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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해외 원정] 파타고니아 파이네

월간산
  • 입력 2007.03.07 15:36
  • 수정 2007.04.10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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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꼼짝 못하는 마조키스트들
중앙봉 윌런스-보닝턴 루트 한국 초등

▲ 동벽은 표고차 1200m의 매끈한 벽이다. 왼쪽부터 파이네 남봉(2,800m), 중앙봉(2,800m), 북봉(2,248m). 우리 오른 윌런스-보닝턴 루트는 북봉과의 안부에 연결되어 우측 스카이라인을 따른다.
▲ 동벽은 표고차 1200m의 매끈한 벽이다. 왼쪽부터 파이네 남봉(2,800m), 중앙봉(2,800m), 북봉(2,248m). 우리 오른 윌런스-보닝턴 루트는 북봉과의 안부에 연결되어 우측 스카이라인을 따른다.
바람. 또 바람, 파타고니아는 바람의 대지였다. 푼타 아레나스에서 푸에르토 나탈레스로 향해 펼쳐진 대초원(Ultima Esperanza)에도, 나지막한 파스텔톤 양철 지붕 위에도, 토레스 델 파이네의 코발트 블루의 빙하호 언저리에도 그렇게 쉼 없이 불어댔다.
목장의 풀은 아예 바람에 몸을 맡겨 마젤란 해협의 파도처럼 일렁였고, 남극너도밤나무 코이궤(Coig‥ue)는 몬순에 떠밀린 인도양의 나무인양 돌아 비껴 누웠다. 
찰스 다윈이 남미대륙을 여행하면서 자연선택과 적자생존이라는 영감을 얻기까지보다 더 까마득한 옛날, 이 대륙이 아프리카와 이별하기 전에 타조와 형제지간이었을 대형 동물 냔두(N~andu)는 엄청난 속도로 진화를 거듭했다. 라구나(Laguna) 둘레 습지의 풀을 뜯다가 버스의 질주에 놀라 지평선 너머로 달음질쳐 도망가는 구아나코(Guanaco)가 긴 목 들어 파이네 침봉을 바라며 버스 없던 시절을 그리워할지도 모를 때 그 버스를 타고 온 우리는 파타고니아라는 낯설음 속에 익숙함을 느끼고 있었다.


‘무한정의 마조키스트 돼야 등반 가능’

파타고니아란 이름은 포르투갈 출신 페르난도 데 마가야네스(Fernando De Magallanes·마젤란·1480-1521)가 스페인 탐험대를 이끌고 질시와 반란을 이겨내고, 1520년 10월 그가 처음 발견한 마젤란 해협의 격랑을 뚫고 고요와 평온의 바다(Oceano Pacifico·태평양)로 황금의 엘도라도와, 향신료 가득한 행운의 섬을 향해 갔던 시기까지 되짚어간다.
이와 달리 황금(돈)과 향신료(후추, 된장)를 배낭 가득히 담고 와서는 결국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하든 못하든 텅 빈 배낭을 짊어지고 되돌아갈 우리 네 명은 베이스캠프를 출발하여 고요의 계곡(Valle Del Silencio)으로 들어갔다.

▲ 초등당시 크리스 보닝턴이 보기 좋게 추락하여 한방 먹은 오버행 피치를 넘어가는 석문.
▲ 초등당시 크리스 보닝턴이 보기 좋게 추락하여 한방 먹은 오버행 피치를 넘어가는 석문.

