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새코스] 영남알프스 하늘억새길

월간산
  • 입력 2011.08.17 09:50
  • 수정 2011.11.17 18:0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늘과 바람과 억새와 길, 유럽 알프스에 온 듯
울산시, 5개 코스 30여㎞ 원점회귀로 조성

영남알프스에 하늘억새길이 열렸다. 영남알프스는 간월산(1,083m), 신불산(1,209m), 영축산(1,059m), 재약산(1,108m), 천황산(1,189m), 가지산(1,240m), 고헌산(1,032m) 등 울산시와 양산시, 밀양시 3개 시도에 걸쳐 있는 해발 1,000m 이상의 7개 산군(山群)을 말한다. 생긴 형상과 풍광이 유럽 알프스에 버금간다고 해서 ‘영남알프스’로 이름 붙여졌다.

영남알프스의 명물은 산의 8~9부 능선 곳곳에 펼쳐진 광활한 평원의 억새밭이 특징이다. 신불산과 영축산 사이 60여만 평의 신불평원, 간월산 아래 간월재에도 10만여 평, 천황산과 재약산에 걸쳐 있는 사자평원의 억새 군락지, 고헌산 정상 부근에도 20여만 평의 억새밭이 새하얀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울산시에서 영남알프스의 가장 큰 특징인 억새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 한때 고민에 빠졌다. 억새를 이용해서 전국의 어느 산 못지않은 경관을 지닌 영남알프스를 알리고 등산객과 걷기마니아들을 유혹할 방법을 찾기에 나선 것이다. 그래서 나온 길이 바로 낙동정맥 종주로의 일부를 차용한 ‘영남알프스 하늘억새길’이다. 밀양에 속한 가지산과 고헌산을 제외한 5개 산군과 능동산을 이어 걷는 동시에 억새를 만끽할 수 있도록 조성했다. 마치 하늘 위에서 억새를 내려다보는 듯하다고 해서 하늘억새길로 이름 붙였다.

영남알프스 하늘억새길은 모두 5개 코스로 구성, 원점회귀가 가능하도록 했다. 1코스는 간월재~신불산~신불재~영축산까지, 2코스는 영축산~청수좌골~죽전마을까지, 3코스는 죽전마을~향로산 갈림길~재약산(수미산)~천황재~천황산(사자봉)까지, 4코스는 천황산~샘물산장~능동산~배내고개까지, 5코스는 배내고개~배내봉~간월산~간월재까지로 나눴다. 총 30㎞ 남짓 되는 거리다.

접근하기엔 69번 도로가 지나는 배내고개나 죽전마을이 좋다. 따라서 5코스 배내고개에서 출발하기로 했다. 울산시청 환경정책과 허상용씨와 권창욱씨가 이틀 꼬박 동행하며 길을 안내했다.

신불산 정상 다다라서 힘들게 올라가는 능선 뒤로 영남알프스의 다양한 산군들이 길게 펼쳐져 있다.
신불산 정상 다다라서 힘들게 올라가는 능선 뒤로 영남알프스의 다양한 산군들이 길게 펼쳐져 있다.

배내고개에서 이들을 만나 출발하기로 했다. 마침 시작된 장마로 전날 억수 같은 비를 맞으며 이미 울산에 도착해 있던 터라 오전 9시 일찌감치 만났다. 배내고개는 맑은 계곡 옆으로 야생 배나무가 많이 자란다 해서 배내골이라 했고, 그 배내골 중에 가장 높은 고갯길을 말한다. 한자음으로는 이천리(梨川里)라 하고, 그 이천리가 바로 행정구역명이다.

배내골 자체가 GPS로 고도 703m쯤 된다. 웬만한 산 정상에서 출발하는 셈이다. 하늘억새길이라더니 정말 하늘로 향하는 듯한 등산로로 배내봉으로 향했다. 길은 나무데크로 정돈이 잘 돼 있다. 참나무가 무성하게 우거져 그늘을 드리운다. 새벽까지 폭우가 쏟아지더니 아침이 밝아오자 거짓말같이 날씨가 활짝 개었다. 이를 천우신조(天佑神助)라고 해야 하나. 하늘에 감사하며 배내봉을 향해 하늘억새길을 걸었다.

