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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해외 오지 여행] 몽골 고비사막

월간산
  • 입력 2011.11.21 10:34
  • 수정 2011.11.29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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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나를 찾는 황무지 여행
‘몽골의 황무지’ 고비사막 1,600km 횡단기

사구를 넘다 더위에 지쳐 쉬고 있다. 수레바퀴가 굴러가지 않아 밀고 끌어도 제자리 걸음이다. 2시간 전에 출발한 캠프가 보인다.
사구를 넘다 더위에 지쳐 쉬고 있다. 수레바퀴가 굴러가지 않아 밀고 끌어도 제자리 걸음이다. 2시간 전에 출발한 캠프가 보인다.

5월 어느 날 남편의 원정등반 준비모임에 선배언니와 함께 남영호가 왔다. 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각자 준비하고 있는 여행에 대하여 얘기를 나누던 중 “고비사막 여행을 준비하고 있는데 홀로 떠나기 망설여 보류했다” 말하자 영호 역시 같은 이유로 고비사막 여행을 보류했다고 한다. 우리는 7월 중순 함께 고비횡단을 하기로 의기투합했다.
출발 전 나는 내 스스로의 마음을 다지기 위해 머리카락을 짧게 잘랐다. 씻지 못할 것과 여자티를 내지 않기 위함이다. 나의 절친한 친구인 정아는 내가 부담을 많이 갖는 것 같아 보인다며 가벼운 마음으로 놀다오라고 한다. 오랜만에 떠나는 고비여행에 마음이 들뜬다.

나는 이번 여행 후엔 일상에 충실하고자 생각하고 있다. 최근 몸의 여러 곳이 아프고 기억력이 떨어졌다. 2004년 우정공로 자전거 여행 후부터 만성피로가 생겼다. 몸이 무리한 운동과 욕심을 견디지 못하는 것 같아 이번 여행을 멋지게 하고 일터와 가정을 오가는 충실한 어머니가 되려 한다.

‘풀이 잘 자라지 않는 거친 땅’ 고비
영호는 트레일러를 끌고 나는 배낭을 메기로 했다. 일주일 동안 마을을 만나지 못하는 구간이 있어 우리가 가지고 가야 하는 물 무게가 만만하지 않아 수레를 끌기로 한 것이다. 수레는 나와 영호가 번갈아 끌게 될 것이다. 좋은 기록을 남기겠다는 욕심에 소형 비디오카메라를 준비했고 디지털카메라, 휴대폰까지 챙겼다. 기자재에 들어가는 짐의 너덜거리는 선들만큼 내 머리가 복잡해진다. 수도를 벗어나면 휴대폰이 연결되지 않으니 만약을 대비해 위성전화도 챙겼다.

두 달 동안 자리를 비우니 마음이 무겁지만, 쌓여가는 일상의 것들은 나 없이도 돌아갈 것이다. 문득 몇 해 전 느닷없이 떠난 선배언니가 생각 났다. 장비를 꾸리고 나섰다가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을 보내며 길을 나서는 데 미련이 의미 없음을 알았다. 버리고 버려도 짐은 배낭에 넘쳐 손가방을 따로 들었다. 남편은 밤새 꾸려놓은 내 짐을 보고 몽골에 가서는 짐을 반으로 만들라고 한다. 덜어내지 않는다면 두 달 동안 등에 지고 걸을 수 없을 것이다. 무엇을 버려야 할까?

사구에서의 마지막 날이 될 것 같아 기념사진도 찍고 오전을 보냈다.
사구에서의 마지막 날이 될 것 같아 기념사진도 찍고 오전을 보냈다.

울란바토르 공항을 나서니 젊은 청년이 우리의 이름이 인쇄된 종이를 가지고 기다린다. 젓갈과 황태를 받고 기뻐할 ‘몽랑’이란 분을 생각하니 즐겁다. 그런데 예약된 숙소가 아닌 뒷골목 낡은 아파트에 내려준다. 사진에서 본 곳은 통나무집인데 그곳은 멀다며 그냥 자라고 한다.

“몽골에 오면 연락해”, 술자리에서 인사 나눈 선배의 말이 떠올라 영호가 전화기를 빌려 연락한다. 그 선배는 “당장 나 있는 곳으로 와!”라고 했다. 맥주와 꼬치구이를 대충 먹고 자리를 옮겼다. 지인을 만나 바닥에 술상을 깔아 놓으니 텐트 속같이 마음이 편안하다.

