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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르포라이터 민병준의 향토기행] 경북 경주

월간산
  • 입력 2008.11.06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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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천년의 향기가 오롯이 남아있는 고장

경주로 간다. 무려 1천년 가까이 신라의 도읍이었던 경주는 세계 역사상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역사 도시다. 시내 곳곳에 자리한 왕릉, 불국사, 석굴암 등 빼어난 문화유산,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알려진 첨성대 등 세계에 자랑할 만한 문화유산이 참 많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대부분 학창시절 수학여행의 추억이 아련한 경주. 그래서 가장 잘 아는 듯하지만, 사실 곱씹어보면 그다지 선명하지 않은 고장이 바로 다름 아닌 경주다. 1천년 도읍이라는 시공간이 워낙 깊고 넓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 어마어마한 문화유산은 미로처럼 행인의 길을 잃게 만들거나, 늪처럼 발을 붙잡거나, 블랙홀처럼 빨아들인다. 그래서 경주 기행에선 테마를 잘 설정하지 않으면 헤매기 십상이다.

대왕암 일출. 이곳은 동해의 용이 되어 왜적으로부터 
신라를 지키겠다는 유언을 남긴 문무대왕의 뼈를 뿌린 산골처다.
대왕암 일출. 이곳은 동해의 용이 되어 왜적으로부터 신라를 지키겠다는 유언을 남긴 문무대왕의 뼈를 뿌린 산골처다.

어느 고장이나 마찬가지겠지만 경주도 여행하기 가장 좋은 계절은 봄과 가을이다. 봄엔 대릉원 돌담길이며, 보문호 주변과 김유신 장군묘 가는 길에 벚꽃이 피어나는 4월 초순 무렵이 최고요, 가을엔 불국사의 연화교·칠보교, 청운교·백운교 주변에 오색 단풍 물드는 10월 하순에서 11월 초순 사이가 으뜸이다.

이번 신라 기행은 경주 시내에서 감포 가는 길을 지나 문무대왕을 만나는 것부터 시작한다. 서라벌의 첫 태양이 떠오르는 그곳, 신라인의 호국 의지가 상징적으로 살아 있는 그곳, 바로 대왕암이다. 신라 제30대 문무대왕(재위 661-681)은 태종무열왕인 김춘추의 맏아들이다. 이름 김법민(金法敏). 660년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할 때 신라 태자의 신분으로 김유신 장군과 함께 5만의 군대를 거느리고 백제를 멸망시켰다.

그리고 아버지 태종무열왕이 고구려를 평정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자 왕위를 이어 노회한 당나라 장수들을 주물러가며 668년 고구려를 멸망시킨다. 이어 신라의 땅까지 노리는 당나라 군대를 물리치고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통일군주. 평생을 전장에서 보낸 그가 삼국통일을 이룬 지 5년만에 세상을 떠날 때 남긴 유언록은 제법 긴 명문인데, 그 유언의 핵심은 바로 호국과 위민이다.

“내가 죽으면 나의 시체를 불교의 법식으로 화장하여라. 동해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리라.…(중략)…변방의 성들과 방위 요새 및 주·군의 과세는 일에 긴요한 것이 아니거든 모두 헤아려 폐지하라.”

예전엔 대왕암이 수중릉(水中陵)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여러 학자들과 언론매체 등에서 정밀 검토한 결과 문무대왕 뼈를 묻은 곳이 아니라 뼈를 뿌린 산골처(散骨處)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수중릉이든, 산골처든 몽돌 차르륵 밀려왔다 밀려가는 아름다운 대왕암 해안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문무왕의 호국정신이다. 평생을 전장에서 보낸 왕이 죽어서라도 용이 되어 왜국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고 싶어 했던 소망은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저력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잘 보여준다.

1. 대왕암은 전국의 무속인들이 사시사철 치성을 드리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2.신문왕이 만파식적을 얻었다는 이견대에서 바라본 대왕암.  3.문무왕이 용이 되어 금당으로 드나들었다는 감은사지에 남아있는 쌍탑은 신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탑으로 꼽힌다.
1. 대왕암은 전국의 무속인들이 사시사철 치성을 드리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2.신문왕이 만파식적을 얻었다는 이견대에서 바라본 대왕암. 3.문무왕이 용이 되어 금당으로 드나들었다는 감은사지에 남아있는 쌍탑은 신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탑으로 꼽힌다.

대왕암을 벗어난 여행객들은 누구나 신문왕이 신라삼보(新羅三寶) 중 하나인 만파식적(萬波息笛)을 얻었다는 이견대에서 다시 한번 대왕암을 조망한 후 대종천을 거슬러 올라간다. 문무왕이 용이 되어 금당으로 드나들었다는 감은사지에서 신라의 가장 아름다운 쌍탑을 감상하고, 길을 재촉해 골굴사 바위를 조심스레 올라 마애불을 뵌 뒤 기림사에 들렀다 나오면 길은 토함산(745m)으로 굽이돌며 이어진다.

경주의 3대 성산. 우리나라 석불 중 최고의 미학을 자랑하는 석굴암 본존불을 안고 있는 토함산은 남산, 단석산과 함께 신라천년의 찬란한 문화를 꽃 피웠던 경주의 3대 성산으로 꼽힌다.

토함산 정상께 있는 석굴암은 불교 세계의 이상향과 과학기술, 그리고 세련된 조각 솜씨가 어우러진 세계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석굴사원이다.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등록됐지만 습도조절 장치 때문에 유리창 밖에서만 부처님을 뵐 수 있는 게 안타깝다.

1.토함산의 석굴암은 불교 세계의 이상과 과학기술, 그리고 세련된 조각 솜씨가 어우러진 세계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석굴 사원이다.  2.골굴사 마애여래좌상을 보려면 이런 석회암 굴을 지나야 한다.  3.12개 석굴로 가람을 조성한 
함월산 골굴사 맨 꼭대기에 
조각되어 있는 마애여래좌상.
1.토함산의 석굴암은 불교 세계의 이상과 과학기술, 그리고 세련된 조각 솜씨가 어우러진 세계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석굴 사원이다. 2.골굴사 마애여래좌상을 보려면 이런 석회암 굴을 지나야 한다. 3.12개 석굴로 가람을 조성한 함월산 골굴사 맨 꼭대기에 조각되어 있는 마애여래좌상.

원래 석굴암은 자연적인 제습작용 원리로 인해 굴 안에 습기가 차지 않았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 일인들이 보수공사 당시 시멘트를 재료로 사용하는 바람에 제습 기능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리고 광복 후 다시 보수공사를 한 뒤에도 습기가 계속 맺히면서 불상이 상할 위기에 처하자 할 수 없이 입구를 유리창으로 막고 제습기와 송풍기를 설치한 것이다. 참으로 치욕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토함산 서쪽 기슭의 경주 불국사는 과거·현재·미래의 부처가 사는 불국정토의 정신을 완벽하게 드러낸 ‘불법의 궁전’이다. 흔히 김대성이 현세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전생의 어머니를 위해서는 석굴암을 창건했다고 알려졌지만, 사실 김대성은 창건이 아니라 중창을 한 것이다. 불국사는 이차돈의 순교 이후 불교를 공인한 이듬해인 528년에 법흥왕의 어머니 영제 부인과 왕비의 발원으로 창건되었다.

 

불국사 일주문을 지나 해탈교, 천왕문, 반야교를 지나면 불국사 앞마당에 닿는다. 오른쪽은 청운·백운교(국보 제23호)요, 왼쪽은 연화·칠보교(국보 제22호)다. 여기서 청운·백운교 33계단을 오르면 자하문(불이문)을 지나 다보탑·석가탑을 만난 뒤 대웅전으로, 칠보·연화교를 오르면 안양문을 지나 극락전으로 이어진다.

청운교(17계단) 백운교(16계단)는 33계단으로, 도리천인 33천을 나타낸다. 계단 하나하나가 연꽃을 살짝 즈려밟고 부처의 경지로 올라가는 축복의 다리다. 이렇게 자하문을 지나면 드디어 피안의 세계로 들어서게 된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청운·백운교, 칠보·연화교 4개 다리 모두 통행을 막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동선을 따르는 일은 불가능하다. 다만 이 다리의 아름다움만 상상할 수 있을 뿐이다. 문화유산해설사의 설명을 들어보자.

“이 청운교 백운교, 칠보교 연화교 아래 불국사 마당은 예전엔 커다란 연못이었어요. 토함산의 물이 수구를 통해 이곳으로 흘러들었는데, 비 오는 날 범영루 앞 석단이 물보라에 가려져서 시계가 흐려지면 불국사는 지상이 아니라 마치 구름에 떠있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지어졌지요.”

다보탑과 석가탑은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석탑으로, 높이(10.4m)도 같다. 대웅전 앞뜰 동서쪽에 마주 보고 서 있는데, 동쪽이 다보탑이요, 서쪽이 석가탑이다. 다보탑은 특수형 탑을, 석가탑은 우리나라 일반형 석탑을 대표한다. 두 탑을 같은 위치에 세운 이유는 현재의 부처인 석가여래가 설법할 때 과거의 부처인 다보여래가 그 옆에서 옳다고 증명한다는 법화경의 내용을 탑으로 구현한 것이다.

대웅전 뒤편의 무설전은 문무왕이 건립해 의상대사와 그 제자 표훈율사 등을 초빙하여 화엄경을 강론하였던 곳. 이어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가장 높은 곳에 관세음보살을 모신 관음전이 있다. 그 왼쪽으로 내려서면 크나큰 고요와 진리의 빛이 깃든 비로전이다. 누구든지 진심으로 간절히 기도하면 소원 하나는 들어주시니 어찌 그냥 지나칠까.