5개 봉우리 능선길로 연결
703m 고지에서 출발했는데도 길은 조금 가파르다. 마침 능선 위로 올라섰다. 첫 삼거리다. 동북쪽으로 오두산 2.4㎞, 동남쪽으로 배내봉 1.4㎞란 이정표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벌써부터 억새들이 하늘거리며 방문객을 반긴다. 억새가 하늘거린다고 하늘억새길이라고 했나, 하늘 위에서 내려본다고 하늘억새길이라고 했나.

영남알프스는 큰 산만 7개지만 작은 봉우리까지 합치면 봉우리가 수십 개는 족히 된다. 오죽하면 유럽의 알프스에 비유했을까. 여러 봉우리가 각양각색·형형색색의 모습을 뽐낸다. 때로는 육산으로, 때로는 악산으로.

배내봉은 전형적인 육산에 속한다. 대개 억새는 육산에서 군락을 이룬다. 그러기에 하늘억새길은 푹신한 육산의 길로만 연결된다. 물론 악산도 일부 나오긴 하지만. 악산에 육산이 있어야 명당이고, 육산에 악산이 있어야 명당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육산의 배내봉 가는 길에 동물 배설물도 보인다. 울산시청 허상용씨는 오소리 흔적이라고 한다. 허씨는 이 길을 조성하느라 무려 20번 이상 왔다갔다 했다고 한다. 30㎞를 20회만 걸어도 백두대간 거리에 해당하는 600㎞다. 그에게 걷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다.

1 배내봉 지나서 간월산 가는 길에 나오는 숲속 오솔길의 쉼터. 살아 있는 나무가 마치 자리를 제공하는 것같이 자라고 있다. 2 간월산 정상에서 울산시청 허상용씨가 하늘억새길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1 배내봉 지나서 간월산 가는 길에 나오는 숲속 오솔길의 쉼터. 살아 있는 나무가 마치 자리를 제공하는 것같이 자라고 있다. 2 간월산 정상에서 울산시청 허상용씨가 하늘억새길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배내봉은 해발 966m. 주변 산군이 파노라마처럼 훤히 펼쳐졌다. 북쪽으로 오두산, 서북쪽으로 능동산, 남쪽으로는 간월산, 서쪽으로 천황산·사자봉 등이 우뚝 솟아 있다. 동쪽으로는 명당으로 유명한 롯데 신격호 회장의 생가마을도 보인다. 왜 명당인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유심히 보게 된다. 그 뒤로는 경부고속도로가 나란히 달리고 있고, 등억온천지구도 저만치 자리 잡고 있다.

배내봉 서쪽 사면은 숲가꾸기 모델 숲 조성지다. 나무들이 더욱 우거져 한창 짙은 녹색의 향연을 제공하고 있다. 길도 편안하게 걸을 수 있어 좋다. 시원하게 트인 주변 조망을 끝내고 다시 간월산 방향으로 나아간다. 경사가 급하지 않은 완만한 능선길이다. 길 주변엔 억새들이 하늘거리며 반긴다.

능선 아래로 살짝 내려선 뒤 다시 간월산 능선길로 올라가는 서쪽 비탈에 100년 이상은 된 듯한 대형 철쭉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억새에 철쭉까지 보태어지는 5월 전후쯤 되면 화려한 숲의 향연을 선보일 것 같다.

