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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알프스에서 온 편지] 발레 블랑쉬

월간산
  • 입력 2007.03.08 19:07
  • 수정 2007.04.10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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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의 삶을 無常하다 하랴
설원에서 만난 <무상(無償)의 정복자> 리오넬 테레이

발레 블랑쉬 설원 상단, 옛 코스믹 통나무 산장 위의 바위에서 태양이 떠오르는 광경을 지켜보는 즐거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발레 블랑쉬 설원 상단, 옛 코스믹 통나무 산장 위의 바위에서 태양이 떠오르는 광경을 지켜보는 즐거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독서를 하면서, 특히 산악서적을 읽으면서 그 책에 완전히 빠져들게 되는 요소들은 여러 가지가 있을 듯하다. 특히 그 책의 필자가 등반행위를 행한 지역에 독자가 있는 경우 더욱 그 책에 쉽게 몰입하게 된다. 이곳 샤모니에 머물고 있는 나에겐 리오넬 테레이(Lionel Terray·1921-1965)의 자서전이 바로 그런 경우다.
물론 재미있게 글을 풀어가는 그의 솜씨뿐 아니라 등산과 인생에 대한 그의 열정적인 가치관은 더없이 크게 보여 더욱 그에게 사로잡히게 된다. ‘무상의 정복자’라는 무언가 말할 수 없는 짠한 분위기의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인물을 접하는 기쁨은 특히 만년설산을 꿈꾸며 산을 오르는 이들은 꼭 한번 그를 만나보길 권한다. 
20대 초반의 필자가 고향의 산들, 특히 팔공산을 오르내릴 당시엔 종종 숲속의 야영지에서 모닥불을 지피곤 했다. 한창 산의 세계에 빠져들던 당시, 이글거리는 불길을 쬐며 선배들로부터 듣던 위대한 산악인들의 이야기는 솔깃하게 뇌리에 박혀들었다. 이 때 처음 리오넬 테레이란 이름을 접했던 것 같다.
단연 ‘무상의 정복자’ 리오넬 테레이가 가장 멋있는 산악영웅으로 여겨졌던 것은 분명하다. 등반행위를 통해 아무런 대가나 보상을 바라지 않는, 그래서 더욱 친숙하게 다가온 무상의 정복자. 이 얼마나 멋있는 칭호이던가. 그러나 국내에 가스통 레뷰파나 헤르만 불, 모리스 에르조그 등에 대한 번역서는 있었지만, 테레이의 책은 없어 더욱 그가 어떤 인물일지 궁금해졌지만 좀체 기회가 닿지 않았다.

1 테레이의 책. / 2 간혹 이렇게 바위를 타고 넘어야 한다. / 3 암릉 너머로 발레 블랑쉬 설원이 펼쳐져 있다.
1 테레이의 책. / 2 간혹 이렇게 바위를 타고 넘어야 한다. / 3 암릉 너머로 발레 블랑쉬 설원이 펼쳐져 있다.
<안나푸르나 초등기>에서 만난 테레이

보다 가까이 그를 접한 책이라곤 에르조그의 <안나푸르나 초등기>에서다. 모리스 에르조그와 루이 라슈날이 등정 후 처참하게 하산하는 장면에서 가스통 레뷰파와 함께 한 테레이가 자신의 등정 기회를 쉽게 철회하면서까지 동상에 걸리고 지친 동료들을 헌신적으로 구조하는 모습은 산에 다닌 지 얼마 되지 않던 필자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다.
이후 필자가 등산에 한층 빠져들어 관련책자들을 좀 더 접하게 되자 테레이의 이름은 단순히 안나푸르나 초등에서 헌신적으로 활동한 산악가이드가 아닌, 등산사에서 불멸의 산악인임을 알게 되었다. 사실 안나푸르나 초등시 4명의 영웅 중 그 후 가장 활동적이었던 인물이 그였으며, 지구상의 오지에서 빛나는 초등반들을 이뤄낸 목록만으로도 그는 위대한 산악인이다.