1.불국사의 청운·백운교 33계단을 오르면 자하문 지나 다보탑·석가탑을 만나게 된다. 지금은 유적 보호를 위해 통행을 막고 있다.  2.현재 보수공사 중인 다보탑 오른쪽으로 석가탑이 보인다. ‘현재의 부처’인 석가여래가 설법하면 그 옆에서 ‘과거의 부처’인 다보여래가 옳다고  증명한다는 법화경의 내용을 탑으로 표현한 것이다.  3.극락전 현판 뒤에 숨겨져 있는 황금돼지. 눈을 맞추면 복이 들어온다 하여 큰 인기를 끌고 있다.
1.불국사의 청운·백운교 33계단을 오르면 자하문 지나 다보탑·석가탑을 만나게 된다. 지금은 유적 보호를 위해 통행을 막고 있다. 2.현재 보수공사 중인 다보탑 오른쪽으로 석가탑이 보인다. ‘현재의 부처’인 석가여래가 설법하면 그 옆에서 ‘과거의 부처’인 다보여래가 옳다고 증명한다는 법화경의 내용을 탑으로 표현한 것이다. 3.극락전 현판 뒤에 숨겨져 있는 황금돼지. 눈을 맞추면 복이 들어온다 하여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어 비로전에서 나한전을 거쳐 돌계단을 내려서면 극락전. 고해의 바다를 헤엄치는 중생은 늘 지옥·아귀·축생 삼악도(三惡道)의 불행이 없는 극락정토를 찾는다. 극락정토에 드는 길은 어디일까. 먼 데 있지 않다. 바로 내가 서있는 이 자리가 극락정토다.
그런데, 극락전 현판 뒤엔 황금돼지가 있다. 문화유산해설사는 말한다. “어떤 분들은 석가탑, 다보탑은 뒷전이고, 이 황금돼지를 먼저 찾아요.” 극락전 처마 밑 현판 뒤에 숨겨진 잠자고 있던 50cm짜리 황금돼지 조각은 지난해 한 관람객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었다. 불국사 극락전은 임진왜란 때 훼손됐다가 조선 영조 때인 1750년에 중건했으니 250여 년만에 황금돼지의 존재가 알려지게 된 것이다.

자세히 보면 황금돼지는 아니고 멧돼지처럼 생겼는데, 경제적인 부를 안겨준다 해서 알려지자마자 인터넷 포탈 검색어 상위권을 차지할 정도로 인기가 급상승했다. 지금은 극락전 주불인 금동아미타여래좌상(국보 제27호)의 인기도 추월할 지경이다. 관람객들은 금동아미타여래좌상엔 고개를 안 숙여도 황금돼지와는 눈을 맞추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부를 희구하는 인간의 욕망은 정말 강하다.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극락전과 경제적인 부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어떤 이유에서 황금돼지가 극락전 현판 뒤에 숨겨지게 됐는지는 알 수 없다. 어떤 이는 토함산에서 곰사냥을 한 후 꿈에 곰이 나타나는 바람에 살생을 삼가고 불가에 입문했다는 김대성 설화와 연관을 짓는다. 김대성이 불국사를 중건하면서 살생하지 않겠다는 맹세로 처마 밑에 돼지 형상을 만들어 숨겼다는 것. 하지만 당시의 극락전은 임진왜란 때 불탔지 않았던가. 또 어떤 이는 서유기에 나오는 저팔계를 형상화한 것이라는데, 이는 저팔계가 사찰 내 잡귀신을 물리치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마도 극락전을 중건할 때 어떤 스님의 아이디어로 넣게 되었을 것이다. 제법 신빙성 있어 보인다.

1.원성왕의 무덤인 괘릉을 지키는 무인석. 굳센 힘이 느껴지는 이 무인석은 신라의 활발했던 문화 교류의 증거로 꼽힌다.  2.보문호 주변에 피어난 벚꽃. 매년 4월 초순이 되면 경주는 온통 벚꽃으로 뒤덮인다.  3.신라 시조 박혁거세와 왕후인 알영왕비 등이 묻혀 있는 오릉.
1.원성왕의 무덤인 괘릉을 지키는 무인석. 굳센 힘이 느껴지는 이 무인석은 신라의 활발했던 문화 교류의 증거로 꼽힌다. 2.보문호 주변에 피어난 벚꽃. 매년 4월 초순이 되면 경주는 온통 벚꽃으로 뒤덮인다. 3.신라 시조 박혁거세와 왕후인 알영왕비 등이 묻혀 있는 오릉.

단체 관람객 때문에 번잡한 불국사를 벗어나 석가탑의 아사달과 아사녀 슬픈 전설이 서린 영지를 둘러보면 이정표는 길손을 괘릉(掛陵)으로 안내한다. 경주엔 셀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왕릉이 있다. 나름대로 굵직한 역사적 사연을 안고 있거나 능묘제도 등에서 할 말이 많지만, 괘릉도 제법 이야깃거리가 넘치는 곳이다.

괘릉은 신라의 제38대 임금인 원성왕(재위 785-798)의 능이다. 능 이름인 괘(掛)는 ‘걸다’는 뜻이다. 어찌하여 이런 독특한 글자를 쓰게 되었을까. 원래 이곳엔 작은 연못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명당이라 수면에 돌을 길게 걸어놓고 거기에 유해를 걸어 안장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름이 괘릉이 됐다. 괘릉 가까이 가면 봉분 위쪽으로 빙 둘러 파여 있는 물고랑이 보이는데, 이곳엔 항상 물이 흐른다. 길손이 들렀을 때도 가을가뭄이 오랫동안 계속되었는데도 실제로 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지하의 수맥이 지나가는 곳임을 알 수 있다.

괘릉은 이렇듯 조성방식이 독특하지만, 사실은 후기 신라의 능묘제도가 가장 잘 반영된 왕릉으로 꼽힌다. 봉분의 밑 둘레엔 십이지신상을 새긴 호석이 감싸고 있고, 그 주위로 수십 개의 돌기둥을 세워 난간을 돌렸으며, 봉분 앞엔 안산을 새긴 석상도 놓여있다.

무엇보다 능 입구엔 2쌍의 돌사자상, 무인석 1쌍, 문인석 1쌍이 각각 좌우대칭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조각 수법이 빼어난 이 석물들은 괘릉의 상징이면서 신라 동서문화 교류의 증거로 꼽힌다. 특히 무인석은 누가 봐도 우리네와 확연히 다름을 알 수 있다. 우람한 체격에 높은 코, 파마를 한 듯한 턱수염 등은 흡사 오늘날의 아라비아 사람이 서있는 듯하다. 흔히 무인석이라 부르지만, 상인의 모습일 것이라고도 한다. 큼직한 칼을 들고 있으면서도 오른쪽 허리춤엔 돈주머니로 보이는 물건을 차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문인석으로 불리는 석상도 홀을 들고 있는 게 아니라 옷 속에 칼을 숨기고 있다.

1.미륵골 석불좌상은 마치 석굴암 부처님을 다듬은 그 장인의 솜씨인 듯 조형미가 아주 빼어나다.  2.남산 전체를 기단으로 삼은 기개와 주변 풍광의 조화가 돋보이는 용장사지 삼층석탑.  3.남산의 늠비봉 석탑 자리에서 바라보면 서라벌 들판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4.신라 경애왕이 후백제의 견훤에게 죽임을 당한 남산의 포석정. 신라 종말을 예고하는 상징물이다.
1.미륵골 석불좌상은 마치 석굴암 부처님을 다듬은 그 장인의 솜씨인 듯 조형미가 아주 빼어나다. 2.남산 전체를 기단으로 삼은 기개와 주변 풍광의 조화가 돋보이는 용장사지 삼층석탑. 3.남산의 늠비봉 석탑 자리에서 바라보면 서라벌 들판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4.신라 경애왕이 후백제의 견훤에게 죽임을 당한 남산의 포석정. 신라 종말을 예고하는 상징물이다.

괘릉의 또 하나 이야깃거리는 무덤의 주인공인 원성왕이 바로 홍수 때문에 왕위에 오른 인물로 유명한 김경신(金敬信)이라는 사실이다. 785년 선덕왕이 후사를 잇지 못하고 세상을 뜨자 대신들은 무열왕의 6세손인 김주원(金周元)을 왕으로 추대했다. 그런데 마침 홍수로 북천의 물이 불어 그 너머에 살고 있던 김주원이 궁궐에 들어갈 수 없게 되자, 대신들은 이도 하늘의 뜻이라 여겨 내물왕의 12세손인 김경신을 왕으로 추대했다.

이에 자신에게 화가 미칠 것이 두려워진 김주원은 강릉으로 피신해 나중에 강릉 김씨의 시조가 된다. 그런데 그의 아들 헌창(憲昌)은 자기 아버지가 왕위에 오르지 못하게 된 것을 원망하다가 나중에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했고, 그 뒤 그의 아들 범문(梵文)이 또다시 난을 일으켰으나 역시 실패하고 말았다. 무열왕계가 왕위쟁탈전에서 완전히 밀려나게 된 내막이다.

경주 시내로 들어서기 전에 남산(南山)을 둘러본다. 서라벌의 남쪽에 있다 해서 이름이 붙은 경주 남산. 경주를 잘 아는 많은 전문가들은 경주 기행에서 결코 남산을 빼놓지 말라고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남산은 신라의 알파요 오메가라는 것이다. 서쪽 식혜골 초입 나정(蘿井)은 신라의 첫 임금인 박혁거세의 탄생 신화가 깃든 곳이요, 근처 양산재는 신라 건국 이전 서라벌에 있었던 6촌의 시조를 모신 사당이다. 신라 말기에 제55대 경애왕은 남산의 포석정에서 후백제의 견훤에게 죽임을 당했다. 신라 종말의 상징물인 것이다.

