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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손재식의 사진여행] 부지런한 발이 감각이나 기술에 앞선다

월간산
  • 입력 2007.06.01 10:01
  • 수정 2007.06.01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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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대나무…새순 돋는 5월, 광선 또렷한 아침이 좋아

곧고 푸른 이미지의 대나무.
곧고 푸른 이미지의 대나무.

순창에서 담양으로 이어지는 24번 국도에 연둣빛 물이 올랐다. 이맘때는 어디나 아름답지만 담양이 더욱 눈부시다. 특히 대나무숲이 그러하다. 카메라를 쥔 손이 근질근질하도록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대나무엔 있다.  

‘쏴아 촤르르. 촤아 싸르르’ 숲이 흔들리는 소리는 마음을 움직인다. 대나무는 그 자체로 신물(神物)이며, 사람의 감정을 다스리고, 신과 사람을 잇는 영매로 작용한다. 대나무 잎이 서로 부딪혀서 내는 합창소리는 삶이란 더불어 사는 것임을 일깨운다.

조선의 문신 고산 윤선도(1587-1671)는 오우가(五友歌)란 이름으로 세상에 변치 않는 다섯 가지 벗을 노래했다. 그 중 한 벗이 대나무다.

‘나의 벗이 몇이나 있느냐 헤아려 보니 물과 돌과 소나무, 대나무다. 게다가 동쪽 산에 달이 밝게 떠오르니 그것은 더욱 반가운 일이로구나. 그만 두자, 이 다섯 가지면 그만이지 이밖에 다른 것이 더 있은들 무엇 하겠는가…중략…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 곧게 자라기는 누가 그리 시켰으며 / 또 속은 어이하여 비어 있는가 / 저리하고도 네 계절에 늘 푸르니 / 나는 그것을 좋아하노라.’ 

밭고랑 사이로 피어나는 자운영.
밭고랑 사이로 피어나는 자운영.

대나무와 견줄 만한 피사체 흔치않아

예부터 대나무는 군자에 비유되어 왔다. 송강 정철, 면앙정 송순, 석천 임억령 같은 유명한 시인들이 지어낸 성산별곡,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송순의 면앙정가, 이서의 낙지가 등 유명한 가사들은 정자와 원림이 많은 담양의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문화적 터전으로 담양은 적재적소였으며, 거기에 푸른 대나무는 벗이 되기에 충분했다.

대나무는 속이 비어 있으며 잘 휘는 것이 특성의 하나다. 그래서 정체를 딱 잘라 말하기 애매하다. 오유가의 가사에도 그런 면이 언급되어 있다. 나무라면 매년 꽃을 피우고 열매 맺는 일을 반복해야 하며, 겨울에도 줄기가 말라죽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대나무는 뿌리에서 잎까지 양분과 수분을 운반하는 통로인 유관속(維管束)이 있긴 해도 부름켜가 없어 지름을 키우지 못하고 죽어버린다.

다년생이며 생장줄기를 지니는 유관속의 모습은 엄연한 나무지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다음엔 죽어버리는 모습은 풀과 같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지상으로 나오는 줄기는 가을에 죽고 겨울을 견뎌낸 지하의 뿌리로부터 새로운 줄기가 생겨난다. 식물학적 정의를 굳이 내린다면 대나무는 나무가 아니고 풀이어야 맞다. 대나무를 이용하여 작업하는 목수의 입장에선 틀림없는 나무지만 식물학의 입장에선 풀이 되는 것이다.

하늘을 찌를 듯이 솟은 대나무는 무속신앙에서 사람과 영을 잇는 영매로 작용한다.
하늘을 찌를 듯이 솟은 대나무는 무속신앙에서 사람과 영을 잇는 영매로 작용한다.

대나무는 한자로 竹(죽)이라 쓴다. 중국 한나라 때 허신(30-124)의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의하면 대는 겨울에도 사는 풀이다. 그런 까닭에 풀 초(草) 자를 거꾸로 놓은 모양을 따랐다. 대나무를 동물에 비유하면 마치 박쥐와 같다. 박쥐는 날개가 달린 새지만 포유동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박쥐의 격은 종종 이중성으로 치부되지만, 대나무의 품격은 좋은 형태로 미화되는 것이 보통이다.

월남전 때 대량으로 살포된 고엽제 속에서도 대나무는 살아남았고, 히로시마의 원폭에도 죽지 않는 끈질긴 생명력을 갖고 있다.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영험한 대나무 피리 만파식적(萬波息笛)은 파란을 없애고 평안하게 해주는 보물이었다. 피리를 불면 비가 내리고 그쳤으며, 바람을 자게하고, 파도를 가라앉혔다. 그 힘으로 적병을 물리치곤 했다. 영주의 죽령을 개설한 죽죽이란 장수는 신라 선덕왕 때 합천의 대야성을 지키다 죽은 사람이다. 죽죽은 추운 날에도 푸르름을 잃지 말라고 지어준 이름답게 항복하지 않고 죽는 순간까지 용감하게 싸워 진골의 품을 하사받았다.

부모의 상을 당한 사람들이 지팡이를 짚게 된 내력도 대나무와 관련된 무속이다. 오랜 옛날 당나라의 비단처럼 귀한 아이로 불리던 당금이와 승려 사이에 삼형제가 태어났다. 그들이 장성하여 아버지를 찾았을 때, 당금은 대나무밭에서 오줌을 누다가 너희들이 태어났다고 거짓 변을 했다. 아버지를 찾는 삼형제에게 대나무는 말했다. 어머니가 죽었을 때 대나무를 상주의 막대기로 쓰면 아버지가 되어주겠다고. 삼형제는 그대로 실천했고 그 때부터 대나무는 이들의 대부(代父)가 되었다. 그렇듯 대나무엔 전설과 문화와 생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전해내려 온다.

