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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원정보고] 카라코룸 가셔브룸

월간산
  • 입력 2006.10.04 16:47
  • 수정 2006.10.10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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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과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가셔브룸2봉·1봉 연속 속도등반기

▲ 가셔브룸1봉의 재패니즈 쿨와르를 동아대 조벽래 등반대장이 힘차게 오르고 있다. 중앙 홈통을 빠져나가면 C3다
▲ 가셔브룸1봉의 재패니즈 쿨와르를 동아대 조벽래 등반대장이 힘차게 오르고 있다. 중앙 홈통을 빠져나가면 C3다

태양으로 제 이름을 찾게 된 빛나는 산 가셔브룸은 자정이 지난 지금 사라졌고, 이 산을 오르려는 내 의지는 폭풍설 속으로 조금씩 사그라들고 있다. 미친 듯이 달려드는 바람에 텐트가 날려가지 않도록 폴을 움켜쥐고 버티고 있다. 찢어진 천 사이로 눈가루가 몰려들어 다리 위에 희끗 쌓인다. 이제 양쪽 신발을 툭툭 부딪쳐 털어내기도 귀찮아 그냥 내버려둔다.

7월9일 BC(5,100m)에서 저녁 6시에 출발, 23시간 운행으로 다음날 가셔브룸2봉(8,035m)의 7,350m 지점에서 등반을 멈췄다. 휴식이 필요했다. 전 등반대가 버리고 간 텐트를 보수했다. 플라이는 없고 본체는 찢어졌지만 그런 대로 가지고 온 침낭과 매트리스로 하룻밤을 버티기에는 괜찮을 듯싶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날씨는 좋았다. 그러나 밤 10시가 지나면서 날씨는 내 편이 아닌 쪽으로 돌아섰다.

▲ 왼쪽부터 가셔브룸3봉, 2봉, 가셔브룸2 동봉이다. 등반루트는 2봉 정상에서 전면으로 뻗어 내려온 남서릉이다.
▲ 왼쪽부터 가셔브룸3봉, 2봉, 가셔브룸2 동봉이다. 등반루트는 2봉 정상에서 전면으로 뻗어 내려온 남서릉이다.

이곳에는 내가 도착하기 전에 한 명이 더 있었다. 그는 아래쪽에서 플라스틱 부츠만 드러낸 채 눈 속에 누워있던 사자(死者)다. 그의 신발이 한 컷의 사진처럼 몽롱한 머리에 선명하게 떠오른다.

졸다가 놀라서 깬다. 죽은 등반가가 춥다며 내 텐트에 들어갈 수 있느냐고 묻는다. 남자의 목소리다. 지퍼를 열려고 폴을 꽉 잡았던 손을 뗀다. 굳어 있다. 여러 번 오므렸다 펴기를 반복하여 문을 열자 눈을 머금은 찬 바람이 얼굴에 확 들이친다. 정신이 들고 랜턴 불빛이 비친 파리한 어둠에는 아무도 없다.

‘산은 우리 등반가에게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일까?’ 이 높이에서는 이 따위 생각하는 것조차도 에너지를 소모하는 불필요한 일이며,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단지 이 텐트가 날아가지 않도록 붙드는 것만이 내가 살아 있는 마지막 이유다.

BC에서 해수면에서와 같은 컨디션 만들어

다시 존다. 꿈을 꾼다. 붉은 태양이 찾아오고 가셔브룸은 빛나고 나는 또 오른다. 그러나 아침에도 강풍은 여전했다. 더 이상 위로 갈 수 없었다. 단독등반을 하고 있지만 BC에는 한국에서 함께 온 세 팀이 더 있지 않은가. 내게 어떤 일이 발생한다면 굳은 일은 그들이 맡게 된다. 있어서는 안 된다. 더 큰 원인은 고소순응이 완전치 않다는 것이다. 이렇게 첫 시도는 자기학대로 끝났다.

우리 원정대는 네 팀이 모여 구성되었다. 90년 네팔 글레이셔돔과 96년 인도 마나파르밧1·2봉을 성공적으로 마친 동아대 산악회는 개교 60주년 기념으로 부산 지역의 단일 대학산악회로서는 처음으로 8,000m급 봉우리를 오르기 위해 1년 반 동안의 피나는 훈련과 준비과정-부산에서 그들이 했던 훈련일정표를 받았을 때 요즈음에도 이런 팀이 있나 싶을 정도였다-을 마치고 정민규 총대장 외 6명으로 출국을 앞두고 있었다.

