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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최선웅의 지도 이야기] 스루기다케 ‘측량등산’ 소재로 최근 영화까지 제작

월간산
  • 입력 2009.09.18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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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점 표석은 작아 보여도 90kg이나 돼

지난 7월 일본 방문길에 협력업체 사장과 함께 <스루기다케 덴노키(劒岳 点の記)>라는 산을 무대로 한 영화를 봤다. 니타 지로(新田次郞)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데 한마디로 지도 제작을 위한 측량등산 얘기다. 러일전쟁에 승리한 일본은 국가 경략(經略)의 수단으로 지도는 불가결한 것이기 때문에 전국의 지도 완성을 서두르고 있었다. 100년 전 일본의 지도 제작은 군부가 장악해 육군참모본부 산하 육지측량부에서 담당했는데, 일본 지도 최후의 공백지역으로 남아 있던 스루기다케 주변의 지도 제작을 위한 삼각점 설치가 숙원 과제였다.

그때만 해도 스루기다케는 지역민들 사이에 지옥의 검산(劒山) 또는 바늘과 같은 산이라 하여 ‘올라가서는 안 되는 산’ ‘올라가면 벌을 받는 산’이라 여겨져 외경시하던 산으로 누구도 올라보지 못한 산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러한 산에 삼각점 설치를 위해 육지측량부는 측량관 시바사키 요시타로(柴崎芳太郞)를 담당관으로 임명한다. 명령을 받은 측량대는 일본 지도 완성이라는 사명을 띠고 스루기다케 주변의 험준한 산악 27곳에 삼각점을 설치하게 된다. 여기에 등장하는 또 한 그룹은 등산기록이 없는 스루기다케 등정을 목표로 한 일본산악회 멤버들이다. 이 팀의 리더는 일본 산악운동을 태동시키고 1905년 일본산악회를 설립한 고지마 우쓰이(小島烏水)로 측량대와 초등을 다투는 경쟁 상대가 된다.

200일간이나 산에서만 촬영한 ‘산악영화’

카메라맨을 자칭하는 노련한 기무라 다이사쿠(木村大作)가 메가폰을 잡은 덕에 현지 로케를 중심으로 한 영상은 스루기다케의 자연을 유감없이 펼쳐 마치 장편의 풍경화를 보는 듯하다. 공중촬영이나 컴퓨터 그래픽 같은 것을 쓰지 않고 촬영기간 2년 가운데 200일을 산에서만 촬영했다는데, 산을 오르는 장면을 그대로 연출해 사실감이 생생하다. 특히 일본산악회 멤버들이 당시 유럽에서 들여온 최신 등산장비를 갖추고 옛날 등산 스타일을 재현했는데, 소품 준비에서부터 시대적 상황에 이르기까지 손색이 없다.

 ‘측량등산’이란 측량용어나 산악용어에는 없는 말이지만 산악지대의 지도 제작을 위해서는 전망이 트인 산정에 삼각점을 설치해야 하기 때문에 측량대가 직접 산에 오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듯 측량을 위해 산에 오르는 행위를 측량등산이라 한다. 영화 제목의 덴노키(点の記)도 측량등산에 따른 삼각점 설정의 기록을 말하는 것이다.

삼각점은 삼각측량에 의해 수평 위치를 구한 점으로 삼각수준측량에 의해 표고를 측정해 중요한 지점에 대해서는 표석을 설치하는데, 측량 규모에 따라 1등 삼각점, 2등 삼각점, 3등 삼각점, 4등 삼각점으로 구분한다.

삼각측량이란 삼각형 한 변의 길이와 그 양쪽의 각을 알면 남은 변의 길이를 계산해내는 수학공식을 이용해 평면위치를 결정하는 측량인데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삼각점을 연결하는 삼각형을 되도록 작게 구성하게 된다. 한 변의 거리가 40~50km 정도인 삼각형으로 나누어 측량하는 것을 1등 삼각점 측량, 8km 정도로 나누는 것을 2등 삼각점 측량, 더욱 좁혀 4km 정도로 하는 것을 3등 삼각점 측량이라 한다.

측량방법도 1960년대 이전에는 각을 재는 경위의(theodolite)로 수평각과 연직각을 관측해 각 점의 수평위치와 표고를 구했지만 이후로는 거리를 직접 측정할 수 있는 평판측량기구인 알리다드(alidade)의 출현으로 각과 거리 측정에 의한 다각측량방식이 도입됐고, 최근에는 우주측지기술에 의한 GPS측량으로 발전해왔다.

