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공원 정책 해부] 산악계의 무지가 등산 통제 확대시켜

[479호] 2009.09
입력 2009.09.17 10:07 | 수정 2009.09.17 10:07

산악계가 인증가이드 교육에 동조…백두대간도 허가받고 입산해야

1989~1995년, 쌍방울리조트의 불법·편법 공사로 덕유산 구천동계곡은 흙탕물로 뒤범벅이 되었다. 당시 덕유산 향적봉 정상 북사면 일대에서는 수백 그루의 희귀 수목이 잘려나가는 등 엄청난 규모의 자연 파괴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 시각, 한국산악회가 주관한 휴지 줍기 행사가 1990년 11월 덕유산 구천동에서 벌어졌다. 구호는 ‘푸른 덕유산, 맑은 무주구천동’이었다. 무슨 블랙코미디 같은 풍경이었다.

주민들은 그 해 12월 20일부터 엄동설한에 천막을 치고 밤샘하며 공사 차량 진입을 막았다. 열하루째가 되던 날 주민들은 경찰서로 연행되었고, 지명수배자도 생겼다.

산림청이 추진했던 ‘백두대간 고속산길 조성’ 사업은 산길을 폭 3~4m로 넓히고 어린이도 노인도 누구나 쉽게 오르내리도록 한다는 발상으로 백두대간에 주차장, 차량진입로, 곳곳에 휴게소와 숙박시설을 신설한다는 계획이었다. 한국산악회는 1996년 11월 이사회를 열어 용역수임위원회를 구성하고, 산림청 헬기를 타고 산림청 간부들과 함께 백두대간 상공을 날며 공중답사했다. 한국대학(大學)산악연맹도 참여 의사를 밝혔다. 당시 한국산악회는 백두대간이 훼손되어도 휴지만 주우면 살릴 수 있다는 것이었을까?

미시령 상공 북쪽에서 남쪽 방향으로 촬영한 설악산 항공사진. 앞에 보이는 황철봉 왼쪽 앞이 미시령인데 사진엔 보이지 않는다. 설악산 내 백두대간은 미시령~신선봉, 미시령~황철봉~마등령, 한계령~망대암산~점봉산~작은점봉산~곰배령 구간이 출입금지다. 산악단체들은 불법으로 백두대간을 종주하면서도 대청봉 출입금지, 입산예약제, 가이드동행제 등 등산 통제를 주장하는 역설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항공촬영 김정명>

대한산악연맹 환경보전위원회 위원장 한왕용씨는 최근 “나는 미국 가서 일주일간 LNT운동 교육을 받고 돌아왔다”며 “전국 산악단체와 연대해 운동을 펼치겠다”고 발표했다. 7월 15일 개최한 대산련 환경보전위원회는 9월 26일에 천안의 산에서 LNT운동을 펴기로 의결했다. LNT운동이란 Leave(남기다), No, Trace(흔적, 자취)의 머리글자로서 ‘흔적 안 남기기 운동’이다.

클린마운틴(대장 한왕용) 회원들이 7월 11일 이미 LNT운동을 벌인 오대산 상원사~비로봉(1,563.4m)~두로봉 구간 등산로는 공단의 주장과는 달리 쓰레기가 별로 없었던 곳이다. 등산객 수가 적은 구간인 탓이다.

이러한 휴지 줍기는 등산정책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공단은 쓰레기 분리수거 마대를 얼마 전까지 국립공원 입구에 설치했었다. 공단은 “등산객들이 연간 쓰레기 9,000톤을 산속에 버리고 있다”고 홍보했으며, 신문·방송도 보도했다. 사실일까? 공단이 말한 9,000톤이란 등산객들이 하산하면서 가지고 내려와 마대에 넣고 간 것이다. 그런데 공단은 산속에 버려진 쓰레기라고 거짓 선전했던 것이다.

공휴일 오후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 보라. 쓰레기가 보이는가? 이제는 거의 없다. 남이 버린 쓰레기를 주우며 하산하는 등산객도 여럿 보인다.

요즈음 등산객이 산속에 버리는 쓰레기는 극미량이다. 그러나 공단은 쓰레기가 생긴다며 등산 통제의 구실로 삼고 있다. 그리고 휴식년제, 특별보호구, 입산예약제, 야간산행금지, 취사야영금지 등을 시행하고 있다. 산악계의 휴지 줍기 행사는 이러한 등산 통제가 합당하다고 추인, 동조해주는 셈이다.

