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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알프스에서 온 편지/브레방] 가이드 미쉘 크로가 더 마음에 와닿는 이유는?

월간산
  • 입력 2006.12.11 15:10
  • 수정 2006.12.12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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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인 호숫가에서 윔퍼의 <알프스 등반기>를 읽다

▲ 한낮에 호수가를 거니는 트레커들.
▲ 한낮에 호수가를 거니는 트레커들.
알프스를 동경한 필자 세대의 산악인들은 누구나 한번쯤 에드워드 윔퍼의 <알프스 등반기>를 접해보았을 것이다. 본문의 활자체가 깨알처럼 알차고 분량 또한 만만찮아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의 필자처럼 몇 페이지 넘기지 못한 경우라도 윔퍼의 마터호른 초등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해 많은 산악인이 알고 있을 것이다.

사실 필자는 알프스에 처음 왔던 1990년 여름에 이 책을 접했지만 앞서 밝혔듯이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다. 그 10여 년 후, 이곳 샤모니에 본격적으로 와 지낼 때 마침내 제대로 읽게 되었다. 물론 이 땐 이미 알프스 산행경험이 어느 정도 축적되어 책 속에 나오는 지명이나 산명 등이 익숙하여 한결 페이지들이 잘 넘어갔다. 특히 <알프스 등반기>의 무대인 몇몇 산들은 필자가 가본 곳이기에 더욱더 흥미가 있었으며, 본문에 곁들인 삽화들 또한 낯익은 것들이 많아 그림 속을 한참이나 들어다보곤 했다.

에드워드 윔퍼가 활동했던 당시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수많은 영국 산악인들은 알프스를 좋아한다. 아니 요즘이 더하면 더할 정도로 샤모니에는 많은 영국인들이 와 있다. 필자도 가본 적이 있는 영국의 척박한 낮은 산들을 오르다가 이곳 알프스의 침봉들을 대하면 누구나 반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그 시절, 카메라가 없던 당시에 삽화를 그리려 알프스로 온 젊은 윔퍼에게 알프스의 침봉들이 어떤 감흥으로 다가왔을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지방의 낮은 암장만 오르던 20대 초반의 내가 난생 처음 깔딱고개에서 인수봉을 대면했을 때의 가슴 벅찬 감흥보다 더 했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앙테르느 호수를 찾아서

매년 한 번은 찾아가는 알파인 호수가 있다. 올해엔 가보지 않아 가을이 막 시작되던 시기에 그곳으로 갔다. 바로 앙테르느 호수(Lac d'Anterne·2,083m)이다. 이 알파인 호수에 마침 며칠 전부터 집어든 <알프스 등반기>를 가져갔다. 지난 여름 그레노블 주변의 남알프스에 다녀온 나에게 윔퍼의 그쪽 산행기가 한층 눈에 선하게 다가와 읽는 재미가 쏠쏠하던 참이었다. 다시 읽는 산서의 즐거움이다.

느지막이 아침을 먹고 브레방(Brevent·2,525m)으로 향했다. 플랑 프라(Plan Praz·2,000m)까지 곤돌라를 타고 오른 나는 브레방까지 케이블카를 타지 않고 곧바로 브레방 고개(Col du Brevent·2,368m)로 올랐다. 브레방에서 이 고개로 내려와도 되지만 운동 삼아 오르막길을 택한 것이다. 1시간 이상 땀 흘리며 올라 고개에 다다를 즈음 젊은 부부가 아장아장 걷는 아이들 셋을 데리고 내려간다. 그들의 모습이 보기 좋다. 이윽고 노년의 부부가 천천히 뒤따른다. 아마 윔퍼가 말년에 샤모니에 와 지낼 때의 모습이 저렇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샤모니의 침봉들을 즐기며 내려간다.

▲ 아마 말년의 윔퍼가 이렇게 몽블랑 산군을 배경으로 산책을 즐겼으리라.
▲ 아마 말년의 윔퍼가 이렇게 몽블랑 산군을 배경으로 산책을 즐겼으리라.

이제 줄곧 내리막길이다. 이제부터 길은 몽블랑 산군 외곽을 일주하는 지도명 GR5 트레킹로를 따른다. 아를레브 다리(Pont d'Arleve·1,600m)까지 약 700m 고도를 낮춰야 한다. 지루하다. 한두 트레커들이 진땀을 흘리며 오르고 있다. 분명 앙테르느 안부 산장(Refuge du Col d'Anterne·2,002m)에서 출발한 이들이다. 한참 걸어 내린다. 고도를 낮춰 나무들이 한둘 나타나자 옛 목장의 허물어진 돌담들이 나타난다. 옛날에 이곳까지 목동들이 올라와 양이나 소들을 기른 흔적이다.