산 아랫자락 사정은 이렇지만, 산 속으로 들어서면 신라인들이 그토록 염원했던 불국토(佛國土)로 바뀐다. 경주 남산은 비록 해발 500m가 채 안 되지만, 오를수록 높고 내려올수록 깊다. 발길 스치고 눈길 머무는 산골짝 골짝마다 석불이요, 석탑이요, 절터다.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에서 서라벌을 비유한 ‘寺寺星張 塔塔雁行’(사사성장 탑탑안행), 곧 ‘절들은 별처럼 펼쳐졌고, 탑들은 기러기떼처럼 날아간다’는 표현을 이곳 경주 남산에서 직접 목격할 수 있다.

1.현곡면의 용담정은 1859년 최제우가 천도를 깨닫고 동학을 창시한 곳이다. 이곳엔 최제우 동상 등이 세워져 있다.  2.하나의 바위에 사방으로 승려·탑·부처·비천상·사자상 등 30여 점이 조각된 탑골의 마애조상군.  3.경주에서 가장 오래된 숲인 계림. 경주 김씨 시조인 김알지의 탄생 설화가 서려 있는 곳이다.
1.현곡면의 용담정은 1859년 최제우가 천도를 깨닫고 동학을 창시한 곳이다. 이곳엔 최제우 동상 등이 세워져 있다. 2.하나의 바위에 사방으로 승려·탑·부처·비천상·사자상 등 30여 점이 조각된 탑골의 마애조상군. 3.경주에서 가장 오래된 숲인 계림. 경주 김씨 시조인 김알지의 탄생 설화가 서려 있는 곳이다.

경주 남산을 제 집 드나들 듯 답사한 뒤 시집 ‘경주 남산’을 발표한 정일근 시인은 남산을 일컬어 ‘신라인의 마음을 싣고 흘러가는 한 척의 배’라고 표현했다. 마지막 신라인으로 불리는 향토사학자 고(故) 윤경렬 선생도 “남산을 보지 않고서는 신라를 안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이 정도인데 어찌 경주 남산을 둘러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마음이 길을 만드네 / 그리움의 마음 없다면 / 누가 길을 만들고 / 그 길 지도 위에 새겨 놓으리 / 보름달 뜨는 저녁 / 마음의 눈도 함께 떠 / 경주 남산 냉골 암봉 바윗길 따라 / 돌 속에 숨은 내 사랑 찾아가노라면 / 산이 사람들에게 풀어놓은 실타래 같은 길은 / 달빛 아니라도 환한 길 / 눈을 감고서도 찾아갈 수 있는 길 / 사랑아, 너는 어디에 숨어 나를 부르는지 / 마음이 앞서서 길을 만드네 / 그 길 따라 내가 가네.’(정일근 시인의 ‘길’ 전문)

경주 남산은 최고봉인 고위봉(494m)과 금오봉(468m)의 두 봉우리에서 흘러내리는 44골과 180봉을 안고 있다. 여기엔 고분 37개소, 왕릉 13개소, 사지 150개소, 불상 129체, 탑 99기 등 모두 694점의 유적이 널려 있다. 이번에 자료를 보니 예전보다 유적이 많이 늘었다. 지금도 계속 드러나는 중이라 하니 이 산중에 얼마나 더 많은 흔적이 있을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마치 경주 시내 땅속에 얼마나 많은 유적이 묻혀있는지 모르는 것처럼. 그래서 경주 남산을 일컬어 ‘산속의 노천박물관’이란 표현은 참 적확하다.

1.						            경주 시내 한복판에 있는 대릉원. 경주에 산재한 왕릉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얼굴로 꼽힌다.  2.대릉원에서 유일하게 공개하고 있는 천마총. 인기가 좋아 주말이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다.  3.분황사 모전석탑은 신라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걸작품으로 꼽힌다. 원래 9층이었으나 지금은 3층만 남아있다.  4.‘호국룡변어정’ 설화가 전하는 분황사 석정. 경주에서 가장 오래된 우물이다.
1. 경주 시내 한복판에 있는 대릉원. 경주에 산재한 왕릉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얼굴로 꼽힌다. 2.대릉원에서 유일하게 공개하고 있는 천마총. 인기가 좋아 주말이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다. 3.분황사 모전석탑은 신라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걸작품으로 꼽힌다. 원래 9층이었으나 지금은 3층만 남아있다. 4.‘호국룡변어정’ 설화가 전하는 분황사 석정. 경주에서 가장 오래된 우물이다.

그렇다면 경주 남산엔 왜 이리 불교유적이 많을까. 왕족과 귀족들이 불국사·천황사·황룡사 등 거창한 절집에서 예불을 볼 때 민초들은 남산으로 향했다. 남산의 불상은 대부분 이름 없는 석공들이 이때 새겼을 것이다. 이 때문에 남산엔 완벽하고 잘 생긴 석불은 그리 많지 않다. 위엄을 갖췄다기보다는 그저 늘상 만나는 이웃 같은 정겨운 모습이 거기에 담겨 있다.

남산은 크게 완만한 동남산, 그리고 골이 깊고 가파른 서남산으로 나누어진다. 그중에서도 동남산쪽엔 권력이나 부가 아니면 세우기 어려웠을 제법 세련된 작품이 비교적 많아 귀족들도 많이 드나들던 곳으로 보고 있다. 반면에 민초들은 서남산을 찾았다.

경주 남산을 이렇듯 불국토로 가꾼 경주인들의 미감은 정말 대단하다. 아마도 단순히 물리적인 시간으로 일주일 내내 발품을 팔아야만 남산의 부처님과 석탑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유적이 넘쳐나는 경주 남산에서 꼭 봐야할 유적은 무엇일까. 이번에 만난 여러 분의 문화유산해설사 의견을 참조하면, 동남산에선 북쪽 미륵골의 보리사 석조여래좌상, 탑골의 마애조상군, 부처골의 감실 석조여래좌상이 꼽힌다. 그리고 남쪽 봉화골 칠불암의 마애조상군과 신선암의 마애보살좌상도 꼭 찾아보라고 귀띔했다. 물론 이렇듯 거창한 보물급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부처골 할매부처의 소박함, 미륵골 마애여래좌상에서 보는 경주 조망 등도 좋다.

이중에서 미륵골 석조여래좌상은 현재 남산에 있는 석불 가운데 가장 완전한 형태인데, 마치 석굴암 부처님을 다듬은 바로 그 장인의 솜씨인 듯 조형미가 아주 빼어나다. 또 탑골의 마애조상군은 하나의 바위에 동서남북 사방으로 승려·탑·부처·비천상·사자상 등 30여 점의 조각으로 사방정토와 속인들을 표현하고 있으니, 어쩌면 ‘남산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서남산에선? 우선 북쪽의 냉골이 으뜸이다. 이 길로 오르면 석조여래좌상, 마애석가여래좌상 등 수많은 부처님을 만날 수 있다. 부엉골 위쪽 늠비봉 5층석탑은 서라벌 들판 조망이 최고다. 그리고 서쪽 용장골에서 용장사지 삼층석탑을 만나면 남산 전체를 기단으로 삼은 그 기개와 주변 풍광의 조화에 가슴을 쓸어내리게 될 것이다.

한편, 얼마 전엔 무게 70t 규모의 완벽한 통일신라시대 대형 마애불이 열암골에서 발견되어 전 국민을 들뜨게 했다. 지진으로 쓰러진 이 부처님은 전혀 다치지 않았고, 예술적 가치도 높아 꼭 뵙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부처님을 일으켜 세울까 말까 고민 중이라 그런지 일반인은 관람할 수 없다고 한다.

귀띔 하나. 경주 남산에 돌부처와 석탑이 많을 수밖에 없는 까닭을 지질학적으로 보면, 남산의 화강암은 암석 표면에 작은 구멍이 많으면서 광물 입자가 매우 크고 밝은 흰 색이라 석재로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 한다. 그래서 토함산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의 석재도 남산의 돌을 가져다 썼다. 토함산은 남산과 생성 시기는 비슷해도 화강암 표면에 구멍이 거의 없어서 불상 등 석재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1.안압지 야경. 이 안압지를 포함한 임해전은 신라가 국빈을 맞아 잔치를 벌이는 별궁이기도 했다. 통일신라 말기엔 경순왕이 고려 왕건에게 항복문서를 작성한 비운의 장소였다.  2.신라의 뛰어난 과학기술을 보여주는 첨성대 야경.  3.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룩하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김유신장군 묘. 호석과 난간석 등에서 왕의 지위에 올라있음을 알 수 있다.  4.황룡사는 신라의 가장 대표적인 절집이었다. 이곳엔 645년에 완공한 9층목탑 등이 있었으나 1238년 몽골군 침입 당시 모든 건물이 불타버렸다.
1.안압지 야경. 이 안압지를 포함한 임해전은 신라가 국빈을 맞아 잔치를 벌이는 별궁이기도 했다. 통일신라 말기엔 경순왕이 고려 왕건에게 항복문서를 작성한 비운의 장소였다. 2.신라의 뛰어난 과학기술을 보여주는 첨성대 야경. 3.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룩하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김유신장군 묘. 호석과 난간석 등에서 왕의 지위에 올라있음을 알 수 있다. 4.황룡사는 신라의 가장 대표적인 절집이었다. 이곳엔 645년에 완공한 9층목탑 등이 있었으나 1238년 몽골군 침입 당시 모든 건물이 불타버렸다.

이젠 경주 시내다. 신라 천년의 고도 경주는 자전거 여행자와 도보 여행자의 천국이다. 여느 도시에 비해 자전거·도보 여행자를 위한 도로시설이 비교적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경주의 가장 큰 매력은 한 걸음 뗄 때마다 국보와 보물급 문화유산이 반긴다는 데 있다. 시내 주변만 해도 넓지 않은 공간에 워낙 많은 유적이 산재해 있어 다양한 코스로 변주가 가능하다.