여기에 8,000m 14개 거봉 완등을 목표로 하는 걸출한 등반가인 오희준(노스페이스)과 세라브 장부 셰르파(Serab Jangbu Serpa)가 한 팀. 또 ‘하나의 모자람을 둘로 해낼 수 있는 사람들. 한국 가셔브룸 1·2봉 원정대’인 전남광주의 김홍빈(스포랜드)과 그를 도울 김미곤(한국도로공사 산악팀)이 한 팀, 그리고 단독등반을 위한 필자가 합류했다. 뒤의 세 팀 5명은 캐러밴과 BC 생활의 편의를 위해 임시 합동대가 되었다.

▲ 가셔브룸2봉 정상에 올라 BC와 교신하는 동아대 백진국.
▲ 가셔브룸2봉 정상에 올라 BC와 교신하는 동아대 백진국.
동아대는 취득한 가셔브룸2봉 등반허가서를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고, 1봉(8,068m) 등반허가서는 BC에서 위성전화기로 신청하기로 했으며, BC까지는 하나의 원정대로, 그리고 등반은 팀별로 각자 알아서 하기로 결정했다.

이슬라마바드에서 예정된 문제가 불거졌다. 파키스탄-인도 국경분쟁지역인 발토로 빙하지역의 특성상 한 달 걸리는 국방부와 행정부의 신원조회(Security Clearance)가 처리되지 않았다. 결국 추가된 인원은 트레킹 허가서를 받아 캐러밴을 시작할 수 있었고, 골머리를 앓으며 상행 캐러밴을 마쳤다.

▲ 가셔브룸2봉 C2직전의 수직빙벽과 김미곤.
▲ 가셔브룸2봉 C2직전의 수직빙벽과 김미곤.
올해는 가셔브룸 2봉 등정 50주년 되는 해다. 세계 각국에서 24개팀이 입산신청한 상태이며, 우리가 6월25일 BC에 입성하던 날은 먼저 들어온 대여섯 팀으로부터 환영 아닌 환영을 받았다. 대부분 모집 등반대나 상업등반대인 이 팀들은 스스로 루트작업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 그 때까지 등반은 남서릉 C2 150m 밑까지 예년과 달리 바나나리지 우측으로 고정로프가 설치되었고, 로프를 작업한 상업등반대 스위스팀(대장 카리 코블러)이 로프 이용료를 내라는 통지를 받은 타 외국 원정대는 한국팀이 새로운 로프를 설치할 것에 은근히 기대를 건 듯했다.

26일 등반허가를 받았고 다음 날부터 본 등반이 시작되었다. 내 등반 계획은 비록 노멀루트지만 방식을 달리하여 BC에서 정상까지 단독으로 쉬지 않고 오르고, 또 BC까지 하산하는 속도등반이다. 출국 전 부족한 훈련 대신으로 이슬라마바드 새벽 거리를 뛰었고, 캐러밴 도중에는 파유에서 뒷산을, BC에서는 샤그린까지 속보로 해수면에서와 같은 속도를 내기 위해 몸을 가다듬었다.

히말라야 등반가 또한 여느 클라이머와 같이 중력과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중력에 역행하는 등반가는 크레바스와 벽에서 추락의 위험을 안고 있으며, 목적지에 도달하고 안전지대로 내려오기까지 먹고 자고 오르는 행위에 필요한 물품을 배낭에 짊어지고 가야 한다. 등반시간은 길어질수록 희박한 공기의 고도는 체중을 감소시키며 몸은 약해진다. 지고 가야할 짐은 더욱 많아지고 급변한 악천후가 파리스의 화살이 되어 아킬레스건을 관통할지 모른다.

알피니스트는 히말라야 설산을 오르고 싶어하지만 그 산에 오래 머물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그럼 보다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차기에 알파인 스타일로 7,000~8,848m급 봉우리의 벽에서 신 루트를 내려면 이러한 훈련이 필수적으로 생각됐고 급격한 고도상승에 따른 내 신체반응을 알아야한다. 첫 시도에서는 속도도 내지 못했고 피로감이 심했다.

