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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축제 산행] 낙안 금전산

월간산
  • 입력 2005.11.15 13:39
  • 수정 2005.11.16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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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한 낙안들판과 읍성 내려다보는 전망 일품
낙안온천~형제바위~금강암~정상~동릉~쌀바위~불재

▲ 의상대 바위지대 너머로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는 낙안 들판이 내려다보인다.
▲ 의상대 바위지대 너머로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는 낙안 들판이 내려다보인다.

낙안온천 주차장에서 시작해서 금전산(金錢山·667.9m)을 오르는 산길은 그다지 급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완만하지도 않았다. 산행 출발 전에 낙안읍성에서 올려다볼 때는 초가 너머로 암봉도 제법 보이긴 했으나 처음부터 숲이 짙어 과연 조망이 어떨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출발한 지 단 5분만에 기우였음이 드러났다.

“그거 보세요. 제가 걱정 붙들어매라고 했지요. 금전산은 조망 하나는 끝내주는 산이랍니다.”

▲ 금강암의 일주문 역할을 하는 바위굴.
▲ 금강암의 일주문 역할을 하는 바위굴.

순천대산악부 출신인 김귀진씨(34)와 박원표씨(28)는 대학시절에 암벽코스를 개척하기 위해 구석구석을 다닌 이력이 있어 금전산 등산로를 손금 보듯 훤히 알고 있었다.

낙안읍성 북쪽에 솟은 금전산은 낙안의 진산이다. 옛 이름은 ‘쇠산’이었는데, 전하는 말에 의하면 100여 년 전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러나 대동여지도에 금전산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서 한자로 바뀐 지는 좀더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듯싶다.

금전산이라는 이름의 한자를 풀면 ‘금(金)으로 된 돈(錢) 산’이 된다. 산에 금은보화가 묻혀있을 리는 만무하고, 아마도 보배는 낙안들판을 내려다보는 조망이 아닐까 싶다.

낙안읍성을 기준으로 보면 드넓은 낙안벌 너머로 북쪽은 진산인 금전산, 동쪽은 좌청룡인 오봉산(592m), 서쪽은 우백호인 백이산(584m), 그리고 백이산에서 동남쪽으로 얌전히 흘러내린 안산인 옥산(97m)이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형국이다.

▲ 금전산 서쪽의 금둔사엔 보물 945호로 지정된 삼층석탑과 보물 946호로 지정된 석불입상이 있다.
▲ 금전산 서쪽의 금둔사엔 보물 945호로 지정된 삼층석탑과 보물 946호로 지정된 석불입상이 있다.

물줄기는 금전산 동남에서 흘러들어오는 동내와 서남에서 흘러나오는 서내가 있는데, 모두 성벽의 바깥동면을 따라 흘러 옥산 앞을 지나 들판을 훑고 바다로 이어진다.

풍수로 보면 ‘옥녀산발형(玉女散髮形)’의 명당. 이는 ‘옥녀가 장군에게 투구와 떡을 드리려고 화장하기 위해 거울 앞에서 머리를 풀어헤친 형국’이다. 낙안읍성 남쪽에 있는 평촌리 평촌못은 옥녀의 거울에 해당한다. 그래서 낙안 고을엔 옛날부터 미인들이 여느 지역보다 유난히 많다고 전한다.

다시 숲을 지나 얼마쯤 가자 본격적으로 시야가 트이기 시작했다. 서쪽으론 조계산에서 고동산을 거쳐 백이산으로 이어지는 호남정맥 마루금이 넌출거리고, 남쪽으론 풍요로운 낙안들판이 펼쳐져 있다.