고비는 아름다운 사막이 아니다. 몽골어로 ‘풀이 잘 자라지 않는 거친 땅’이란 뜻이다. 거칠고 양분 없는 황량한 돌길, 가시밭길 흙길이다. 모래사막 지역은 매우 적고 넓은 초원에 말과 낙타가 머문다. 서쪽의 산지는 암석지대로 기후변화가 심해 구월에 우박이 내리고 폭설과 함께 겨울이 시작되는 곳이다.

태양이 가장 무섭고 바람과 파란 하늘은 위안이다. 유목민 개는 무섭지 않다. 주인 말에 잘 따르며 용맹하나 선하다. 추위가 시작되면 술을 많이 마시고 칭기즈칸의 자부심이 크다. 술에 취하면 심하게 거칠어져서 시비가 생긴다. 낙타와 말보다 사륜차와 오토바이를 주로 이용하고, 월 소득에 비해 물가가 많이 비싸다.

공사현장에서 우리를 따라 집을 나온 아롱이는 고인 빗물이 나오면 마시고 목욕을 한다.
공사현장에서 우리를 따라 집을 나온 아롱이는 고인 빗물이 나오면 마시고 목욕을 한다.

게르를 방문하면 차와 튀긴 과자, 사탕 등을 주며, 내부에서 쉬어갈 수 있도록 배려한다. 며칠째 라면만 먹으며 걷다가 배가 고프면, 언덕 위 게르의 수태채(우유차)와 하얗고 말랑한 야쿠르트 생각이 간절해진다. 차를 세 사발 마시면 갈증과 허기를 면할 수 있어 나는 언제나 권하는 대로 마신다. 염소젖 표면의 굳은 것을 설탕을 뿌려 먹으면 맛이 좋다.

석유시추현장과 광산개발캠프에서 물과 사람, 도로를 만난다. 그러한 것들을 떠나 왔건만 고비에선 그곳에서 위안을 얻는다. 손을 씻을 수 있고 밥과 고기를 먹을 수 있다. 디스커버리 캠프가 있는 작은 사구지역은 유명한 관광지로 많은 차량과 관광객이 머물며 낙타를 타거나 휴식을 취한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전기를 마음껏 쓴다는 것, 하얀 시트가 깔린 포근한 침구에서 안전하게 잠든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은하수 가득한 하늘 아래 아무도 없는 벌판, 모래사구 가운데, 모처럼 만난 돌산 위에 지어진 텐트가 우리에겐 더 행복한 잠자리이다.

마을에 들어서면 방문 기념으로 콜라를 마시고 도시를 떠날 때는 다시 야영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매번 행복하다. 무거운 물을 가득 끌고 지는 첫날은 무게만큼 마음이 든든하다. 종일 돌밭을 걷다가도 해질 무렵이면 두어 시간을 걸어 모래 언덕 너머 아무도 우리를 볼 수 없는 곳을 찾아 별을 보며 잠든다.

방송을 통해 보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낙타를 타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한국의 영상자료에 한복을 입은 여인과 갓 쓴 남자를 찍어 방송하는 것과 마찬가지라 이해했다. 종일 한 사람도 만나지 못한 날 언덕 위의 게르를 보면 집 앞에 차가 있는지, 오토바이가 있는지 살폈다. 가끔 말을 타고 양을 모는 아이가 있지만, 오토바이를 타고 모는 경우가 더 많다.

1 사구 속에서 밤을 보내면 사구와 헤어지기 싫다. 사구와 기념촬영. 
2 율린암 중간에서. 거친 돌길을 강제로 수레를 끌고 넘어가야 한다.
1 사구 속에서 밤을 보내면 사구와 헤어지기 싫다. 사구와 기념촬영. 2 율린암 중간에서. 거친 돌길을 강제로 수레를 끌고 넘어가야 한다.

양떼 무리의 대다수는 염소다. 들판에서 만난 낙타와 양떼는 일제히 고개를 돌려 등장인물을 주시한다. 막막한 날 낙타에게 길을 물었다. “너 집이 어디니?” 이곳을 벗어나는 길을 녀석은 알 텐데 말을 안 한다. 새에게도 물어 본다. 이 산을 벗어나려면 어느 쪽으로 갈까? 가슴에 달린 GPS에 의존해 직선으로 간다. 바퀴자국이 넓게 난 길을 버리고 모래 위에 발자국을 만드니 아쉬움과 흥분이 한통속이 된다.

