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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3월호
  • 653호

[포커스] 불확실한 로프를 이용한 확보가 화를 불러일으켰다 부산 모 산악인, 토왕폭 상단서 13시간 넘게 매달려 있다 사망

월간산
  • 입력 2011.02.09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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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규 외설악팀장, “자기 슬링으로 확보했으면 사고 일어나지 않았을 것”

국내 최대의 빙폭인 설악산 토왕성 빙폭에서 인명사고가 일어났다. 1월 15일 오후 4시40분경, 부산 산악인 A모(46)씨는 수직고 120m 높이의 상단 빙벽 종료지점에서 60m 아래로 추락해 수직빙폭에 매달린 상태에서 구조를 기다렸다. 추락 13시간이 지난 이튿날 16일 아침 6시경 구조대원 강태웅씨 (적십자구조대원)가 접근했을 때에는 이미 숨진 상태였다.

이날 사고는 상단 종료 지점 소나무에 걸린 PP로프에 선등자가 확보 슬링을 건 게 화근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A씨가 확보줄을 걸어놓았던 소나무에 묶여 있는 PP로프는 누가 언제 설치해 놓았는지 알 수 없는 확보물이었다.

사고 당일 오후 12시20분경 하단 종료지점에서 촬영한 토왕성폭포 상단.  / 끊어진 PP로프에 묶여 있는 사고자의 확보 슬링. / 사진 설악산국립공원사무소 제공
사고 당일 오후 12시20분경 하단 종료지점에서 촬영한 토왕성폭포 상단. / 끊어진 PP로프에 묶여 있는 사고자의 확보 슬링. / 사진 설악산국립공원사무소 제공

사고 직전 A씨는 120m 아래 상단 출발지점 에서 등반을 시작한 후등자인 B모(58)씨의 확보를 보던 중이었다. 하강 중 사고를 목격한 서울 모 산악인의 말에 의하면, B씨는 초입부에서 미끄러지면서 몇 차례 추락을 했고, 마지막 추락 직후 위에서 떨어진 낙빙에 맞으면서 기절하고 말았다. 낙빙에 맞은 헬멧이 깨지면서 폭포 아래로 떨어질 만큼 큰 충격이었다.

B씨는 얼마 뒤 의식을 찾았으나 A씨가 문제였다. A씨는 후등자 추락 충격에 견디지 못해 확보줄을 걸어놓았던 PP로프가 끊어지면서 60m 아래 일명 ‘테라스’ 부근의 빙벽까지 추락, 아이스스크루에 걸렸으나 한쪽 아이젠이 벗겨진 채 매달려 있는 상황이었다.

B씨는 의식이 회복되자 다시 등반에 나섰으나 A씨가 로프에 매달린 채 밑으로 흘러내리고 모습을 확인하곤 아이스스크루를 박고 자기확보를 한 다음 A씨를 향해 소리쳤다. 그러나 A씨는 마치 후배한테 하듯 “야 임마, 빨리 올라오지 않고 뭘해!” 라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A씨는 의식을 되찾은 뒤 B씨와 큰소리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신음소리만 냈고, 자정을 넘어서는 그나마 신음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설악동에서 추락 소식을 들은 동료 산악인들과 구조대원들은 오후 5시30분경 출동해 8시경 하단 출발지점에 도착했으나 사고자들에게 접근하는 데에 어려움이 많았다. 일명 Y계곡이라 불리는 골짜기를 따르는 길은 막판에 바위가 오버행에 막혀 오를 수 없는 상황이었고, 하단 우측 벽은 눈이 전혀 붙어 있지 않아 등반에 어려움이 많았다. 빙폭은 여러 날 지속된 강추위로 단단하지만 불량한 상태로 얼어 있는 데에다 올 들어 가장 춥다는 강추위와 강한 바람 때문에 등반이 순조롭지 않았다.

구조대가 상단 초입에 매달려 있는 후등자 B씨에게 도착한 시각이 이튿날 16일 새벽 1시경. 상단 빙벽 출발지점에서 약 6m 위쪽에 박아놓은 스크루에 매달려 있던 B씨는 아이젠으로 빙벽을 깨내 만든 턱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에 추위에 어느 정도 견딜 수 있었고, 건강 상태도 괜찮은 편이었다. 하지만 로프에 매달린 채 가벼운 등반복 차림에 추위와 강풍을 그대로 맞은 A씨는 견디기 힘든 상황이었다. B를 하단 아래로 후송한 다음 출동한 구조대원이 A씨에게 다가갔을 때에는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설악산국립공원관리소 외설악팀 이동규 팀장은 이번 사고의 원인으로 무엇보다 자기확보에 철저히 하지 않았다는 점을 꼽고 있다. 이 팀장은 “소나무에 걸린 PP로프 대신 등반자가 지닌 슬링을 소나무에 감고 확보를 했다면 이러한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 글·사진 한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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