1990년 덕유산 쌍방울리조트 공사장 전경. 대형 공사장에서 비롯된 흙탕물은 반딧불이가 서식하는 구천동계곡으로 콸콸 쏟아지고 있는 시점에 한국산악회가 주관한 휴지 줍기 자연보호 행사가 1990년 11월 무주구천동에서 거창하게 열렸다.

심지어는 산악계가 등산 통제를 자청하기도 했다. 1997년 1월 대산련 자연보호위원회(위원장 최중기)는 ‘입산예약제 시행을 위한 세미나’를 열기로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2008년 11월 대산련 환경보전위원회(당시 위원장 정계조)의 백두대간 종주에 관한 토론회에서 위원들은 자기 쓰레기 되가져오기, 가이드 동행 쓰레기 예방, 백두대간 입장료 징수, 백두대간 허가제, 주말사전예약제, 1일 일정 인원 허가, 설악산 점봉산·미시령·신선봉 출입금지 강화 등을 제안했다.


한산과 대산련, 인증가이드 교육 시행 중

2007년 2월 산림청은 ‘국가등산로(숲길) 계획’을 발표했다. 백두대간과 정맥을 국가등산로로, 그 외에는 지방등산로로 지정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산림청 산하 한국등산지원센터는 ‘등산로 등급 구분시스템 개발(2008년 12월)’이란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는 5단계 등급이다. 산림청은 이 등급에 따라 가이드를 붙여 입산예약제로 허가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공서의 등산 통제 정책에 산악계가 동조해 ‘인증가이드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이러다간 어떤 산이든 허가를 받아야만 겨우 갈 수 있고, 수십 년 등산 경력자가 단 며칠 교육을 받은 가이드 뒤를 좇아 입산해야 할 판이다.

공단은 2005년 1월 북한산 인수봉·족두리봉, 도봉산 선인봉 등을 암벽등반 허가지로 공고했다. 이러자 산악계가 반발했다. 대산련·한산·서울시연맹·대학연맹은 ‘산악인연합’을 구성하고, ‘등산허가제 폐지를 위한 산악인 결의대회’를 도봉산 입구에서 7월 17일 열기로 했다. 그런데 결의대회 며칠을 앞둔 7월 13일 산악인연합과 공단이 합의문을 발표했다. 공단은 암벽등반 허가제 시행을 취소하며, 산악계는 결의대회를 하지 않는다는 선에서 합의했다. 그러나 여기서 그칠 것이 아니라, 결의대회를 통해 국립공원 등산 통제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도록 촉구해야 했다.

산악단체 임원들은 공원 입구의 매표소(현 탐방지원센터) 계약직 직원만 봐도 먼저 인사를 하거나 공원 소장 앞에서는 의견 제시도 제대로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중앙도, 지방도 마찬가지다. 국회 국정감사 자료로 공단이 제출한 자료를 보자. 등반허가제에 관한 산악단체와의 간담회 일자는 2004년 7월 22일, 2005년 3월 30일, 2005년 4월 16일, 2005년 6월 14일, 2005년 7월 6일, 2005년 7월 13일, 2005년 9월 12일 등이다. 공단과 산악계는 적지 않은 횟수로 만났으나, 등산 통제에 대해 산악계가 문제를 제기했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설악산 지역의 백두대간은 대간령~신선봉(1,214m)~미시령, 미시령~황철봉~마등령, 한계령~망대암산~점봉산~작은점봉산~곰배령 구간이 현재 출입금지다. 그런데 대청봉마저 출입금지시키자고 산악계 임원이 제안한 적이 있다. 조선일보 2007년 9월 10일자 환경칼럼으로, 필자는 현진오(당시 대산련 환경보전이사·우이령보존회 이사)씨, 제목은 ‘위기의 설악산 대청봉 구하려면’이었다. 그는 글에서 “대청봉에 5년만 휴식년제를 시행해 보라. 출입금지하면 식생이 확연히 회복될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쌍방울리조트 공사반대 시위를 하는 삼공리 주민과 무주군민들. 삼공리 주민들은 엄동설한에 공사장 입구에 천막을 치고 밤샘하며 공사 차량 진입을 막았으나 전원 경찰서로 연행되고 지명수배자도 생겼다.