간월산 정상에 도착했다. 너덜지대 위에 ‘간월산(肝月山) 해발 1,083m’라고 정상 비석이 두 개나 세워져 있다. 여태 전형적인 육산인데 악산 모습도 살짝 보인다. 동쪽으로는 간월공룡능선도 쭉 뻗어 있다. 간월산이란 이름을 아무리 살펴도 뜻을 이해할 수 없다. <대동여지도>에는 ‘看月山(간월산)’으로 표기되어 있고, 등억리의 사찰엔 ‘澗月寺(간월사)’로 돼 있다. 한자가 다 다르다. 단순히 1,500여 년 전 이 산 기슭에 간월사라는 사찰이 있어, 산 이름도 간월산이라 했다고 전한다. 이름만 정해지고 정확한 유래를 알 수 없어 한자표기가 들쭉날쭉한 듯했다.

가는 곳마다 억새평원 펼쳐져
간월산의 동북쪽에 태화강의 지류인 작괘천 발원지가 있다. 그러고 보니 낙동정맥 줄기인 영남알프스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물줄기는 울산 태화강의 발원지가 되고, 서쪽으로는 낙동강으로 합류한다. 낙동강이야 태백에서 시작된 거대 물줄기지만 태화강은 울산의 강으로서 간월산이 발원지인 것이다. 작괘천에서 나온 물이 바로 아래 있는 등억온천의 온천수로 사용되고 있다.

다시 능선으로 간월재대피소까지 그대로 내려간다. 나무데크로 길도 잘 정돈돼 있다. 올라서기까지가 문제지, 올라서면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올라서기까지는 등산이고, 올라서면 걷기 길인 셈이다. 간월재 주변도 억새로 완전 뒤덮여 있다. 정말 스위스 알프스의 어느 곳에 와 있는 듯한 초원 분위기다.

사자고개 주변은 나무데크로 길이 잘 조성돼 있다.
사자고개 주변은 나무데크로 길이 잘 조성돼 있다.

간월재가 5코스 종점이자 1코스 시작점이다. 커다란 돌탑에 간월재란 비석이 있다. 그런데 그 옆에 있는 이정표에 간월산 1,068m, 신불산 1,159m 등으로 표시돼 있다. 지도와 이정표와 정상 비석의 고도 표시가 전부 제각각이다. 간월산만 하더라도 정상 비석엔 1,083m, 이정표엔 1,068m, 지도엔 1,037m로 돼 있다. 그 뒤에 가게 될 신불산도 마찬가지다.

이제부터 1코스로 접어들어 신불산으로 간다. 30여㎞를 5개 코스로 나눴으니 한 개 코스에 6㎞쯤 된다. 좋은 코스를 골라 감상하면서 걸으면 영남알프스 보는 재미와 걷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다. 특히 가는 곳마다 펼쳐진 억새평원은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영남알프스만의 명물로서 감동을 배가시킬 것으로 보인다. 

인생과 마찬가지로 산도, 길도 내려오면 다시 올라간다. 고도 900m 남짓 되는 간월재에서 신불산 정상 1,209m까지 완만한 오르막길이다. 억새 길이라고 해서 전부 햇빛에 노출됐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길 주변으로는 한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소나무와 참나무가 그늘을 드리운다.

능선으로 올라서자 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는 대개 옛날 공비토벌을 위해 빨치산 지휘소가 있던 자리에 세웠다. 산이 깊으면 몸을 숨길 곳이 많으니, 자연 공비들의 좋은 은둔처가 됐다. 영남알프스도 그만큼 깊은 산이라는 얘기다. 신불산은 간월산과 함께 1983년 울주군 군립공원으로 지정됐다.

<국토지리정보원>에 따르면 옛날 산중허리에 신불사라는 사찰이 있어 신불산(神佛山)이라고 불리게 됐다고 한다. 정상에 도착했다. 영남알프스 산군 중에 도립공원 가지산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산이다. 비석엔 1,209m라고 돼 있다. 다른 이정표에는 1,159m, 1,166m 등 높이표시가 들쭉날쭉하다. 영남알프스에 대한 깊이 있고 체계적인 연구나 조사가 있어야 할 것 같다.