대릉원(大陵苑)은 경주에 산재한 여러 왕릉을 대표하는 얼굴이다. 삼국사기에 ‘미추왕을 대릉에 장사지냈다’는 기록에서 대릉원이란 이름이 유래했는데, 오늘날에도 경주의 고분 중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천마총을 비롯하여 미추왕릉·황남대총 등 크고 작은 20여 기의 거대한 고분들이 빚은 곡선과 무덤 사이로 굽이도는 대릉원 길은 산책하기 정말 좋다.

20여 기의 고분 중에서 천마도를 비롯해 천마총금관 등 11,500여 점의 귀중한 유물이 나온 천마총은 대릉원 고분군 중 유일하게 내부를 공개하고 있다. 인기가 많아 주말엔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 높이 23m, 남북 길이 120m, 동서 직경 80m로 경주에서 가장 큰 무덤인 황남대총에서도 금관·금제 허리띠·마구류를 비롯한 각종 장신구가 출토되었다.

대릉원 정문으로 나와 길을 건너면 바로 첨성대·계림·월성·석빙고 등을 계속해 구경할 수 있다. 신라의 뛰어난 과학기술을 짐작할 수 있는 천문관측 장비인 첨성대(국보 제31호)는 울타리 밖에서도 윗부분이 보이긴 하지만 입장료 500원을 내고 들어가면 좀 더 자세히 감상할 수 있다.

첨성대를 등지고 길을 곧장 따르면 계림(사적 제19호)이다. 이 숲은 경주김씨 시조인 김알지의 탄생 설화가 서려 있는 곳이다. 느티나무, 왕버들, 단풍나무 등 아름드리 고목이 가득한 숲길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면 아름드리 솔밭 앞에 내물왕릉이 있다.

계림을 벗어나면 길은 신라 성곽의 중심이었던 월성과 조선 영조 때 얼음을 저장하기 위해 만든 석빙고를 거치는 멋진 산책로로 바뀐다. 이 길을 천천히 거닐면 드디어 7번 국도인 월성로 임해전지(안압지) 매표소 앞에 다다른다. 신라 왕궁의 별궁인 임해전(臨海殿)은 국빈을 모시거나 나라의 경사를 맞아 축하연을 거행하던 곳이다. 통일신라 말기엔 경순왕이 고려 왕건에게 항복문서를 작성한 비운의 장소이기도 하다.

임해전의 연못인 안압지는 신라 원지(苑池)를 대표하는 유적. 674년에 연못을 파고 못 가운데에 3개의 섬과 연못 북쪽과 동쪽으로 12봉우리의 산을 만들어 꽃과 나무를 심고 귀한 짐승을 길렀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철도를 건설하면서 임해전지가 많이 훼손되었는데, 1980년에 임해전 건물 추정지와 안압지 등을 복원했다. 여기서 발굴된 유물은 대부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다. 안압지도 대릉원 못지않게 산책코스로 인기를 끈다. 낮에도 그런대로 괜찮지만, 조명 시설을 해놓은 밤풍경이 낮보다 더 빛난다. 그래서 해가 진 다음에 연못을 도는 사람들이 많다.

국립경주박물관은 안압지 정문에서 걸어서 5분도 채 안 걸린다. 찬란했던 신라 천년의 역사와 예술을 일목요연하게 감상할 수 있는 국립경주박물관은 경주 시내 답사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장소. 남산이 ‘산속의 박물관’이고, 경주 시내가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면 국립경주박물관은 ‘박물관들의 핵심’들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곳이다. 그래서 국립경주박물관 관람시간은 최소 2~3시간씩 걸리는 데도 갈 때마다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코스가 된다.

“에밀레~ 에밀레~”

경주국립박물관 야외에 전시된 성덕대왕 신종(에밀레종) 종소리다. 현재 직접 타종은 하지 않고 30분마다 녹음된 소리만을 들려주고 있다. 신라 35대 경덕왕이 그의 아버지 성덕왕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큰 종을 만들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자, 경덕왕의 아들 혜공왕이 뒤를 이어 771년에 구리 12만 근(27t)을 들여 완성하고 성덕대왕 신종이라 불렀다. 원래 봉덕사에 걸려 있었으나 1460년 영묘사(靈妙寺)로 옮겨 걸었는데, 홍수로 절이 떠내려갔다. 당시 무거운 종만 남았으므로 현 봉황대(鳳凰臺) 옆에 종각을 짓고 보존하다가 1915년 경주박물관으로 옮긴 것이다.

에밀레종 소리는 ‘신라의 소리’다. 국립경주박물관의 조사에 따르면 소리의 주파수와 화음도, 질량 등을 수학적으로 계산해 얻어낸 값은 100점 만점에 상원사종이 65점, 보신각종이 58.2점, 크기로 유명한 중국의 영락대종이 42.3점, 에밀레종은 무려 86.6점으로 최고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 아름다운 소리를 얻기 위해 종 주조 당시 어린이를 희생양으로 썼다는 슬픈 전설이 전해오는데, 과학자들이 종의 성분을 분석해본 결과 사람 성분의 인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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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주박물관 야외전시실에 있는 성덕대왕신종. 박물관을 돌아다니다 보면 30분마다 녹음된 종소리를 들을 수 있다.  2.국립경주박물관엔 안압지에서 발굴한 유물도 전시되어 있다.  3.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인면문수막새.‘신라인의 미소’라는 찬탄을 얻고 있는 유물이다.
1. 국립경주박물관 야외전시실에 있는 성덕대왕신종. 박물관을 돌아다니다 보면 30분마다 녹음된 종소리를 들을 수 있다. 2.국립경주박물관엔 안압지에서 발굴한 유물도 전시되어 있다. 3.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인면문수막새.‘신라인의 미소’라는 찬탄을 얻고 있는 유물이다.

에밀레종의 명문(銘文)은 종소리만큼 명문(名文)으로 알려져 있다. ‘무릇 심오한 진리는 가시적인 형상 이외의 것도 포함된다. 눈으로 보면서도 알지 못하며, 진리의 소리가 천지간에 진동하여도 그 메아리의 근본을 알지 못한다. 부처님께서도 때와 사람에 따라 적절히 비유하여 진리를 알게 하듯이 신종을 달아 진리의 소리를 듣게 하셨다.’ 경주 사람들은 이런 종소리를 들으며 일생을 보냈던 것이다.

국립경주박물관엔 국보 13점, 보물 26점를 비롯해 총 78,680점의 유물을 소장·전시하고 있어 볼거리가 넘쳐나지만, 꼭 빼놓지 않고 싶은 것은 인면문수막새(人面文圓瓦當), 즉 얼굴무늬 수막새다. 흔히 ‘신라 천년의 미소’, ‘신라인의 미소’라는 찬탄을 얻고 있는 유물이다. 얼굴무늬 수막새의 지름은 11.5cm, 두께는 2cm다.

기와집에서 처마부분 수키와를 막고 있는 것을 수막새라 하고, 기와 중에서 널따란 기와를 암키와라고 하는데, 이것을 막고 있는 것을 암막새라고 한다. 수막새는 연꽃무늬가 일반적인데, 사람 얼굴을 표현한 예는 대단히 희귀하다. 수줍은 듯 살짝 미소를 짓고 있는 신라 여인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우수한 작품. 이 기와는 영묘사(靈廟寺)터에서 발견 직후 곧바로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광복 후 행방을 알 수 없어 안타깝게 하다가 일본에 있음이 곧 밝혀져 다시 경주로 돌아와 현재 이곳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 얼굴무늬 수막새는 천수백 년 전에 살았던 신라인의 표정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상징이다.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기분이 저절로 좋아지는 미소. 만약에 저 수막새가 없었다면 신라인의 미소를 어떻게 짐작이나 할 수 있었을까. 완벽한 형태는 아니지만 이 상태로나마 미소를 만날 수 있어 참 다행이다.

‘옛 신라 사람들은 / 웃는 기와로 집을 짓고 / 웃는 집에서 살았나 봅니다. // 기와 하나가 / 처마 밑으로 떨어져 / 얼굴 한 쪽이 / 금가고 깨졌지만 / 웃음은 깨지지 않고 // 나뭇잎 뒤에 숨은 / 초승달처럼 웃고 있습니다. // 나도 누군가에게 / 한 번 웃어 주면 / 천 년을 가는 / 그런 웃음을 남기고 싶어 / 웃는 기와 흉내를 내 봅니다.’(이봉직 동시 ‘웃는 기와’ 전문)

며칠 동안 경주에서 발품을 팔면서 동해의 대왕암에서 경주 남산과 시내의 대릉원·첨성대·계림·월성·석빙고·안압지·국립경주박물관의 경주 동부 유적지와 분황사지 구역, 그리고 형산강 너머의 김유신 장군묘와 태종 무열왕릉을 모두 꼼꼼히 둘러봤다 해도 경주의 밤거리를 걷지 않으면 2% 부족한 기행이다. 경주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 특히 조명시설을 해놓은 대릉원과 첨성대, 안압지 주변은 한밤중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어느덧 찾아온 서라벌의 밤. 춘흥에 겨운 봄날이면 더할 나위 없겠으나 낙엽 뚝뚝 떨어지는 가을밤도 그다지 나쁘지 않다.

‘서울 밝은 달밤에 / 밤늦도록 노닐다가 / 들어와 자리를 보니 / 다리가 넷이로구나…’(향가 ‘처용가’ 중에서)

그 옛날 태평성대의 서라벌엔 선남선녀들이 달밤에 탈춤을 추며 즐기는 놀이판이 있었다. 처용이 놀던 그 날 밤, 어여쁜 미모를 지닌 처용의 아내는 역신의 유혹에 넘어가지만, 마침내 분노도 질투도 모두 씻어버린 처용이 용서와 화해의 춤을 추던 그 날 밤, 처용이 춤추고 놀았던 서라벌의 그 날 밤처럼 달빛이 참 곱다.