문화일보 1992년 10월 6일자의  ‘휴식년제 큰 효과, 생태계 살아난다’란 글에서 당시 대산련 이사이자 문화일보 기자인 노영대씨는 “자연휴식년제 시행 1년여 만에 설악눈주목과 눈잣나무가 무성하게 회복되었다. 산토끼 수도 늘었다”고 적었다. 그러나 내가 아는 한 국립공원에서 휴식년제로 생태계가 자연상태로 회복된 곳은 한 군데도 없다. 휴식년제는 국민을 기만하는 사기극이다.


‘등산은 미개인 행위’라는 단체에 산악상 수여

대한산악연맹 산악환경·산악문화부문 수상자는 2003년 우이령보존회, 2003년 이수용(전 우이령보존회장)씨, 2005년 조상희(현 우이령보존회장)씨 등이다. 모 산악잡지사도 창간기념 행사로 산악환경대상을 시상했는데, 수상 단체는 2007년 우이령보존회, 2008년 국시모(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였다.

대한민국산악상을 수상한 우이령보존회는 산악인들이 주도하는 단체다. 정연규(한산 이사)·최중기(전 대산련 이사)·노익상(대산련 부회장)·현진오(대산련 이사)·김인식(전 서울시산악연맹 회장)씨 등이 참여하고 있다. 이렇게 산악인이 임원으로 참여하는 단체가 등산을 미개인의 행위로 보고, 국립공원 등산을 전면 금지하고 입산예약제로 생태탐방만 허용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산악상을 수상한 이수용(전 우이령보존회장·국시모 부회장)씨는 100대 개혁의제 워크숍 실무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행사를 추진했다. 산악환경대상을 수상한 국시모는 백운대 정상 입산료를 징수하자는 단체다.

14개 환경·사회단체 모임인 국립공원 제도 개선 시민위원회는 2001년 11월 국회의원회관에서 ‘100대 개혁의제 작성을 위한 100인 워크숍’을 열었다. 여기서 ‘등산은 미개인의 행위’라 간주했으며, ‘국립공원 등산 전면 금지’‘생태탐방만 허용’‘사전예약제’‘공원별 일정 인원만 입장’‘휴식년제 확대시행’‘정상정복형 등산 지양’ 등을 개혁의제로 채택했다. 이 행사를 주도한 단체가 우이령보존회와 국시모다. 결국 국립공원관리공단은 2007년 7월, 정상이나 능선을 오르는 등산객들에게 정상입산료와 능선통과료를 받겠다고 발표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망월사 전철역에 게시한 전광판. 등산화 바닥이 등산로를 훼손시키고 있다며 등산객 수를 줄여야 한다는 홍보물. 산악계는 공단의 등산 통제에 동조해서 휴식년제 확대, 입산예약제, 정원제, 백두대간 입장료 징수, 산림청 인증가이드 동행제 등을 주장하고 있다.

2007년 10월 백두대간 세미나에서 경희대 공우석 교수는 “서유럽에서 건너온, 산을 이용·정복·착취·약탈할 대상으로 보는 그릇된 자연관이 널리 퍼졌다”고 발표했다. 산악계는 어떤가? 2007년 11월 산림청 주최 심포지엄에서 임형칠(대산련 상임이사·광주연맹 이사)씨는 “우리나라의 전통 개념은 등산이 아닌 입산(入山)이며, 산은 인격을 수양하는 곳이었다. 반면 서구 등산의 개념은 도전과 모험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은 등산을 하지 않았고, 시를 짓고 노닐며 유람한 것으로 보는 견해에 대해 변기태(전 한국산악회 이사)씨는 이렇게 말한다. “장비와 식량도 허술했고 산기슭까지 접근도 어렵던 옛날에도 한라산 백록담이나 금강산 비로봉, 북한산 백운대 등의 등반기가 있었다. 우리 선조들은 본격적인 등반을 했다”고 말했다(본지 2001년 1월호 ‘국립공원정책 해부’ 참조). 김영도(1977년 한국 에베레스트 원정대장·전 대한산악연맹 회장)씨는 “정복이나 도전이란 표현은 고산등반 과정이 그만큼 어렵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지, 실제 정복하여 누르고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산악인들은 자연과 등산에 대해 가장 잘 안다고 할 수 있는 부류다. 그런데 산악계가 등산 통제 시행에 들러리 역할을 하거나 앞장서고 있다. 등산객 수만 줄이면 된다는 어린이 수준의 사고방식인 것이다. 그 덕에 관공서는 일사천리로 통제정책을 펴 나가고 있다.


/ 글 이장오 국립공원시민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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