원래 세로토레, 피츠로이, 파이네 중앙봉(Torre Centrale Del Paine·2,800m)을 연속해서 오르려는 프로젝트는 기획한 지 2년이 흘러 결국 출국 전 파이네 중앙봉만을 대상으로 삼고 대한적십자사 남원시 지리산산악구조대와 고산거벽등산학교가 주관하여 전북, (주)쎄로또레글로벌, 유라시아트렉이 후원하여 꾸린 2007 한국 파타고니아 원정대 4명은 처음으로 칠레 산티아고에서 모였다.
이번 파타고니아 호(號)의 함장은 노시철 대장(남원시 지리산구조대장)이 맡았다. 항해사로서 키잡이는 필자가, 매년 스쿠버다이빙 해외원정을 다녔던 박영복(지리산 구조대원)은 이번에 산으로 와서 기관장이자 주방장으로 보직이동했고, 막내 최석문(개미산악회·노스페이스)은 힘찬 항해의 주 돛이 될 것이다.
잡석의 너덜지대를 돌아들자 북쪽으로 세로 에스쿠도(Cerro Escudo·2,240m), 서쪽에 세로 포르탈레사(Cerro Fortaleza·2,681m), 남쪽에 토레스 델 파이네의 3개 연봉인 토레 노르테(Torre Norte), 토레 센트랄레(Torre Centrale·2,800m), 토레 수르(Torre Sur 또는 Torre De Agostini·2,850m)의 암봉이 구름에 가려 있었다. 중앙봉 서벽이 바로 올려다보이는 곳에 2인용 텐트 한 동을 구축했다.
노 대장은 남미에만 네 번째, 그리고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이곳 등반을 시도한 04/05년 원정대 대장을 맡아 내 친구 문종국이 후배 경주와 함께 북봉 서벽을 통해 이틀 동안 남릉에 도달한 적이 있었다. 지리적 격리로 늦은 한국의 등반진출과는 달리 파이네 등반에 열을 올린 등반가들은 이탈리아인들이었다.

1958년 장 비치(Jean Bich) 외 3명은 중앙봉과 북봉 사이 안부(이후 Col Bich라 불리게 됨)를 올라 북봉의 남릉을 경유해 초등하게 된다. 이들도 다음 과제를 완전한 미학적 모습의 중앙봉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고, 영국 또한 중앙봉을 목표로 하여 배리 페이지 박사(Dr. Barrie Page)가 대장으로 60/61 시즌에 시도했던 경험을 살려 62/63년 시즌에 페이지 대장은 당시 영국에서 최고 등반실력을 갖춘 돈 윌런스(Don Willance), 신예 등반가 크리스 보닝턴(Chris Bonnington)으로 팀을 강화하여 베이스캠프에 들어왔다.
같은 시즌 이탈리아팀 또한 베이스캠프에 입성하였고, 초등반을 놓고 한판 국가적인 경쟁이 벌어졌다. 두 팀은 합동등반 협상에 들어갔다. 그러나 서로의 의견을 좁히지 못하고 각자 등반을 시도한다. 남십자성(Cruz Del Sur)의 찬연한 영광은 영국인에게 돌아갔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윌런스-보닝턴 루트로 연결되는 콜 비치까지의 쿨와르는 어제 내린 눈으로 하얗게 변했다. 등반은 석문과 둘이서 한다. 노 대장과 영복 형은 베이스캠프로 내려갔다. 내일 새벽 4시에 출발하여 당일에 정상에 서고 이곳까지 내려올 참이다.

▲ 고요의 계곡(Valle Del Silencio)은 세로 포르탈레사(Cerro Fortaleza·2,681m), 세로 에스쿠도(Cerro Escudo·2,240m) 등 매끈한 대암벽의 에둘러 서 있다.
▲ 고요의 계곡(Valle Del Silencio)은 세로 포르탈레사(Cerro Fortaleza·2,681m), 세로 에스쿠도(Cerro Escudo·2,240m) 등 매끈한 대암벽의 에둘러 서 있다.

