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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최선웅의 지도 이야기(27)] 지도와 기호

월간산
  • 입력 2007.03.21 09:48
  • 수정 2007.04.10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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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산업이 국가경쟁력인 시대에 뒤쳐진 지도기호 디자인

왼쪽은 최근 국토지리정보원에서 간행된 1:25,000 지형도의 기호이고, 오른쪽은 일본 국토지리원의 1:25,000 지형도의 기호다.
왼쪽은 최근 국토지리정보원에서 간행된 1:25,000 지형도의 기호이고, 오른쪽은 일본 국토지리원의 1:25,000 지형도의 기호다.

지도는 지구 표면의 일부나 전부를 축소해서 평면에 나타낸 것이기 때문에 지표상에 있는 모든 정보를 담을 수 없어 중요도에 따라 취사선택하거나 과장, 또는 기호화할 수밖에 없는 숙명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지도는 전부 기호로 이뤄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도학 용어로 지도기호(map symbol)란 지도상에서 여러 가지 사상(事象)을 표현하기 위해 통일적으로 쓰는 간명한 시각기호를 말하고, 이 지도기호를 체계적으로 모아 놓은 것을 도식(圖式·manual of map symbols)이라 한다.

기호는 그 형태에 따라 점(點) 기호, 선(線) 기호, 면(面) 기호로 분류하는데, 점 기호(point symbol)는 학교, 광산, 삼각점 등과 같이 어느 목표물의 중심점이나 점 데이터와 같은 독립된 기호를 말하고, 선 기호(line symbol)는 도로, 철도, 하천, 경계와 같이 각종의 지리적 데이터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는 독립된 선상 기호를 말한다. 여기에서 등고선이나 등심선도 선 기호의 일종으로 볼 수 있으나, 이것은 지표상에서 그 형태가 없는 무형의 선이기 때문에 선 기호에 해당되지 않는다. 면 기호(area symbol)는 논이나 밭, 염전, 습지 등과 같이 일정한 범위를 지닌 지역을 나타내는 기호로, 그 지역을 일정한 색이나 농담, 모양으로 나타낸다.
기호가 생겨난 유래는 온천이나 기념비와 같이 그곳에 있는 사상의 형상을 기호화한 것, 병원, 은행, 교회 등과 같이 그곳에 있는 사상의 역할이나 기능을 연상케 한 것, 절 기호와 같이 한자의 만(卍) 자를 그대로 기호화 한 것, 우체국 기호와 같이 관청이나 기관의 마크에서 따온 것, 이밖에 시청, 군청 등 행정기호와 같이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것 등이 있다.

방동인은 그의 저서 <한국 지도의 역사>에서 ‘지도의 표현 형식은 원시시대로부터 이미 기호화되어 있었고, 그 기호는 사실적인 그림으로 의작(擬作)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오늘날 지도의 표현 형식은 옛 지도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하겠다. 다만 옛 지도에 비해 지형지물의 종류가 다양해진 점과 보다 복합적인 요소가 증가됨으로써 기호가 약식화되었을 뿐이라 하겠다’고 지도 기호의 변천을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가 표현된 가장 오래된 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에도 해안선이나 하천의 선이 선명하고, 산줄기는 톱니 같이 꼬불꼬불한 선으로, 바다는 파도가 넘실대는 것처럼 수파묘(水波描)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 같은 요소들이 바로 사실적인 그림에 의한 의작된 기호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 제작된 대부분의 지도들을 보더라도 당시에는 기호로 표현할 지형지물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그 표현방식이 조금씩 다르긴 해도 산줄기, 해안선, 하천, 도로, 관읍, 창고, 봉수, 고성 등을 회화한 기호 형태로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834년(순조 34) 김정호가 제작한 청구도를 보면 지도 제작의 방법과 이용에 관한 것을 기술한 ‘靑丘圖凡例(청구도범례)’와 기호를 설명하는 ‘地圖式(지도식)’이 실려 있다. 이 지도식은 기호만 별도로 모은 범례표가 아니라 지도상에서 직접 바다, 섬, 강, 산, 읍성, 목장, 못, 다리, 고개, 봉수, 누각 등의 기호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 특이한데, 이러한 지도범례의 표현은 현대 지도에서도 사용되고 있는 방식이다.
청구도 제작 이후 약 23년 뒤에 제작된 동여도에는 12개항 26종의 기호를 한 데 모은 지도표(地圖標)가 등장하고, 1861년 목판으로 제작된 대동여지도에는 14개 항목 22종의 기호를 도식화한 본격적 지도범례인 ‘地圖標(지도표)’가 등장하여 조선 후기로 오면서 지도의 표현도 사실적이던 기호가 간략화되고 단순화되어 감을 알 수 있다.

