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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특파원 르포] 최초공개! 타이항산 한왕(韓王)트레일

월간산
  • 입력 2011.01.0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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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억 년 대협곡의 웅혼함에 매혹되다
도화곡, 환산선 탐승에 이어 ‘대암봉 병풍’ 일주

산악투어 양걸석(梁杰錫·50) 대장은 고향이 타이항산(太行山)인 사람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타이항산 알리기에 열심일 수 없다. 물론 본업이 여행업이지만 그의 타이항산 사랑은 다만 그런 직업 의식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차창에 기대어 졸다가도 타이항산 얘기를 시작하면 그는 어린 시절 고향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소년처럼 얼굴이 빛난다.

한왕트레일의 능선 구간에 올라 지나온 협곡을 바라보다가 발길을 되돌리는 취재팀의 장익진씨.
한왕트레일의 능선 구간에 올라 지나온 협곡을 바라보다가 발길을 되돌리는 취재팀의 장익진씨.
그는 3년 전 타이항산과 첫대면했고, 그 즉시 타이항산과 사랑에 빠졌다. 열 번쯤 찾아갔고, 한 번 갈 때마다 열 번 이상 타이항산 곳곳을 누볐다. 그 끝에 그는 중국인들도 잘 모르고 있는 타이항산만의 비경 트레킹 루트를 엮어냈다. 타이항산 동서쪽의 옛 주민들이 산줄기를 가로질러 넘나들던 옛길이며, 심지어는 염소들이나 다니던 절벽 중간 길을 더듬어 오가며 타이항산에서 자신만의 길을 창조했다.

그렇다. 그의 타이항산 작업은 단순한 엮기가 아니라 창조, 혹은 창작이라고 말해야 옳다. 타이항산은 중국 내륙 한가운데, 우리의 백두대간이 영동과 영서지방을 나누었듯 남북으로 무려 600km 길게 뻗으며 산둥성(山東省)과 산시성(山西省)을 나누었다.
그의 타이항산 트랙은 백두대간의 남한 쪽 길이와 거의 맞먹는 이 거대한 산줄기 여기저기를 오랜 기간 더듬으며 수없는 시행착오를 반복한 끝에 완성한 것이기에, 다만 엮은 것이 아니라 창작에 가까운 것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공 들이고 정 들인 곳이라선지, 거기는 꼭 내 산, 내 길, 내 새끼 같아요” 라고 양대장은 말한다.

칭다오(靑島)에서 타이항산 동록의 임주시(林州市)에 이르기까지 이틀에 나누어 열두어 시간 달린 버스 여행은 중국 대륙의 넓이를 체감케 했다. 어쩌면 그리도 똑같은 풍경의 연속인지. 황갈색의 대지가 끊임없이 다가와서는 뒤로 멀어져갔다. 고속도로변의 방풍림 삼아 조성한 듯한 엉성한 숲조차도 부산~평양에 버금가는 900km의 긴 거리 내내 같은 모습이었다. 그래서일까. 변함없고 단조로운 대평원을 가로지른 끝에 만난 타이항산은 저 멀리 부우연 이내의 띠 위로 치솟기도 해서, 현실의 산이 아니라 거대한 신기루 같아 보였다.

석양 무렵 태항 대협곡 위의 암반지대를 걷고 있는 취재팀. 억겁의 세월이 암반층으로 켜켜이 내려앉았다.
석양 무렵 태항 대협곡 위의 암반지대를 걷고 있는 취재팀. 억겁의 세월이 암반층으로 켜켜이 내려앉았다.
부산~평양 간 거리만큼 달려 ‘산수갑수 타이항산’으로

임주시내의 도로변 가로등마다엔 ‘산수갑수(山水甲秀)’ 팻말이 걸려 있다. 산수가 매우 뛰어나다는 뜻이라고 양대장은 알려준다. 역시 타이항산을 자랑하는 글귀다. 타이항산이란 이름 가운데 ‘行’ 자의 우리 발음은 다닐 행이거나 항렬 항이다. 곧 큰 산이 줄을 이어 서 있다는 뜻으로 사람들이 타이항산이라 부르기 시작한 것 같다. 우리나라 등산동호인들은 태항산이라 즐겨부른다.