경주, 어떤곳인가

신라의 옛 도읍인 경주시(慶州市)는 경상북도 남동부에 있다. 북동쪽으로 포항시, 서쪽으로 영천시·청도군, 남쪽으로 울산광역시 울주군, 동쪽으로 동해에 면한다. 경주의 지형은 크게 셋으로 구분된다. 동부 해안지대는 토함산(745m)을 중심으로 ‘호미지맥’의 영향으로 경사가 급한 산지가 이어지고, 서부는 낙동정맥의 단석산(斷石山·829m)을 중심으로 낙동강 유역과 형산강 유역의 분수령을 이룬다. 양쪽 산줄기의 중간을 형산강이 북류하며 주변에 안강·건천·내남평야 등 3대 평야를 형성하여 비옥한 농업지대를 이룬다.

경주의 내륙지역은 연평균기온 14℃, 1월 평균기온 -0.3℃, 8월 평균기온 26.6℃이고, 연평균강수량은 998.2mm이다. 춥고 더운 차이가 심하고 강수량이 적은 남부내륙형 기후를 나타낸다. 해안지역은 동해 난류의 영향을 받아 연평균기온 13.3℃, 1월 평균기온 0.6℃, 8월 평균기온 25℃, 강수량 1,028.6mm로, 따뜻하고 습한 남부해안형 기후를 나타낸다.

경주는 삼한시대에는 진한의 12국 가운데 사로국(斯盧國)이 자리 잡고 있던 지역이다. 양산촌(楊山村)·고허촌(高墟村)·진지촌(珍之村)·대수촌(大俊村)·가리촌(加利村)·고야촌(高耶村)의 6촌이 연합하여 박혁거세(朴赫居世)를 임금으로 추대하고 서라벌(徐羅伐)을 세웠다. 이후 이곳을 도읍으로 삼고 국토를 점점 넓혀가며 서라벌·사로·서벌·신로 등으로 불리다 503년(지증왕 4) 완전히 신라로 확정하였다.

고려가 신라를 합병한 935년(태조 18) 처음으로 경주라 불렀으며, 940년(태조 23) 영남지방의 행정관청인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가 설치되었다. 987년(성종 6) 동경(東京)으로 바꾸었다가 1012년(현종 3)에 다시 경주가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한동안 경주부에 설치된 경상좌도의 감영(監營)이 1601년(선조 34)에 대구로 옮겨간 후 경주의 지위는 약화되었다.

2008년 현재 감포읍·안강읍·건천읍·외동읍과 양북면·양남면·내남면·산내면·서면·현곡면·강동면·천북면, 그리고 중부동·성동동·황오동·성건동·황성동·용강동·동천동·황남동·보덕동·월성동·탑정동·불국동·선도동의 4읍 8면 13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경주의 농업은 논농사 중심이다. 농산물로는 쌀·보리·콩 외에 사과와 각종 채소류가 생산된다. 이밖에 양송이·산수유·표고버섯·약초·밤·대추 등도 생산된다. 축산은 한우·젖소·닭의 사육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수산업은 감포항을 중심으로 꽁치·오징어·가오리 등의 어획과 함께 어류양식업도 행해진다.

경주 불국사

경주시 진현동 토함산 기슭에 있는 불국사(佛國寺·사적 및 명승 제1호)는 과거·현재·미래의 부처가 사는 정토(淨土), 즉 이상향을 구현하고자 했던 신라인의 정신세계가 담긴 성스러운 불국토, 호국불교의 대가람이다.

불국사 창건에 대하여는 눌지왕 때 아도화상이 창건하였고 경덕왕 때 김대성에 의하여 크게 중창되었다는 설과, 528년 법흥왕의 어머니 영제부인의 발원으로 불국사를 창건하였고, 751년에 김대성에 의하여 크게 개수되면서 탑과 석교 등도 만들었다는 설이 전한다. 당시의 건물들은 대웅전, 다보탑·석가탑·청운교·백운교, 극락전, 무설전, 비로전 등을 비롯하여 무려 80여 종의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1604년(선조 37)경부터 복구와 중건이 시작되어 1805년(순조 5)까지 40여 차례에 걸쳐 중수가 이루어졌다. 조선 후기 사운(寺運)도 쇠퇴하여 많은 건물이 파손되고 도난당하는 비운을 겪게 되었다.

1970년에서 1973년까지 이어진 불국사 복원공사로 유지(遣址)만 남아 있던 무설전·관음전·비로전·경루(經樓)·회랑(廻廊) 등이 복원되었고, 대웅전·극락전·범영루(泛影樓)·자하문(紫霞門) 등이 새롭게 단장되었다. 입장료는 성인 4,000원, 청소년 3,000원, 어린이 2,000원이며, 주차비는 무료다. 입장시간 07:00~18:00. 전화 054-746-9912~3.

불국사 다보탑

불국사 다보탑(多寶塔·국보 제20호)은 751년(경덕왕 10)에 세워진 것으로 추측된다. 십(十)자 모양 평면의 기단에는 사방에 돌계단을 마련하고, 8각형의 탑신과 그 주위로는 네모난 난간을 돌렸다. 목조건축의 복잡한 구조를 참신한 발상을 통해 산만하지 않게 표현한 뛰어난 작품으로, 4각·8각·원을 한 탑에서 짜임새 있게 구성한 점, 각 부분의 길이·너비·두께를 일정하게 통일시킨 점 등은 8세기 통일신라 미술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1925년경 일본인들이 탑을 완전히 해체·보수하였는데, 탑 속에 있던 사리와 사리장치, 그 밖의 유물들이 이 과정에서 모두 사라져버렸고, 기록도 남지 않았다. 그리고 기단의 돌계단 위에 놓여있던 네 마리의 돌사자 가운데 보존상태가 가장 좋았을 듯한 3마리가 일제에 의해 약탈되었다.

1.경주 불국사 2.석굴암 3.불국사 다보탑 4.대릉원 5.불국사 석가탑 6.첨성대 7.계림
1.경주 불국사 2.석굴암 3.불국사 다보탑 4.대릉원 5.불국사 석가탑 6.첨성대 7.계림

불국사 석가탑

불국사 석가탑의 정식 명칭은 불국사 삼층석탑(국보 제21호)이다. 이 탑의 건립연대는 751년(경덕왕 10)으로 추정된다.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세운 석탑으로, 8세기 통일신라시대의 훌륭한 작품이다. 위·아래층 기단의 모서리마다 돌을 깎아 기둥 모양을 만들어 놓는 등 전체적으로 목조건축을 본떠서 경쾌하게 날아오르는 듯한 느낌을 준다.

1966년 보수공사 당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국보 제126호) 등이 발견되었다. 이 탑은 그림자가 비치지 않는다는 뜻으로 무영탑(無影塔)이라고도 불리는데, 여기에는 석가탑을 지은 백제의 석공 아사달을 찾아 신라의 서울 서라벌에 온 아사녀가 남편을 만나보지도 못한 채 연못에 몸을 던져야 했던 슬픈 전설이 서려 있다.

석굴암

석굴암(국보 제24호)은 751년(경덕왕 10)에 당시 재상이던 김대성이 처음 건립했는데, 건립 당시에는 석불사라 불렀다. 석굴에는 본존불을 중심으로 둘레에 천부상ㆍ보살상ㆍ나한상ㆍ사천왕상 등이 조각되어 있다. 석굴암은 불교 세계의 이상과 과학기술, 그리고 세련된 조각 솜씨가 어우러진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등록됐다. 보존을 위해 유리문을 설치한 까닭에 부처님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이 있다. 입장료는 성인 4,000원, 청소년 3,000원, 어린이 2,000원이며, 주차료 2,000원. 입장시간 06:30~18:00. 전화 054-746-9933.

대릉원

황남동에 있는 경주 황남리 고분군(사적 제40호)은 경주에 산재해 있는 신라 고분군 중 가장 큰 규모라 흔히 대릉원이라 불린다. 이 안에는 천마총·황남대총·검총 등과 미추왕릉이라고 전하는 무덤이 포함되어 있다. 대릉원의 고분군 중 유일하게 공개하고 있는 천마총은 천마도(국보 제207호)를 비롯해 천마총금관(국보 제1888호) 등 11,500여 점의 유물이 나왔다. 금관·금제허리띠·마구류를 비롯하여 각종 장신구가 출토된 황남대총은 높이 23m, 남북 길이 120m, 동서 직경 80m로 경주에서 가장 큰 무덤이다. 입장료는 성인 1,500원, 청소년 700원, 어린이 600원이며, 주차비는 2,000원. 입장시간 09:00~22:00. 전화 054-772-6317.

첨성대

첨성대(瞻星臺·국보 제31호)는 신라 선덕여왕(재위 632-647) 때 건립된 천문관측 시설이다.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부 위에 술병 모양의 원통부를 올리고 맨 위에 정(井)자형의 정상부를 얹었다. 정상부에 관측기구를 놓고 춘분ㆍ하지ㆍ추분ㆍ동지 등 24절기를 관측한 것으로 추측한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가치가 높으며, 당시의 높은 과학 수준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재라 할 수 있다. 높이는 9.17m. 입장료는 성인 500원, 청소년 300원, 어린이 200원. 입장시간 평일 08:00~20:00, 주말 08:00~22:30. 전화 054-772-5134.

계림

계림(鷄林·사적 제19호)은 경주김씨의 시조 김알지의 탄생 설화가 서려 있는 곳이다. 이 숲에서 닭 울음소리가 나서 가보니 나무에 황금 궤가 걸려 있었고, 그 안에서 김알지가 나왔다는 설화가 전해온다. 원래 신라 건국 때부터 신성하게 여겨 시림(始林)으로 불리던 숲이었다가 이후 계림으로 바뀌었다. 김알지는 김씨로서는 최초로 왕위에 오른 신라 13대 미추왕의 선조다. 느티나무와 왕버들나무, 단풍나무 등의 고목으로 가득한 숲 안쪽 멋진 송림에는 내물왕릉이 있다.