낙안온천을 출발한 지 35분만에 집채만한 바위에 도착했다. 높이가 5~10m 정도 되는 이 바위 한 쪽엔 키가 비슷한 두 개의 바위가 사이좋게 나란히 붙어있어 형제바위라 불린다. 그러나 1980년대 태풍이 불던 어느 날 밤에 아래쪽 동생바위가 허물어져 형님바위만 남았다. 하나만 남은 바위 생김새가 조금 날카로워 칼바위라고도 한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 낙안읍성 북쪽에 자리한 금전산은 낙안의 진산이다.
▲ 낙안읍성 북쪽에 자리한 금전산은 낙안의 진산이다.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면 조심해서 올라갈 수 있는 형제바위 정상에서 땀을 식히며 내려다본 조망은 정말 일품이었다. 아침 안개가 접시 모양의 낙안들판을 뒤덮으면 옥산이 섬처럼 솟는 장관을 만날 수도 있는데, 애석하게도 이런 날은 일 년에 며칠밖에 안 된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 금전산 오름길에 만난 형제바위. 원래는 두 개였으나 동생바위는 태풍에 무너졌다고 한다.
▲ 금전산 오름길에 만난 형제바위. 원래는 두 개였으나 동생바위는 태풍에 무너졌다고 한다.
형제바위를 지나 짧은 숲길을 벗어나자 문득 큰 암봉들이 눈앞에 나타난다. 동쪽 암봉은 동대, 서쪽 암봉은 서대인데, 절집에선 동대를 원효대, 서대를 의상대라고도 부른다.

산길은 두 바위 사이를 지나 서대인 의상대로 이어진다. 잠깐 오르자 금강암의 일주문 역할을 하는 바위굴이 나타났다. 지리산의 통천문 비슷한 바위굴엔 극락문이라는 글자가 한자로 새겨져 있다.

바위굴을 나서자마자 왼쪽으로 맑은 석간수가 반긴다. 시원한 샘물로 목젖을 적시고 산성 같은 예쁜 돌계단을 지나면 여염집처럼 보이는 금강암(金剛庵)이다. <승주향리지>에 의하면 ‘위덕왕 30년(583)에 금둔사가 창건되었고, 그후 의상대사가 금강암 문주암 등 30여 암자를 가진 큰 절로 중건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금강암 쇠북소리…” 김귀진씨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무슨 노랜가 했더니 낙안초등학교 교가라고 한다. 낙안에 있는 학교 치고 금전산과 금강암이 등장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금전산은 낙안 사람들에게 성스러운 산으로 여겨지고 있다. 김씨는 낙안초등학교 출신이다.

금강암을 왼쪽으로 돌아가면 의상대로 오를 수 있다. 의상대 펑퍼짐한 바위엔 어른 키를 넘는 돌탑 한 기가 서있고, 그 옆 바위벽엔 최근에 새긴 듯한 마애불이 낙안들판을 굽어보고 있었다. 의상대 마애불의 눈길을 따라가 보니 과연 의상대사가 수도했다는 말이 허언이 아닐 정도로 장관이 펼쳐진다. 낙안들판과 금전산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임을 명확히 알 수 있다.

금강암 의상대는 최고의 전망대

▲ 정상에서 동릉으로 가다가 바라본 풍경. 낙안저수지 너머로 낙안 들판이 펼쳐져 있고, 그 너머로 벌교가 아련하다.
▲ 정상에서 동릉으로 가다가 바라본 풍경. 낙안저수지 너머로 낙안 들판이 펼쳐져 있고, 그 너머로 벌교가 아련하다.

마애불에겐 죄송하지만 배낭에 싸온 간식을 먹기에도 의상대는 최고의 자리였다. 김귀진씨가 내놓은 간식은 걸쭉한 요구르트와 게맛살처럼 찢어먹는 스트링 치즈였다. 김씨는 2년 전 금전산 동쪽의 불재 정상에 목장을 마련하고 유가공업에 뛰어들었다. 김씨는 “고객들에게 요구르트와 치즈의 맛이 ‘따뜻한 봄날의 낙안들판 같다’는 평을 들었다”며 자랑하곤 쑥스러운 듯 웃음을 터뜨린다. 최근에 개봉한 영화 ‘너는 내 운명’의 목장 장면을 자신의 목장에서 촬영했는데, 당시 전도연씨도 요구르트와 치즈 맛에 반했다고 덧붙인다.