필자가 태어난 해인 1965년, 안타깝게도 한창 자신의 뜻을 펼칠 나이였던 44세에 베르코르(Vercors)의 400m 암벽 아래에서 파트너와 함께 추락사한 채 발견된 테레이. 이러한 사고만 없었다면 산악역사에서 테레이가 차지할 비중은 어느 누구보다 컸을 것이 분명하다. 
얼마 전 숙소의 한쪽 벽면에 책꽂이를 만들었다. 방 여기저기에 책들이 마구 뒹굴어 마음 먹고 3단 나무판으로 만들었는데, 더없이 마음에 들었다. 바로 이 책꽂이에 하나씩 책들을 올려놓던 참에 오래도록 지니고 있던, 그러나 읽지는 못했던 책 하나가 손에 잡혔다. 바로 리오넬 테레이의 <무상의 정복자(Conquistadors of the Useless)>였다.

1 한겨울의 발레 블랑쉬 설원에는 한낮인데도 몹시 차가운 바람이 분다. 저 멀리 에귀 베르트와 드루아트가 펼쳐져 있다. / 2 에귀 뒤 미디 북서릉에서 시원스럽게 펼쳐진 샤모니 침봉들과 계곡을 내려다보고 있다.
1 한겨울의 발레 블랑쉬 설원에는 한낮인데도 몹시 차가운 바람이 분다. 저 멀리 에귀 베르트와 드루아트가 펼쳐져 있다. / 2 에귀 뒤 미디 북서릉에서 시원스럽게 펼쳐진 샤모니 침봉들과 계곡을 내려다보고 있다.

불어판(Le Conquerant de l'Inutile)을 영문으로 옮긴 책으로 370페이지나 되어 좀체 리오넬 테레이가 가까워지지 않던 차에 불현듯 이제는 정말 이 책을 읽어야 되겠다는, 지금 아니면 시간이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정말 오랜만에 단행본 외서를 읽기 시작한 셈이다. 첫날은 몇 페이지 넘기지 못했지만 끈질기게 책을 부여잡았다.
그런 중에 테레이의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시작되는 에피소드들이 재미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가령 생후 4일만에 이발관에 갈 정도로 머리카락이 길게 태어난 우량아 테레이는 20대에 이미 누가 보아도 인정하는 대머리가 되었다는 농담으로부터 필자처럼 학교 공부에는 흥미가 없어 밖에서 뛰노는 일에만 관심이 있었다는 고백 등 차츰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었다.

처음으로 들어간 학교의 너무나 학업적인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한 테레이가 자신의 전학을 묵살한 아버지의 뜻에 반하여 한밤중에 기숙사 천장에 권총을 발사하여 전학에 성공한 그에게 뜻밖의 행운이 찾아온다. 새로운 학교에서 그는 스키에 보다 열중하게 되었으며, 이후 이혼한 어머니가 샤모니에 머물게 됨에 따라 처음 접한 샤모니 침봉에 홀려 본격적으로 산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이야기에서부터 1940년, 20세 때 산악부대에 입대해 암벽등반에 대한 열정이 자신보다 한 수 위였던 가스통 레뷰파를 처음 만나는 대목으로 페이지들이 넘어가자 바로 이 <무상의 정복자>가 결코 두껍고, 언제 다 읽을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함은 사라졌다. 하여 낮에 스키나 등반을 하고 돌아온 저녁나절에는 으레 필자의 손에 이 책이 들려지게 되었다.


그가 샤모니로 왔듯, 나도 왔다 

그의 젊은 시절을 좀 더 이야기하면 지금도 약간의 흔적이 남아 있는 몽탕베르 언덕의 군인캠프에서 테레이는 즐겁고도 혹독한 산악교관 생활을 한 후, 마리안 페롤라(Marianne Perrollaz)와 결혼해 샤모니 계곡에서 농부로서 생활을 시작한다. 이때 그의 나이 22세. 4마리의 소와 두어 마리의 염소를 키워 젖을 생산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산간지방에 살며 등산과 스키를 하고 싶다는 소망으로 시작한 농업은 새벽에 일어나 해가 질 때까지 일했지만 진전이 없었으며, 더구나 자기 일을 거들기로 고용한 레뷰파가 농사일에 지쳐 며칠간 산으로 자취를 감추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 이런 와중에서도 어렵게 시간을 낸 그는 레뷰파와 몇몇 초등을 이뤄내는 열정을 보인다.

