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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최선웅의 지도이야기] 독도 측량의 역사

월간산
  • 입력 2008.07.29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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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땅이라면 일본보다 더욱 비중있게 다뤄야

울릉도에서 직선거리로 87.4km 떨어진 동해상의 고도 독도는 날씨가 맑으면 울릉도에서 육안으로 보이기 때문에 언제부터라 할 것 없이 우리는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지리상으로 그 위치가 알려지게 된 것은 1849년 1월27일(헌종 15년) 고래를 쫓아 동해로 들어왔던 프랑스 포경선 리앙쿠르(Liancourt)호에 의해서다. 섬의 위치를 북위 37°14′, 동경 129°35.2′으로 측정하고, 섬의 명칭을 ‘리앙쿠르 암’이라고 붙였는데, 이듬해 프랑스 수로지에 실리면서 서양에 처음 알려지게 되었다. 비록 지리상의 위치만 측정한 것이지만, 이것이 독도에 대한 최초의 근대적 측량이었고, 해도에 명칭이 기재된 최초의 기록이다.

1854년 4월6일(철종 5년)에는 러시아 함정 울리부차(Olivoutza)호가 독도를 발견, 위치를 북위 37°14′, 동경 131°57′05″로 측정하고, 서도를 ‘울리부차’, 동도를 함정의 옛 이름을 따서 ‘미넬라이(Menelai)’라 지었다. 1년 뒤인 1855년 4월25일에는 동해를 지나던 영국 함정 호넷(Hornet)호가 독도를 발견하고 위치를 북위 37°17′09″, 동경 131°54′14″로 측정하고, 이름을 ‘호넷 암’이라 붙였다. 그러나 영국 해군이 발간하는 수로지에는 프랑스 포경선의 발견을 인정하고 섬의 명칭을 ‘리앙쿠르 암’이라 표기했다. 1902년(고종 6년)에는 미국 함정 뉴욕호가 독도의 발견 위치를 북위 37°09′30″, 동경 131°55′으로 검측하였다.

일본 외무성 조사관 가와카미 겐조(川上健三·1905-1995)가 펴낸 ‘竹島の歷史地理學的硏究’에 따르면 일본 수로부가 1904년 8월4일과 5일에 군함 마쓰에(松江)호가 독도를 실측하고 실측도면을 작성했다고 한다. 이때 초 눈금이 표시된 9.5인치 경위의(經緯儀)를 사용 천체의 위치를 측정하여 항성시(恒星時)를 관측하고, 토르퀘툼(torquetum)법에 의해 위도를 측정했다. 그 위도와 울릉도의 위도와의 양위도 기선법에 의해 경도를 구했기 때문에 가장 정확한 독도의 위치를 표시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구한 여도(女島·독도의 동도)의 위치는 북위 37°14′18″, 동경 131°52′22″였다.

1981년 9월 국립지리원(현 국토지리정보원의 전신)이 간행한 독도의 1:5,000 지형도. 
3색도로 제작된 이 지형도는 독도의 형태를 
가장 잘 표현해낸 지도라 할 수 있다.
1981년 9월 국립지리원(현 국토지리정보원의 전신)이 간행한 독도의 1:5,000 지형도. 3색도로 제작된 이 지형도는 독도의 형태를 가장 잘 표현해낸 지도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독도에 대해 처음으로 측량을 시도한 것은 1952년 9월 한국산악회가 실시한 제2차 울릉도·독도 학술조사 때다. 비록 미군기의 폭격으로 상륙하지 못했지만 측지반의 박병주(朴炳柱)가 폭탄이 터지는 불꽃과 폭음을 듣고 배와 독도의 거리를 계산해내고, 개략적이나마 독도의 크기와 높이를 계산해냈다. 이듬해 1953년 10월에 한국산악회는 재3차 울릉도·독도 학술조사대를 파견하였는데, 역시 측지반을 맡은 박병주는 10월14일 독도에 상륙하여 이틀간 산악회원의 협조를 받아가며 독도를 직접 측량하고, 귀환 후 독도에 대한 축척 1:2,000 지형도를 제작하였다.