1.임해전지 2.분황사지 3.황룡사지
1.임해전지 2.분황사지 3.황룡사지

임해전지

임해전지(臨海殿址·사적 제18호)는 신라 왕궁의 별궁터다. 임해전은 나라의 경사를 맞아 축하연을 거행했던 별궁에 속해 있던 중요한 건물이다.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후 674년(문무왕 14)에 큰 연못을 파고 못 가운데에 3개의 섬과 못의 북·동쪽으로 12봉우리의 산을 만들었으며, 여기에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심고 진귀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고 전해진다.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이곳에서 연회를 베풀었다고 한다. 경순왕이 고려 왕건에게 항복 문서를 작성한 비운의 장소이기도 하다.

1980년에 임해전으로 추정되는 곳을 포함하여, 신라 건물터로 보이는 3곳과 연못인 안압지를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입장료는 성인 1,000원, 청소년 500원, 어린이 400원이며, 주차비는 무료다. 입장시간 09:00~22:00. 전화 054-772-4041.

분황사지

구황동에 있던 분황사(芬皇寺)는 634년(선덕여왕 3) 창건된 사찰이다. 신라 7가람 중 하나로 한국 불교의 중심이 되었던 원효대사와 자장스님 등 고승들이 거쳐 간 곳이다.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올린 분황사 모전석탑(국보 제30호)은 신라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걸작품으로 꼽힌다. 원래 9층이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지금은 3층만 남아있다. 이외에도 경내에는 호국룡변어정이라고도 불리는 석정(石井)을 비롯해 당간지주 등이 있다. 입장료는 성인 1,300원, 청소년 1,000원, 어린이 800원이며, 주차비는 무료다. 입장시간 08:00~18:00. 전화 054-742-9922.

황룡사지

황룡사지(사적 제6호)는 553년(신라 진흥왕 14)에 경주 월성의 동쪽에 궁궐을 짓다가 그곳에서 누런 용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절로 고쳐 짓기 시작하여 17년만에 완성한 황룡사(皇龍寺)가 있던 자리다. 황룡사는 규모나 사격이 신라에서 가장 크고 높은 절이었다. 5m가 넘는 삼존불상을 모시기 위한 금당을 584년(진평왕 6)에 지었다.

43년(선덕여왕 12)에는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소망을 담아 9층 목탑을 짓기 시작해 645년에 완공했다. 황룡사는 고려 왕조에도 보호를 받았으나 1238년(고종 25) 몽골군의 침입으로 탑은 물론 모든 건물이 불타버렸다.

국립경주박물관

인왕동에 있는 국립경주박물관은 찬란했던 신라 천년의 역사와 예술을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다. 현재 고고관, 미술관, 안압지관, 어린이박물관, 특별전시관, 수묵당, 그리고 야외전시장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성덕대왕 신종을 비롯한 국보 13점, 보물 26점를 비롯해 총 78,680점의 유물을 소장·전시하고 있다. 각 전시장에는 자동음성서비스(1인 3,000원)가 지원된다. 입장료는 2008년 5월1일부터 무료. 단, 유료 특별·기획전시 제외. 주차비는 무료다. 입장시간 평일 09:00~18:00, 주말 09:00~19:00. 전화 054-740-7518, http://gyeongju.museum.go.kr

김유신 장군묘

김유신 장군은 신라가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루는 데 큰 공을 세운 인물. 충효동에 있는 김유신 장군묘(사적 제21호)는 674년(신라 문무왕 13)에 축조했다. 무덤은 지름 30m이고, 봉분은 둥근 모양이다. 무덤 둘레의 12지신상은 평복을 입고 무기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몸은 사람의 형체이고 머리는 동물 모양이다. 조각의 깊이는 얕지만 대단히 세련된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입장료는 성인 500원, 청소년 300원, 어린이 200원이며, 주차비는 무료다. 입장시간 09:00~17:00. 전화 054-749-6713.

1.국립경주박물관 2.김유신 장군묘 3.무열왕릉 4.경주 남산
1.국립경주박물관 2.김유신 장군묘 3.무열왕릉 4.경주 남산

무열왕릉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은 654년 진덕여왕이 죽자 진골의 신분으로 군신들의 추대를 받아 즉위한 신라 최초의 진골 출신 왕이다. 무열왕은 김유신 등에게 5만의 군사를 주어 당나라 군사와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켰다. 서악동에 있는 무열왕릉(사적 제20호)은 밑지름 36.3m, 높이 8.7m이다. 경내 비각에는 비신 없는 태종무열왕릉비(국보 제25호)가 있는데, 몸통을 받쳤던 귀부와 위를 장식하였던 이수가 있다. 이 이수의 전면 중앙부에 태종무열대왕지비(太宗武烈大王之碑)라 새겨져 있다. 입장료는 성인 500원, 청소년 300원, 어린이 200원. 주차비는 무료다. 입장시간 09:00~18:00. 전화 054-772-4531.

경주 남산

경주시 남쪽에 솟은 남산(494m)은 신라인들이 신앙의 대상으로 여겨온 곳이다. 남북 8km 동서 4km로 남북으로 길게 뻗어내린 타원형이면서 남쪽으로 약간 치우쳐 정상을 이룬 직삼각형 모습이다. 남산은 최고봉인 고위봉(494m)과 금오봉(468m)의 두 봉우리에서 흘러내리는 44골과 180봉을 안고 있다. 여기엔 보물 13점 등 문화재 41점과 왕릉 13개소, 절터 128개소, 불상 100체, 탑 74기 등 468점의 유적이 널려있다.

경주 남산엔 70여 가닥의 등산로가 있다. 그 산길들의 정점은 언제나 고위봉과 금오봉이다. 어느 계곡에서든지 2시간 이내에 정상에 오를 수 있고, 어느 코스로 가나 석불과 석탑을 볼 수 있다. 경주남산연구소(054-771-7142, www.kjnamsan.org)에서는 매주 일요일과 공휴일(설, 추석 연휴 제외) 남산 문화유적답사 안내를 한다. 9:30~15:00(6시간), 선착순 50명. 삼릉 주차장. 주차료는 2,000원이고, 입장료는 없다. 전화 남산관리사무소 054-779-6396.

경주 남산 칠불암 마애석불

경주 남산 남동쪽 기슭에 자리한 칠불암 마애석불(보물 제200호)은 통일신라 때 작품이다. 가파른 산비탈에 4m쯤의 돌축대를 쌓아 불단을 만들고, 이 위에 사방불(四方佛)을 모셨으며, 1.74m의 간격을 두고 뒤쪽의 병풍바위에는 삼존불(三尊佛)을 새겼다. 이렇게 모두 칠불(七佛)이 마련되어 있어 칠불암 마애석불이라 한다. 칠불 모두 양감 있는 얼굴과 풍만하고 당당한 자세로 자비로운 부처님의 힘을 드러내고 있는 등 뛰어난 조각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용장사지

경주 남산의 금오봉 기슭에 있던 용장사(茸長寺)는 매월당 김시습이 ‘금오신화’를 쓰며 머물던 곳이다. 용장사지에 올라보면 남산 전체가 불국 도량인 것처럼 앞을 향해 오른쪽을 보면 절벽 바위 밑에 자리 잡은 은적골 절터들이 눈 아래 펼쳐진다. 이곳에는 자연암석을 아래층 기단으로 삼고, 조망이 아주 빼어난 용장사곡 삼층석탑(보물 제186호), 용장사곡 석불좌상(보물 제187호),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보물 제913호) 등이 보존되어 있다.

경주 배리 석불입상

흔히 배리 삼존석불로 불리는 경주 배리 석불입상(보물 제63호)은 경주 남산 기슭에 흩어져 있던 것을 1923년 지금의 자리에 모아 세웠다. 조각솜씨가 뛰어난 다정한 얼굴과 몸 등에서 인간적인 정감이 넘치면서도 함부로 범할 수 없는 종교적 신비가 풍기고 있는 작품으로 7세기 신라 불상조각의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중앙의 본존불은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표정인데, 둥근 눈썹, 다문 입, 통통한 뺨은 온화하고 자비로운 불성이 잘 나타나 있다. 해의 기울기에 따라 불상의 미소가 각각 달리 보이기로 유명하다. 왼쪽에는 관음보살상이 있고, 오른쪽에는 연꽃 위에 선 대세지보살상이 있다.

배리 삼릉

경주 남산 서쪽 기슭에 있는 배리 삼릉(사적 제219호)은 동서로 3개 왕릉이 나란히 자리해 붙여진 이름이다. 밑으로부터 신라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 등 박씨 3왕의 무덤이라 전하지만 확실한 기록은 없다. 무덤은 모두 원형으로 흙을 쌓아올린 형태를 하고 있다. 삼릉의 모습도 아름답지만 주위를 빽빽이 둘러싼 소나무숲이 절경이라 산책하기 좋다.

1.용장사지 2.경주 배리 석불입상 3.신라 오릉 4.포석정 5.경주 보문관광단지 6.경주 괘릉 7.문무대왕릉
1.용장사지 2.경주 배리 석불입상 3.신라 오릉 4.포석정 5.경주 보문관광단지 6.경주 괘릉 7.문무대왕릉

신라 오릉

탑동에 있는 신라 오릉(新羅五陵·사적 제172호)은 4기의 봉토무덤과 1기의 원형무덤이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시조 박혁거세와 제2대 남해왕, 제3대 유리왕, 제5대 파사왕, 그리고 박혁거세의 왕후인 알영왕비 5명의 무덤이라 되어 있다. 삼국유사에는 혁거세 왕이 임금자리에 있은 지 62년만에 하늘로 올라갔다가 7일 후에 몸이 흩어져 땅에 떨어지자 왕비도 따라 죽으니, 사람들이 같이 묻으려고 했으나 큰 뱀이 방해해서 몸의 다섯 부분을 각각 묻었는데, 그것을 오릉(五陵) 또는 사릉(蛇陵)이라 했다고 한다. 입장료 성인 500원, 어린이 300원. 주차료 1,000원.