대나무 촬영은 새순이 돋는 5월이 좋다.
대나무 촬영은 새순이 돋는 5월이 좋다.

죽순 찍으려면 시기 맞추는 게 중요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대나무는 흑갈색을 띄는 오죽, 붓대를 만드는 반죽, 울타리와 부채의 재료가 되는 해장죽, 낚싯대와 우산대에 쓰이는 포대죽, 젓가락과 발에 쓰이는 담죽, 화살이나 필통을 만드는 진죽, 바구니를 만드는 함죽, 재질이 강해서 쪼개어 쓰는 참대, 산에서 자라며 조릿대를 만드는 산죽 등을 포함하여 약 15종류가 있다.

죽순대를 먹는 맹종죽은 중국의 맹종이란 사람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병상에 누워 있는 어머니가 죽순을 먹고 싶어했지만, 한겨울에 죽순을 구하지 못해 슬피 울던 맹종의 눈물이 떨어진 곳에 돋아났다는 죽순이 바로 맹종죽이다.

대나무로 만든 죽제품은 대자리, 베개, 키, 지게, 발, 광주리, 젓가락, 컵, 부채, 방석, 붓, 피리, 대금, 갈퀴, 죽부인, 복조리, 낚싯대, 효자손 등 두서없이 나열해도 제법 수가 많다. 따지고 보니 대나무로 만든 생활용품은 환경에 반하는 삶이 되면서 점차로 사라져갔다. 담양의 대나무는 전국 생산량의 25%를 차지할 만큼 많다. 그래서 대나무를 사용한다는 것은 자연친화적인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좌)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 대나무숲. (우) 집중력이 느껴지는 대나무 군집.
(좌)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 대나무숲. (우) 집중력이 느껴지는 대나무 군집.
대나무는 사진 찍기 좋은 피사체의 하나다. 카메라가 세상에 나오기 이전에도 그림의 소재가 되었고, 군자의 상징으로 사랑을 받아왔다. 나무의 느낌만을 보면 대나무에 견줄 만한 피사체가 흔치 않다. 군집을 이루는 광경도 그렇지만 역광에 빛나는 죽순의 모습도 좋다. 비 온 뒤에 땅에서 솟아나오는 죽순은 처음 한 달 정도 지나면 5~6cm 정도 자란다. 그 이후엔 보통 하루에 15cm에서 80cm까지 크는 경우도 있다. 죽순의 생장이 멈추면 파릇파릇한 초록빛 속살이 껍질을 벗어내면서 대나무가 된다.

죽순을 찍으려면 시기를 정확히 맞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계절에 맞추어 찍는 촬영이 대부분 그렇듯 부지런한 발이 감각이나 기술에 앞선다. 5월의 대나무 잎이 푸른 모습을 보여도 죽순은 온전하게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때를 기다려야 하는 원칙은 대나무 촬영에서도 예외가 없다. 나무 한 그루에도 집중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대나무에서 얻는 교훈이다. 사진에서 완성이란 단어는 없다. 지난해에 찍었던 대상을 또 찍어야 하는 이유도 사진이란 결코 완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샘물처럼 끊이지 않는 욕구는 결국 부족함에서 오는 것. 이룰 수 없어도 완성을 바라보게 하는 사진작업은 그래도 즐거움이 남는 일인 듯싶다.

메타세콰이어 거리로 이름난 푸른 5월의 담양.
메타세콰이어 거리로 이름난 푸른 5월의 담양.

대나무 촬영 가이드

대나무 촬영은 5월 초순 새순 날 때가 좋다. 촬영시간은 광선이 또렷한 아침시간이 좋다. 우선 전체적인 모습을 찍으면서 역광이나 사광을 받아 강렬한 느낌이 나는 대나무를 찾아낸다. 패턴이 있거나 조형적 모습을 보는 것도 좋다. 나무 한 그루만 집중하여 찍을 땐 보통 광각계열의 렌즈를 사용하여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며 찍는다. 의도적으로 왜곡시키거나 과장된 원근을 이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대나무의 근접촬영은 죽순이 올라오는 모습과 댓잎의 모습을 찍는 게 보통이다. 계절 따라 달라지는 대나무와 설경, 가을 모습 등 감성에 따라 같고 다르게 찍어볼 수 있다.

담양에서 대나무 찍기 좋은 곳은 일명 대나무골로 불리는 테마공원이다. 이곳에서 대나무 사진을 모두 찍을 수 있다. 대나무골 가는 길은 담양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순창 방향으로 이어지는 24번 국도를 타고 5km쯤 가서 석현교를 건넌다. 다리 건너 우회전하여 마을 앞으로 좌회전한 후 2km 정도 가면 대나무골 테마공원이다.


담양 가는 길(서울에서 승용차 기준)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광주에서 88고속도로로 갈아타고 담양 나들목에서 빠져나온다. 호남고속도로 익산 나들목에서 27번 국도를 타고 남원방향으로 가다가 순창을 거쳐 담양으로 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거리상으론 비슷하다. 참고로 서울에서 담양으로 가는 직행버스는 오전 10시와 오후 4시 하루 두 편이 있다. 광주에서 담양 가는 버스는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직행과 일반버스가 운행된다.

/글·사진 손재식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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