내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지치고 의욕을 잃은 날 영호는 자신의 트레일러에 내 트레일러를 연결했다. 배낭을 메고 뒤에서 밀어주었다. 자신의 짐을 해결하지 못하니 마음속이 엉망이 되어간다. 예정된 물은 네 통. 여섯 통을 넘기고도 갈증이 계속된다. 반통을 남기고 아롱이와 물을 나누어 먹는다. 녀석은 다른 개에 물린 상처에 달라붙는 파리를 쫓느라 애쓰고, 우리도 씻지 못해 등판에 파리가 가득 붙어 여간 귀찮지 않다.

줌바얀을 떠나 선택한 산길은 이틀간 행복했다. 모처럼 산을 보니 기운이 난다. 약간의 골짜기 땅 아래 물이 모이고 우물 주변은 말과 낙타, 양, 염소 모두 물을 향해 있다. 주변은 온통 배설물로 가득하지만 물을 본다는 것은 신선하다. 물이 흘렀던 흔적만으로도 시원함을 느낀다.

유목민에게 길을 물으니 북쪽으로 산을 내려가라 하는데 우리는 눈짓으로 가던 길을 오르기로 합의한다. 의욕과는 상관없는 태양의 성화에 모처럼 만난 나무그늘 아래로 달려가 간식을 먹고 쉬며 점심식사를 한다. 모래계곡을 내려가 물을 퍼올려 머리를 감는다. 물은 탁하지만 차가워 몸서리를 친다. 셔츠를 적셔 보지만 이내 마르고 시계의 온도계가 50℃를 육박한다.

얼마나 더 갈 수 있을지 도로로 내려갈 기회를 두 번 거절하고 나니 모험 분위기가 난다. 해질녘이 되어 캠프를 찾을 땐 마음이 급하다. 많이 걷지 못한 날은 더욱 걸음이 아쉽다. 그때 핑계가 되어주는 것은 펑크-. 곧 타협에 들어가고 스스로 위안하며 “최선이었다” 말하며 등산화 끈을 풀고 텐트를 친다. 밤은 은하수가 흩뿌려졌다. 별을 보며 감탄한다.

1 오아시스 마을에서 울타리 안에 기르는 채소를 구경하고 당근 옮기는 것을 도와주었다.
2 율린암 초입. 모처럼 풀과 계곡물소리를 듣고 지나가는 관광객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어서 즐겁다.
3 에너지 포인트는 기가 모이는 곳이라고 한다. 주변에 절을 새로 짓고 있다.
1 오아시스 마을에서 울타리 안에 기르는 채소를 구경하고 당근 옮기는 것을 도와주었다. 2 율린암 초입. 모처럼 풀과 계곡물소리를 듣고 지나가는 관광객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어서 즐겁다. 3 에너지 포인트는 기가 모이는 곳이라고 한다. 주변에 절을 새로 짓고 있다.

눈과 가슴을 위안하는 산도 존재하지 않는다
길은 때로 굵어지거나 흐려진다. 도로를 만나기를 갈망하게 되었다. 산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목표다. 힘들어 절절매는 방황하는 영혼을 그대로 노출시킨 고비는 멋진 모래언덕도 잠시뿐이고 눈과 가슴을 위안하는 산도 존재하지 않는다. 바퀴흔적은 사라지고 마음속에 햇살이 사라졌다. 도로만 만나면 차를 탈 수 있을 거야! 그래야지, 그리곤 여행을 끝내야겠어. “영호야, 너라도 완주해라.” 출발 며칠 만에 모든 의욕이 사라졌다. 수레를 끌면 곧 지쳐 수레에 끌려가는 형상이고 도보 속도도 쳐진다. 실망과 좌절로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럴수록 우리 둘의 운행방향은 차이가 난다.

발에 채인 흙의 느낌, 작은 가시나무 이따금 바람에 실려 오는 허브향, 스틱으로 툭툭 쳐보지만 바람이 털어내는 향기만 못하다. 숫자를 세며 걷는다. 계속되는 공허함.
이곳에 왜왔을까?

도시 변방의 흡사 계속되는 공사장 같은 황량한 길을 걷는다.

