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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특파원 취재] 2011 국제 스포츠클라이밍 대회

글·사진 박정원 부장대우
  • 입력 2011.08.05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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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인, ‘세계 스포츠 클라이밍계의 여제’ 재확인
지난해 이어 6연패 위업… 4월 볼더링대회까지 석권한 첫 선수
네파(NEPA), 메인 후원업체 입지 다져

역시 김자인(22·고려대·노스페이스)이었다. 7월 13일 밤(한국시간 14일 오전) 프랑스 샤모니에서 열린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International Federation of Sports Climbing) 월드컵 대회. 네파(NEPA)가 메인 스폰서로 나선 이 대회에서 한국 스포츠클라이밍의 간판스타 김자인은 군더더기 하나 없는 깔끔한 동작과 완벽한 마무리로 우승, 국제 스포츠클라이밍 관계자들과 관객들로부터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 대회를 통해 그녀는 세계 스포츠클라이밍계의 여제(女帝)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었다. 한마디로 완벽했고, 프랑스 샤모니의 그날 밤은 그녀를 위한 무대였다.

예선에서도 무난히 1위를 차지한 김자인 선수가 균형잡힌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예선에서도 무난히 1위를 차지한 김자인 선수가 균형잡힌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리드(lead) 경기 마지막 날(리드 경기는 고난도로 조합된 인공암벽루트를 스스로 확보하며 오르는 경기로서 누가 더 높이, 더 빨리 오르는지를 겨룸), 결선에 오른 여자선수 8명 중 마지막 선수로 한국의 간판 김자인이 나왔다. 사회자는 그녀를 소개하면서 목소리 톤부터 달라졌다. 연방 “김~자~인!”을 환호했다. 남자 선수로 출전한 김자하·김자비와 남매라고 덧붙였다.

관중들은 이미 김자인의 실력과 명성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지난 4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월드컵 볼더링대회에서 우승, 올 시즌 한층 완숙한 실력을 예고하고 있던 터였다. 볼더링대회는 스포츠클라이밍대회와 별개의 부문으로, 두 부문에서 모두 두각을 나타내기는 극도로 어렵다고 한다. 더욱이 지난해 월드컵 클라이밍 시리즈 종합우승을 차지한 김자인이었다.

이날 대회는 한 해 10번 열리는 월드컵 클라이밍 시리즈의 올해 첫 대회. 높이 15m에 50여 개 홀드로 구성된 루트에서 진행된 1차 예선은 김자인을 포함한 16명이, 2차 예선은 11명이 완등에 성공했다. 출전 선수 모두 막상막하의 실력을 과시했다. 준결선에서 남녀 각각 8명의 결선 진출자가 가려졌고, 남자 결선에 이어 여자 결선이 진행됐다.

<b></div></div>1</b> 김자인 선수가 마지막 홀드를 잡기 위해 온 힘을 다해 팔을 뻗고 있다.<br>
<b>2</b> 네파의 후원을 받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올레나가 마지막 구간에 오르지 못하고 홀드를 놓치고 있다.
1 김자인 선수가 마지막 홀드를 잡기 위해 온 힘을 다해 팔을 뻗고 있다.
2 네파의 후원을 받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올레나가 마지막 구간에 오르지 못하고 홀드를 놓치고 있다.

결선 진출 선수 소개를 한 뒤 약 3분간 루트 파인딩(Route Finding)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김자인은 잔뜩 긴장한 듯 망원경까지 목에 걸고 나와 15m 높이의 홀드들을 망원경으로 아래위로 훑어보며 머릿속에서 루트를 그리는 가상 클라이밍을 했다. 허공에서 손을 여기저기 옮기며 홀드들을 잡는 동작을 연이었다. 너무 진지한 표정이었다.

이윽고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김자인”을 응원하는 소리가 여기저기 들렸다. 그녀가 첫발을 인공암벽 홀드에 내디뎠다. 순간 잠잠했다.

예선루트 난이도는 5.14a 수준, 결선은 5.14c 수준. 잡는 홀드가 손가락 한 개나 두 개 정도의 크기밖에 안 된다. 그 조그만 홀드를 손가락으로 잡고 전체 몸을 지탱해야 한다. 물론 간간이 큰 홀드가 나와 잠시 쉬기도 한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경사가 100도가 넘는 오버행이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1초도 버티기 힘들다.