1900년 초의 측량방식은 먼저 삼각점을 설치할 장소, 장소의 범위, 담당자, 기간, 예산 등에 대한 세부계획을 세운 다음 삼각점 설치 장소에 이르는 접근로와 등정로, 조표나 표석을 운반할 루트 등에 대해 사전조사를 실시했다. 그 다음 삼각점을 어디에 설치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선점(選點· selection of station)작업을 했다. 후보지를 돌아본 다음 알리다드로 삼각점을 정할 삼각형의 모양이 어떤지를 보기 위한 지형정찰도를 작성한다.

관측점의 현장 위치를 정하는 선점이 끝나면 삼각점 표석을 매설하고, 다음 관측을 위한 측량용 표지를 세우는 조표(造標·construction of target) 작업에 들어간다. 삼각점을 영구보존하기 위한 화강암 표석은 주석과 반석으로 나뉘는데 주석의 무게는 60kg이고, 반석 또한 30kg이나 된다. 주석의 꼭대기에는 십자선이 새겨져 있고 옆면에는 측량계획 기관, 측량표의 종류, 번호 등이 기재되어 있다. 표석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재료를 운반하는 사람들을 고용해 여러 곳의 거점에 준비시킨 뒤 산정까지 올려야 한다. 표석과 조표가 설치되면 경위의를 사용해 수평각과 고도각을 재고, 관측이 끝난 다음에는 일련의 결과를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삼각점성과표를 작성한다.

스루기다케 주변의 1:50,000 지형도. 
굵게 표시한 선은 1907년 시바사키 측량대가 올랐던 등산로.
스루기다케 주변의 1:50,000 지형도. 굵게 표시한 선은 1907년 시바사키 측량대가 올랐던 등산로.

100년 전 스루기다케의 측량등산을 위업으로 추켜세워

현재 스루기다케의 일반적인 등산로는 스루기다케 남쪽 해발 2,400m 지점의 무로토(室堂)터미널에서 시작해 지코쿠타니(地獄谷), 라이조사와(雷鳥擇)산장을 거쳐 신무로토노코시(新室堂乘越)에 올라 스루기코젠코야(劒御前小舍)를 지나 산록을 타고 겐산소(劒山莊)에 이른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오름으로 잇부쿠쓰루기(一服劒·2,618m)와 마에쓰루기(前劒·2,813m)를 지나 마지막으로 스루기다케 남벽을 오르면 정상에 서게 된다.

그러나 측량등산 당시에는 겐산소 동쪽의 스루기사와세케이(劒澤雪溪)를 내려서다가 스루기다케 동남쪽 직하 계곡인 조지로타니(長次郞谷)를 경유해 올랐기 때문에 험준한 등로를 개척하느라 표석을 운반할 수 없어 3등 삼각점에 준하는 간이조표만 설치했다.

명치유신(明治維新) 이후 일본은 서구열강의 식민지 제국주의를 표방해 대륙 진출을 목표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잇달아 일으키면서 조선반도에 대한 지도 제작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1895년부터 육지측량부에 의해 은밀히 한반도의 측량이 진행되어 1905년에 이미 조선반도 전역의 신속도(迅速圖)라 불리는 1:50,000 제1차 지형도를 완료했다.

이후 한반도의 측량 기준점을 마련하기 위해 대마도의 온타케(御岳)와 아리아케산(有明山)의 1등 삼각점으로부터 부산 절영도와 거제도를 연결하는 삼각망을 설치해 1908년부터 1911년까지 삼각측량에 의해 정확도가 향상된 2차 지형도를 제작하고, 1913년부터는 삼각측량에 의해 정식으로 지형도를 제작해 1918년 조선 전역의 1:50,000 지형도 722장을 완성했다.

2007년 스루기다케 측량 100년이 되는 해를 맞아 일본 국토지리원은 기념으로 스루기·다테야마(劍·立山)의 산악집성도를 만들어 배포했고, 올해는 영화가 공개되면서 지도 세트와 각종 기념품을 만들어 100년 전 스루기다케의 측량등산을 위업으로 추켜세우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근대 측량과 지도 제작은 일제에 의해 횡행되었기 때문에 근대에 있어서의 측량·지도 제작과 스루기다케와 같은 측량등산의 비화는 안타깝게도 우리 역사에는 없다.


/ 글 최선웅 한국산악회 부회장·매핑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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