이곳에 왜 왔을까!

18년 전 큰아이를 걸리고 작은아기를 안고 큰 배낭을 메고 인수야영장에 오르며 속절없이 흐르던 눈물. 텐트와 침낭, 기저귀와 두 끼의 식량…, 배낭이 무겁고 아이를 채근하기 힘들어 울어버렸다. 빤히 바라보는 딸아이를 피해 고개를 돌리고 씩 웃으며 예쁜 볼에 뽀뽀를 하거나 엉덩이를 토닥여 가벼운 걸음을 칭찬했다.

그 눈물은 이유가 있었다. 실컷 산행할 수 없는 분노. 명절날 속세의 총알받이로 남겨지거나 억지를 부려 힘겹게 산행을 고집했다. 그러나 지금은 갈등도 열정도 없는데 자주 접질려 아픈 발목과 퉁퉁 부은 손가락, 위염으로 애쓰고 있는 몸을 가지고 고비에 들어와 긴 시간 먼 거리를 걸으려 한다. 두 달을 어찌 채울까?

영호의 걸음을 좇아 구구단을 외우며 박자를 서두른다. 앞서가던 영호가 멈추면 더럭 겁이 난다. “펑크 났니?” 수레와 사람 서로 끌려가는 모양이다. 흙벽을 파고 태양을 피한다. 달궈진 대기와 돌들로 인해 본드가 녹아내려 구멍 난 튜브를 때울 재간이 없다.

꿈꾸던 오아시스 디스커버리캠프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주지 못했다. 물과 부식을 보충할 수 없다. 물과 빵을 구하고 남쪽의 사구로 수레를 끈다. 캠프의 여행자들이 손을 흔든다. 의기양양하게 출발했으나 속도가 나지 않으니 시간이 흐를수록 민망하다. 모래언덕 속으로 숨는다. 사구 속에서 자고 싶다. 사구의 보드라운 속살에 짐을 부리고 큰 방수백을 들고 땔감을 구하러 나서고 텐트를 친다. 라면에 마늘 맛 나는 풀을 넣어 끓인다. 하늘은 붉다.

홈스굴 10km 전에 홀로 있는 게르. 친절하고 행복한 가족 모습에 남은 일정을 접고 휴식을 취했다.
홈스굴 10km 전에 홀로 있는 게르. 친절하고 행복한 가족 모습에 남은 일정을 접고 휴식을 취했다.

밤새 모닥불을 피우고 근처 언덕으로 촬영을 간다. 랜턴에 라이터까지 동원하고 낄낄거린다.

온통 뻐근한 몸을 모닥불 모래 찜질방에 풀고 침낭까지 가져다 덮은 다음 나무 타는 냄새 맡으며 잠이 든다. 허리 아파하던 영호는 한사코 찜질을 사양한다.

날이 흐리다. ‘비만 오지 말아라, 그쳐라’ 주문했건만 빗줄기가 거세다. 무장을 하고 사구를 넘는다. 오전까지 내린 비가 마르기 전에 통과해야 한다. 모래가 젖어 단단해져서 우수한 성적으로 모래 산을 넘었다. 바퀴 자국을 만나 웃으며, 쉬는데 하늘 한편이 검어 온다. 사구 통과를 자축하느라 잠자리를 찾아 사구로 두 시간을 들어간다. 사구에 들면 사구를 나오려 하고 길에서는 사구를 찾아들어 텐트를 친다. 넘어온 사구를 다시 넘어가며 사구와 멀어지는 것을 아쉬워한다.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하루의 물은 4통. 더운 날씨의 고비에서 늘 물이 모자랐다. 그런데 영호는 더위를 못 이기고 물을 마시다가 몸에 뿌린다. 물과 식량이 모자라지 않고 다음 목적지까지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내가 아낀 만큼 영호는 여유로운 것 같다. 양치를 물 없이 하자고 권해 보지만 자기는 할 수 없다고 한다. 나는 언제나 배고파하고 많은 짐을 이동하는 영호에게 물과 간식을 더 먹도록 하지만 그런 일들이 짜증스럽기 시작한다.

관광객이 많이 들르는 큰 도시인 달란자드가드 주변은 10km 전부터 거대한 쓰레기장이라 충격이 컸다. 아무것도 남기고 싶지 않았지만 우리는 매일 4~6통의 큰 패트병과 라면 봉지를 태운다. 한국에 돌아가면 물을 아껴 써야겠다.