<열자(列子)>에 나오는 우공이산(愚公移山) 고사의 무대가 바로 이곳 타이항산이다. 타이항산을 발해만으로 옮기겠다고 나선 90세 노인을 모두가 비웃었으나 옥황상제가 감동해 산을 옮겨주었다는, 중국다운 전설이다.

임주시를 가로지른 뒤 타이항산록에 이르러 버스는 평평한 고속도로만 달리다가 낯설다는 듯 힘겨운 S자 등행을 시작, 터널을 두 개 지난 뒤 이윽고 타이항산중의 깊은 계곡에 든다. 기독교인들이라면 타이항산의 첨봉들을 보고 바벨탑을 연상할 것이다. ‘2개 혹은 3, 4개의 단을 지으며 쌓아올린, 거대한 석성 같은 수직고 500~1,000m 암봉들의 집합체’라고 타이항산을 요약해 말할 수 있다. “20억 년 전 최초로 융기했고, 그 다음 10억 년 전, 또 5억 년 전쯤에 다시 솟아오른 한편으로 20억 년 내내 침식을 받아서 지금 같은 모양이 되었다고 합니다”라고 양대장은 전한다.

첨봉으로 둘러싸인 계곡 가운데, 학교인 듯한 큰 건물이 있는 마을의 음식점 운해산장(雲海山莊)에서 늦은 아침식사를 마친 뒤 양대장은 일행을 우선 도화곡(桃花谷)으로 이끈다. 중국인들이 비경임을 말하고자 할 때 흔히 동원하는 무릉도원의 그 도(桃) 자를 쓴 도화곡이다. 양대장은 우선 이 도화곡을 맛보기로 내놓아 일행의 반응을 살피려는 것이다. ‘↖왕상암, 도화곡↗’ 표지판이 걸린 삼거리에서 버스는 한결 더 좁아지는 도화곡 쪽 갈림길로 접어든다. 그 도로의 끝에서 도화곡 탐승로의 시작점인 매표소가 나선다.

이곳은 우리나라의 전라남도와 위도가 비슷하다. 해서, 전라도가 11월 30일 지금 초겨울이듯 여기도 쌀쌀한 겨울날씨다. 나뭇잎도 모두 져버린 이런 겨울날 계곡 풍류를 찾는 이는 우리나라처럼 중국에도 없다. 매표소조차도 비어, 우리는 그냥 골짜기 안으로 접어든다. 소리를 좀 크게 지르면 돌 몇 개쯤은 투닥, 탁 하고 굴러내릴 것처럼 가파른, 설악산 적벽처럼 깎아지른 절벽이 겹으로 늘어선 좁은 협곡이다.

복사꽃은커녕 나뭇잎 하나 남아 있지 않은 초겨울 바위 협곡은 웅장하나 을씨년스럽다. 이 지역 지질이 ‘12억 년 전 형성된 석영사암’임을 야트막한 오석(烏石) 해설판이 일러준다. 낮은 속삭임조차도 울림으로 담아내는 거대한 절벽들-. 나팔관처럼 절벽이 둘러선 황룡담 왼쪽 옆 잔도(棧道) 초입에는 큰 북이 세 개 걸려 있다. 두둥-. 누군가 북을 두드리자 온 계곡이 공명하며 울린다.

굵은 철근을 절벽에 박고 발판을 댄 잔교 위로는 바위가 툭툭 튀어나와 있어서 몇 걸음마다 허리를 굽혀야 한다. 일행은 절벽 자체보다 이 투박하고 아찔한 잔교가 더 흥미롭다. 잔교 위로 오르자 바위 턱에 가두어진 물이 깊이를 알 수 없는, 섬뜩한 암청색 소를 이루었다. 그 위를 가로질러 놓인 엉성한 구름다리를 지나 다시 절벽잔교를 오른다.