다음날 새벽 날씨는 그리 신통치 않았고 반쯤 오르다 내려올 바에야 등반을 미뤘다. 오전에 좌측 암릉을 통해 벽이 시작되는 두어 마디까지 줄 없이 정찰한 석문과 나는 어프로치 루트를 변경했다. 쉽게 보이던 쿨와르 안은 매끄럽게 폭포를 이루는 암반 위에 얼음이 얇게 붙어 만만치 않았고 낙석 또한 위험했다. 이태 전 문종국은 쿨와르를 통과하는 데 꼬박 하루를 소비했다. 이 구간에 우리가 할애한 시간은 단 2시간이다.
다음 날 베이스캠프로 돌아왔다. 남은 두 명은 칠레노 산장에 내려가 데포한 식량과 아침으로 먹을 빵을 얻어왔다. 이곳 날씨는 1시간 단위로 변했다. 짙은 구름, 비, 강풍, 눈, 잠깐의 햇빛. 하루에도 열두 번 더 바뀐다. 답답한 심정을 로열 로빈스(Royal Robbins)는 이렇게 얘기했었다.
“파타고니아는 빼어나게 아름다운 곳이다. 그곳에 하이킹이나 사진촬영을 간다면 아주 좋다. 그러나 만약 거기서 진지하게 암벽등반을 추구한다면 여러분 스스로 무한정한 시간동안 마조키스트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남위 51도의 파타고니아 해는 북쪽으로 졌다. 밤은 11시가 넘어야 찾아온다. 노 대장은 식당으로 만든 움막에서 커피를 마시고는 밖으로 나와 대금을 불었고, 영복형은 맛있는 음식 솜씨로 식구를 배불리 먹인 뒤엔 물가에 돌을 쌓아 기원탑을 세웠다. 또 부러진 나무 밑둥치에 조각을 했다. 대원 이름과 등정일은 1월17일이라 이미 새겨 넣었다. 석문이는 남미를 비행하고 ‘야간비행’이라는 책을 쓴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를 읽고 가끔 오카리나를 연주하며 시간을 보낸다. 베이스캠프에서 하늘이 쳐다보이는 냇물 모래가로 나가 봉우리쪽을 쳐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 40~50kg의 짐을 지고 베이스캠프로, 앞에 가는 노시철대장이 가장 많은 짐을 졌다. / 1987년 일본팀이 터를 닦은 BC는 재패니즈 캠프라 불린다. 통나무 움막은 강풍과 우천 시에 식당으로 이용된다. / 파이네 서벽
▲ 40~50kg의 짐을 지고 베이스캠프로, 앞에 가는 노시철대장이 가장 많은 짐을 졌다. / 1987년 일본팀이 터를 닦은 BC는 재패니즈 캠프라 불린다. 통나무 움막은 강풍과 우천 시에 식당으로 이용된다. / 파이네 서벽

기다림. 북봉을 오르려던 칠레팀 두 명은 식량이 떨어져 내려갔고, 같은 봉을 오르려던 히피 스타일의 프랑스팀 두 명도 떠났다. 01/02 시즌 토레스 델 파이네 3개 연봉을 단독으로 종주하여 유명세를 탄 미국의 스티브 슈나이더(Steve Schneider)가 매년 등반 손님을 모시고 오지만, 그도 허탕 친 해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소문이다.

R10 등반 중 최석문 펌핑으로 손가락 뒤틀려

다시 2시간 걸어 ABC 텐트로 올라갔다. 이번엔 끝내자. 그리고 저 산 너머로 가자. 새벽 1~2시 사이에 잠들던 탓에 뒤척이다 놀라 깼다. 1월20일이다. 무의식적으로 텐트 문을 열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정상부 구름은 짙은데 바람은 없다. 밥과 된장국으로 아침을 먹고는 오전 6시5분에 출발했다. 늦어 약간은 서두른다.
등반장비는 주로프 1동, 하강에 쓸 6mmx50m 케블라 1동, 4호를 제외한 캐멀롯 2세트, 스틸너트를 포함한 너트 2세트, 슬링, 퀵드로 6개, 특별히 석문이가 구입한 가벼운 카라비너 30여 개, 쿨와르 위쪽의 상태를 알 수 없어 각자 크램폰과 아이스바일 한 자루씩 챙겼다. 식량으로는 뜨거운 차 2통, 파워젤 8개, 사탕, 파이 몇 개를 각자의 배낭에 나눴다. 이 중 가장 무게에 부담을 주는 것이 촬영장비다. 캠코더를 포함하여 카메라만 4대를 가져갔다. 이 무게만 5kg이 족히 나가는데 포기하지 못할 장비였다.
좌측 몬지노 루트의 암릉을 통해 북봉 중앙으로 붙는 능선을 넘어 2시간만에 등반 출발지에 섰다. 며칠 전 이곳에 왔을 땐 강풍으로 서 있기조차 힘들었었다. 오늘은 분위기가 좋은 편이다. 바로 벨트를 착용하고 방수와 보온재를 넣어 겨울등반이 가능하도록 제작된 암벽화를 착용한 석문이가 줄을 끌고 나간다. 아콩카구아 등반으로 짐을 여러 번 꾸렸던 탓에 내 암벽화는 여기까지 오지 못하고 행방불명이 됐다. 중등산화 그대로 30여m 격차로 동시등반을 시작한다.