동쪽으로는 신불공룡능선이 쭉 뻗어 있다. 공룡능선의 끝자락 즈음에 자수정 광산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나름 유명한 자수정을 생산했다고 한다. 지금은 폐광 비슷하게 파헤쳐진 상태로 방치돼 있다.

이젠 다시 영축산으로 길은 연결된다. 하늘억새길은 정말 하늘과 억새로 연결된 길이다. 1,000m 능선을 오르내리면서 억새 군락을 만끽한다. 이곳도 250만㎢에 억새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신불평원이다. 능선 따라 억새 사이로 걷기에는 너무 운치 있는 분위기다. 한마디로 ‘억새밭 천국’이다.

영축산(靈鷲山)은 취서산(鷲栖山)으로도 불린다. 한글 표기는 영축산·영취산·축서산·취서산 등 여러 가지여서 혼란을 불러 왔다. 이는 한자 ‘鷲’는 보통 ‘취’로 읽지만 불교에서는 ‘축’으로 발음하는 것이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양산시 지명위원회에서 2001년 1월 영축산으로 최종 확정했다.

1 영축산에서 조금 내려오면 단지 모양의 지형에 석성을 쌓은 ‘단조성터’가 있다. 울산시청 권창욱씨가 단조성터에서 내려오고 있다. 
2 능동산 정상에서 조금 내려와 임도로 가기 전에 나오는 쇠점골약수터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3 쇠점골약수터에서 내려와 샘물산장까지는 임도로 계속 걷는다. 이 임도가 울산과 밀양의 경계선이기도 하다.
1 영축산에서 조금 내려오면 단지 모양의 지형에 석성을 쌓은 ‘단조성터’가 있다. 울산시청 권창욱씨가 단조성터에서 내려오고 있다. 2 능동산 정상에서 조금 내려와 임도로 가기 전에 나오는 쇠점골약수터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3 쇠점골약수터에서 내려와 샘물산장까지는 임도로 계속 걷는다. 이 임도가 울산과 밀양의 경계선이기도 하다.

억새밭 사이 고라니·꿩 모습 보여
신불평원의 억새밭 천국을 지나는 길에 인기척에 놀란 고라니가 후다닥하고 도망간다. 간혹 꿩도 화들짝 놀라 비상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억새밭 사이 고라니가 달려가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얼마나 낭만적인가.

영축산에 도착했다. 낙동정맥 영축지맥의 기점이기도 하다. 평원을 지나 봉우리는 바위로 돼 있다. 육산에 이어 악산의 모습을 보이니 이곳이 다시 명당인가보다. 정상 비석엔 ‘해발 1,081m’로 적혀 있다. 삼각점도 바로 옆에서 방향과 위치를 가리키고 있다. 이젠 다시 죽전마을로 하산하면 된다. 걷기엔 너무 좋은 길이지만 하루에 너무 많이 걸으니 서서히 무릎이 아파온다. 또 서서히 지겹기도 하다. 영축산이 1코스 종점이자 2코스 시작점이다.

하산길은 청수좌골로 간다. 길은 억새밭 사이 5m가량이 그냥 자갈땅으로 길게 나 있다. 동행한 허씨는 몇 십 년 전 울주군 공무원들이 억새밭에서의 불을 방지하기 위해 ‘방화벽’으로 억새를 파헤쳤다고 한다. 얼마나 깊게 팠는지 풀조차 자라지 못한 채 아직 볼썽사납게 방치돼 있다.

곧이어 단조성터가 나온다. 억새밭 너머 긴 띠를 형성한 석성이다. 이곳 지형이 단지모양을 이룬다 하여 단지성(丹之城)이라고도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취서산고성’으로 기록돼 있다. 습지도 바로 옆에 있다.

청수좌골 하산길은 참나무숲 사이 오솔길 같은 길의 연속이다. 1시간쯤 내려갔을까, 들리는 물소리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계곡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천으로 합류하기 전에 벌써 물이 넘쳐난다. 별다른 특징 없는 오솔길로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계속 내려가면 된다.

