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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화제] 김자인, 세계 스포츠 클라이밍계 제패! 난이도 부문 경쟁자 없는 월드 랭킹 1위 등극

월간산
  • 입력 2010.12.02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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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발 여성이 10m 높이에서 추락하고 있었다. 약속이나 한 듯 아쉬움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내로라하는 세계 톱랭커들이 줄지어 벽에 도전하고 있었지만 넘어서지 못했다. 벽은 사람을 덮칠 듯 앞으로 숙이고 있어 오름짓을 하는 이는 벽도 극복해야 했지만, 자기 무게, 즉 자신을 극복해야 했다. 스스로를 지탱하며 올라간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중력을 거스른 몸짓 하나하나에 오랜 인내의 땀이 배어 있는 것이다. 마지막 도전자가 벽을 오른다. 아직 소녀티가 남아 있는 앳된 모습이지만 여느 선수들과 다른 몸짓이다.

짓이겨 오는 이중 삼중의 오버행을 달래듯 유연하게 건너간다. 부드럽지만 안정적으로 힘을 쓸 줄 아는 몸짓, 벽을 달래는 듯하지만 홀드 하나하나 단단히 제압하며 오른다. 다른 선수들은 밧줄을 잡고 오르는 듯 아슬아슬했는데 그녀는 반석을 쌓으며 오르는 것처럼 안정되고 힘 있는 무브다. 관중들의 시선이 따라가는 높이만큼 완등에 대한 기대도 부푼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벽을 오르는 김자인. 2년 전 당고개암장에서의 모습이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벽을 오르는 김자인. 2년 전 당고개암장에서의 모습이다.

키가 작은 그녀에게 불리한 상단 크럭스, 잠깐 호흡을 가다듬더니 과감하게 휙 나르듯 홀드를 낚아채 몸을 쑥 끌어올린다. 이 몸짓에 매료된 사람들이 절로 박수를 치며 응원한다. 미세하여 섬세함이 필요한 마지막 홀드를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넘더니 마지막 홀드를 힘주어 두 손으로 감싸쥔다. 월드컵 축구경기에서 골 넣었을 때 같은 함성이 “와”하고 터져 나온다. 해맑게 웃으며 손 흔드는 그녀는 스포츠클라이밍 난이도 세계 1위 김자인이다.

김자인(22· 노스페이스 클라이밍팀)은 지난 8월 30일 춘천에서 열린 IFSC월드컵 대회 준결승에서 월드랭커들을 제치고 유일하게 완등해 관중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이 대회에서 우승한 김 선수는 9월의 벨기에 월드컵, 10월의 중국 월드컵, 11월 슬로베니아 월드컵 난이도 경기에서 모두 우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올해 참가한 6개의 월드컵 난이도 경기에서 실격한 샤모니 대회를 제외하고 나머지 대회에서 모두 우승하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경쟁자 없는 월드랭킹 1위에 올랐다. 첫 월드컵 우승은 지난해 11월 체코 브르노에서 열린 월드컵 우승이었다. 작년 말 한 번의 우승 이후 올해 대회를 휩쓸었으니 기량이 급성장했다고 볼 수 있다.

그녀는 “급성장한 게 아니고 조금씩 실력이 늘어 여기까지 왔다”고 한다. 또 등반 외적인 부분에서 그녀에게 긍정적인 역할을 한 요소들이 많았기 때문에 절정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었다고 한다.

2007년 벨기에 월드컵 결승에 처음 올라가는 성적을 냈다. 이에 2008년엔 뭔가 국제대회에서 발군의 기량을 내야겠다는 결심으로 후원사인 노스페이스에 요청, 유럽으로 등반 유학을 떠난다. 유럽에서 열리는 월드컵대회가 많으니 현지에서 훈련하며 월드컵 전 경기에 참가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코치이자 오빠인 김자하와 함께 간 것이다. 그러나 간지 한 달 만에 부상을 당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탁월한 유연성으로 오버행을 오르는 김자인. 2007년 서울시청에서 열린 볼더링 경기 모습이다.
탁월한 유연성으로 오버행을 오르는 김자인. 2007년 서울시청에서 열린 볼더링 경기 모습이다.

