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이야기] 메뚜기

[482호] 2009.12
입력 2009.12.16 09:59 | 수정 2009.12.16 09:59

동심 이끄는 풀숲의 높이뛰기 선수
과거엔 해충 취급 받았지만 지금은 유기농과 건강한 논 생태 지표

오랫동안 농경을 해온 우리 문화에서 가장 친숙한 곤충을 들라면 메뚜기를 꼽을 수 있겠다. 논밭이 있는 곳 어디서나 걷다 보면 풀에서 메뚜기가 풀쩍 뛰어오르며 우리를 동심의 세계로 안내한다. 국토에서 논밭이 차지하는 비율은 계속 줄어들고 있지만, 묵혀진 휴경논은 요즘 주말농장이나 생태공원으로 거듭 나고 있으며 메뚜기는 여전히 거기서 사람들 가까이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메뚜기는 특정한 종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며 ‘산에서 뛰는 벌레’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곤충분류학에서 메뚜기라는 말은 메뚜기목(Orthoptera)의 메뚜기아목(Caelifera)에 속하는 종류들에 일반적으로 쓰이며 우리나라에는 60여 종의 메뚜기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 벼메뚜기는 논 가까이 살며 예전부터 우리가 구워 먹던 대표적인 메뚜기 종류다. 2. 방아 찧기 놀이의 주인공 방아깨비. 3. 섬서구메뚜기 조그만 수컷이 커다란 암컷에게 업혀 짝짓기 한다. 4. 각시메뚜기는 한겨울에도 남부지방에서 볼 수 있다.

한국인에게 친근한 메뚜기로 우선 논에 사는 벼메뚜기가 있다. 가을 녘 황금 들판, 벼 수확을 하는 논에는 벼메뚜기가 가득하다. 유기농을 하는 논에서는 벼메뚜기를 쉽게 볼 수 있는데, 거기서 수확한 쌀은 ‘메뚜기쌀’이라는 상품으로 팔리고 있다.

필자의 기억에 어린 시절 논에 나가면 우선 강아지풀을 길게 꺾은 다음 벼메뚜기를 붙잡아 목덜미를 줄줄이 꿰어 가지고 돌아왔다. 이것으로 프라이팬에 달달 볶아 먹기도 하고 닭장 안에 던져주면 닭들이 신나게 쪼아 먹었다. 요즘에도 메뚜기볶음은 술안주나 뷔페식 요리에 가끔 등장하는데, 한때 이런 수요에 발맞춰 메뚜기를 대량 사육하는 농가가 있었으나 지금은 값싼 중국산과 북한산 수입 메뚜기에 밀려 국내 메뚜기 사육농가는 찾아보기 힘든 형편이다. 과거에 메뚜기는 농사를 해치는 해충으로 인식되었지만, 지금 사람들은 메뚜기가 갉아 먹은 벼 잎을 보며 논 생태계가 건강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또한 누구나 알고 있는 메뚜기 이름으로 송장메뚜기가 있다. 무덤가에 갔을 때 보이는 갈색의 칙칙한 빛깔을 가진 메뚜기를 우리는 흔히 송장메뚜기라고 불러왔다. 그러나 이 말은 곤충도감이나 교과서에 나오는 정식 이름이 아니다. 더구나 그런 메뚜기를 붙잡으면 흔히 입에서 시커먼 색의 간장 같은 물을 토하는데, 이것이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므로 송장메뚜기라는 말을 낳게 한 것 같다.

메뚜기 중에는 같은 종류인데도 녹색형과 갈색형이 있는 경우가 많다. 초록색인 메뚜기는 잡아서 볶아 먹었지만, 갈색인 메뚜기는 송장메뚜기라고 부르며 잡지 않았다. 팥중이, 두꺼비메뚜기, 등검은메뚜기 등등 갈색인 메뚜기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송장메뚜기는 이런 특정한 종류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위의 특징을 가진 메뚜기의 모습을 가리키는 통속적인 말이라고 할 수 있다.

풀무치는 펄벅의 <대지>에 등장하는 무리 짓는 메뚜기다.

메뚜기 원래 의미는 산에서 뛰는 벌레

커다란 메뚜기의 일종인 방아깨비를 보면 어린이들이 무척 좋아한다. 풀밭에 초록색으로 잘 위장하고 있지만 사람이 지나가면 놀라서 펄쩍 뛰는 통에 눈에 띄고 만다. 흔히 뒷다리를 붙잡아 방아 찧는 흉내를 내도록 했기 때문에 방아깨비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그러나 잘못 붙잡으면 한쪽 다리가 뚝 끊어지고 만다. 이것은 일종의 방어 전략으로 도마뱀이 꼬리를 끊고 달아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손바닥만큼 커서 특히 방아를 잘 찧는 것이 방아깨비 암컷이다. 수컷은 암컷에 비해 훨씬 작고 빼빼 말랐으며 날아갈 때 ‘따다다닥~’하는 소리를 내어 재빨리 달아나므로 ‘따닥깨비’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했다.