포석정

경주 남산 북서쪽 계곡에 있는 포석정(鮑石亭·사적 제1호)은 신라 왕실의 별궁으로 역대 임금들이 연회를 베풀던 곳이다. 지금은 정자 등의 건물이 모두 없어지고 전복같이 생긴 석조구조물인 포석정만 남았다. 물길은 22m이며 높낮이의 차가 5.9cm인 포석정은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하던 유배거(流盃渠)의 유적이다. 최근 제사에 쓰이는 제기류를 비롯한 많은 유물이 출토되어 현재는 놀이공간이 아닌 남산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나 제사장의 신성한 공간으로 추측하고 있다. 입장료는 성인 500원, 청소년 300원, 어린이 200원이며, 주차료는 2,000원. 입장시간 09:00~18:00. 전화 054-745-8484.

경주읍성

동부동과 북부동에 있는 경주읍성(慶州邑城·사적 제96호)은 고려 때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석성이다. 성문은 동쪽에 향일문, 서쪽에 망미문, 남쪽에 징례문, 북쪽에 공진문이 있었는데, 당시 징례문에는 봉덕사의 성덕대왕 신종(에밀레종)을 달아놓고 매일 울렸다고 한다. 지금은 거의 헐리고 약 50m만 남아 있는데, 가로 40∼50cm, 세로 20∼30cm의 잘 다듬은 돌로 축성되어 있다.

경주 보문관광단지

경주 동쪽 명활산 옛 성터 아래의 보문호 주변에 조성한 관광단지다. 주위에는 경주보문 실탄사격장, 열기구 체험장, ATV 체험장, 골프장 등의 체육시설, 야외공연장, 자동차야외극장, 경주월드, 물레방아휴게소, 신라밀레니엄파크, 호텔·콘도·펜션 등의 숙박시설 등 위락시설을 갖추고 있다. 특히 보문호 둘레로는 자전거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호수를 따라 자전거 등으로 둘러보기에 안성맞춤이다. 관광안내 054-779-6397.

경주 괘릉

외동읍 괘릉리의 낮은 구릉의 남쪽 소나무숲에 있는 경주 괘릉(掛陵·사적 제26호)은 신라 제38대 원성왕(재위 785-798)의 무덤이다. 원성왕의 이름은 김경신(金敬信)이고, 내물왕의 20대 후손으로 독서삼품과를 새로 설치하고 벽골제를 늘려 쌓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왕릉이 만들어지기 전에 원래는 작은 연못이 있었는데, 연못의 모습을 변경하지 않고 왕의 시체를 수면 위에 걸어 장례하였다는 속설에 따라 괘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흙으로 덮은 둥근 모양의 무덤 아래에는 무덤의 보호를 위한 둘레석이 있는데, 이 돌에 12지신상이 조각되어 있다. 괘릉을 중심으로 입구 좌우에 한 쌍씩 배치된 괘릉석상 및 석주(보물 제1427호)의 수량은 문인·무인석 4점, 사자상 4점, 석주 2점으로 총 10점이다.

문무대왕릉

양북면 봉길리 앞바다에 있는 문무대왕릉(文武大王陵·사적 제158호)는 죽은 뒤에도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문무대왕의 유언에 따라 만든 해중릉(海中陵)이다. 바닷가에서 약 200m 떨어진 곳에 있는 길이 20m의 바위섬인 대왕암 안에 동서남북으로 인공수로를 만들었다. 수면 아래에는 길이 3.7m, 폭 2.06m의 남북으로 길게 놓인 넓적한 거북 모양의 돌이 덮여 있는데, 이 안에 문무왕의 유골이 매장되어 있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또한 대왕암이 바라보이는 인근 해변에 있는 이견대(利見臺)는 신문왕이 대왕암을 향해 절을 한 곳이다.

감은사지 삼층석탑

감은사지(사적 제31호)는 신라 신문왕이 아버지 문무대왕의 위업을 잇기 위해 682년(신문왕 2)에 세운 감은사가 있던 자리다. 금당마루 밑엔 동해의 용이 된 문무대왕이 드나들 수 있도록 통로를 만들었다. 삼층석탑(국보 제112호)은 감은사지 넓은 앞뜰에 나란히 서 있는 쌍둥이 석탑으로 높이가 13.4m에 이른다. 1959~60년 서탑을, 1996년 동탑을 해체 복원했다. 현재 동해바다에서 날아온 염분을 제거하기 위한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입장료, 주차료 모두 무료.

기림사

양북면 호암리 함월산(含月山)에 있는 기림사(祇林寺)는 643년(선덕여왕 12) 천축국 승려 광유가 임정사(林井寺)로 창건한 사찰이다. 원효가 중수하고 기림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1863년(철종 14) 대부분 불타 없어졌고, 당시 지방관이던 송정화의 후원으로 중건한 것이 현 건물이다. 경내에는 건칠보살좌상(보물 제415호), 대적광전(보물 제833호), 소조비로자나삼존불상(보물 제958호), 비로자나불복장전적(보물 제959호)와 기림사 삼층석탑, 목탑지 등의 문화유산이 남아 있다. 입장료 성인 3,000원. 주차료 1,000원.

1.감은사지 삼층석탑 2.기림사 3.용담정 4.골굴사
1.감은사지 삼층석탑 2.기림사 3.용담정 4.골굴사

골굴사

양북면 함월산에 있는 골굴사(骨窟寺)는 6세기 무렵 서역에서 온 광유 일행이 약반전산에 12개 석굴로 가람을 조성하여 법당과 요사로 사용해온 인공 석굴사원이다. 석회암 절벽을 깎아 만든 것으로 한국의 둔황석굴[敦煌石窟]이라 불린다. 법당굴은 벽을 바르고 기와를 얹은 탓에 앞에서 보면 집처럼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천장도 벽도 모두 돌로 된 석굴이다. 석회암 절벽에는 석굴로 여겨지는 구멍이 곳곳에 뚫려 있는데, 맨 꼭대기에 마애여래좌상(보물 제581호)이 조각되어 있다.

용담정

현곡면 가정리의 구미산 아래에 있는 용담정(龍潭亭)은 1859년 천도교의 교조 최제우가 천도를 깨닫고 동학을 창시하였다. 동학은 기독교 정신과 유교·불교·도교 등의 동양 사상에 민간 신앙을 결합한 것으로,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 사상을 바탕으로 한다. 최제우는 전국적으로 포교활동을 펼쳐 농민·천민·유생에 이르기까지 널리 퍼져 나갔다. 동학을 믿는 신도가 점차 늘자 정부에서는 나라를 혼란시키는 종교라 하여 탄압하고 그를 체포하여 처형하였다. 동학은 제2대 교주 최시형을 거쳐 제3대 교주 손병희 때 천도교로 이름을  바꾸었다. 저서에는 동학 경전인 <동경대전>, <용담유사> 등이 있다.

경주 양동마을

경주 양동마을
경주 양동마을

경주 북쪽 강동면 양동(良洞)마을(중요민속자료 제189호)은 조선시대 전통문화와 자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한국 최대 반촌(班村)이다. 월성손씨와 여강이씨에 의해 형성된 이 마을은 보존상태와 규모, 문화재, 주변환경 등이 매우 빼어나다. 설창산을 주산으로 문장봉에서 산등성이가 뻗어내려 네 줄기로 갈라진 능선과 골짜기가 물(勿) 자형의 지세를 이루고 있는데, 풍수지리상 재물 복이 많은 형국이라 한다. 무첨당(보물 제411호), 향단(보물 제412호), 관가정(보물 제442호)을 비롯해 200년 이상 된 고가 54호가 보존되어 있어 조선 중기 이후의 다양하고 특색 있는 전통가옥 구조를 한눈에 살필 수 있다.

경주 자전거 하이킹

경주는 우리나라 최적의 자전거 여행 도시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전용도로도 잘 정비되어 있다. 하이킹 코스는 경주역이나 버스터미널에서 북천을 거슬러 올라 보문단지로 들어가는 것이 보통. 경주 시내 문화유산을 답사하는 코스도 있다. 자전거 대여점은 경주역, 고속버스터미널, 보문관광단지, 대릉원 앞에 있다. 관광안내소에서 자전거 지도가 비치되어 있다. 고속버스터미널 앞 자전거 대여소는 경주산악자전거 총판(749-4437), 경주자전거 대여장(773-7642) 등이 있고, 경주역 앞에는 길손자전거 대여점(749-1109) 등이 있다. 이용요금은 하루 5,000원~10,000원.

토함산 자연휴양림

토함산 자연휴양림은 토함산 남쪽 기슭에 조성돼 있는 삼림휴양시설이다. 이 휴양림은 석굴암을 비롯해 불국사·문무대왕 수중릉 등 수많은 신라 문화유적 답사지를 둘러보는 베이스캠프로 삼을 수 있다. 통나무집과 야영데크를 비롯해 6km의 산책로, 산림욕장 등이 잘 조성되어 있다. 주말과 성수기 이용 요금은 5~6인실이 70,000원, 7~8인실은 85,000원, 10인실은 14만원이다. 야영데크 6,000원. 입장료는 일반(개인/단체) 1,000/800원, 청소년 700/500원, 어린이 500/300원. 주차료 소형 3,000원, 중형 4,000원, 대형 5,000원. 전화 054-772-1254.

길에서 만난 별미

우리밀 칼국수

남산을 오르는 포석정과 삼릉 기점에는 깔끔한 정식을 차려내는 부성식당(745-2258), 들깨가루를 넣어 칼국수 국물이 구수한 할매집(745-4761)과 세방칼국수(744-6475)가 먹을 만하다. 삼릉 옆에 있는 삼릉고향칼국수(054-745-1038)는 삼릉 일대 많이 있는 칼국수촌의 원조집이다. 순수 우리 밀로 만든 밀가루에 콩가루를 약간 섞어서 칼국수를 만든다. 우리 밀의 구수하고 소박한 맛이 은은하게 감겨든다. 칼국수와 곁들이는 수육, 도토리묵, 동동주 등도 별미다. 칼국수 1인분 4,000원.