1. 한왕트레일에서 만난 남근석. 2. 한왕트레일 능선길의 천주쌍봉. 3. 타이항산 옛주민들이 넓은 바윗돌로 정성들여 쌓고 다듬어둔 한왕트레일의 고갯길. 급경사이지만 짐을 지고도 그리 숨가쁘지 않게 오르내릴 수 있게끔 갈짓자로 경사를 죽였다. 4. 관일대에서 본 오후의 타이항산 첩첩산릉 풍경.
1. 한왕트레일에서 만난 남근석. 2. 한왕트레일 능선길의 천주쌍봉. 3. 타이항산 옛주민들이 넓은 바윗돌로 정성들여 쌓고 다듬어둔 한왕트레일의 고갯길. 급경사이지만 짐을 지고도 그리 숨가쁘지 않게 오르내릴 수 있게끔 갈짓자로 경사를 죽였다. 4. 관일대에서 본 오후의 타이항산 첩첩산릉 풍경.
용이 날아오른 협곡이라는 비룡협(飛龍峽), 용이 여의주를 문 형상이라는 함주(含珠), 두 마리 용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형상이라는 이룡희주(二龍戱珠)를 지나도록 일행에게서는 아무 탄사도 나오지 않는다. 장가계며 무이구곡, 황산 같은 중국 절경을 최소한 두어 군데는 가본 이들에게 계곡 바닥에 퍼런 청태가 낀 이 도화곡이 봄도 아닌 겨울에 그렇게까지 감탄스러울 수는 없는 것이다. 아무도 경치가 별것 아니라고 말한 바는 없지만, 양대장은 잘 알겠다는 듯 걸음을 빨리 한다.

양대장만이 아는 타이항 대협곡 최고의 전망대로 안내

9개 연꽃 같은 폭포라는 구련폭포(九蓮瀑布)를 지나자 절벽 위에 ‘도화면(桃花面)’ 팻말을 내건 민가가 뵌다. 그 위 주차장에는 중국인들이 빵처럼 생겼다고 해서 빵차라고 부르는 소형차 두 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여기부터 23km 산 중복을 가로지르는 이른바 환산선(環山線) 길로 양대장은 일행의 눈높이를 다시 체크하려는 것이다. 원래는 마을과 마을을 잇는 산복도로였으나 양대장이 임주시에 제안해 전망대도 서너 군데 만들고 환산선이란 이름의 관광도로로 삼았다.

그가 보여주려는 것은 거대한 계곡의, 그가 중국의 그랜드캐년이라 이름붙인 이 타이항 대협곡의 웅장함이지만 일행은 전혀 엉뚱한 것에서 탄복한다.

“햐아, 저것봐라. 저 절벽 끄트머리가 바로 밭 경계여!”

1. 도화곡 황룡담 옆의 북. 누구든 마음껏 쳐도 되며, 바위 절벽의 울림이 멋지다. 2. 타이항산의 농가지붕은 한결같이 넓적한 바위 너와로 지붕을 얹었다. 3. 타이항대협곡 가운데 마을의 운해산장. 주변이 빙 둘러 높디높은 절벽이다. 4. ‘태항산 도사’라 해도 무리없는 산악투어 양걸석 대장. 5. 대암봉을 병풍으로 두른 적수채마을.
1. 도화곡 황룡담 옆의 북. 누구든 마음껏 쳐도 되며, 바위 절벽의 울림이 멋지다. 2. 타이항산의 농가지붕은 한결같이 넓적한 바위 너와로 지붕을 얹었다. 3. 타이항대협곡 가운데 마을의 운해산장. 주변이 빙 둘러 높디높은 절벽이다. 4. ‘태항산 도사’라 해도 무리없는 산악투어 양걸석 대장. 5. 대암봉을 병풍으로 두른 적수채마을.
천야만야 아찔한 절벽이 시작되는 평탄면의 가장자리 끝을 따라 둑을 쌓아둔 그 밭뙈기들을 보는 순간 눈이 시큼하게 아려온다. 자칫 실족하면 시신조차 수습하기 어려울 정도로 까마득한 절벽 위 단 한 뼘의 땅이라도 더 확보해 작물을 심어야 했던 이 산중사람들의 누천 년 고되었을 삶이 그 밭뙈기 저편에 투영된 까닭이다.

가로 2m, 세로 1m 남짓한 커다란 판석을 기와 삼은 돌집 마을도 신기한 구경거리다.

여기 타이항산은 모든 게 층층이다. 봉우리를 이룬 바위절벽도 얇은 판석으로 층층, 그 기슭의 계단식 논도 그 지형에 따라 층층이다. 지질학자들이 이것을 판상절리(板狀節理)라 부르던가. 중국의 장가계가 또한 이와 비슷하다. 다만 규모에서는 이곳과 비교가 되지 못한다고 장가계를 본 사람들이 입을 모은다.