“한국에서 어깨를 살짝 다쳤는데 그게 무리가 되어서 다쳤어요. 유럽에서 좋은 성적을 내야겠다는 생각에 열심히 하다 그렇게 됐어요. 어깨 연골이 찢어져서 주사 맞으며 3개월 동안 재활했어요. 스포츠클라이밍 시작하고 나서 그렇게 쉰 건 처음이었는데 체중이 많이 불었어요.”

“내 남자친구는 ROTC”

국제대회는 2004년에 처음 출전했으며 이후 1년에 세 번꼴로 참가했다. 월드컵 풀 시즌을 뛰기엔 아직 실력도 부족하고 비용 문제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2008년부터 월드컵 풀 시즌을 목표로 나섰다가 부상을 입은 것이다.

좋은 성적을 내겠다는 부담이 부상을 가져오게 되었다. 게다가 환율이 너무 올라 현지에서 더 머물기도 어려웠다고 한다. 그러나 3개월을 쉬고 운동하니 “스포츠클라이밍을 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하고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 좋았다”고 한다. 몸이 불어 실력도 떨어진 상태였지만 스스로 조금씩 나아지는 걸 보는 재미가 있었다고 한다.

코치인 김자하 선수는 “자꾸 부상이 와서, 이때부터 자인이의훈련방법을 바꿨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비밀이지만 웨이트트레이닝을 시작하고 온사이트 능력을 키우려 노력했다고 한다. 모든 운동은 실내암장에서 하는데 선운산에서 볼더링 한 것 빼고 2년 동안 자연바위를 한 적은 거의 없다고 한다. “스포츠클라이머라고 해서 바위를 꼭 잘해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게 코치인 그의 생각이다.

실력이 는 데에는 “외국 홀드를 많이 써서 감을 익힌 탓”도 있다고 한다. 외국 홀드를 히기 전에는 월드컵에 나가면 모르는 홀드가 3분의 2였는데 지금은 아는 홀드가 많다고 한다. 김 선수는 “외국 대회 출전이나 훈련 모두 회사에서 지원해 주니까 가능했다”며 후원사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클라이밍 삼남매. 왼쪽이 자인의 오빠인 첫째 자하, 오른쪽이 둘째 자비. 2006년 프랑스 샤모니 대회 모습이다.
클라이밍 삼남매. 왼쪽이 자인의 오빠인 첫째 자하, 오른쪽이 둘째 자비. 2006년 프랑스 샤모니 대회 모습이다.
올해 초에 일본으로 전지훈련을 갔던 것도 도움이 됐다. 일본 도쿄 인근의 7군데 실내암장을 돌며 훈련했다. 일본 암장은 유럽 수준으로 홀드가 매우 다양해 훈련에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친오빠인 김자하 선수의 편안한 지원도 도움이 되고 가족의 성원이 큰 힘이 된단다.

고려대학교 체육교육학과 3학년인 김자인양은 남자친구가 있다. 좋은 성적을 낸 것에는 남친의 역할도 있었다. 지난해 사귀었던 남자친구와는 대회 결승 전날 다투기도 해서 속상했던 적이 종종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클라이밍과는 전혀 상관없는 ROTC 남자친구인데 마음을 안정시켜준다”고 한다. 지금껏 “잘하고 와라”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고 “재밌게 즐기고 오라”며 맘을 편하게 해준단다.

김자인 선수가 올해 세계1위가 된 걸 살펴보면 주변의 모든 것들이 상승작용을 해주었음을 알 수 있다. 부상을 당했지만 그게 전화위복이 되어 부담을 버리고 즐겁게 클라이밍을 할 수 있게 되었고, 회사의 전폭적인 지원과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편안하고 따뜻한 후원이 상승효과를 냈다. 또 부상 위험이 적은 쪽으로 훈련방식을 바꾸고 외국 홀드를 익혀 월드컵에 중점을 두고 점점 좋은 성적을 내면서 선수 스스로 자신감을 얻은 것도 원인이라 할 수 있다. 김자인은 지금의 성적이 급성장이라 보지 않는다.