우리는 이러한 등반 방식에 대해 서로 의견을 주고받지 않는다. 오름짓을 하는 도중 루트를 관찰하고 서로 확보해 주어야 할지는 그 때 그 때 결정한다. 쉬지 않고 올랐다. 석문이 가끔 중간에 한두 개의 캠이나 너트를 설치하면 후등자가 오르면서 회수한다. 내 장비고리에 캠과 너트가 제법 무겁게 매달렸을 때 우리는 콜 비치를 지나 한 마디를 더 오른 지점, R3로 루트개념도에 표기된 테라스에서 로프를 가지런히 사렸다. 5.7급 이하의 8피치를 오르는 데 1시간이 흘렀다.

▲ 벽 중단에서 북쪽으로 시야를 돌렸다. 파타고니안 안데스의 설봉, 빙하, 딕슨 호수(Lago Dickson)가 발아래다.
▲ 벽 중단에서 북쪽으로 시야를 돌렸다. 파타고니안 안데스의 설봉, 빙하, 딕슨 호수(Lago Dickson)가 발아래다.

여기에서 다시 무게를 줄였다. 선등자가 옷가지가 든 배낭을 진 것만으로도 속도는 두 배로 늘어나게 될 것이다. 필요없게 된, 아니면 정상부 얼음과 눈이 낀 바위지대에서 필요치도 모를, 그래서 정상에 서지 못할 수도 있는 아이스바일과 크램폰, 내 우모 상의는 ABC에 이미 두고 왔고, 덧바지, 여벌장갑, 랜턴 등도 두고, 나보다 추위를 좀 더 느끼는 석문의 우모 상의를 챙겨 배낭 하나에 모으고 짊어졌다. 그는 선등장비만 착용했다.
장비를 포기하는 대가로 우리의 움직임은 한결 가벼울 것이나, 반대급부로 날씨가 급변하면 호되게 당할지도 모른다. 등반은 자신의 신념이 옳다고 증명해 나가는 과정이다.

“형, 가요.”
힘찬 목소리가 벽과 벽 사이에서 맴돌아 친다. 하늘은 음울하고 손이 약간 시려웠다. 실질적인 난이도 등반의 첫 피치인 R4는 95도 각도에 5m 높이의 핑거크랙을 어퍼지션으로 올라 페이스를 오른쪽으로 횡단하여 다시 직상 크랙으로 붙는다. 짧은 시간이지만 여기에서 다시 한 번 석문이의 거침없는 등반 동작에 내 몸에서 전율이 일어난다.
이 친구와 만나 처음 등반한 곳은 2001년 한국이 아닌 파키스탄에서였다. 카라코룸 등반을 마치고 힌두쿠시에서 그와 나 둘은 같은 조가 되었다. 표고차 1,800m의 벽을 새 루트로 1박2일에 해치웠다. 오르면서 피치 수만 헤아리고 하강포인트 확보물을 설치해 두지 않아 결국 쓰라림을 맛보았지만, 당시 등반으로 히말라야와 거벽등반에 있어 내가 인정하는 몇 안 되는 후배 중에 그는 단연 돋보이는 등반가로 자리매김했다.
출국 전 이틀로 잡았던 루트를 하루에 오른다는 계획수정도 날씨 탓만은 아니었다. 어눌한 말투, 순한 얼굴의 석문은 줄을 묶고 바위벽 앞에 서면 완전히 변한다. 벽을 부셔버리고도 남을 파괴력의 열정을 쏟아내며 한 동작의 주저함도 없이 머리를 들이밀고 나가는 저력 속에 숨겨진 루트를 읽어내는 직관력이 있고, 난관에 처해도 느긋함을 잃지 않는 그다.