▲ 몽블랑 산군을 배경으로 부녀 트레커가 안턴 고개에 오르고 있다.
▲ 몽블랑 산군을 배경으로 부녀 트레커가 안턴 고개에 오르고 있다.
이윽고 아를레브 다리다. 다리 옆 그늘에서 배낭을 벗어놓고 쉰다. 다리 아래로 흐르는, 몽 뷔에(Mont Buet·3,096m)에서 발원한 시원한 물로 땀을 식힌다. 이제부터 산장을 지나 앙테르느 고개(Col d'Anterne·2,257m)까지 줄곧 오르막이다. 피즈 장벽(Rochers des Fiz)을 향해 진땀을 흘리며 오르고 있는데, 저만치 뒤따르는 트레커들이 있다. 곧 그들은 나를 따라잡는다. 아무리 가벼운 배낭을 짊어졌을망정 그들의 주력이 놀랍다. 더군다나 그들은 60대가 넘은 이들이다. 부러울 따름이다. 필자 또한 육십이 넘어서도 저렇게 산에 다닐 수 있을지 자문해 본다.

산장에 묵는 그들 뒤를 따르며 계속해서 오른다. 이윽고 산장이다. 그들과 헤어져 앙테르느 고개로 오른다. 양쪽 비탈진 사면에선 양들이 풀을 뜯고 있다. 고개 못 미처 두 명의 트레커를 만난다. 아버지와 딸인 듯하다. 이제 해가 넘어간 고갯마루에서 아버지는 딸에게 저 멀리 드넓게 펼쳐진 몽블랑 산군을 지켜보며 설명을 늘어놓는다. 이 고개에서 대면하는 몽블랑 산군은 또 다른 멋이다. 왼편 베르트에서 몽블랑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해가 기울고 있기에 이제 호수로 내려가 야영을 준비할 시간이다. 거대한 피즈 장벽에 가려 이미 그늘져 있는 호숫가로 내려선다. 30분쯤 내려가 호숫가에 다다랐을 즈음, 세 명의 흑인 가족이 호수를 지켜보며 쉬고 있다.

▲ 앙테르느 호수를 내려다보고 있는 흑인 트레커 가족.
▲ 앙테르느 호수를 내려다보고 있는 흑인 트레커 가족.
흑인이 알프스를 즐기고 있는 장면은 흔치 않는데, 반갑다. 곧 호수 동쪽 풀밭에 텐트를 친다. 먼 길을 오르내려 피곤하다. 간단히 저녁을 먹고 눕지만 이른 저녁시간이라 잠이 오지 않는다. <알프스 등반기>를 펼쳐들 수밖에. 준비해간 두 개의 랜턴을 밝히며 페이지들을 넘긴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눈의 피로도 풀고 소변도 볼 겸 밖으로 나온다. 잔잔한 호수에 달빛이 어려 있다. 600~700m 높이의 피즈 장벽 위로는 무수한 별들이 쏟아지고 있다. 샤모니 주변에선 대면하기 어려운 밤풍경이다. 얼른 카메라를 꺼내 사진에 담으려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윔퍼 또한 숱하게 이런 알프스의 밤풍경을 즐겼을 것이다. 알프스의 아름다움을 그림으로 남기려한 그와 사진에 담으려는 나의 바람은 같은 성질의 희망일까.

알파인 호숫가의 찬 기운에 어깨를 으쓱이며 텐트로 돌아와 침낭 속에 몸을 숨긴다. 잠시 후 언 몸이 녹자 못다 읽은 <알프스 등반기>를 다시 펼쳐든다. 침낭에서 랜턴 두 개를 밝혀 놓고 불편하지만 이리저리 뒤척이며 활자들에 빠져든다. 이렇게 밤은 깊어갔다.

아침 7시. 늦잠을 잤다. 새벽 2시가 넘을 때까지 <알프스 등반기>를 뒤적였기 때문이다. 이미 해가 피즈 장벽에 닿아 있다. 급히 카메라를 챙겨들고 밖으로 나온다. 한창 진행 중인 일출 장면에 어디부터 사진기에 담을지 허둥댄다. 일찍 일어나 준비하지 못한 잘못이다. 호수 좌우를 오가며 촬영하지만 성에 차지 않는다. 태양은 훌쩍 떠올라 이제 카메라를 집어넣을 시간이다. 늦잠 때문에 제대로 찍지 못한 반성을 하며 텐트로 돌아온다.

