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최선웅의 지도이야기] 등고선과 특수지형

월간산
  • 입력 2008.06.25 09:5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적 감각 연마한 제도기술자가 없으면 밋밋한 지도밖에 못 만든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표면의 기복상태, 즉 산이나 계곡, 고원이나 평야 등 지형의 갖가지 형태를 지도 상에 표현해내는 데 있어 지금까지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사용하고 있는 것이 등고선이다. 등고선(等高線)은 글자 그대로 평균해면으로부터 높이가 같은 지점을 연결한 선으로, 마치 정지되어 있는 수면 같다 하여 수평곡선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등고선은 상하가 겹치거나 서로 교차하는 일이 없고 항상 폐곡선(閉曲線) 상태를 유지한다.

등고선 간격 하면 수평거리가 아니라 수직높이이기 때문에 토지의 경사가 급해지면 등고선 간격이 좁아지고, 반대로 경사가 완만해지면 등고선 간격도 넓어진다. 또 지형이 복잡하면 등고선의 굴곡이 많아지고, 지형이 평탄하고 변화가 적으면 밋밋한 등고선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등고선의 성질 때문에 지도에서 등고선의 간격을 정할 때에는 적정한 간격으로 정하게 된다. 축척 1:25,000 지형도의 등고선 간격이 10m이고, 1:50,000 지형도의 등고선 간격이 20m인 것도 이에 기인한 것이다.

국토지리정보원이 고시한 1:25,000 지형도 도식적용규정 제133조(등고선의 생략) 1항에 ‘급경사에 있어서 인접 주곡선 간의 간격이 도상에서 0.2mm 이하일 때는 그 부분만 생략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 이는 지형도 제작 상 인접한 등고선이 가독성이 있도록 기술적으로 안전한 도상 간격이 0.2mm라는 의미이다. 등고선 간격이 그 이상 좁아지면 물리적으로 선을 그려내기 불가능하며, 인쇄할 때 등고선끼리 붙어버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축척 1:25,000 지형도에서 주곡선 간격이 도상 0.2mm라면 토지의 경사는 몇 도나 될까. 도식규정에 주곡선의 선호(線號) 즉 굵기는 0.05mm이고, 계곡선은 0.075mm이다. 등고선 간격 50m인 계곡선 간의 도상거리를 계산하면 1.325cm가 되고(이때 상하 계곡선의 중심선과 중심선 간으로 계산하고, 주곡선의 선호까지 포함시켜야 한다), 이것을 실지거리로 환산하면 33.125m가 된다. 경사도를 구하는 공식에 대입하면 tanA=50/33.125≒1.5094가 되고, 이 값을 삼각함수표에서 찾으면 57°의 경사도가 된다. 지도상에서 표현 가능한 토지의 경사는 57°가 한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산악지형은 이보다 경사가 급한 절벽이나 바위봉우리가 얼마든지 있다.

도식규정 제126조(지형)와 제127조(지형표시방법)에 따르면 ‘지형은 지표면의 기복상태를 말하며, 벼랑, 바위 등의 모든 특수지형이 포함되며, 지형은 등고선으로 표시하고 등고선으로 표시하기 곤란한 부분은 바위 등의 기호로 표시한다’고 되어 있다. 특수지형 기호는 등고선만으로 명확하게 표시하기 어려운 특수한 지형을 나타내기 위한 등고선의 보조기호로, 특수지형의 형태를 연상할 수 있는 회화 또는 디자인적인 기호를 고안하여 사용하게 된다.

위의 지도는 국토지리정보원이 간행한 북한산 일대의 1:50,000 지형도이고, 아래는 1919년 일제 때 제작된 1:50,000 지형도이다. 특수지형이 잘 묘사되어 있는 일제 지형도와 현재의 지형도를 비교해 보면 특수지형의 표시로 지도의 모습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알 수 있다.
위의 지도는 국토지리정보원이 간행한 북한산 일대의 1:50,000 지형도이고, 아래는 1919년 일제 때 제작된 1:50,000 지형도이다. 특수지형이 잘 묘사되어 있는 일제 지형도와 현재의 지형도를 비교해 보면 특수지형의 표시로 지도의 모습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알 수 있다.