죽전마을이 2코스 종점이자 3코스 시작지점이다. 죽전마을엔 베네치아산장, 영남알프스펜션 등 숙박시설이 즐비하다. 69번도로가 지나는 길이라 접근하기도 쉽다.
배내자연농원 옆으로 가파른 길로 올라서면서 3코스가 시작된다. 바로 숲속이다. 뻐꾸기와 이름 모를 새들의 소리가 여기저기 들려온다. 숲이 우거졌기 때문에 둥지도 많을 성싶다.

제법 길이 가파르다. 앉아서 쉬기 좋은 바위가 나온다. 잠시 쉬면서 다시 주변을 둘러본다. 맞은편 봉우리 꼭대기에 정자 같은 건물이 보인다. 공비 감시초소라고 한다. 옛날에 있던 초소를 없애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조그만 능선에 올라서니 삼거리에서 서북 방향으로 ‘천황산(사자봉)  4.35㎞, 재약산(수미봉) 3.26㎞’라고 이정표가 있다. 바로 그 옆에 ‘여기서부터 습지보호구역입니다’는 다른 이정표도 있다. 삵 등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야생동물과 멧새·붉은머리오목눈이·아무르장지뱀·천마 등 희귀 동·식물이 서식하는 소중한 자연자산이라고 보호를 당부하고 있다.

오솔길을 조금 지나면 드넓은 사자평원이 펼쳐진다. 다시 억새밭이 방문객들을 맞는다. 이곳의 억새평원은 수미봉·사자봉·능동산까지 능선으로 수십㎞ 이어진다. 이 일대 800m고지에 초원녹지를 활용한 목장이 한때 개발되기도 했다.

우뚝 솟은 봉우리가 보인다. 재약산(載藥山·수미봉 1,108m)이다. 하늘억새길에 있는 봉우리들은 전부 너덜지대 위에 정상 비석이 세워져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 지형의 특성인지. <국토지리정보원>에 따르면 재약산이란 이름은 신라의 한 왕자가 이 산의 샘물을 마시고 병이 나아, 그 자리에 영정사를 짓고 약이 실린 산이라고 했다는 데서 유래했다. ‘영정약수(靈井藥水)’를 갖고 있는 산이란 뜻이다.

재약산에서 천황산 사자봉으로 가는 길은 억새 사이로 나무데크가 깔려 있다. 정말 유럽 알프스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다. 저 아래로 목장도 보인다. 지금은 철수했다고 한다.

사자평의 억새밭 사이로 일행들이 걷고 있다.
사자평의 억새밭 사이로 일행들이 걷고 있다.

희귀동·식물 서식 습지보호구역도 나와
나무데크 위로 내려와 털보산장에 다다랐다. 천황재라고 하기도 하고 사자고개라고도 부른다. 산장 앞에는 나무로 만든 의자와 테이블이 여러 개 놓여 있다. 서북 방향으로 천황산 0.9㎞, 샘물상회 1.7㎞ 남았다는 이정표도 있다.

천황산 사자봉이 코앞에 있다. 천황산이 3코스 끝 지점이자 4코스 시작 지점이다. 이젠 마지막 천황산에서 처음 출발했던 배내고개까지 가면 원점회귀한다. 마지막이란 생각에 다시 조금 힘이 붙은 듯하다.

산이 어떻게 이렇게 완만한 능선의 연속일까. 유럽 알프스에 와 있는 듯한 착각에 자주 빠졌다. 단지 차이점은 유럽 알프스는 만년설과 깎아지른 듯한 암벽이 있었지만 영남알프스엔 그런 곳이 없다는 것뿐이다.

