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이야기] 말벌

[480호] 2009.10
입력 2009.10.13 09:56 | 수정 2009.10.13 09:56

가을 무덤가 말벌 조심!!
육식성 곤충…수벌은 번식 위해서만 존재, 쏘지 않아

해마다 이맘때면 벌초하던 성묘객들이 벌에 쏘여 사망하는 사건이 심심찮게 보도된다. 사람을 죽이는 벌, 무서운 말벌이다. 옛날부터 사람과 가까이 살아온 벌들은 달콤한 꿀을 내주어 이로운 점도 있지만, 치명적인 독침을 가진 점은 위험한 야외 곤충이 거의 없는 우리나라에서도 사람을 가장 위협하는 곤충으로 여기게 만든다. 매년 119에 접수되는 말벌집 제거 요청 신고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하니, 말벌과 사람과의 관계는 점점 불안해지고 있다.

1.축구공처럼 커다란 말벌집. 가을에 주로 보인다. 2.뱀허물쌍살벌의 집은 뱀이 벗어놓은 허물 모양으로 길게 늘어져 있다.
그렇다고 모든 벌이 위험한 것은 아니다. 벌 무리는 크게 원시적인 잎벌(Symphyta)과 진화한 침벌(Apocrita)로 나눌 수 있다. 잎벌 무리는 잎사귀나 나무 속을 갉아먹는 얌전한 벌들로 사람을 직접적으로 공격하지 않는다. 반면 침벌은 배 끝에 암컷의 산란관이 변한 것인 뾰족한 침이 있다. 이것으로 알을 낳기도 하지만 상대를 공격하여 죽일 수도 있다. 잎벌 무리는 허리가 굵은데 비해, 침벌 무리는 가늘고 잘록한 허리를 갖고 있어 자유자재로 방향을 조절하며 침을 사용할 수 있다.

침벌 중에서 사람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것이 꿀벌과 말벌이다. 꿀벌은 양봉을 통해 사람에게 비교적 순화되어 있지만, 말벌은 그야말로 야생의 벌이라고 할 수 있다. 말벌은 꿀벌처럼 꿀이나 꽃가루를 모으지 않는다. 나무 수액을 핥거나 과일즙을 빨기도 하지만, 말벌은 기본적으로 사나운 육식성 곤충이다. 다른 약한 곤충을 습격하여 큰턱으로 잘게 씹어 곤죽을 만들며 이것을 집에 가져가 자기 애벌레에게 먹이거나 음식으로 나눠 먹는다. 말벌 몇 마리가 양봉하는 곳을 습격하여 벌집을 통째로 전멸시키는 일도 많다. 이들 말벌은 강한 독성이 있으므로 함부로 나를 건드리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로 특히 눈에 잘 띄는 노랗고 검은 대조적인 줄무늬 색상을 띤다.

사람을 공격하기도 하는 호전적인 습성을 가진 벌 무리는 모두 말벌과(Vespidae)에 속한다. 우리나라의 말벌은 약 20종 정도가 알려져 있는데, 말벌, 땅벌, 그리고 쌍살벌이라고 부르는 벌들이 말벌과에 속한다.

말벌에 있어 가을은 번식철이다. 벌집이 최대로 커지며 이전까지 없던 수벌이 나타난다. 벌들의 세계에서 수벌은 오로지 번식을 위해서만 존재하는데, 사실 사람을 공격하는 침을 가진 것은 모두 암컷이다. 수벌은 생김새는 비슷해도 산란관이 없으므로 사람을 쏘지 못한다.

독성 강해 쏘이면 치명적일 수도

1.장수말벌은 우리나라 벌 중에서 가장 크고 위험하다. 2.털보말벌은 사람과 흔히 가까이 살며 과일이나 음료수에 잘 날아온다. 3.곤충을 사냥하는 별쌍살벌. 말벌들은 모두 육식성이다.
수벌은 가을철에만 잠시 나타나 짝짓기를 마치면 겨울을 나지 못하고 이내 죽고 만다. 이 시절에 짝짓기를 마친 암컷 여왕벌만이 살아남아 겨울을 나고 이듬해 한 마리의 여왕벌로부터 세를 불려 하나의 ‘여인 천하’ 왕국을 건설하게 된다. 계급에 의해 통제되는 말벌 사회에서 우리와 만나는 대부분의 벌은 암벌이면서 스스로 번식하지 못하는 일벌들이다.

그렇다면 말벌은 왜 사람을 쏘는 것일까? 이런 공격성은 야생의 천적으로부터 자기의 집을 지키기 위해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 즉 곰이나 오소리 같은 동물들이 벌집을 자주 습격하여 꿀도 훔치고 벌의 애벌레들을 잡아먹는데, 강한 호전성으로 이런 동물들에 대적해 온 것이다. 두꺼운 털가죽으로 덮인 곰 같은 동물은 벌의 침에도 웬만해서는 꿈쩍하지 않는데, 말벌은 털 속을 파고들어 침을 쏜다. 물론 이때 벌들은 자신이 죽기를 각오하고 덤비는 것이다. 한 마리의 벌이 희생되더라도 벌집에 남아 있는 많은 후손들을 지키기 위해 벌들은 자기를 기꺼이 희생한다.