버너를 피워 아침을 먹는데, 텐트 구석에 놓여 있는 <알프스 등반기>가 눈에 띈다. 저 책을 읽다 늦잠 잤다는 생각이 미치자 조금 전까지 자신에게 품었던 불만이 수그러든다.

가이드의 의무와 헌신을 보여준 카렐

▲ 피즈 장벽을 배경으로 한 호수 풍경. 호수로 흐르는 개울가에 텐트를 쳤다.
▲ 피즈 장벽을 배경으로 한 호수 풍경. 호수로 흐르는 개울가에 텐트를 쳤다.
한껏 떠오른 태양이 이슬에 젖은 텐트 천장을 말리고 내부를 따뜻하게 데운다. 책 읽기 딱 좋은 환경이다. 이 기회를 놓칠 소냐 싶게 텐트 바닥에 누워 계속해서 윔퍼를 대면한다. 이제 한창 중반을 넘어서고 있다. 미쉘 크로나 장 안투아느 카렐이란 인물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이제 이 등반기에 나오는 웬만한 지명은 익히 아는 곳들이라 더욱 실감이 난다.

점심때가 되자 작렬하는 태양열에 텐트 안이 더울 지경이다. 할 수 없이 바람도 쐴 겸 호수를 한 바퀴 돈다. 드문드문 몇몇 트레커들이 호수를 사이에 두고 지나갔다. 오후가 되자 아가씨 하나와 두 청년이 호숫가에 와 한창 희희낙락거린다. 그들은 넘치는 젊음을 한껏 발산하듯 납작 돌로 열심히 수제비를 띄운다. 태양빛에 부서지는 호수면에 그들 청춘의 희망도 띄우는 것이리라.

곧이어 한 트레커가 호수를 한 바퀴 돌더니만 큰 카메라를 집어들고 호숫가의 바닥을 열심히 찍고 있다. 그가 있는 곳으로 가본다. 버들치들이 떼를 지어 오가고 있다. 지난해에 왔을 때 이곳에서 낚시하는 이들을 보며 과연 물고기가 있을까 궁금했던 차에 이처럼 많은 버들치를 보니 큰 물고기가 있음이 확실해 보인다.

이제 태양은 피즈 장벽을 넘어가고 있다. 600~700m 높이로 1km 이상 펼쳐져 있는 바위벽은 너무 밋밋하고 가팔라 오를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곳에도 개척의 기운이 감돌고 있지 않은가. 지난해 이곳에 왔을 때 두 명의 클라이머가 루트를 개척하고 있었다. 망원경을 펼쳐보이던 그의 친구들이 보여준 가이드북에선 이미 서너 개의 루트가 나 있었다. 한국의 산악인들 또한 이곳으로 눈길을 돌려봄직하다. 먼 오지로 가 한두 코스만 오를 게 아니라 이렇게 입지조건이 좋은 곳에서 루트를 많이 개척하는 것이 더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 피즈 산군으로 향하는 노년의 트레커.
▲ 피즈 산군으로 향하는 노년의 트레커.

벌써 저녁이다. 대충 저녁을 먹고 피즈 장벽 반대편 언덕으로 올라간다. 얼마 오르지 않아 피즈 장벽에 가렸던 저녁햇살을 받는다. 찬바람에 맞이하는 따뜻한 해가 반갑다. 길이 없는 언덕길을 무작정 올랐더니 바위면에 막혀버린다. 멋진 저녁풍광을 기대해 올랐건만 가져간 카메라를 꺼내지도 못하고 내려온다. 호숫가엔 정적이 감돌았다. 차 한 잔 끓여 마시며 잠시 호수의 고요를 즐긴다. 적막감이 싫지 않다. 바로 이 무료함을 즐기기 위해 이곳으로 오지 않았던가.

이제 못다 읽은 <알프스 등반기>를 펼쳐든다. 후반부의 마터호른 등반이 시작된다.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다. 책장들을 넘기고 넘기며 어둠이 짙어져 갔다. 윔퍼의 마터호른 초등에서 희생된 안타까운 인물들 가운데 미쉘 크로(Michel Croz·1830-1865)가 유독 마음을 아프게 한다. 샤모니 출신 가이드였던 그는 윔퍼보다 열 살이나 많았던, 당시 등반에서 실질적인 리더였던 그의 비운은 산악가이드를 직업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는 각별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이곳서 1년에 한두 번 전문등반가이드를 하는 필자에게도 마찬가지다.

