석이 빙 둘러 성곽처럼 쌓인 중앙에 노송 5그루가 있고, 그 중 한 그루는 의자처럼 구부러진 소나무가 있는 가부산 정수리다. 삼각점은 없고 방 한 칸 정도 넓이 땅에는 화본과 식물 김의털이 카페트를 깐 양 자라고 있다. 조망은 사방 숲이 빼곡하여 북으로 겨우 사금산이 보일 뿐이다.

하산은 그대로 이어지는 북쪽 능선을 따라 잠시 내려선 첫번째 안부에 이르러 주능선을 버리고 오른편 동쪽 지능선의 희미한 길로 내려선다. 오래된 듯한 구불거리는 길에는 울진 소광리에 있는 소나무보다 더 굵고 크게 보이는 소나무들도 눈에 띈다.

가부터골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계곡이 가까워지자 칡넝쿨이 하늘을 덮었다. 덩굴을 뚫고 나가려고 애써 보지만 더욱 난감해질 뿐이다. 능선길을 포기하고, 사태 난 계곡을 따라 구르다시피 하여 거친 숲터널을 빠져나오자 꽃향유, 쑥부쟁이가 반기는 가부터골이다.

▲ 가부터골 하류.
▲ 가부터골 하류.
풍성한 물줄기가 산을 울리며 쏟아지는 풍정에 도취되어 목청 돋우어 아라리 한가락 뽑으며 널브러진 길을 다리 힘을 풀고 걷는다.

 ‘일 강릉 이 춘천 삼 원주라 하더니 / 여기가 극락정토 무릉도원 가부계곡이로다. // 봄철인지야 가을철인지 나는야 몰랐더니 / 저 건너 가부산이 세월을 알궈 줍니다.’  

아랫가부터에는 옛 부귀영화는 간 곳이 없고 쓰러져 버린 집은 세월의 무상함을 말해주는 듯  쑥부쟁이 꽃만 스산하게 피어 있다.

산행안내

오목리 삼가촌 삼거리를 기점으로 삼아 원점회귀산행이 좋다. 정상을 지난 후 하산은 언제든지 주능선을 따르다 오른편 동쪽으로 내려서면 가부터골이다. (1:50,000 지형도 장성)


교통

호산 시외버스터미널(033-572-6045)에서 1일 2회 오목리행 버스 이용(07:20,17:20), 또는 호산~풍곡행 간 1일 6회(07:00~19:20) 운행하는 시내버스로 오저(청평)에서 하차한다.

태백 시외버스터미널(033-552-3100)에서 07:10(포항), 08:30(호산), 10:00(포항), 13:00(호산), 19:00(호산)에 운행하는 버스로 오저(청평)에서 하차.


숙박

태백 맛나분식(033-552-2806, 016-348-5770)은 단체 도시락 주문을 받는다. 20가지의 차림이 있다. 교통이 편리한 태백문화예술회관 앞에 있다.

오밀 마을 가곡천변의 그곳에 가면(033-572-8816)은 민박과 식사도 된다. 산행 후 연락하면 자동차로 데리러 온다.

청평 마을에 삼풍기사식당(573-4255)과 가곡식당(572-4733)이 있다.

오목리 이장 김연복(033-572-7184)에게 부탁하면 민박집을 소개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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