방아깨비는 생존력이 강해 들판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널리 살고 있다. 짝짓기를 마친 암컷은 굳고 마른 땅을 골라 배 끝으로 아래를 뚫고 깊숙이 배를 집어넣어 알을 낳는다. 방아깨비 역시 벼메뚜기와 함께 예전부터 우리나라에서 구워 먹기도 하는 메뚜기 종류다.

잡으려고 다가가면 재빨리 하늘로 날아 도망가 버리는 커다란 대형 메뚜기가 풀무치다. 풀무치는 덩치가 크고 힘이 세며 매우 잘 날아 한번 튀면 하늘로 멀리 솟구쳐 강을 건너 반대편으로 달아나는 일도 있다. 풀무치의 이름은 풀에 묻혀 있다는 뜻인데, 해가 잘 드는 강변 모래밭이나 바닷가 풀밭, 너른 들판에 드문드문 살고 있다.

풀무치는 순한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큰 무리를 짓는 습성이 잠재해 있다. 무리 짓는 풀무치는 평상시와 달리 가슴과 다리가 짧아지고 날개가 길어지며 떼 지어 이동하기 적합한 몸으로 변신한다. 이것을 과거에는 별도로 ‘누리’떼라고 불렀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황충(蝗蟲) 이야기는 바로 풀무치에 의한 피해를 가리키는데, 과거 농경사회에서 메뚜기는 커다란 재앙의 하나였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중에 ‘메뚜기도 한철이다’라는 말이 있다. 오뉴월에 성했던 메뚜기들이 가을이 지나가면서 모두 사라진다.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대부분 짝짓기 후에 땅속에 알을 남기고 죽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남부지방에는 드물게 겨울에도 살고 있는 커다란 메뚜기가 있다. 각시메뚜기라는 종이다. 이 메뚜기는 다른 메뚜기와 달리 겨울을 성충으로 보내고 이듬해 봄에 번식을 하여 어린 유충들이 여름에서 가을까지 자라다가 다시 어른 메뚜기로 겨울을 나는 한살이를 보인다. 월동을 위해서 몸속 에너지를 부지런히 비축하고 혈당을 높여 추위에 대비한다. 기아에 견디는 능력도 강해 먹이가 떨어진 겨울에는 낙엽 속이나 마른 풀숲에 가만히 숨어 움직이지 않고 지내는 것이 겨울을 나는 비결이다. 이런 별난 메뚜기의 생태를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지난 봄 TV 뉴스에서 경북 지방에 추위가 가시기도 전에 나타난 커다란 메뚜기떼를 신기하게 보도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때 등장한 주인공 메뚜기가 바로 각시메뚜기다.

Tip
메뚜기떼는 중동·호주·중국 사막지대 우기에 발생


무리 짓는 메뚜기가 하늘을 덮는 모습은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지만, 실제로 하늘을 까맣게 뒤덮는 메뚜기떼를 지구촌 어디에선가 직접 볼 수 있다. 특히 사막이 많은 아프리카, 중동 지역에는 국제기구가 있어 이런 메뚜기의 대발생을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호주와 중국의 사막지대에도 메뚜기떼가 발생하지 않도록 감시체계를 갖추고 있다.
메뚜기떼 발생은 구약성경 출애굽기에 열 가지 재앙 중의 하나로 등장할 만큼 오래되고 유명한 현상인데, 닥치는 대로 농작물을 먹어치우고 또 그 자리를 떠나 이동하므로 경제적인 피해가 막심하다. 특히 사막지방에 메뚜기떼가 발생하는 것은 메뚜기의 등장이 비가 내리는 주기에 맞추어져 그동안 축적된 알들이 일시에 부화하기 때문이다. 무리 짓는 습성을 유도하는 원인은 접촉자극으로서, 개체 밀도가 높아져 서로 부딪치는 일이 많아지면 이것이 생리적인 활성에 변화를 일으켜 무리 짓는 메뚜기 형태로 상전이를 일으킨다. 대발생한 메뚜기떼는 정해진 방향 없이 하늘을 떠돌다가 기류를 타고 바다를 건너거나 방향을 잘못 잡아 빙하지역에 떨어져 모두 죽은 기록이 남아 있다.


/ 글·사진 김태우 국립생물자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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