“미국에 그랜드캐년이 있지만 사막 한가운데 있어서 좀 삭막하잖아요. 반면에 여기 중국 타이항산은 그랜드캐년 못지않게 웅장한 데다 봄이면 꽃이 피고, 여름이면 푸르른 녹음이 지고, 가을에는 붉은 단풍으로 치장하고, 겨울에는 백설로 뒤덮이니 훨씬 더 낫지요. 안 그런가요? 그리고 날씨 운도 좋은 산이에요. 연중 60~70%는 날씨가 맑답니다.”

1. 한왕트레일 도중의 남반촌을 지나 왕망령을 향해 오르는 일행.  2. 남반촌의 한가로운 소들.  3. 표정이 순하디 순한 남반촌 주민. 4. 한왕트레일의 기암 중에도 으뜸인 ‘목 긴 여인상’. 5. 왕망령 정상 일대에 조성된 관광 조망대.
1. 한왕트레일 도중의 남반촌을 지나 왕망령을 향해 오르는 일행. 2. 남반촌의 한가로운 소들. 3. 표정이 순하디 순한 남반촌 주민. 4. 한왕트레일의 기암 중에도 으뜸인 ‘목 긴 여인상’. 5. 왕망령 정상 일대에 조성된 관광 조망대.
7km쯤 달렸을까. 환산선 도로 중간의 고갯마루에 다다라 차를 내린 뒤 양대장은 전망
대 위로 올라 타이항산 대협곡을 자랑한다. 적갈색의,  1,000~2,000m 깊이로 패인 거대한 협곡은 눈을 아슴하게 떠도 그 끝이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광대하다. 억만 년 누적된 세월의 단면을 한순간에 들여다보는 기분-. 두어 차례 탄성이 터지고, 양대장은 미소짓는다. 용기백배한 양대장은 진짜 절경은 저 위에 있다며, 하산길이 급경사이고 험하니 저물기 전에 마쳐야 한다며 일행을 채근한다.

어느새 오후 1시30분. 양대장을 우리말로 형님이라 부르는 아랫마을 40대 중국인이 길을 인도한다. 팻말은커녕 표지리본조차 없는 희미한 길을 짚어 오른 지 한 시간여.

서늘한 냉기가 감도는 그늘 속 협곡을 지나자 찬란한 오후 햇살이 비추는 잘록이 위다.
거기서 왼쪽으로 30여 m 나아가 양대장은 “이리로들 오세요!” 라고 거듭 외친다. 도로변 출발점 1,060m에서 1,460m로 400m쯤 고도를 올린 이곳에서의 타이항산 대협곡은 일행 모두가 한결같이 야아, 하며 감탄사를 내지르게 하는 절경으로 펼쳐진다.

“이제 또 뭘 보러, 어딜 가야 하나” 하는 다소 과장된 탄식마저도 내뱉게 하는 장관을 앞에 두고 우리는 소찬이나마 점심 보따리를 편다. 일본의 어떤 식당은 담아내는 그릇에 따라 음식 값을 달리 받는다던데, 그렇다면 타이항 대협곡 암반을 그릇 삼아 음식을 펼쳐놓은 우리는 천하에 둘도 없는 최고가의 상찬을 드는 셈이다.

인수봉 두 배만 한 대암봉들 병풍처럼 늘어서

대협곡 조망처 이후 길은 다소간 지루하고 재미없어졌다. 무엇보다 끊임없이 얼굴을 성가시게 찔러대는 나뭇가지 때문이다. 두어 사람이 짜증을 내자 “외부인에게는 최초 공개하는 것”이라며 자랑하던 양대장의 얼굴에 다소간 당황한 기색이 어린다. 중간에 중국 특유의 오랜 산간 돌너와집 마을이 있으므로 길만 다듬으면 훌륭한 탐승 코스가 될 것이라며 양대장을 위로한다. 

잡목 길을 빠져나온 뒤, 양대장은 아예 널찍한 산간 마을길을 따른다. 그 끝에 이제 막 주변을 다듬고 있는 중인 널찍한 암반지대가 나선다. 그 남쪽 옆 공간을 가리키는 양대장. 마침 석양 무렵이어서일까. 거대 협곡이 드러내는 장구한 세월의 무게에 찰나 같은 삶의 덧없음이 일깨워져, 일행은 가만히 서서 바라보며 침묵한다.