153㎝의 작은 키를 긴팔과 유연성으로 극복

김자인은 한 발과 한 손씩 차례차례 홀드를 옮겨갔다. 민소매 선수복을 입은 그녀는 여느 남자 선수 못잖은 어깨와 팔 근육이 홀드를 옮겨 잡을 때마다 드러났다. 홀드를 때로는 앞으로, 때로는 뒤로 잡았다. 도대체 어떻게 저 조그만 것을 잡고 몸을 지탱할 수 있을까 싶다. 특히 홀드간 거리가 멀수록 153㎝의 작은 키를 가진 그녀에게는 상당히 불리하게 작용했다. 그럴 땐 보통 사람보다 더 긴 팔과 특유의 유연성으로 극복해 갔다. 경사가 100도가 넘는 인공암벽을 가끔 키보다 더 긴 폭의 다리를 뻗어 옮길 때도 있다. ‘과연 사람의 다리가 저렇게 뻗어갈 수도 있구나’ 할 정도로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월드컵 클라이밍 대회장 주변에 있는 조그만 인공암벽에 헬멧을 쓰고 배낭을 멘 어린이가 엄마의 확보로 암벽을 오르고 있다.
월드컵 클라이밍 대회장 주변에 있는 조그만 인공암벽에 헬멧을 쓰고 배낭을 멘 어린이가 엄마의 확보로 암벽을 오르고 있다.

어느덧 절반 이상 올랐다. 이젠 180도에 가까운 구간이다. 몸이 완전히 거꾸로 매달린다. 잠시 두 팔로 몸을 지탱하더니 이내 스파이더맨같이 천장에 달라붙었다. 몸을 다시 역방향으로 180도, 정방향으로 180도 돌려 정상을 향해 나아갔다.

경사가 180도 가까운 구간에서 110도 정도 되는 구간으로 바뀌는 지점 근처에서 선수들의 탈락이 많았다. 아마 많은 힘을 소진한 뒤여서 마지막 일어서는 힘이 부족한 듯했다. 그러나 김자인은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물 흐르듯 부드럽게 동작을 연결시켜 나갔다. 모든 관객의 시선이 김자인의 동작 하나하나에 고정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마지막 홀드 하나. 사회자도 “김자인~, 김자인~”을 연호하며 힘을 북돋웠다. 그녀의 키보다 더 먼 홀드다. 쭉 뻗은 손가락이 닿을락 말락 했다. 보는 사람이 더 아슬아슬했다. 놓치면 우승도 놓치게 되는 순간이다.

그러나 그녀의 실력은 그녀의 키보다 더 높은 곳에 있었다. 도저히 닿을 것 같지 않은 홀드를 순간이동하듯 어느 순간 잡았다. 그녀의 키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높이였지만 그녀는 노력으로 가능하게 만들었다.

마지막 홀드를 잡은 손과 발끝으로 딛고 있는 홀드를 보고 있으면 조마조마했지만 그녀는 마지막 확보까지 무사히 끝냈다. 그렇게 침착하고 진지했던 그녀도 그 순간만큼은 기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15m의 공중에서 남은 한쪽 손을 번쩍 들어올리며 관중의 환호에 답했다. 올해 월드컵 클라이밍 시리즈의 첫 우승 순간이었다.

그녀는 지난 4월 밀라노에서 열린 국제 볼더링대회에서도 이미 우승했던 터여서 기쁨은 배가됐다. 특히 볼더링에 이어 스포츠클라이밍까지 동시에 석권한 첫 선수였다. 세계 스포츠클라이밍계는 명실상부 그녀를 주목할 수밖에 없고, 그녀의 시대가 활짝 열렸음을 재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날 여자 부문에서는 김자인을 비롯한 캐롤라인 샤발디니(프랑스), 안젤라 이터(오스트리아), 미나 마르코비치(슬로베니아)가 끝까지 완등함으로써 공동우승을 차지했다. 한국 여자 출전선수 중 사솔은 20위, 한서란은 31위에 그쳤다. 김자인은 우승 뒤 “만 16세 때인 2004년 샤모니 대회 첫 출전했을 당시 41위를 하고 그 뒤에도 성적이 나오지 않았는데, 이번에 우승으로 그 징크스를 깨 무엇보다 더 기쁘다”며 “이 대회를 계기로 다음주(7월 넷째 주)에 열리는 세계선수권에서도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자인은 2004년 샤모니 월드컵에서 41위, 2005년에는 결승전 대기 시간을 놓쳐 실격했고, 2007년엔 9위, 2008년엔 부상 탓에 결장했고, 2010년엔 심판의 애매한 판정으로 실격했다. 그러나 지난해 샤모니 이후의 대회에서 5차례 우승에 이어 이번에 월드컵 6연패로 상승세를 타고 있다.