“갑자기 확 잘한 게 아니라 조금씩 올라왔어요. 올라가면서 자신감이 생겼어요. 전에는 대회 나가면 걱정하고 주눅이 들었어요. 지금은 그런 게 좋아졌어요. 가족과 회사에서 많이 도와줘서 심리적으로 안정이 돼요.”

김자하(26), 김자비(23), 김자인(22)은 어릴 적부터 클라이머 남매로 산악계에서 유명했다. 이들 남매는 지금도 모두 스포츠클라이밍을 하고 있는데 어릴 적부터 클라이밍을 할 수 있었던 건 부모의 역할이 크다. 아버지 김학은(54)씨는 고양시산악연맹 부회장이고, 어머니 이승형(52)씨는 스포츠 클라이밍 1급 공인 심판이다. 부모가 처음 만난 곳도 산악회였다고 한다.자일의 ‘자’, 인수봉의 ‘인’

장남인 자하의 이름은 <월간산>의 박영래 기자가 지어준 것이라고 한다. 자비와 자인이도 아버지 김학은씨가 자일의 ‘자’자를 돌림으로 쓴 것이다. 자인이란 이름은 자일과 북한산 인수봉의 ‘인’자를 합친 것이다. 그렇다고 김자인이 부모 권유로 암벽을 탄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부모는 말리는 입장이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딸을 밖으로 내돌리고 싶지 않았다. 평범하게 키우고 싶었다”고 한다.

김자인이 처음 바위벽과 인연을 맺은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가족끼리 소풍을 가서 재미로 자연 암벽을 오른 것이다. 당시에는 “5m 정도 올라갔는데 무서워서 엉엉 울며 내려왔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등반을 시작한 건 초등학교 6학년 때다. 당시 김종곤(현 K2클라이밍센터장)씨가 자하, 자비 남매를 지도했는데 체력검사에 자인이가 따라가게 되었고 체력검사 결과, 근육회복 속도 등을 종합했을 때 “선수하기에는 자인이를 시키는 게 더 낫다”는 얘길 들은 것이다.

김자인은 또래 대학생들처럼 자전거를 타기를 즐기고, 군것질하기 좋아하는 스물두 살이다.
김자인은 또래 대학생들처럼 자전거를 타기를 즐기고, 군것질하기 좋아하는 스물두 살이다.
이에 대해 김자인은 “오빠들을 따라다니다 보니 하고 싶었다”고 한다. 늘 등반하는 걸 봐왔고 또래 친구들이 클라이밍을 하니까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연스럽게 시작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후 김종곤, 김동현(국제세터), 이재용(노스페이스 클라이밍팀)씨에게 각각 지도를 받았고 지금은 김자하에게 지도를 받고 있다.

김자인은  이들이 스타일은 전부 다르지만 여러 모로 도움이 됐다고 한다. “김종곤 선생님은 초등부 챔피언이 되게 해줬고, 김동현 선생님은 국내 챔피언이 되게 해줬고, 이재용 선생님은 아시아 챔피언이 되게 해줬고, 오빠는 세계 챔피언이 되게 해줬다”며 웃으며 말한다. 김자하는 자인의 코치 역할과 선수 생활을 병행하고 있으며, 스포츠클라이밍 경기 지도자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김자인은 “가족이니까 훈련하기가 훨씬 편하다”며 오빠의 역할이 컸다고 말한다.

인터뷰를 한 11월 중순은 1년 중 가장 꿀맛 같은 시기다. 4월부터 11월까지는 대회가 이어지는 시즌이고 12월부터는 동계훈련 기간이다. 시즌이 끝나는 11월은 음식조절하며 운동을 쉴 수 있는 시간이다. 시즌에는 살이 금방 찌는 체질이라 음식 조절을 해야 한단다. 시즌 때는 체중 조절을 위해 사과와 고구마를 매일 저녁 먹는다고 한다. 사람들이 “안 질리냐”고 묻는데, “너도 배고파 봐. 다 맛있지”라고 답한단다. 지금의 휴식시간에 대해 “시즌 때보다 먹을 수 있는 게 많아서 좋다”고 한다.