가고 싶은 길을 말하면 그러라고 한다. 네가 더 힘들지. 힘들 때면 자신이 선택한 길이어야 참을 수 있을 것 같아 따라주지만 산악부 후배들과 비교하면 참으로 말을 안 듣는다. 물품을 구매할 때는 숫자를 세고, 그것을 먹을 때는 본능대로 먹으니 풍요롭던 물자가 종래에는 바닥나기 일쑤다. 지적을 해도 고치지 않으며, 힘으로나 의지로나 내가 더 영호보다 나아야 잔소리를 하거나 혼을 낼 텐데 그럴 수도 없으니 갑갑하다.

알타이산맥이 시작되는 산지로 들어서니 급격히 춥다. 고비의 구월은 겨울이 될 수 있다. 아침저녁으로 움직이기가 싫어졌다. 가지고 있는 옷을 모두 껴입는다. 짐으로 가지고 다니는 것은 양말 두 켤레와 팬티 두 장, 우리의 짐은 너무도 완벽하다.

스틱을 같은 방법으로 짚고 가는 것도 힘이 들다. 숫자를 세거나 구구단을 외우며 걷고 있다.
스틱을 같은 방법으로 짚고 가는 것도 힘이 들다. 숫자를 세거나 구구단을 외우며 걷고 있다.

새들이 물을 먹는 곳이 있다. 씻고 싶어서 야영을 하자고 했다. 주변을 정리하고 씻으니 영호가 텐트도 치고 라면도 끓인다. 새벽에 오토바이가 세 대나 지나가 긴장했다는데, 나는 너무도 편하게 잤다. 영호는 여행 중 강도를 당했던 기억 때문에 캠프지에서 사람 만나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비가 조금 내리더니 찬바람과 우박이 떨어진다. 더위에 못 견딜 지경이더니 이틀 전부터 추위가 두려워졌다. 질러가는 길을 택하고 산을 넘으니 야영지가 마땅하지 않다. 숨어 야영할 수 없으면 게르에 의지하는 것이 최선이라 산 쪽 게르를 향해 간다. 게르의 할아버지는 비가 올 거라고 게르 안에서 자라 하셨다.

새벽까지 눈이 펑펑 내린다. 우박과 찬바람 검은 구름이 어둠을 빙자해 모든 것을 눈으로 덮었다. 나는 잠에서 깨며 감탄을 하고 이내 탄식을 한다. 어찌 갈까!? 한치 앞이 보이지 않게 가스가 찼다. 바얀 온도르, 찬드마니. 그곳에 가야 한다. 산 아래로 구불대던 길들은 모두 덮이고 푸르공(승차감은 좋지 않으나 힘이 좋아 산도 오르는 러시아제 차량)도 다니지 않는다.

갈등과 나약함을 모두 느낀 여행으로 기억될 듯
영호는 사막화에 양기름을 녹여 바른다. 낡은 고어 재킷에도 기름을 먹인다. 얇은 점퍼 소매를 잘라 다리에 끼우며, 방수주머니를 잘라 내 스패츠도 만들어준다. 운행을 강행한다면 참 멋지겠지만 준비 없이 출발하는 것에 반대했다. 마을까지 남은 거리는 50km. 지금 상황으론 사흘은 족히 걸릴 것이다. 보온복이 전혀 없고 식량도 바닥난 상태에 초코파이와 약간의 간식만 남아 있다.

좁은 공간에 식량까지 축내고 머무르는 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게르를 나선 순간부터 위험에 노출될 것이다. 눈이 그칠 것을 예상해 출발한다면 유목민에게서 식량을 구해서 출발해야 한다. 계속 눈이 내리면 어쩔 거냐고 영호가 다그쳐 묻지만, 날이 계속 흐리고 겨울이 시작된다면 더욱이 대책을 세우고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식량과 복장을 보강하고 출발하거나 차량을 이용해야 한다. 무언가를 의식해 위험을 만들어 놓고 벗어나기 위해 허덕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동차를 준비해 출발했다. 깊은 웅덩이를 피하며 차바퀴가 돌 때는 겁이 났지만 주변에 부딪칠 것이 아무것도 없는 넓은 평원이니 나중엔 재미있기까지 하다. 한참을 달리다가 GPS 생각이 났다. 차에 실을 때 배낭에서 달랑거리며 거추장스러웠어야 했는데 그런 기억이 없다. 우리의 운행기록을 담은 중요한 자료인데 없다면 큰일이다.