꿀벌의 침에는 미세한 미늘 모양의 갈고리가 있어 한 번 쏘면 피부에 박혀 다시 회수되지 못하고 벌의 배 밑이 빠져 죽고 만다. 그러나 말벌의 침은 매끈하므로 얼마든지 들락날락하며 계속해 침을 쏠 수 있어 더 독하다.

벌독의 주성분 물질은 신경전달 과정과 혈압, 근수축의 기능을 변화시키는 작용을 한다. 신체에 주입되었을 때 이것은 일종의 이물질이므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따라서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은 한 번만 쏘여도 치명적일 수 있고 사람에 따라 어느 정도 내성이 있는 경우도 있다. 벌 한 마리에 쏘인 것은 따끔하고 그냥 지나칠 수 있으나, 여러 마리에 쏘인다면 멀쩡하게 건강한 사람도 독의 양이 많아져 위험에 처할 수 있다. 벌에 쏘여보지 못한 사람은 특히 자신의 체질을 알고 조심해야 한다.

한편 독을 다스려 약으로 쓰듯이 봉독은 한방에서 관절염이나 신경성 질환에 탁월한 효능을 가진 치료제로도 쓰인다. 또한 서양의학에서도 봉독의 성분을 연구하여 항암물질을 추출하고 루게릭병과 같은 신경 이상 질병을 치료하는 데 쓰인 바가 있다.

야생 천적으로부터 집 지키기 위해 호전적

성묘철에 벌의 피해를 많이 입는 이유는 벌집이 볕이 잘 드는 무덤가에 많기 때문이다. 봄철의 벌집은 여왕벌 한 마리가 만들어 크기도 작고 눈에도 잘 띄지 않지만, 여름을 거치며 일벌이 늘어나면서 벌집은 점점 커져 가을에 최대 크기로 자란다. 밀랍 성분의 꿀벌 집과 달리 말벌의 집은 나무껍질 등을 갉아 침과 반죽하여 만든 펄프 성분이다. 주로 비를 피할 수 있는 처마 밑이나 폐가의 지붕 밑, 또는 절벽의 바위 아래에 벌집이 많은데, 땅속의 빈 구멍에도 집을 잘 짓는다. 땅속에 있는 벌집은 특히 눈에 잘 띄지 않아 주의해야 하는데, 벌초 시 예초기를 돌리면 그 진동으로 땅속의 벌들이 놀라 쏟아져 나오게 된다. 벌초 작업을 하기 전에 반드시 주변을 살펴보고 벌들이 드나드는 구멍이 없는지 확인하는 것이 안전하다.

가을이 지나 번식이 끝나면 말벌 집은 대개 그냥 버려진다. 매년 새로운 집을 만들기 때문에 텅 빈 집은 그냥 처마 밑에 매달려 있고 여왕벌은 안전한 월동처를 찾아 주로 쓰러진 나무 밑을 파고들어 숨는다. 벌과의 마찰이 증가하는 것이 과연 기후변화나 지구온난화 때문인지는 알기 어렵지만, 그들과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벌을 잘 알고 각별히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Tip_벌집 건드렸을 땐 달아나는 게 최우선

벌 한 마리가 주위에 날아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대개 벌을 유인하는 단 냄새, 이를테면 음료수나 과일 등의 냄새를 맡고 사람 주변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이지, 사람을 공격하러 온 것이 아니므로 조용히 움직이지 않고 있으면 그냥 날아간다. 괜히 손사래를 요란하게 치거나 벌을 자극하면 방어적으로 공격하므로 이때에는 무심코 있는 것이 차라리 낫다. 그렇지만 잘못하여 벌집을 건드렸을 때에는 벌이 떼로 덤비므로 매우 조심해야 한다. 이때에는 무조건 벌집에서 멀리 달아나는 것이 우선이다. 흔히 그 자리에 가만히 엎드려 있으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나, 벌집이 바로 옆에 있는데 가만히 있다가는 더 많은 벌의 공격을 받기 쉽다. 이때 벌이 공격하는 이유는 자기 집을 지키기 위해서이므로 되도록 멀리, 그리고 빨리 그 자리를 피해 달아나야 한다. 떼로 덤비는 벌은 옷이나 바지 속으로 기어들어와 쏘는 일이 많으므로 재빨리 옷 위를 손으로 눌러 벌을 죽이는 것이 현명하다. 특히 말벌들은 한 번 쏘고 죽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깨물고 쏠 수 있으므로 빨리 벌을 제압해야 사람이 덜 다친다.


/ 글·사진 김태우 국립자원생물자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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