1 푸앙트 라슈날 정상부로 접근하고 있다. 저 멀리 그랑 조라스와 당 뒤 제앙이 보인다. / 2 그로스 로뇽 정상부 능선을 오르고 있는 민경원씨. 왼편 아래의 발레 블랑쉬 크레바스에서 라슈날이 추락사했다.
1 푸앙트 라슈날 정상부로 접근하고 있다. 저 멀리 그랑 조라스와 당 뒤 제앙이 보인다. / 2 그로스 로뇽 정상부 능선을 오르고 있는 민경원씨. 왼편 아래의 발레 블랑쉬 크레바스에서 라슈날이 추락사했다.

한편 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 산악부대원으로 활약한 그의 이야기 또한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한다. 알프스 곳곳에서 벌어진 치열한 전투에서 등산과 스키로 다져진 그의 경험과 체력은 많은 이점이 되었으며, 비록 전투 중이지만 산 생활을 즐기는 모습들은 읽는 재미가 그만이다.
이렇게 <무상의 정복자>에 빠져 지내던 1월 중순, 페이지들을 꽤 넘겼을 무렵이다. 방학을 이용해 이곳에 온 민경원씨와 함께 ‘하얀 계곡’ 발레 블랑쉬(Vallee Blanche) 설원에 갔다. 토요일 낮의 화창한 날이었다. 우리는 에귀 뒤 미디(Aig. du Midi·3,842m) 전망대에서 북동 설릉을 따라 곧장 설원에 내려섰다. 설릉에서 바라본 샤모니쪽 풍경은 늘 시원스럽다.

2박3일 일정으로 꾸린 배낭을 진 우리는 에귀 뒤 미디 남벽 아래로 우회해 코스믹 산장(Refuge des Cosmiques·3,613m)으로 오르는 언덕 아래에 닿았다. 여기에 큰 배낭을 내려놓고 소형 배낭만 챙겨 산장 앞에 펼쳐진 작은 암릉으로 향했다. 주변에 다른 좋은 등반대상지들이 많아 그런지 이 작은 리지에는 사람의 발자국이라곤 없었다. 호젓하게 둘이서 쉬운 리지를 오르내리며 오후 시간을 보낸 우리는 배낭을 찾아 산장으로 향했다.

겨울철엔 산악인들을 위해 개방해두는 윈터룸이 코스믹 리지의 시작부분에 위치해 있다. 10여 명이 묵을 수 있는 산장에는 이미 여러 산악인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거실 겸 주방으로 이용되는 나무탁자에선 저녁을 준비하는 버너들이 시합하듯 이글거리는 불꽃을 내뿜고 있었다. 얼마 후, 이들 사이에 끼어들어 간단히 저녁을 챙겨 먹었다.
옆에 앉은 20대 초반의 여성 산악인은 스위스 취리히에서 왔다며 탁자 건너편에 앉은 또 다른 여성 산악인인 친구와 함께 다음날 타퀼 삼각북벽을 오를 예정이라 한다.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것 같은 두 여성이 파티를 이뤄 이렇게 한겨울의 산장에 와 있음이 보기 좋다. 여름의 알프스 또한 멋지지만 이제 한국 산악인들도 알프스의 동계등반을 좀 더 즐겼으면 싶다.

16개의 침상에서 마지막 남은, 커버가 벗겨진 스펀지 매트 위에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누웠다. 못다 읽은 <무상의 정복자>를 뒤적이기 위해. 이미 읽기 시작한 마칼루 초등 이야기에서부터 페이지들은 잘도 넘어갔다. 이후 안데스 산맥에서의 여러 초등반들과 자누 초등 이야기가 펼쳐지자 시계바늘은 밤 11시가 넘고 있었다. 눈도 피곤하고 다음날의 등반을 위해 책을 덮었다.