“확인해서 없으면 어쩔 건가요. 돌아갈 건가요?”

영호가 묻는다. 찾으면 마음 편히 가는 것이고, 없으면 온 길을 돌아갈지 GPS를 포기할지 그때 결정할 거라 했다. 차를 세워 배낭을 확인하니 없다. 어젯밤 우리를 만나러 왔던 사람들 얼굴이 스치면서 기분이 나빠졌다. 배낭 안의 짐들을 하나씩 꺼내 살펴보지만 없다. 혹시나 하는 기대로 영호 배낭을 여니 GPS가 들어 있다. 영호가 우연히 챙겼는가보다. 다행이다. 잠시나마 마을사람들을 의심한 것이 미안했다.

디스커버리캠프. 10km 전에 트레일러가 고장나 배낭에 짐을 가득 넣고 영호는 본체를, 나는 바퀴를 지고 도착했다.
디스커버리캠프. 10km 전에 트레일러가 고장나 배낭에 짐을 가득 넣고 영호는 본체를, 나는 바퀴를 지고 도착했다.

차를 타고 가며 GPS를 잊고 있던 나를 영호가 원망한다. 자신이 챙겼는지 몰랐다고. 찾게 해서 미안하다고 하는 게 맞는 것 같은데 챙기지 않은 내 책임이라고 한다. 찾았으니 되었다고 했지만, 나는 말을 줄였고 영호는 웃기는 유머를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깨워도 일어나지 않던 잠 많은 영호가 찬 새벽부터 부지런을 떨고 나는 움직이고 싶지 않다. 움직이더라도 근처 식당에서 밥이라도 먹고 부식도 사고 천천히 출발하고 싶다.

나는 떠나고 싶어 하는 영호를 먼저 보냈다. 화를 낼 것 같아 이틀 후 만나자고 제안했다. 떠나는 뒷모습을 쳐다보다 고개를 돌렸다. 그간 버릇없던 행동들이 밉기도 하고 속 좁은 내가 한심하기도 하다.

마음의 병이 몸을 아프게 했는지 탈진해서 병원신세를 졌다. 이틀 만에 만난 영호는 그간의 사건 사고를 쏟아놓는다. 과일을 좋아하는 영호를 위해 나도 사과를 사왔는데, 테이블에 엄지만 한 크기의 미니사과 한 봉지가 놓여 있다. 이틀 동안 영호가 끓여주는 흰죽을 먹고 나담 축제를 구경했다. 마을은 밤늦도록 파티가 계속된다.

도보여행이 끝났다. 고비를 떠나는 데 아쉬움도 없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표를 앞당기고 싶은 생각뿐이다. 술병을 허리에 차고 마지막으로 등장한 취객과 긴 버스여행을 시작한다.

처음으로 걷고 싶지 않았던 날 나는 모든 게 틀렸다고 생각했다. 갈등과 나약함을 모두 느낀 여행으로 기억될 것 같다. 아파서 차를 타고, 추워서 차를 탔다. 물과 식량이 바닥나 오토바이를 탔지만 걷기 싫었던 것이 그 날의 솔직한 마음이어서 부끄러웠다. 낙타나 말을 타고 이동해 보고 싶었는데, 낙타는 교통수단으로 쓰이지 않고, 말은 양떼를 몰 때나 탄다. 고비 사람들도 가까운 곳은 오토바이를 이용하고 먼 곳은 차량을 이용하고 있었다. 게르를 싣고 이사하는 낙타 모습을 기대했지만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몽골 고비사막 도보탐사
기간 7월 21일~ 9월 20일
경로 울란바토르(Ulaanbaatar) → 열차 → 사인산드(Saynshand) → 주바얀(Zuubayan) → 홉스골(Hovsgol) → 하단불라그(Hatanbulag) → 한보그드(Hanbogd) → 달란자드가드(Dalanzadgad → 홍린 엘스(Hongryn els) → 바양리그(Bayanlig) → 시네진스트(Shinejinst) → 찬드마히(Chandmahi) → 알타이(Altay) → 버스 → 울란바토르
총거리 1,600km 중 1,100km 도보. 일부 구간 오토바이, 자가용, 버스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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