또 다른 한 인물이 뇌리에 새겨진다. 마터호른 초등 사흘 후인 1865년 7월17일 남쪽을 통해 2등을 기록한, 실질적인 마터호른의 제1인자였던 J.A. 카렐(Jean-Antoine Carrel·1829-1890)이 있다. 육십이 넘은 나이에 자신의 산 마터호른에서 가이드를 하다 최후까지 손님을 안전하게 이끌고서 자신은 장렬히 사망한 인물이다. 산에 대해 순수하고 티 없는 애정을 품었으며, 자신들이 해야 할 의무를 알고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신뢰와 헌신의 본보기를 보였던 인물들의 생생한 활동들이 가슴을 적셨다.

이런 이야기들에 취해가며 마침내 두꺼운 <알프스 등반기>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다. 아직도 남아 있는 슬픈 이야기의 여운을 털어버리려 지퍼를 열고 텐트 밖으로 나왔다. 전날 밤과는 달리 잔뜩 흐려 있는 밤하늘은 필자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알프스의 별들, 미쉘 크로나 J.A.카렐도, 심지어 에드워드 윔퍼도 이미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다. 그래도 그들은 <알프스 등반기>를 통해 잔잔히 빛을 발하고 있지 않은가. 별빛 하나 없는 어두운 밤하늘을 바라보며 필자의 별은 어디쯤에 있을까 생각해보니 마음만 무겁다.

▲ 앙테르느 고갯마루에서 바라보는 몽블랑 산군의 파노라마.
▲ 앙테르느 고갯마루에서 바라보는 몽블랑 산군의 파노라마.

다음날 아침, 눈을 뜨니 곧 비라도 내릴 듯 하늘은 잔뜩 흐려있다. 이제 이 알파인 호숫가에 더는 있을 이유가 없다. 서둘러 짐을 챙긴다. 이틀 밤을 묵은 정든 자리를 떠나 무거운 짐을 지고 앙테르느 고개에 오른다. 저 멀리 건너다보이는 몽블랑 산군의 4,000m급 봉들에 짙은 구름이 걸려 있다. 곧이어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진다.

고개에서 한참 내려오는데, 두 명의 트레커가 오르고 있다. 그들은 이렇게 비가 오는 날씨에도 그곳으로 찾아가고 있었다. 환한 웃음으로 이쪽으로 가면 호수가 있는지 묻는다. 크게 고개를 끄덕인 필자의 얼굴에도 차츰 웃음이 깃든다. 지난 밤, <알프스 등반기>를 마저 읽은 후에 가졌던 밝지 못했던 마음들을 훌훌 털어버리기라도 하듯 브레방까지 긴긴 오르막을 힘차게 올랐다.

▲ 앙테르느 고개로 오르는 트레커.
▲ 앙테르느 고개로 오르는 트레커.

안테르느 호수에 다녀온 며칠 후 샤모니계곡 북측 마을 투르(Tour·1,470m)로 올라갔다. 아직도 남아 있는 미쉘 크로의 집을 찾았다. 낡아 수차례 개보수한 집 나무난간에는 제라늄 등 온갖 꽃들이 피어 있었고, 프랑스산악회에서 크로를 기리기 위해 헌정한 대리석 추모비가 벽면에 붙어 있었다. 그 벽면엔 간단히 에크렝, 세르벵(마터호른) 등등을 오른 승리자 미쉘 크로라고 적혀 있었다.

이어 샤모니로 내려온 나는 윔퍼를 찾아갔다. 몽탕베르 역 뒤편에 위치한 묘역은 한산했다. 입구 왼편 첫 자리가 그의 묘다. 묘비엔 ‘탐험가, 저술가, 등산가. 1911년에 샤모니에서 잠들다’라고 쓰여 있다. 탐험가요 저술가요 등산가였다는 설명만큼 윔퍼를 잘 표현한 게 없다고 보여진다. 다른 어떤 구구절절한 설명보다 훨씬 품격이 있다. 산악인 치고 훗날 자신의 묘비명에 이와 같은 글귀가 새겨지길 바라지 않는 이는 드물 것이리라 여기며 그의 묘를 뒤로했다. 아울러 며칠간 뇌리에 떠돈 <알프스 등반기>의 여운도 신기루처럼 흩어져 갔다.

허긍열 한국산악회 대구지부 회원·www.goalp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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