<b></div></div>1</b> 공동 우승한 김자인이 시상대에 올라서 관중들의 환호에 손을 흔들어 답하고 있다.<br>
<b>2</b> 남자 수상자와 함께 시상대에 오른 김자인이 중앙에서 활짝 웃고 있다.
1 공동 우승한 김자인이 시상대에 올라서 관중들의 환호에 손을 흔들어 답하고 있다.
2 남자 수상자와 함께 시상대에 오른 김자인이 중앙에서 활짝 웃고 있다.

이날 경기에서 남자부는 야콥 슈베르트(오스트리아)가 우승한 데 이어 로만 훌리안 퓌그블랑크(에스파니아)가 2위, 메그너스 미트보(노르웨이)가 3위를 차지했다. 한국의 손상원은 예선 1차전에서 완등에 성공하며 선전했으나 이후 다소 실수를 범하는 등 9위를 기록, 결선 진출에 실패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민현빈은 10위, 박지환은 25위, 김자인의 큰오빠인 김자하는 29위, 작은오빠인 김자비는 31위에 그쳤다. 결국 한국 남자 출전선수 5명 모두 결선에 한 명도 진출하지 못하는 부진을 보였다.

올해 만 27세인 김자하는 7월 말에 열리는 세계선수권 출전을 끝으로 현역을 은퇴한다. 그리고 곧바로 입대, 십수 년간의 선수생활을 마감하게 된다.


네파브랜드, 세계적 스포츠클라이밍대회 첫 후원

이번 대회 메인 후원업체인 네파(NEPA)는 이틀 연속 대회 중간에 관객들에게 셔츠를 제공했다. 첫째 날에는 셔츠 200개, 둘째 날에는 셔츠 300개를 서비스, 네파 브랜드 홍보와 동시에 메인 스폰서업체로서 입지를 다졌다.

메인 후원업체인 네파가 대회 중간에 관중들에게 네파 셔츠를 선물하고 있다. 던지는 사람은 네파 프랑스 샤모니 점장으로 있는 크리스티나.
메인 후원업체인 네파가 대회 중간에 관중들에게 네파 셔츠를 선물하고 있다. 던지는 사람은 네파 프랑스 샤모니 점장으로 있는 크리스티나.

네파가 후원하는 강력한 여성 우승후보였던 우크라이나의 올레나 오스타펜코(Olena Ostapenko)는 컨디션 조절 실패 탓인지 36위에 그쳤다. 그녀는 국제대회에서 30여 차례나 우승한 관록 있는 선수였으나 예선조차 통과 못 하는 부진을 겪었다. 역시 180도에 가까운 경사에서 100도 남짓 되는 구간으로 바뀔 때 힘에 부친 듯 떨어져 아쉬움을 남겼다.

그녀는 구 소련 시절 리듬체조 선수로 이름을 날렸으나 우크라이나로 독립 이후 록클라이밍으로 전환, 유연한 자세와 힘으로 승승장구했다. 지난해에는 우크라이나 스포츠계를 대표하는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녀는 “네파의 암벽 등반화는 세계의 어느 제품 못지않게 프릭션이 좋고 뒤틀림이 없어 훌륭하다. 내 성적의 일정 부분은 네파의 암벽 등반화에 있다”며 네파의 지원에 감사를 표했다.

역시 네파의 지원을 받는 우크라이나의 남자 유망주 안톤(Auton Mardashov)도 35위에 그쳤다. 안톤은 180㎝에 이르는 키와 강력한 힘으로 쉽게 출발하는 듯했으나 마지막 순간 너무 쉽게 생각한 듯 홀드를 잡지 못하고 떨어졌다. 그는 “프릭션이 좋은 암벽화를 계속 제공받아 앞으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을 말했다. 그는 1991년생으로 이제 20세를 갓 넘긴 신예로서 장래가 촉망되는 유망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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