자인은 꿈을 이뤘다. 월드컵에서 완등의 꿈을 이뤘다. 이젠 또 다른 꿈을 모아 벽을 오른다.
자인은 꿈을 이뤘다. 월드컵에서 완등의 꿈을 이뤘다. 이젠 또 다른 꿈을 모아 벽을 오른다.

“제가 식탐이 엄청 많아요. 가리는 거 없이 다 먹어요. 저만의 보양식이오? 저는 보신탕이 몸에 잘 맞아요. 외국 나가기 전에 꼭 먹고 가는 편이에요. 성북동 정주집이 단골이에요.”

12월부터 2월까지는 동계훈련 기간이다. 오전에는 주로 웨이트트레이닝을 하고 오후에는 클라이밍을 하는데 연중 가장 강도 높은 운동을 한다. 여느 20대와 달리 참아야 하는 것이 많지만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선 그만큼 희생도 따라야 하니까 힘들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이 걸 하면서 얻는 즐거움이 크니까요.”

대부분의 세계 톱랭커들이 한 가지 종목만 하는 데 반해 김자인은 리드(난이도) 외에 볼더링 대회도 참가한다. 주종목이 아니라 전 대회 참가는 어렵지만 세계 11위에 올라 있다. 이에 대해 김 선수는 “키만 더 컸더라도 볼더링을 주로 하지 않았을까 싶다”며 하지만 “나한테는 리드가 더 잘 맞다”고 얘기한다. 코치인 김자하는 “볼더링은 파티같이 자유로운 분위기라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가 많다”고 덧붙인다.

친오빠이자 코치인 김자하와 루트를 살피고 있다.
친오빠이자 코치인 김자하와 루트를 살피고 있다.

월드컵 대회 풀시즌 2년 만에 세계 1위로 성장한 김자인, 그에게도 나름 운이 안 맞는 대회가 있다고 한다.

“샤모니는 저주가 걸린 곳이에요. 올해는 중간에 클립을 빼먹고 가서 실격당하고, 작년에는 심판 오심 때문에 그랬고, 그 전해는 결승 시간을 잘 못 알아서 실격당했어요. 사실 샤모니 대회가 선수들도 제일 많이 참가하고 대회가 멋있거든요. 잘하고 싶은 마음도 큰데 이상하게 샤모니만 가면 꼬이고, 결승무대에 서 본 적이 없어요. 내년엔 샤모니에서 굿이라도 할까 봐요. 하하.”

반면 운이 따르는 곳도 있다고 한다. 벨기에 대회다. 2007년 국제대회에서 처음 3등으로 입상한 게 벨기에 푸르스 대회였다. 2008년 어깨부상 이후 복귀해서 처음 결승에 올라간 대회 역시 벨기에 대회였다. 그 이후 벨기에에서 열린 대회에서 2등을 했고 올해 9월에는 우승했다.

외국에도 많이 알려지다 보니 견제를 받거나 유명세를 치르기도 한다. 예선전은 오픈전이라 다른 선수들이 등반하는 걸 볼 수 있는데, 1번으로 배정 받을 때가 종종 있어 다른 선수들이 등반 모습을 보고 시작하는 것에 비하면 약간 불리하다고 한다. 또 슬로베니아 여자선수들이 전통적으로 클라이밍에서 강세인데 전에는 슬로베니아에 가서 운동하고 싶어서 연락하고 요청해도 답이 없던 이들이 요즘에는 한국에 와서 운동하고 싶어 한단다. 가장 친한 외국 선수는 유카 고바야시(23)다. 2002년부터 알아왔고 과거에는 김자인보다 성적이 좋았던 라이벌이었으나 지금은 리드 부문 랭킹 11위다.