두 번째 독도 측량은 1954년 10월 해군 수로국이 독도 해역의 수심을 측량하고 지형도 제작을 위한 지형측량까지 실시한 것인데, 동도 정상에 설치된 등대를 측지기준점으로 삼아 육지측량을 하였고, 측량원도는 축척 1:2,000으로 작성하였다. 이것이 우리나라 국가기관이 독도를 측량한 최초의 기록이 된다.

세 번째 독도 측량은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던 1961년이다.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박정희 의장은 1961년 11월30일 독도 영유권 확보를 위해 독도를 측량하고 토지대장에 등록하라는 특별지시를 내렸다. 국립건설연구소는 즉시 측량팀을 구성하여 1961년 12월26일부터 이듬해 2월26일까지 62일간 독도에 들어가 평판측량에 의한 지형측량을 실시하였다. 측지기준점은 천문측량에 의해 그 위치를 결정하였는데, 그 기준점의 경위도 좌표는 북위 37°14′8″.35, 동경 131°52′42″.5였다. 측량 성과인 지형도는 축척 1:3,000으로 제작하였으나 일반에 공표되지는 않았다.

네 번째 독도 측량은 건설부 국립지리원이 낙도지구에 대한 측량 및 지도제작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그 첫 사업으로 1980년 5월2일부터 9월15일까지 독도 지역의 측량 및 지도제작 사업을 시행하였다. 기준점을 정하기 위해 천문측량과 검조측량, 수준측량을 실시하고, 최초로 항공사진 촬영을 실시하였다. 항공사진은 독도 주변의 간출암 확인을 위한 축척 1:30,000과 지형도 제작을 위한 1:8,000 두 가지로 촬영하였다. 세부도화는 독도 측량과 지도제작 사업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1:5,000과 1:1,000 두 가지 축척으로 하고, 지형도는 스크라이빙(scribing)법에 의해 수제로 제도하였으며, 3색도로 인쇄하였다.

다섯 번째 독도 측량은 교통부 수로국에서 1989년 독도를 재측량하고 1990년에 축척 1:10,000 해도를 제작한 것이고, 여섯 번째 독도 측량은 2000년 8월 국립지리원이 독도의 정확한 위치 결정과 풍화 및 제반시설의 구축으로 인한 지형변화를 조사하기 위해 항공사진측량에 의한 것이고, 2000년 11월30일에 축척 1:1,000과 1:5,000 수치지도를 최초로 제작하였다.

일곱 번째 독도 측량은 2000년 해양수산부 국립해양조사원에서 실시하고, 2003년 축척 1;5,000 해도를 발행하였다. 마지막인 여덟 번째 독도 측량은 국토지리정보원이 2004년 12월 울릉도와 독도의 기준점을 다시 측량하고, 2005년에 수치지형도를 수정 제작하였다. 최근 보급되고 있는 1:25,000 독도 지형도는 도엽명 울릉의 삽입도로 들어 있으며, 1:5,000 지형도는 먹색 1색도로 인쇄되어 판매되고 있다.

현재 독도에 대한 가장 마지막에 제작된 지형도는 우리나라가 아닌 일본이다. 일본은 독도에 대해 직접 촬영이나 현지조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2006년 2월24일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에서 쏘아올린 육지관측위성 ALOS(일본명 다이치)가 촬영한 데이터를 이용해 국토지리원(國土地理院)이 1:25,000 지형도를 제작하여 2007년 12월1일부터 자국의 ‘기본도’라고 공표하고 일반에 판매하고 있다.

최근 일본의 중학교 공민 교과서와 중·고등학교 지리 교과서에는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직접적인 서술이 실려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같이 일본이 독도에 대해 정밀 지형도를 제작하고, 독도를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에 실리는 것은 독도 문제를 영토분쟁으로 몰고 가려는 책략이라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독도는 우리 영토이기 때문에 이에 적극 대응하지 않고 있었지만, 독도가 우리의 영토라면 일본보다 더 정밀하고 정확한 지형도를 만들어야 하고 교과서에도 독도를 비중 있게 다뤄야 할 것이다.


/ 글 최선웅 한국산악회 부회장·매핑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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