▲ 금강암 돌탑 너머로 넌출넌출 흘러가는 호남정맥 마루금이 보인다.
▲ 금강암 돌탑 너머로 넌출넌출 흘러가는 호남정맥 마루금이 보인다.
의상대를 벗어나 정상을 향해 오른다. 산길은 암자를 왼쪽으로 돌아서 나있었다. 10여 년 전만 해도 금강암에서 정상 오르는 길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그러나 요즘엔 등산객들이 늘어났고, 금강암 스님이 길을 다듬은 덕에 제법 널찍해졌다.

금강암을 떠난 지 20분만에 헬기장이 있는 전위봉이고, 여기서 평탄한 길을 2~3분 더 오르자 돌탑이 서있는 금전산 정상이 나왔다. 정상은 잡목숲에 가려 있어 조망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다.

정상을 지나면 산길은 오공재, 그리고 불재로 내려가는 두 갈래로 나뉜다. ‘오공재 2.44km, 불재 3.4km'라 쓰인 삼거리에서 잠시 고민에 빠진다. 김씨는 오공재로 내려서는 길은 있으나 그다지 좋지 않고, 도중에 금둔사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있긴 해도 금둔사측에서 산길을 폐쇄했다고 한다.

 우리는 애초에 계획한 대로 동릉을 타고 불재로 내려서기로 했다. 그러나 만약 낙안온천에 주차해 놓은 차 때문에 회귀산행을 해야 한다면 정상에서 다시 올라온 길을 되짚어 내려가야 할 것이다.

동릉은 숲이 짙어 조망은 그다지 좋지 않았으나 부드러운 내리막에 호젓한 산길이 계속 이어졌다. 콧노래를 부르며 정상을 떠난 지 20분만에 궁굴재 삼거리에 도착했다. 팻말엔 ‘금전산 정상 1.2km, 불재 1.3km, 휴양림 1.2km'라 써있었다. 여기서 낙안민속 자연휴양림으로 이어지는 산길은 경사는 약간 있으나 부드럽다.

▲ 금전산은 바위가 많지만 산길은 그리 위험하지 않다.
▲ 금전산은 바위가 많지만 산길은 그리 위험하지 않다.
고갯마루에서 직진해 오르막을 5분쯤 오르자 비로소 시야가 트였다. 휴양림 아래의 낙안저수지 너머로 낙안들판이 살짝 보였고, 그 너머 멀리 벌교 고을이 어슴푸레 나타났다. 다시 15분만에 동남릉의 마지막 봉우리 정상에 도착했다. 이젠 내리막만 남았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쌀바위까지는 길이 제법 가팔라 초등학교 저학년은 조금 위험할 듯싶었다. 그래도 경치는 좋았다. 금강암 오름길에 잘 안 보이던 구절초도 눈에 많이 띄었는데, 남도의 꽃답게 꽃송이가 제법 큼직했다.

마지막 봉우리에서 15분만에 도착한 쌀바위. 텐트 두어 동 칠 수 있을 만큼 평평한 터 한 쪽에 서있는 쌀바위는 높이가 4~5m 정도 되었는데, 욕심 많은 스님이 쌀을 많이 나오게 하려고 쌀구멍을 쑤셨으나 그 후로는 오히려 쌀이 나오지 않았다는 전설이 전하는 바위다. 쌀바위 오른쪽 아래 바위굴 속엔 처사샘이라는 석간수가 있다.

이후로 경사는 완만했고, 산길도 제법 널널했다. 2~3분 정도 내려서니 천막 두른 약수암이 나왔고, 임도 같은 산길을 10여 분 더 내려가자 새하얀 억새와 보랏빛 쑥부쟁이가 반기는 불재 정상이었다.