▲ “형 그런데 저쪽에 더 높은 봉이 있는데”정상에서 석문이 내게 던진 말이다. 자욱한 구름 속에 남봉이 나타났다. / 펌핑으로 맨손의 손가락이 뒤틀리는데도 석문든 R10으로 등반을 계속 이어나간다.
▲ “형 그런데 저쪽에 더 높은 봉이 있는데”정상에서 석문이 내게 던진 말이다. 자욱한 구름 속에 남봉이 나타났다. / 펌핑으로 맨손의 손가락이 뒤틀리는데도 석문든 R10으로 등반을 계속 이어나간다.

벽을 향해 섰을 때 바람은 순풍이 되어 등을 밀어 주었다. 우린 50m의 줄 끝을 연결하여 이 벽이 얼마나 높은지를 재는 자벌레처럼 모였다 헤어지고 헤어졌다 모이기를 반복했다. R8의 긴 횡단을 하여 오버행 천장 밑에 매달렸다. 초등 당시 크리스 보닝턴이 보기 좋게 추락하여 한 방 먹은 곳이다. 이번 등반의 최대 난관의 이 두 피치에는 고드름이 매달려 있다.
파워젤을 하나 빨아먹은 석문은 어깨를 들썩거리며 힘이 다시 난다는 시늉을 하고는 이내 오버행 밑으로 다가섰다. 오른쪽에 스틸 카메라, 왼쪽에 캠코더를 걸치고 있는 내 두 손은 확실한 빌레이를 보기 어려웠다. 때로는 줄을 입에 물고 작업했다. 실전에서는 인공등반의 기본수칙은 필요 없다. 석문은 속도를 내기 위해 힘으로 몸을 끌어올렸고, 내 주마링 또한 줄이 늘어나는 리듬에 맞추지 못하고 힘으로 당겨 올렸다. 횡단 구간에서 그는 후등자를 위해 최대한 중간확보물을 줄여 설치했고, 나는 열이 오른 그의 몸이 식기 전 10분 안에 주마링을 끝내려고 노력했다.
R11 지점에서 다시 여분의 장비를 매달았다. 물통 뚜껑을 열던 석문이 그만 반쯤 엎질렀다. 펌핑으로 맨손의 손가락이 뒤틀리는 모습을 벌써 한 마디 전에서 보았다. 내 팔도 펌핑이 오고 있다. 말없이 젤 하나를 그의 입에 짜 넣어 주고는 가스가 몰려오는 속으로 고함을 질렀다.
“가자!”
바람이 눈을 머금고 휘몰아친다.
“Free Riding on the Patagonian Storm.”
우리는 파타고니아의 폭풍을 타고 있었다. 서로의 위치와 의사소통이 힘들어진다. 날씨가 바뀔 형국이다. 우리는 줄로 소통하는 코드를 만들었다. 예전 파키스탄에서와 같았다. 선등자가 한 번 줄을 잡아채면 줄을 달라는 뜻이고 두 번 연속하면 어떤 의미이며, 세 번 연속 잡아채면 주마링을 시작하라는 뜻이다. 

이제 등반은 얼마 남지 않았다. 비박지 흔적이 있는 잡석의 숄더를 지나쳤다. 동면으로 틀어 돌자 바람은 잦았다. 다음 피치에서 길 찾기에 10여 분 지체했다. 마지막 석문이 선택한 루트를 믿었다. 옳았다. 크게 단이 진 오버행을 넘었다. 그리고 좁은 개구멍 모양의 암탑 위를 지나간 줄에서 세 번 움직거림이 전해온다. 마지막 피치다. 우리 자벌레는 22번째의 자를 잰다.
아이젠이 필요할 것 같은 얼음이 박힌 쿨와르를 석문은 바위를 이용해 잘도 올라갔다. 안개 속에서 싱긋 웃으며 그가 정상에서 던진 첫마디다.
“형, 틀렸어. 아무리 찾아도 담배꽁초가 없어.”
“옆 사람한테 좀 빌려 봐. 이제 더 못 참겠다.”
“형, 그런데 저쪽에 더 높은 봉이 있는데.”
“그럼 올라가야지. 근데, 너 1,000m 하강했다가 저 봉우리 위로 티롤리안 브리지 줄 걸면 내 따라 갈게. 저건 남봉이야.”