지도 기호는 어느 나라건 그 국가나 기관에서 제작한 지형도에 준하는 것이 원칙이나 그 국가나 제작시기, 축척, 도식 등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하나로 통일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국토지리정보원의 전신인 건설연구소에서 1969년 8월4일 건설부령으로 제정한 ‘지도도식규칙’에 의해 처음으로 1:25,000 지형도가 제작되었고, 현재는 2002년에 개정된 ‘지도도식규칙’에 따라 각종 지형도가 제작되고 있다.

이 규칙 제3조 2항을 보면 ‘도식이라 함은 지도에 표기하는 지형?지물 및 지명 등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기호나 문자 등의 크기?모양?색상 및 그 배열방식 등을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으며, 제4조에는 기호 및 선의 종류에 대해서 규정하고 있다. 이 도식적용 규정에 따라 지형도에 표시하는 기호는 도로, 철도, 교통과 관계있는 인공물, 경계, 건물, 각종 건물기호, 각종 목표물, 특정지구, 수부, 지류, 지형 등으로 분류되고 다시 세분화된다.
우리나라 지형도의 역사는 어쩔 수 없이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1918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제작된 1:50,000 지형도가 그것이다. 이 지형도는 해방된 뒤에도 내용을 수정하여 우리 손으로 제작하기 전인 1960년대 초까지 사용되었었는데, 그래서인지 1969년에 작성된 ‘지도도식규칙’의 내용을 보면 일제 때 지형도나 일본 국토지리원의 지도도식과 유사한 점이 많다. 일제 지형도에 쓰였던 기호 가운데 아직까지 우리 지형도에 그대로 사용되고 있는 기호로는 파출소?소방서?병원?광산?온천?높은 탑?기념비?묘지 등이고, 현재 일본의 지형도와 같은 기호도 공장?등대?문화재(일본은 사적명승) 등이 있다.

이 가운데 그 유래로 문제가 되는 것이 소방서, 온천, 병원, 묘지, 파출소 기호다. 소방서 기호는 원래 일본 에도(江戶)시대에 죄인의 목을 눌러 체포할 때 사용하던 도구의 일종인데, 메이지(明治)시대부터 소방용 갈고리로 사용한 데서 유래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목욕탕의 심볼로 많이 이용되고 있는 온천 기호는 옛날 일본 온천에서 사용되었던 탕조(湯槽)와 온천 증기를 도안화한 것이고, 병원 기호는 구 일본군 위생대 부호를 도안화한 기호다.

또한 묘지 기호는 측면에서 본 묘비를 도안화한 것이고, 파출소 기호는 옛날 일본 경찰이 사용하였던 육척봉(六尺棒)을 교차한 형상을 도안화한 것이다. 이밖에 열쇠구멍을 도안화한 창고 기호도 일본에서도 옛날에나 사용되었던 것이다. 

세상이 변하고 지도의 이용이 다양화되면 지도 기호도 개선되는 것이 당연하다. 우리나라도 2005년부터 지형도의 좌표체계를 세계측지계로 변환하면서 새로운 디자인의 지형도가 선보이기 시작했다. 기호도 종전보다 추가되었고, 새롭게 디자인된 기호도 눈에 띄나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새로 선보인 대학, 우체국, 터미널, 백화점, 해수욕장의 기호는 민간에서 제작한 관광지도에 사용되고 있는 것과 디자인이 유사하고, 방송국이나 목장 기호는 그 사상의 상징성을 나타내려고 했지만, 국가 지형도에 사용하기에는 디자인이 세련되지 못했다.

세계적으로도 한 국가의 지형도가 사회정세의 변화에 얼마만큼 대응하고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지도기호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기호가 바뀌거나 새롭게 디자인되고 있다면 그 나라야말로 지도 선진국이라 할 수 있다.

디자인산업이 국가경쟁력 향상에 필수적인 산업으로 부각되고 있는 즈음 한 국가의 지형도에 사용될 기호도 이제 특성화되고 시각적으로 디자인이 세련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리고 정보화와 여가선용에 따라 박물관이나 도서관, 레저산업의 확산과 모터리제이션(자동차 생활문화)의 진전에 따라 주차장, 주유소, 호텔, 자연휴양림, 오토캠프장 등의 기호도 필요할 때라 생각된다.

최선웅 한국산악회 부회장·매핑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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