과연 나에게도 그런 파트너가 있는가

설핏 잠이 들려던 참이었다. 한밤중에 어디서 나타났는지 불쑥 산장에 들어선 두 산악인이 하필이면 내 양옆으로 눕는 게 아닌가. 어깨를 엇갈리게 눕긴 했지만 몸을 뒤척이기 곤란할 정도로 꽉 낀 채 눕게 되다보니 얼핏 들려던 잠이 달아나 버렸다. 하여 덮었던 책을 다시 펼쳤다. 하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아 도로 누웠다. 아마 비박 외에 내가 이곳 알프스에서 지샌 가장 불편한 잠자리였다. 할 수 없이 이제껏 읽은 <무상의 정복자>를 회상할 수밖에.

테레이와 루이 라슈날과의 인연이 유독 뇌리에 맴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시점에서 샤모니행 기차 안에서 처음 만나 자석처럼 서로에게 이끌려 샤모니 침봉들에서 크고 작은 등반들을 함께 한 이들. 이후 이들은 그랑 조라스 북벽이나 아이거 북벽으로 우정을 이어간다. 두 번 비박하며 모진 눈보라를 헤쳐나온 둘은 아이거 북벽 제2등으로 뜻하지 않은 명예도 얻는다.
하지만 테레이는 이때 벌써 명성이란, 대부분의 인간활동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등산이라는 행위로 얻어진 명예란 무상함을, 즉 덧없음을 설파한다. 이후 라슈날과의 우정은 피츠 바딜레로 이어져 당시 누구보다 짧은 시간(7시간30분)에 오른다. 이윽고 안나푸르나 초등에서 테레이가 라슈날을 구조하는 이야기는 이미 모리스 에르조그의 <안나푸르나 초등>으로 많이 알려진 바 있다.

지금 누워 있는 이 동계산장 아래로 발레 블랑쉬 설원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안나푸르나 초등 후 라슈날은 심한 동상 후유증으로 방황하고서 긴긴 병상에서 털고 일어나 5년만에 재기에 성공한다. 하지만 그는 바로 이 빙하에서 스키를 타다가 크레바스에 빠져 생을 마감하고 만다. 테레이에겐 크나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수많은 난관을 헤쳐 나갈 때 늘 자일의 한쪽 끝에서 든든히 확보를 봐주던 자일파트너가 아니었던가. 과연 나에겐 그와 같은 자일파트너가 있던가. 분명 테레이는 자일파트너 복이 많은 인물이다. 레뷰파나 라슈날, 장쿠지나 귀도 마뇽 외에도 수많은 초등반들에서 함께 한 이들은 모두 뛰어난 산악인들이 아니던가.
새벽 5시가 되자 침상 여기저기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다시 약 30분이 지나자 양옆에서 온몸으로 압박했던 두 산악인이 슬그머니 일어나 어디론가 떠났다. 하여 1시간 즈음 편히 누웠다가 아침 7시가 넘어 일어났다. 아직 창밖은 깜깜하다. 따뜻한 차를 끓여 마시고 간단히 아침을 챙겨 먹는다. 산장에 남아 있는 이들은 대여섯뿐이며, 10여 명은 모처럼 좋은 날씨의 일요일을 알뜰히 보내기 위해 그렇게 일찍 떠난 것이다.

아침 8시, 차츰 날이 밝아온다. 우리도 움직일 준비를 한다. 장비를 챙기고 산장을 나서니 붉은 아침노을이 장관을 이룬다. 설원 위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며 눈밭에 발도장을 찍는다. 알프스의 하루산행에서 이때만큼 푸근한 가슴으로 눈을 즐겁게 하는 순간은 없다. 간밤의 불편했던 잠자리를 보상하고도 남는다.

해가 뜰 무렵엔 종종 이러한 알피니스트의 멋진 모습을 대면하게 된다.
해가 뜰 무렵엔 종종 이러한 알피니스트의 멋진 모습을 대면하게 된다.