경주 쌈밥

경주 시내의 맛집은 대부분 대릉원 담을 따라서 밀집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한상 가득 차려내는 쌈밥집들은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하지만 주말 저녁시간엔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를 잡지 못할 정도다. 메뉴도 어느 식당이나 비슷비슷하고 워낙 많은 사람들이 찾아서 그런지 친절도는 많이 떨어진다. 대릉원 입구에서 첨성대 가는 길에 있는 이풍녀구로쌈밥(749-0600)이 유명하다. 쌈밥 1인분 8,000원.

팔우정 해장국

경주역에서 박물관쪽으로 4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팔우정 로터리엔 팔우정해장국(054-742-6515) 등 20여 해장국 전문집들이 모여 있다. 이곳 해장국은 일반 해장국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내려온 경주식이다. 물명태와 멸치로 우려낸 맑은 국물에 신선한 콩나물과 묵, 그리고 갖은 양념을 첨가하여 차린다. 1인분 4,000원.

황남빵 & 찰보리빵

경주에서 가장 유명한 먹거리는 어쩌면 황남빵일 것이다. 자그마한 팥빵인 황남빵은 1939년 경주최씨 최영화 옹이 황남동에서 처음 만들었는데, 조상 대대로 집안에서 전해오던 비법으로 황남빵을 탄생시켰다. 인공감미료나 방부제가 전혀 안 들어가 맛이 부드럽다. 대릉원 바로 옆에 황남빵(054-749-7000 www.hwangnam.co.kr) 본점이 있다. 황남빵(20개) 10,000원.

경주 찰보리빵은 최근 황남빵의 명성을 넘보고 있다. 경주 시내에 체인점도 많다. 찰보리는 위장 기능을 튼튼하게 하고 설사를 멎게 하는 등 오장을 건강하게 해준다. 뿐만 아니라 풍부한 식이섬유를 함유하고 있어 웰빙음식으로 아주 좋다. 30여 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경주 찰보리빵은 기름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구워내 쫀득쫀득하고 달지 않아 어린이나 여성들이 아주 좋아한다. 대릉원 주변에 빵가게가 많다. 경주 찰보리빵(20개) 8,000원. 054-772-1322.

일정별 길라잡이

●시내권  경주 여행의 중심이 된다. 대릉원, 첨성대, 계림, 임해전지(안압지), 국립경주박물관 등 경주 동부유적지와 분황사 모전석탑, 황룡사지 등이 이 권역에 있다. 경주 시내 서부에 있는 김유신 장군묘와 태종무열왕릉을 포함해 동부의 보문관광단지와 그 주변의 진평왕릉, 설총묘 등도 넓게 시내권에 넣을 수 있다.

●동해권  토함산 동쪽 지역이다. 감은사지 삼층석탑, 대왕암, 이견대 등이 있다. 대왕암 근처나 감포항 등에서 회를 맛볼 수 있다. 내륙쪽에 있는 양북면의 기림사와 골굴사도 이 권역에 넣을 수 있다.

●토함산권  두말할 필요도 없이 불국사와 석굴암이 중심이다. 토함산 자연휴양림이 이 권역에 있다. 토함산 남서쪽 동해남부선 불국사역의 2~3km 반경 안에 괘릉, 영지, 성덕왕릉 등이 있다.

●남산권  우선 남산 둘레로 포석정, 삼릉, 용장사지, 칠불암, 옥룡암 등이 포함된다. 산속으로 들어서면 남산 전체가 박물관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문화유산과 볼거리가 있다. 금오봉과 고위봉 산행 중에 경주 풍광을 조망하는 맛이 좋다.

일정짜기

●당일  같은 영남권이 아니라면 접근하는 데 최소 3~4시간씩 소요되는 거리이므로 아무래도 부담이 되는 일정이다. 경주에 머무는 시간이 4~5시간 정도라면 명소 2~3곳을 돌아볼 수 있다.

●1박2일 어느 정도 일정을 잡을 수 있다. 대릉원, 첨성대, 안압지는 야간에도 개장하므로 이를 염두에 두고 일정을 짜는 것이 좋다. 불국사, 석굴암, 국립경주박물관 등도 둘러볼 수 있다.

●2박3일 하루는 경주 시내에서 하루는 불국사 앞이나 동해 바다에서 묵는 게 좋다. 경주는 야경도 아름답다. 그러므로 첫날은 시내나 보문단지 근처에 숙소를 정하고 야경을 즐긴다. 그리고 이튿날 경주 남산과 불국사, 석굴암 등을 둘러보며 동쪽으로 가다가 동해 문무대왕릉 근처에서 하룻밤을 묵는다. 일출을 감상한 뒤엔 다시 경주 시내쪽으로 들어오며 기림사, 골굴암을 비롯해 미처 챙기지 못한 유적지를 둘러보다가 경주 나들목으로 들어서면 된다. 경주 남산 산행(4시간 소요)도 꼭 곁들이고 싶다.

●3박4일 한번 떠나온 경주 여행길에서 비교적 덜 아쉽게 돌아볼 수 있는 일정이다. 남산 산행, 시내 자전거·도보 여행 시간도 가질 수 있다.

교통

●자가운전

수도권  서울→경부고속도로→경주 나들목→경주 <4시간 소요>
영남권  부산→경부고속도로→경주 나들목→경주 <1시간 소요>
호남권  광주→호남고속도로→고서 분기점→88올림픽고속도로→금호 분기점→경부고속도로→경주 나들목→경주 <3시간30분 소요>
충청권  대전→경부고속도로→경주 나들목→경주 <2시간30분 소요>
강원권  춘천→중앙고속도로→경부고속도로→경주 나들목→경주 <4시간 소요>

●고속·시외버스

서울→경주 고속버스터미널(02-535-4151)에서 매일 23회(06:05~23:55) 운행. 4시간30분 소요, 요금 우등 26,000원, 일반 17,500원, 심야우등 28,600원.
부산→경주 동부시외버스터미널(051-508-9312)에서 매일 10분 간격(05:30~22:30) 운행 / 고속버스터미널(051-508-9200)에서 매일 22회(08:30~22:00) 30분 간격 운행. 50분 소요, 일반·우등 4,000원, 심야우등 4,400원.
광주→경주 종합터미널(062-360-8114)에서 매일 2회(09:40, 16:40) 운행. 3시간30분 소요, 일반 14,800원, 우등 21,900원.
대구→경주 시외버스터미널(053-756-0017)에서 매일 31회(06:40~21:10) 15분 간격 운행. 1시간 소요, 일반 4000원. 우등 5,800원.
대전→경주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매일 4회(07:00 18:30) 운행. 2시간40분 소요, 일반 11,400원, 우등 16,700원.
서울역→경주역 새마을호 매일 5회(05:55, 07:40, 11:55, 13:10, 15:00, 17:50), 무궁화호 1회(22:35) 운행. 새마을호 4시간40분 소요, 요금 37,700원. 무궁화호 5시간10분 소요, 요금 25,300원.

●현지교통

경주→불국사·보문단지 시외버스터미널(054-743-5599)에서 10번, 11번 셔틀버스(08:30~16:30) 운행. 35분 소요, 요금 1,500원.
경주→불국사·석굴암 시외버스터미널(054-743-5599)에서 12번 버스 이용 / 불국사 주차장에서 매일 10회(08:40~17:20) 1시간 간격 운행. 20분 소요, 요금 1,500원.
경주→감포항 시외버스터미널(054-743-5599)에서 100번 버스 매일 18회(06:30~21:30) 20분 간격 운행. 1시간 소요, 요금 1,500원.
경주→문무대왕릉 시외버스터미널(054-743-5599)에서 150번 버스 매일 18회(06:30~21:30) 운행. 1시간 소요, 요금 1,500원.
경주→오릉·포석정·삼릉 시외버스터미널(054-743-5599)에서 500, 503, 505, 506, 507, 508번 버스 운행. 20~25분 소요, 요금 1,500원.

숙식(지역번호 054)

●시내권  경주 시내에 차향기 가득한 집(748-6754)과 씨티빌민박(771-2974), 고도민박(775-2882) 등이 있다. 보문관광단지에 경주조선온천호텔(740-9600), 경주힐튼호텔(745-7788) 등 여러 호텔을 비롯해 콘도·여관·민박집 등이 많다. 신라의 달밤(777-0643), 경주신라펜션(773-4842), 세븐하프펜션(772-8283) 등이 인기 좋다. 보문단지 안의 남촌마을에 펜션포에버(743-0170), 북군 마을에 펜션미루(748-9897) 등이 있다.

●동해권  감포항과 문무대왕릉 주변에 늘시원모텔(744-1177)과 그랜드모텔(771-9020), 화이트캐슬(771-7775)은 시설과 전망이 좋다. 대왕암에서 2~3분 거리에 있는 대왕암펜션(771-8190)은 방도 깔끔하고, 주인 내외도 친절하다.

●토함산권  불국사 아래에 자리한 집단시설지구에는 불국사유스호스텔(746-0826), 하나유스텔(745-0670), 포시즌유스호스텔(743-2202) 등이 있다. 대부분 넓은 캠프파이어장과 실내 공연장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남산권  숙박시설이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탑동에 펜션남산(772-0054   www.pennamsan.kr), 내남면 용장리에 남산지기펜션(741-1440 www.namsanjigi.com) 등이 있다.
*경주시청 문화관광과 054-779-6395, 홈페이지 www.gyeongju.go.kr


/ 글·사진 민병준 sanmin@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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