억겁 세월의 층을 거슬러 해발 1,600m 이곳 벼랑 위까지 치밀어오른 골바람이 드세다. 여기는 황금 햇살이 뿌려지고 있는데 천길 벼랑 저 아래 협곡엔 짙은 어둠 같은 그늘이 고여 있다. 섬뜩한 두려움으로 일행은 다시 침묵한다.

여긴 아마 오래지 않아서 입장료를 받는 데가 될 거라며 양대장은 하산길목으로 이끈다. 아무 표식도 없는 어딘가로 내려서자 어찔하니 현기증이 날 만큼 급경사 돌계단길이 시작된다. 늑장을 부렸다면 큰일 날 뻔했다며 난간도 없는, 잡을 것도 마땅찮은 계단 길을 적당한 간격을 두고 내려갔다. 하산을 마치기 전 끝내 어스름이 스몄지만, 어느덧 완경사 산록이었고 대신 우리는 대협곡의 장엄한 노을빛을 마주할 수 있었다.

밤을 도와 직선거리로 60km쯤 남쪽, 하이난성(海南省) 휘현시의 백천(百泉)국제대주점에서 1박한 후 양대장은 비로소 회심의 카드를 꺼내든다. 휘현시 한구촌(韓口村)이란 마을에서 시작해 왕망령(王莽嶺) 지나 전망대까지 갔다가 다시 한구촌으로 돌아 내려오는 원점회귀형식의 트레일이다. “제가 내 새끼 같다고 했던 바로 그 한왕트레일 코스”라며 고개 숙여 차장 밖 산줄기를 바라보는 양대장 눈이 반가움으로 차오른다. 

“한왕트레일은 타이항산 특유의 기암절벽, 장엄한 대협곡, 그리고 전형적인 중국 산골마을 풍경까지 아우르는 멋진 길이에요. 취재팀은 물론이고 관광단 모두 통틀어서 아직 열 팀도 다녀가지 않았지만, 사람마다 최고, 천하절경이라고 하대요. 이게 알려지면 아마 장가계 같은 데는 텅 빌 겁니다.”

어제처럼 날씨운은 좋다.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른 하늘이고, 그 아래 타이항산 기암봉이 기교를 다한 윤곽선을 그려내고 있다. 아이들이라면 필경 마법의 성채라거나 전설 속의 거인 같은 상상과 더불어 저 거대 암봉군을 바라볼 것이다. 어제의 급경사 하산길에 데어, 공연히 다리를 주무르며 그냥 버스에서 기다리겠다던 두 사람도 서둘러 행장을 차려 나선 것으로 보아 우리는 분명 마법에 걸린 것 같다.

“청 말기에 한씨 성을 가진 대신이 박해를 피해 여기 숨어 들어왔다고 해서 한구촌이라 한답니다.”

일제 때 모택동군과 우리 독립군이 합동으로 일본군과 대치하며 전투를 벌이기도 했던 곳이라고 양대장은 덧붙인다. 멀리서 보면 하나로 보였던 암벽이 가까이 다가가자 둘, 혹은 세 겹으로 쪼개어진다. 그런 틈새 협곡이 지천이고 암벽 여기저기엔 길고 깊어 뵈는 동굴도 여럿이니, 숨어들어 항전하기엔 적격이었을 것이다.

환산선 중간의 조망처에서 본 타이항 대협곡의 동사면 풍경.
환산선 중간의 조망처에서 본 타이항 대협곡의 동사면 풍경.
걸어 올라야만 체감할 수 있는 타이항 대협곡의 웅장함

천천히, 걸음마다 높아지고 또렷해지는 타이항산릉의 기암벽들을 음미하며 1시간 남짓 계곡을 거슬러오르자 뜻밖으로 큰 마을이 또 있다. 산 입구의 한구촌만 해도 벽촌 이미지였는데, 이렇듯 깊은 산중에 이렇게 큰 마을이 있다니. 마을 이름은 적수채(滴水寨). 그대로 번역하면 물이 방울져 떨어지는 곳이란 뜻이니, 저 절벽들에서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들이 모여드는 곳이란 뜻일까. 산중 고을다운 이름이다. 마을부터 따지면 수직고도가 650m 남짓 되고 드러난 암부의 고도만도 인수봉에 버금갈 거대 암봉들이 병풍처럼 빙 둘러서서 마을을 장엄하게 장식하고 있다. 대사찰이 하나쯤 들어앉아도 좋겠다 싶은 아늑한 곳이다.