산행길잡이

금전산 정상으로 오르는 코스는 오공재 코스, 금강암 코스, 불재 코스, 휴양림 코스 4개가 있다. 이중 가장 많이 이용하는 대표적인 코스는 낙안온천에서 시작하는 금강암 코스다. 낙안온천~형제바위~금강암~정상이 산행시간만 1시간쯤 걸리지만, 낙안들판 조망을 즐기다보면 시간이 길어진다. 정상~동릉~쌀바위~불재는 1시간10분쯤 걸린다. 산행시간만 총 2시간10분쯤 걸린다.

교통

순천→낙안 공용버스정류장 앞에서 0-1번, 16번, 63번, 68번 버스가 매일 수시(06:20~21:10) 운행. 1시간 소요, 요금 890원.

자가운전은, 갈대 축제장인 대대동에서 818번 지방도를 타고 순천청암대 앞까지 나와 58번 지방도를 타고 낙안 방면으로 간다. 대대포구에서 30~40분 정도 달리면 금전산 산행기점인 낙안읍성에 도착할 수 있다. 낙안파출소 앞 사거리에서 857번 지방도를 타고 송광사 방면으로 1.5km 정도 달리면 금전산 산행기점인 낙안온천이 왼쪽으로 보인다.

숙박

성안의 민박집 : 낙안읍성 안에는 잔디민박(061-754-6644), 동문고향집(061-754-2550), 처가집(061-754-2968) 등 민박집이 많다. 모두 짚으로 지붕을 올린 초가집이라 옛 시골 정취를 맘껏 경험할 수 있다. 2인1실 기준 30,000원.

성밖의 숙박업소 : 초가집은 아니지만 성밖에도 초고속인터넷도 가능한 수환이네(061-754-6604)를 비롯해 고향촌(061-754-6730) 등 콘도형 민박집이 여럿 있다. 2인1실 30,000원. 읍성 주변의 모텔형 숙박업소는 파출소 사거리에 있는 궁전모텔(0610754-6951)이 유일하다. 2인1실 기준 30,000원.

낙안민속 자연휴양림 : 금전산 동남쪽 기슭에 자리 잡은 낙안민속 자연휴양림은 2004년에 개장했다. 낙안읍성에서 불과 1km 떨어져 있고, 금전산으로 오르는 등산로도 뚫려있어 금전산 산행과 낙안읍성 구경을 모두 겸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휴양관은 7평형 방이 44,000원이고, 야영장은 4,000원이다. 전화 061-754-4400 /www.huyang.go.kr

맛집

낙안 팔진미 : 낙안의 별미는 이순신 장군이 낙안읍성을 방문했을 때 백성들이 대접했다는 팔진미(八珍味)다. 이는 금전산 석이버섯, 백이산 고사리, 오봉산 도라지, 제석산 더덕, 남내리 미나리, 성북리 무, 서내리 녹두, 용추천의 물고기로 요리한 음식이다. 낙안읍성 안에는 낙안 팔진미를 차리는 식당이 여럿 있다. 1인분에 10,000원.

▲ 별미 보리밥 정식.
▲ 별미 보리밥 정식.
보리밥 : 주말의 낙안읍성은 매우 번잡하다. 이럴 때는 차라리 성밖에서 요기를 하는 것도 괜찮다. 성밖엔 보리밥을 전문으로 하는 집이 눈에 많이 띈다. 보리밥 한 그릇을 시켜도 반찬 올려놓을 상이 비좁을 정도로 푸짐하다. 고사리, 버섯, 도라지 등 산에서 나는 것은 물론이고, 게장·갈치젓에 벌교 꼬막까지 올라온다. 무청과 상추 등의 푸성귀에 밥을 싼 다음 이런 저런 반찬을 올려놓은 뒤 한 잎 삼키면 배는 저절로 부르다. 고향보리밥(061-754-3419)이 잘한다. 1인분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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