2봉 정상에서 하산도 잊은 채 파노라마 즐겨

스위스팀이 로프 사용료를 내지 않으면 철수시에 모든 로프를 절단하겠다는 엄포를 놓았을 때 산에서까지 장사하는 그들의 작태에 아무리 요즈음 히말라야 등반의 세태라지만 나머지 팀들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다.

세르비아팀의 제안으로 우리는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이틀간의 지루한 의견교환 끝에 루트작업을 할 대원이 없는 세르비아팀이 스위스팀 로프를 미화 1,000달러를 지불하여 사용권을 취득하고, 우리 팀이 그 로프를 무료로 사용하고 C2 이상에서 우리가 설치한 로프를 그들이 무료로 사용한다는 내용과, 세르비아팀은 각 등반대에서 대원수에 준하여 각출한 금액으로 지출한 달러를 보상하고 우리가 설치한 로프는 얄밉지만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우리의 제안에 따른 협약이었다.

▲ 가셔브룸2봉 마지막 헤드월의 빙설벽의 루트작업을 하는 광주팀과 동아대팀.
▲ 가셔브룸2봉 마지막 헤드월의 빙설벽의 루트작업을 하는 광주팀과 동아대팀.

광주팀의 김홍빈은 1991년 북미 매킨리(6,194m) 조난사고로 양손가락을 모두 잃은 장애인이다. 그의 손가락을 대신할 미곤이는 나와 함께 해낸 로체 남벽과 낭가파르밧 루팔벽 등반을 미루어볼 때 강한 체력를 가진 뛰어난 등반가임에 틀림없다.

▲ 남 가셔브룸 빙하의 크레바스를 뛰어 건너는 뉴질랜드 마운틴 매드니스 팀.
▲ 남 가셔브룸 빙하의 크레바스를 뛰어 건너는 뉴질랜드 마운틴 매드니스 팀.
캠프지가 필요 없는 나는 고소적응 시에 이들의 짐을 옮겨주며 돕기로 했다. C1까지 한 번, C2까지 한 번, 그것으로 우리의 동행은 더 이상 어려웠다. 홍빈이형과 나는 서로를 이해하기에 너무나 넓은 크레바스가 가로막았다. 

에베레스트 등반에서 14kg의 체중감소와 심한 기침에도 등반을 펼치는 희준이와 작은 체구에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 모습이 멋진 장부 팀이 재빠르게 정상에 올랐다. 이들은 7월5일 C1, 6일 바로 C4, 7일 새벽 2시경에 캠프를 떠나 스위스, 아르헨티나 대원 7명과 함께 현지시각 오전 9시45분에 정상에 올라 시즌초등을 이루었다.

눈이 연일 내린 후 동아대의 백진국(85학번), 김남구(01학번)와 고소포터 알리, 후세인 2명과 광주팀 2명이 떠났다. 혼자인 내가 가장 두려워하던 C1까지 구간은 저녁에는 얼어붙지 않아 출발시각을 새벽으로 바꾸었다.

▲ 가셔브룸1봉 정상에 오른 오희준.(위쪽) 라마제를 지낸 후 전대원이 모였다.(아래쪽)
▲ 가셔브룸1봉 정상에 오른 오희준.(위쪽) 라마제를 지낸 후 전대원이 모였다.(아래쪽)
라마제단 앞에서 기원하고 1봉 등반을 나서는 희준과 장부와 함께 BC를 출발한다. 밀크티가 담긴 보온병 두 개, 카메라, 우모복 상의가 든 배낭은 가뿐하다. 세락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촬영하는 둘을 뒤로하고 C1(5,900m)까지 단번에 쉬지 않고 3시간20분만에 들어갔다.

여기에서 차 한 잔을 마시고 계속 밀어붙여야 한다. 그러나 가스가 밀려오기 시작한다. 쉬면서 기다린다. 날씨가 안정치 못하여 하루를 머무르고 말았다. 다음날 날씨는 개었다. 고민이다. 계획대로라면 BC에 내려가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시간은 여러 번의 기회를 줄 것 같지 않다.