▲  두세 마디를 제외하고 석문은 모두 자유등반으로 올랐다. / 캠코더, 필름 카메라, 주머니엔 디지털 카메라. 그 무게만 5kg이 넘었다. / 파타고니아 등반에서 기다림은 기본 미덕이다. 원정대의 이름과 물방울 다이아몬드 돌, 남극 너도밤나무를 깎은 타조 모습의 냔두. 전 등반대와 영복이형의 합작품이다
▲ 두세 마디를 제외하고 석문은 모두 자유등반으로 올랐다. / 캠코더, 필름 카메라, 주머니엔 디지털 카메라. 그 무게만 5kg이 넘었다. / 파타고니아 등반에서 기다림은 기본 미덕이다. 원정대의 이름과 물방울 다이아몬드 돌, 남극 너도밤나무를 깎은 타조 모습의 냔두. 전 등반대와 영복이형의 합작품이다


하강 마자마자 바위면에 흐르는 물 핥아 마셔

정상에 섬으로써 절반의 오름은 끝이 났다. 사진 몇 컷 얼른 찍고 내려간다. 하강은 등반보다 위험하다. 특히 이곳에서는. 올라오면서 중간 중간 잘라진 줄이 많았다. 하강 중 회수하던 줄이 걸려 자른 흔적들이다. 올해에도 이곳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했다던 공원 레인저의 걱정스런 말과, 시즌 초등한 라퓨마팀 소속 프랑스인 3명의 조언이 새삼스럽다. ‘하강하려 자일을 내리면 마치 연줄처럼 하늘로 치솟는다. 그래서 우리는 배낭을 매달아 내리는 방법을 썼다.’ 그들은 베이스캠프에 내려와서 얼마나 피곤했던지 배낭도 풀지 못한 채 잠들어 버렸었다.
첫 번째, 두 번째 하강은 석문이가 먼저, 세 번째는 확보포인트에 녹슨 하켄 달랑 하나다. 그것도 반밖에 박히지 않은 상태였다. 내 차례다.
“이거 괜찮겠어?”.
“형, 이거 코끼리가 매달려도 끄떡없어요.”
“야 그래도 위안 삼아 옆에 너트 하나는 더 박아라.”
‘그래 네가 괜찮다면 괜찮은 거야. 하지만 그 피치 하강하는 데 정말 무서웠다.’
하강은 우리를 더 지치게 만들었다. 썩은 새끼줄을 다루듯 살살 당기다가 바람이 잦아진 틈을 타 훽 잡아챈다. 줄은 단번에 내려온다. 케블라 로프는 탁월한 선택이었으나 가끔 걸려 내려오지 않는 줄에 바싹 긴장감이 돌 때도 있었다. 우린 여분의 줄이 없었다.
밤 10시40분,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에 우린 안전벨트로부터 자유로워졌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바위면에 달라붙어 흐르는 찬 물을 쭉쭉 빨고 있었다.
바람-. 그 지긋지긋했던 파타고니아의 바람은 달아오른 볼에 낯선 시원함으로 스친다. 원정을 성사시키기 위해 힘들었던 노 대장과 유라시아트렉 서기석 대표이사의 얼굴에도 지금 이 바람이 불고 있겠지.