일행은 적수채마을의 풍광에 매혹되었다. 돌지붕 위 커다란 원통형 철망 광주리에 그득 담긴 찬란한 노란색의 옥수수 더미는 이 마을의 삶을 공연히 풍요롭고 여유로운 것으로 떠올리게 한다. 양대장은 정성들여 쌓은 길고 높은 축대 아래를 지나 마을 바깥의 너래반석 위로 일행을 인도한다. 거기에 앉아 과일을 깎아먹으며 일행은 한정 없이 노닥거린다. 이러다간 또 하산 전에 날이 저물겠다며 양대장은 채근한다.

적수채마을에서 산록을 가로지르던 길은 느닷없이 짧은 굴에 이어 긴 굴이 하나 더 나타난다. 적수채마을과 그 남쪽 2.5km의 남반촌(南盤村)을 잇는 굴이다. 동네 사람들이 오로지 망치와 괭이로 능선 옆구리를 뚫었다고 한다. 두 번째 터널은 길이가 150m 정도로 길고, 가운데에선 칠흑처럼 캄캄해서 랜턴을 켜들어야 했다.

남반촌은 적수채보다 더 아늑하고 풍요로워 보이는 마을이다. 축대 위 숲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던 흰 소와 눈을 맞추고 나서 대장벽 가운데로 향한다. 정오가 가까워오며 대암봉들의 음영은 더욱 뚜렷하고 짙어져, 외치지 않아도 깊은 산울림이 전해오는 것 같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내기하듯,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성큼 다가오고 또 다가오는 대장벽. 우리는 한없이 축소되며 마이크로의 세계로 들어서는 것 같다.

어떤 봉은 감탄스러울 만큼 남성의 그것과 흡사한 데다 밑동에 자란 숲이 잎이 지며 갈색 거웃처럼 수북하다. 그런데 저기 어디쯤에 오를 틈이 있을까. 이윽고 코앞으로 다가든 암벽. 그러나 그 모퉁이와 틈새를 따라 교묘하게 축대를 쌓아 이어간 갈짓자의 등행로가 드러난다. 옛 주민들이 산 너머로 팔러갈 물건들을 이고지고 넘던 길이다. 가팔라서 걷기조차 힘든데, 쌓으려면 여러 사람이 다쳤을 것이다.

눈높이는 쑥쑥 높아져서 대암봉들 옆구리의 단이 수평으로 바라뵈기 시작한다. 그러다 여러 개 봉우리의 정수리가 내려다뵐 즈음 문득 우리는 서늘한 협곡 그늘에서 벗어나 밝은 태양광 아래로 올라섰다. 이제는 따스하고 가뿐한 수평 길이다. 뒤돌아서서, 그 폭과 높이를 온몸으로 느끼며 지나온 대장벽과 그들로 이루어진 협곡을 뿌듯이 바라본다. 차나 헬기를 타고 난짝 올라서는 저 대협곡의 웅장함을 결코 온전히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옆이든 앞이든 바라보는 곳마다 천하절경이고 기관(奇觀)인 가로지름길에서 발걸음은 또 한정 없이 늘어진다. 양대장은 일행의 반응에 흡족한지 한동안 내버려둔다.

양대장을 따라 기암봉 사이의 작은 고개를 꼴딱 넘자 훅 하고 숨이 막힐 만큼 불어오는 바람. 그러나 햇볕이 사양하여 따듯하고, 등 뒤로 펼쳐진 첩첩산릉은 월출산을 무더기로 가져다둔 듯 기이하여 또한 걸음이 느려진다.

키작은 풀이 곱게 자란 급경사 산록을 지나 이윽고 관광객들이 오가는 난간길로 올라선다. 난간길을 따라가자 넓은 조망대가 조성돼 있다. 화강암으로 말끔하게 단을 지은 이곳을 일러 왕망령이라 부른다고 한다. 겨울 이외의 계절엔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명소다. 서쪽 저 아래 주차장까지 버스가 올라오고, 여름 한철 운영하는 산장까지 큼직한 것이 서 있다. 차를 타고 와서 여기 왕망령 최고의 조망처인 관일대에서 보는 일출풍광이 좋기는 하겠지만, 그러나 다시 온다고 해도 우리는 한왕트레일로 걸어오를 것이다.