오후 5시 C2(6,400m)로 향한다. 각 캠프지는 다른 팀에게 하루의 운행을 마치고 쉴 위치이지만 나에게는 뜨거운 차를 마시며 잠깐 쉬는 지점이다. 땀이 나지 않게, 호흡을 조절하며 C2를 지나 10시20분 C3(6,900m)에 지원조로 올라온 동아대의 김정곤(82학번)과 조벽래 등반대장(88학번)을 만났다. 텐트로 들어와 쉬고 가라는 동기 벽래의 말을 거절하고 덧바지와 우모복을 입고는 오름짓을 재촉한다. 폐에 찬 공기의 흡입으로 체온은 떨어지고 약간의 피로감을 느낀다. 달빛 없는 어둠으로 고함을 지른다.

새벽 1시30분 C4(7,400m)에서 쉰다. 자정에 여기를 출발한 6개의 랜턴 불빛은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경일대팀과 2003년 등정 경험이 있는 니사르 후세인이 같이 있어 걱정할 일은 아니다. 앞선 팀이 차이나 콜을 목표로 우측으로 우회한 루트를 선택한 것과 달리 직선 방향으로 오른다. 경사가 만만치 않고 가끔 청빙이 나타난다.

오전 6시20분 콜에 오르자 중국쪽에서 태양이 솟았다. 설빙벽으로 변해버린 마지막 헤드월을 오르고 있는 그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손을 흔들자 미곤이 답한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는 짙은 감청색에 산은 태양열로 덥다. 우모복을 벗었다. 갈증이 심해진다. 아마 체중이 몇 kg은 줄었을 것이다.

제 속도를 내지 못한다. 꾸준히 그들에게 따라붙는다. C3와 C4를 출발한 많은 원정대는 루트가 정비되기를 기다리며 아래쪽 콜에서 쉬고 있다. 정상 밑은 상상외로 가파르다. 한 발 한 발 사력을 다하는 남구의 엉덩이를 치고 지나 줄에 매달려 쉬는 진국 형과 몇 마디 말을 건넨다.

먼저 도착한 광주팀과 오전 11시20분 정상에서 만났다. 그리고 동아대팀도 올라왔다. 이 날 30여 명의 등정자는 하산해야 할 시간도 잊은 채 카라코룸의 파노라마를 마음껏 즐겼다. 우리는 2시간을 머물렀다. 

1·2봉 연속등정에는 성공했으나, 등반은 실패

▲ 세르비아 팀의 이소와 고소포터가 눈사태의 위험이 있는 재패니즈 쿨와르를 오르고 있다.
▲ 세르비아 팀의 이소와 고소포터가 눈사태의 위험이 있는 재패니즈 쿨와르를 오르고 있다.
일찌감치 가셔브룸 2봉 등반을 마친 희준이 팀의 일정에 맞추어 가셔브룸 1봉 등반허가서를 받았다. 그들의 첫번째 시도가 장부의 컨디션 난조로 7,500m 지점에서 돌아서서 내려오던 날, C1에서 그들을 만났다. 다음날 C1으로 올라온 동아대팀과 동행하기로 한다.

29일 C2(6,500m), 31일 암벽의 재패니즈 쿨와르를 올라 잡석지대에 C3(7,100m)를 만들었다. 이 날  BC에서 출발한 희준은 혼자 올라왔다. 30일 새벽 1시 가스가 낀 불안정한 날씨를 걱정하며 텐트를 나선다. 벽래와 세르비아의 교사 플라니치 이소(Planic Iso·41)는 산소를 사용하고 있다. 올해 이상고온 때문인지 정상으로 연결되는 1,200여m의 넓은 쿨와르 안은 앞 팀의 보고와는 달리 얼음으로 변해 있었다.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신경을 곤두세운다. 고정로프는 없고 등반줄은 묶지 않았다.

오전 10시40분, 7명은 세찬 바람이 기다리는 정상에 올랐다. 내 자신의 등정보다 카라코룸 탐사와 로체 남벽, 낭가파르밧에서 동반자로 활약한 카메라가 드디어 거봉의 정수리에서 넓은 산맥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장부, 미곤과 나는 시간이 허락한다며 브로드피크(8,047m)까지 오르려 했었으나 원정 기간은 종료되었다. 속도등반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으나 끝내 홍빈 형의 손은 잡을 수 없었고, 그래서 이번 가셔브룸 등반은 실패작으로 끝났다.

글·사진 김창호 서울시립대 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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