글·사진 김창호 서울시립대 OB
협찬 (주)쎄로또레 글로벌·전라북도·유라시아트렉 BOX

파이네 등반정보

등반허가 신청

등반허가는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 있는 국립삼림청(CONAF·Corporacion Nacional Forestal De Chile)의 국립공원관리국(Parques Nacionales)에 메일(e-mail=magallan@conaf.cl)로 출국 전 접수할 수 있으며, 출국 전 받지 못했다면 푸에르토 나탈레스(Puerto Natales)의 성당 옆에 위치한 울티마 에스페란사ⅩⅡ지역 주정부(Gobernacion Provincial Ultima Esperanza·Region) 청사 2층의 토레스 델 파이네 코납으로 가서 비치된 등반허가 신청서(대원명단, 등반대상봉, 기간)를 작성하고 대원들의 여권 복사본을 제출하면 담당자가 전문으로 산티아고 본청에 보내어 받는다. 통상 이틀이 소요된다.
이 전문과 대원 보험증서를 가지고 파이네 국립공원 내 관리센터(Sede Administrativa)에 가면 3부의 등반허가서가 발행된다. 관리국, 원정대가 각각 한 부씩 보관하고, 한 부는 공원 입구인 아마르가 관리소(Guarderia Laguna Amarga)에 제출한다.
등반이 종료된 후에는 아마르가 관리소에 비치된 원정대 등록노트에 원정대명, 국적, 등반대원, 일정, 루트, 등반결과에 대해 에스파뇰, 또는 영문으로 기재해야한다.
법과 규칙을 중시하는 칠레인의 행정관청, 관광정보센터는 영어로 대화할 수 있는 직원이 반드시 있으며 매우 친절하고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우리 원정대도 보험증서를 빠뜨렸으나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도록 안내해주었다.
등반허가비는 별도로 없으며 단지 국립공원 입장료만 있다. 외국인 15,000페소. 자국민 4,000페소. 12세에서 17세까지 유소년 500페소.
 

환율

칠레 통화는 칠레 페소($)다. 2007년 1월8일 환율은 달러 당 약 504페소였으나 귀국할 당시 2월 달은 547페소로 단기 평가절하됐다. 국립공원 입장료, 대형마트를 제외한 숙박비, 레스토랑, 장거리 버스요금 등은 모두 미화로 지불할 수도 있다. 환전은 일반 시중은행에서는 하지 않으며 공항 환전소나 캄비오(Cambio)라는 간판의 환전소에서 한다. 환차는 심하지 않다.


어프로치

국립공원까지는 국제선(미주노선 23kg 또는 32kg 가방 2개)에서 칠레 국내선(통상 20kg)으로 갈아탈 때 수화물 오버차지 문제가 발생한다. 따라서 등반장비 외에 현지 식량을 얼마나 이용하느냐가 관건이다. 산티아고-푼타아레나스 간의 오버차지는 kg당 3,000페소다. 푼타 아레나스에서 푸에르토 나탈레스, 파이네 국립공원까지는 많은 버스회사들이 운행하고 있다.
BC까지 2시간 거리의 칠레노 캠프까지 말을 이용하는 데 1마리(25kg 2개) 당 41,400페소다. 그 위쪽으로는 말이 운행하지 않으며 여행사를 통해 포터를 고용할 수도 있다. 임금은 25kg 1개에 15,000페소이며 공원입장료(4,000페소)는 별도로 지불해 주어야 한다. 우리는 칠레노 캠프까지 말을 이용하고 여기에서 BC까지(3시간 거리)는 대원이 모두 옮겼다.


등반시즌과 날씨

등반시즌은 여름이 시작되는 11월 중순부터 다음해 2월까지다. 통상 북풍이 불면 맑아질 조짐이며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서풍은 습기를 머금고 다가온다. 파타고니아 등반에서 기다림은 기본 미덕이다. 파이네 암봉군 내에는 비, 강풍, 구름, 눈 등 1시간 단위로 날씨가 바뀐다. 하루 내내 맑은 날은 한 달에 하루 이틀 정도일 것이다. 기온보다 눈을 머금은 강풍에 의한 체감온도가 급격히 떨어져 04/05년 시즌의 일본대는 손발을 절단해야할 정도로 동상이 심했다고 한다.


암질

암봉군 내 최상부의 검은색 석회암층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화강암으로 크랙이 잘 발달해 있으며 낙석도 적다. 그러나 벽으로의 진입시와 쿨와르에서는 낙석을 조심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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