천황산과 밀양 얼음골 정상을 지나 어느 덧 샘물산장(상회)에 와 있다. 산장 주인의 억센 경상도 말투가 멀리서도 들린다. 아니나 다를까 도착하니, 일행에 합류, 이런저런 세상사를 얘기한다. “딸이 이화여대 들어가서 연구실에 있다”며 자식자랑도 늘어놓는다. 세상 모든 부모들의 심정이려니 하고 듣는다.

간단한 요기를 마치고 이제부터 마지막 피치를 올린다. 배내고개가 5.8㎞ 남았다는 이정표도 보인다. 길은 바뀌어 임도다. 임도는 밀양과 울산의 경계, 즉 경남과 울산광역시의 경계다. 이 경계는 능동산을 거쳐 석남터널 입구까지 계속된다.

임도 가는 중간 산 중턱에 요새 같은 건물이 하나 들어서고 있다. 밀양시에서 건립하는 케이블카라고 한다. 건물만으로 볼 때 완공이 얼마 남지 않은 듯싶다. 울산시청 허씨는 “오는 10월이나 늦어도 연말까지 완공될 것이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임도로 가다가 산길로 다시 접어드는 길이 쇠점골약수터와 능동산으로 가는 방향이다. 접어든 산길은 조금 가파르지만 분위기가 다르다. 약수터가 있고 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워져 쉴 곳도 많다. 산길을 걷는 재미는 바로 이런 맛이다.

쇠점골약수터에 도착했다. 이전에 약수터 바로 옆에 남근목이 있었는데 누군가 부러뜨려 버렸다고 한다. 아쉽다. 쇠점골약수터와 능동산의 명물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이젠 영남알프스 하늘억새길의 마지막 봉우리 능동산이다. 정상비석에 981m라고 적혀 있다. 배내고개까지 1.7㎞라고 가리키고 있다. 30여㎞를 왔는데 1㎞ 남짓은 새발의 피로 느껴진다. 더욱이 나무계단으로 된 내리막길이다.

산은, 걷기는, 인생은 역시 굴곡이 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힘들게 올라가 쉽게 내려온다. 걷는 일이 역시 철학이다. 영남알프스 하늘억새길은 철학과 사색과 유럽 알프스에 온 듯한 여유와 풍광을 주는 그런 운치 있는 길이다.

드디어 배내고개에 도착, 원점회귀를 마쳤다. 이틀 꼬박 영남알프스 하늘억새길을 걸은 거리는 GPS상으로 첫째 날 17.2㎞에 8시간 26분, 둘째 날 14.2㎞에 6시간 37분 등 총 31.4㎞에 15시간여 동안 다리를 고생시켰다. 이틀 낮 시간을 종일 걸은 셈이다. 너무 좋은 길을 너무 힘들게 걸은 영남알프스 하늘억새길이다. 다음에 가면 꼭 운치 있게 걷고 싶다.  

INFORMATION
교통 서울 출발 기준 승용차로 경부고속도로에서 서울산IC에서 우측으로 빠져나와 언양교차로를 타고 가다 덕현교차로로 갈아탄다. 여기서 69번 도로로 계속 가면 배내고개가 나온다. 약 4시간 30분 소요.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20분 간격으로 서울-울산 간 고속버스가 운행한다. 일반 2만2,000원, 우등 2만9,300원, 심야 3만2,200원. 약 4시간 30분 소요. 고속버스나 시외버스터미널에서 1713번을 타면 석남사까지 간다.
KTX도 서울에서 울산역까지 바로 운행한다. 동대구 경유하는 노선도 있어 소요시간은 4시간 내외 걸린다. 주말과 공휴일은 4만9,500원, 평일은 4만6,300원.
맛집(지역번호 052) 배내골 죽전마을 주변엔 콘도와 펜션, 민박시설이 많다. 그중  현지에서 추천하는 음식점은 청수골식당(264-5252), 베네치아토종음식점(264-8188) 등이 있다. 울산시청 옆에 있는 한식 미가(268-3444)도 꽃게된장과 생삼겹살이 별미다.

저작권자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