얼마 후 우리는 그로스 로뇽(Gros Rognon·3,541m) 북사면에 닿았다. 장비를 점검한 후 넓은 설사면의 하단을 동쪽으로 횡단하며 오른다. 서로 40m 정도 거리를 두고 도중에 아이스하켄 하나만 통과시켜 함께 오른다. 경사가 급하지 않아 수월하게 동쪽 능선에 올라선다. 이미 해가 꽤나 떠올라 있다. 조심스럽게 바위능선을 따라 오르니 에귀 뒤 미디에서 이태리와 국경을 접한 헬브로너(Helbronner·3,462m)까지 이어지는 발레 블랑쉬 횡단 곤돌라의 중간역이다. 곤돌라는 여름철에만 운행하기에 이곳은 문이 닫혀 있다.


설원 가로질러 푸앙트 라슈날로

조심스럽게 콜 뒤 그로스 로뇽(Col du Gros Rognon)으로 하산한 우리는 점심시간밖에 되지 않아 또 다른 등반대상지인 푸앙트 라슈날(Pointe Lachenal·3,613m) 쪽으로 향한다. 겨울철이라 응달진 설원 위의 바람은 찼다. 이 설원에서 숨진 루이 라슈날을 기리기 위해 이 작은 봉우리의 이름을 푸앙트 라슈날로 명명한 것일까.

곧 북사면 아래에 닿은 우리는 오전 등반 때처럼 연등을 한다. 강빙 구간에선 장딴지가 당겨왔지만 어렵지 않게 이 작은 봉우리의 정상에 오른다. 여기서 보는 몽블랑 뒤 타퀼 동벽은 언제 보아도 위압적이다.  
이렇게 작은 등반들을 즐기고 설원을 가로질러 산장에 돌아오니 아무도 없다. 오후 3시, 이미 기울기 시작한 겨울 한낮의 태양이 유리창으로 길게 드리워진다. 이제 몇 장 남지 않은 <무상의 정복자>를 펼쳐들 시간이다. 알래스카의 헌팅튼 초등기를 끝으로 마침내 테레이의 책을 덮는다. 잠시 후, 차 한 잔을 마시며 그의 일생을 회상해 본다. 크게 3단계로 나눠 전기는 어린 시절부터 스키를 타게 되고 샤모니를 찾아 알파인 등반의 세계를 접한 후 전쟁의 와중에 산악부대에서 가스통 레뷰파를 만나 몇몇 초등반을 한 것으로, 중기는 라슈날을 만나 수많은 샤모니의 침봉들을 오르고서 그랑 조라스 북벽이나 아이거 북벽, 피츠 바딜레, 마침내 안나푸르나를 오른 시기일 것이다. 후기는 그 후 안데스 산맥에서 이룬 많은 초등들, 마칼루 등정과 자누 초등, 알래스카의 헌팅튼 초등까지.

얼마 전 이곳 텔레비전에서 테레이에 대한 특집방송이 있었다고 한다. 그가 태어나 뛰어놀던 그레노블의 대저택에는 여전히 그의 아버지가 생존해 있으며,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고. 그리고 그의 등반모습을 담은 DVD <La Voie Terray>가 올해 초 발매되었다. 이렇듯 테레이는 아직도 프랑스인들의 가슴에서 멀어진 인물이 아니다. 무상(無償)의 정복자인 그가 한창 자신의 뜻을 펼칠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하여 그 누가 그의 삶이 무상(無常)하다 할 수 있을까. 무상(無償)의 가치를 추구한 그의 등반행위는 하얀 산을 추구하는 알피니스트들의 가슴에 하얀 눈의 결정체만큼이나 순수하게 아로새겨졌을 것이다.
산에서 내려와 샤모니 묘지에 잠들어 있는 그를 찾아갔다. 질문 하나를 품고서. 요즘 같은 물질만능시대에 과연 무상의 행위라는 말 자체가 말이 되느냐. 구시대적 낭만일 뿐이며, 설령 물질적 대가는 바라지 않을지라도 정신적 보상은 있어야지 않겠냐고. 샤모니 묘지 왼편 첫째의 에드워드 윔퍼의 묘에서 다섯 번째에 위치한 테레이의 묘 앞에 다가섰다. 그러나 그는 나의 당돌한 질문에 대한 어떠한 답도 하지 않으려는 듯 자신의 소박한 나무이름표마저 하얀 눈으로 감춘 채 말이 없었다.

허긍열 한국산악회 대구지부 회원·www.goalp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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