왕망령에서 북쪽 숲속 계단길로 한참을 내려갔다가 시계방향으로 빙 돌아나간 양대장은 “이제부터가 진짭니다” 하며 웃는다. 대암벽의 중간을 가로지르는 그 길은 멀리서 보기에 이미 살벌하다. 양대장이 먼저 앞서 가는 모습을 보더니 “난 못 가” 하며 뒤로 빠지는 시늉을 하는 사람도 있다. 결국은 모두 아슬아슬 조심스레 지나긴 했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오금이 저려 주저앉을지도 모르겠다 싶은 곳도 있다.

저 위 아까의 그 조망대에서 사람들이 마구 던져버린 쓰레기로 지저분한 곳을 지나 천주쌍봉(天柱雙峰) 옆 하산길목에 이르렀다. 이 대협곡 조망과 결별하는 것이 아쉬워서 따스한 햇살 아래 평지에 앉아 한참을 노닥거리다가 역시 양대장 채근에 일어섰다.

몇몇 사람이 “우리가 아까 올라왔던 길 아닌가?” 하고 착각할 만큼 등행로와 흡사한 모양의, 넓적한 반석으로 정성스레 만들어둔 갈짓자 트레일을 따라 우리는 긴 하산길에 접어들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대장벽의 색감과 계곡의 어둠처럼 짙은 고적감이 곁들여진 7km 쯤의 긴 하산길은 그러나 좀더 길게 이어져도 좋았을 것이다.

소어산공원 정상 팔각정에서 내려다본 청도의 옛 독일인 거주촌.
소어산공원 정상 팔각정에서 내려다본 청도의 옛 독일인 거주촌.
타이항산행 길잡이 Guide 신년 모임 겸해 위동페리 타고 가는 낭만의 여정

지난여름 한일페리의 낭만을 맛본 취재팀은 이번 타이항산행도 우정 페리 길을 택했다. 위동페리, 중국말로 웨이동페리라 부르는 인천항~청도항 간의 여객선 뉴골든브리지V호는 일단 2만9,000톤이 넘는 대형선박이라 배멀미가 한결 덜하다. 길이 196m 폭 27m로 한국에서 운항하는 페리 중 가장 큰 배라고 한다. 선내엔 식당은 물론 바다가 뵈는 카페테리아, 노래방, 사우나, 영화관 시설까지 돼 있는 한편 면세점에서 좋은 술을 싸게 살 수 있어 송년이나 신년 해맞이 모임 삼아 어울리기에 안성맞춤이다. 위동페리가 닿는 청도나 위해에서 공자묘, 태산 등, 중국 내에서도 손꼽히는 명소들로 연결되는 도로망이 발달해 갈수록 이용객이 늘고 있다. 인천~청도 간을 매주 3회 왕복 운항하며 계절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544km 거리를 17시간에 걸쳐 운항한다. 승무원의 친절도나 음식 수준 등이 타선사에 비해 한결 낫다는 것이 위동페리 측의 설명이다.

태항산록 임주로 가는 길에 들른 고차(古車)박물관. 사람과 말이 주인과 더불어 순장된 곳이다.
태항산록 임주로 가는 길에 들른 고차(古車)박물관. 사람과 말이 주인과 더불어 순장된 곳이다.
객실은 2층 침대를 갖춘 다인실 이코노미클래스(왕복 19만 원), 4인실 비즈니스클래스(왕복 22만8,000원), 2인실 로열클래스(왕복 26만6,000원) 3가지로 나뉜다. 항공료에 비해 한결 저렴하기에 위동페리를 이용한 중국 노산이나 타이항산 패키지 여행상품은 날짜가 길어지는 반면 비용이 낮아진다. 위동페리 홈페이지 weidong.com 문의 032-777-0490.

위동페리의 뉴골든브리지5호(위). 
말끔한 위동페리의 4인실(아래).
위동페리의 뉴골든브리지5호(위). 말끔한 위동페리의 4인실(아래).
위동페리를 이용한 중국 타이항산 트레킹 상품을 판매하는 국내 여행사는 여럿이다.

그러나 타이항산 관광이 아닌 한왕트레일은 아마도 산악투어가 아니고서는 효율적인 가이드가 어려울 것이다. 개별 여행은 아직 힘든 대상지다. 홈페이지  www.sanaktour.com 전화 02-730-7227.


/ 글 안중국 편집장 사진 윤제학·안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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