재능과 노력으로 만들어 낸 ‘자인의 전성시대’

우리나라에서도 올해 처음으로 월드컵대회를 열었지만 관중은 우리나라가 가장 적다. 다른 나라에서 열린 월드컵대회에서는 관중들이 돈을 내고 입장하며, 샤모니 대회의 경우 2,000~3,000명씩 입장을 한단다. 가까운 중국만 가도 관중이 많고 사인 요청이 넘쳐 나기도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로 지난해 중국 청해성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를 꼽는다. “월드컵 결승에서 완등하는 게 오랜 꿈”이었는데 그걸 이룬 대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완등자가 한 명 더 있어 예선 기록을 합산, 2위에 머물렀다.

“경기를 할 땐 ‘1등해야겠다’가 아니라 ‘완등해야겠다’는 생각만 해요. 완등에 대한 집착이 강해요. 1등을 해도 완등 못 하면 약간 찝찝하거든요.”

왼쪽은 한국 스포츠클라이밍 남자 간판인 손상원 선수이고 오른쪽은 세계 톱클라이머인 크리스 샤마. 김자인이 17세 때 참가한 볼더링 대회에서의 모습이다.
왼쪽은 한국 스포츠클라이밍 남자 간판인 손상원 선수이고 오른쪽은 세계 톱클라이머인 크리스 샤마. 김자인이 17세 때 참가한 볼더링 대회에서의 모습이다.
선수 생활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 것 같으냐는 물음에 서른 살 정도까지 할 거라 생각한다고 한다. 선수생활 후에도 어떤 식으로든 스포츠클라이밍을 하며 살 것이고, 체육교육학이 전공인 만큼 지도자 쪽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때쯤 생활이 자유로워지면 자연바위도 하고 싶다고 한다.

“제가 은퇴할 쯤에는 뒤를 이을 후배가 있었으면 해요. 스포츠클라이밍 저변이 아직은 약하지만 그때쯤이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보다 더 어린 선수들을 보면 이 걸 한다고 큰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악착같이 하는 선수들도 많아요.”

김자인은 등반을 하며 가장 즐거울 때는 우승했을 때가 아니라 “등반에 몰입하고 있을 때”라고 한다. 스포츠클라이밍의 재미는 “몰입과 성취감”이라는 게 그녀의 설명이다. 몰입은 하다 보면 항상 느낄 수 있고, 성취감은 못 하던 걸 하나하나 해냄으로써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몰입과 성취감은 어려운 게 아니라 하다 보면 자연스레 느낄 수 있는 것”이라 얘기한다.

루트 파인딩을 할 때는 보통 다른 선수들은 다 외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김 선수는 다 외우지는 못하는데 중요한 부분은 외운다고 한다. 그런 다음 대기실에 들어와 다른 선수들과 크럭스 부분에 대한 해답을 서로 얘기한다고 한다. 대회에서는 보통 몇 개의 어려운 부분, 크럭스가 있다. 이걸 넘어서느냐 추락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 김자인은 크럭스가 나오면 크게 심호흡을 하고 ‘할 수 있다’는 다짐을 스스로에게 반복한다. 다른 선수들이 크럭스를 돌파하기 위해 서두르다 실수를 범해 추락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김자인은 어려운 부분을 오르기 직전 스스로에게 고요함을 불러오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마음을 가다듬고 자신감을 불어넣은 뒤 집중해서 시원하게 난제를 풀어낸다. 세계 1위가 되기 위해선 재능과 노력 모두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걸 김자인은 보여준다.

김자인에게 스포츠클라이밍이란 무엇인지 물었다.

“스포츠클라이밍은 제 인생이고 당연한 존재예요. 거창한 게 아니라 항상 거기 있는 공기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에요.”

작고 예쁘장한 소녀는 무럭무럭 자라 벽을 넘어섰다. 클라이밍이란 벽뿐만 아니라 모든 편견과 유혹을 다 넘어서고 마침내 자기 자신도 넘어섰다. 지금은 스포츠클라이밍 여제, 김자인의 전성기다.


/ 글 신준범 기자
  사진 허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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