도식규정 상 특수지형은 오목한 지형, 벼랑바위, 바위, 사태, 모래·자갈 등으로 구분되는데, 이 가운데 벼랑바위(제136조)는 바위가 붕괴하여 생긴 급경사면으로 인공적으로 생긴 것도 포함되며, 그 높이가 3m 이상일 때와 그 길이가 도상에서 0.2mm(1:25,000 지형도에서 50m) 이상의 것을 표시한다. 다만 지역의 상태를 나타내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그 기준에 미달할지라도 표시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바위(제137조)는 벼랑바위를 제외한 암석으로서 지표에 노출되었거나 산재되어 있는 것을 말하며, 그 크기가 도상에서 1.5mm×1.5mm(1:25,000 지형도에서 37.5m×37.5m) 이상의 것을 실축(實縮)에 의하여 표시하고, 그 이하의 것이라도 지형에 따라 기호와 같이 표시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국토지리정보원의 1:25,000이나 1:50,000 지형도를 보면 하단 중앙에 ‘산악지역’이라는 범례가 별도로 나와 있는데, 여기에는 벼랑바위, 너덜바위, 바위, 흙, 사태, 오목지 등의 먹색 기호가 녹색의 등고선과 함께 표기되어 있고, 정작 ‘특수지형’이라는 범례는 해안바위, 호수, 습지, 유수방향 등 수부와 관련된 기호들만 표시되어 있어 국토지리정보원이 고시한 도식적용규정과 상반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설악산을 비롯하여 우리나라 대부분의 명산이 그렇듯 서울 북쪽의 북한산은 화강암으로 된 바위산으로 오랜 세월 지반의 상승과 침식작용으로 거대한 바위가 지표에 드러나고 거기에 풍화작용을 받아 급경사의 바위봉우리, 수직에 가까운 암벽과 암릉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북한산이 들어 있는 1:25,000 지형도 고양 도엽을 보면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 노적봉 등 거대한 바위봉과 무수한 바위들의 표시는 눈을 씻고 봐도 보이지 않고, 다만 등고선이 밀집되어 급경사인 것만 읽어낼 수 있다.

지도 평론가들이 ‘신이 만든 지도’라 극찬하는 스위스 알프스의 지형도를 보면 누구나 한눈에 대단한 지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만년설 위에 드러난 알프스의 험준한 바위봉우리와 그 사이로 흘러내리는 빙하가 그대로 지도 상에 살아나는 듯하고, 등고선도 한 가지 색이 아니라 만년설과 빙하지역에서는 청색, 토지에서는 갈색, 바위지대에서는 먹색으로 지질에 따라 구분하여 표시하고 있으며, 무수한 침봉과 날카로운 리지는 경관 그대로 회화적 기법으로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도라고 단언할 수 있다.

이렇듯 지형도에서 특수지형의 표시는 지형을 표현해내는 데 있어 필요불가결한 중요한 요소이나 우리나라의 지형도에는 왜 특수지형이 표시되어 있지 않을까. 그것은 단언컨대 특수지형을 표현해낼 제도기술자가 없기 때문이다. 지도는 지표 상의 모든 지형지물을 선과 점의 조합으로 표현해내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아름답게 묘사해 내려면 선에 악센트를 주고, 아름다운 선을 디자인적으로 배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만 한다.

ICA(국제지도학회) 지도학용어 다언어사전에 지도는 과학과 기술, 그리고 예술의 집합체라 했다. 지형도 제작에 있어 항공사진에서 도화(圖化)되어 나온 선과 점을 배열하는 것만으로는 아름다운 지형도가 될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도의 이론서부터 제도기술의 습득은 물론 미적 감각을 연마한 제도기술자가 절대 필요하다. 최근 지형도가 컴퓨터에 의해 자동으로 제작되어 지리정보산업이나 IT산업과 연계되어 널리 이용되고 특화되어 가고 있는 추세지만 금수강산 삼천리 아름다운 국토의 산천경개를 지형도에 아름답게 표현해내려면 미적 감각을 지닌 제도기술자의 양성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 글 최선웅 한국산악회 부회장·매핑코리아 대표

저작권자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