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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특집 알파인스타일 등반 | 토론회] “스타일이 등반의 목적이 될 순 없다”

월간산
  • 입력 2012.01.05 14:36
  • 수정 2018.08.06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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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인스타일 등반의 목적과 방법에 대한 산악인 난상토론

지난 12월 14일 월간산 편집실에서 열린 알파인스타일 등반 토론회에서 김창호씨가 의견을 발표하고 있다.
지난 12월 14일 월간산 편집실에서 열린 알파인스타일 등반 토론회에서 김창호씨가 의견을 발표하고 있다.

 ‘알파인스타일 등반만이 최고의 등반인가. 해발 8,000m대 노멀루트 등반은 이제 가치가 없는 것인가. 서구의 첨단 등반가들이 추구하는 알파인스타일 등반을 우리도 좇아야 하는 것일까. 유럽은 알프스에서, 미국은 알래스카에서, 러시아는 중앙아시아 일원의 고산과 고난도 거벽이 수두룩한 카프카스에서 알파인스타일 등반을 틈틈이 체험할 수 있다. 우리 여건은 어떠한가. 기술과 능력은 될까.’

언제부터인가 ‘알파인스타일 등반’이 히말라야 등반의 정석으로 자리잡았다. 반면 한국 히말라야 원정대가 40년 넘게 정석으로 택해 온 극지법식 등반은 가치 없는 등반으로 폄하되기에 이르렀다.

지난 12월 14일 오후 광화문 월간산 편집실에서 현역 히말라야 등반가들이 자리를 함께해 알파인스타일 등반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이 자리에는 파릴랍차 북벽 등반을 비롯해 여러 해 동안 알파인스타일 등반을 추구해 온 유학재(휠라스포트 기술고문)씨와 최석문(노스페이스)씨, 8,000m급 13개 고봉 무산소 등정자 김창호(몽벨 기술자문)씨와 8개봉 등정자 김미곤(한국도로공사, 버그하우스)씨, 그리고 고산 등반 평론가 오영훈(서울농대 OB)씨와 히말라야 등반 전문 여행사 유라시아트렉 대표 서기석씨, 2011년 산악대상을 휩쓴 박희용(성남 스파이더맨, 노스페이스)씨, 2007년 에베레스트 남서벽 원정대원인 이형모(관동대 OB)·정찬일(용인대 OB)·김영미(강릉대 OB)씨, 이성재(인하대 OB)씨 등 15명이 참석해 진솔한 대화를 나누었다.

종합적인 등반 능력과 창의성 뒷받침돼야 가능한 등반
한필석 최근 안타깝게도 우리 모두가 사랑하고 아끼는 선후배들이 산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사고를 감수하며 계속 알파인스타일 등반을 해야 하는가. 최근 두 번의 사고를 어찌 생각하나? 

유학재
유학재

유학재 인재가 아니라 천재다. 등반이 미숙해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특히 박영석 사고는 천재다. 대응능력으로 처리를 잘 했는데 어이없이 사고를 당한 것 같다. 김형일 사고는 쉬다가 그랬다는 건 눈의 붕괴나 일종의 천재가 아닐까 싶다. 안나푸르나는 눈사태가 많았고, 촐라체는 내가 인근에서 등반할 때에도 화이트 아웃이 심했다. 안정적인 날짜를 잡기 어려웠을 것이다. 

김창호 등반자들이 알파인스타일을 하면 베이스와 의사소통이 줄어든다. 그래도 박영석팀은 상황을 알 수 있는 상태였지만 촐라체 팀은 내용을 알 수 없었다. 1992년 프랑스팀과 루트가 거의 같다. 검증이 된 상태다. 낙석과 눈사태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박영석 대장이 초겨울 등반을 결정한 것도 거기에 있다고 본다. 오후가 되면 가스가 끼고 상황이 안 좋다. 객관적 위험을 계획상에 연구하고 분석해서 모두 커버할 수 있다면 등반을 안 갈 것이다. 대비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촐라체 추락사는 판단이 어렵다고 본다.

유학재 휴식 중이라는 무전을 받았고 시신이 침낭 속에서 발견되었으며 두 대원이 10초 이상 차이를 두고 추락했다. 줄이 묶여 있지 않았다는 것을 볼 때 휴식 중 지형의 변화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개인적 소견이다. 얇은 눈에서 주저앉는 경우도 있다. 위에서 쏟아진 눈에 밀려 떨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김창호 북벽이라 건조하다. 2005년 박정헌 등반 때도 곤란했다.

유학재 촐라체는 10일 동안 화이트 아웃이었다. 위에선 눈이 내리는 상태였으리라 본다. 

김창호 국제산악연맹(UIAA)에서 정의한 바에 의하면 알파인스타일 등반(Alpine Style Climbing)은 등반인원은 6명 이내, 로프는 팀당 1~2줄, 고정로프는 사용하지 않으며 다른 팀이 이미 설치한 고정로프도 이용하지 않는다. 여기에 사전 정찰등반을 하지 않고, 고소포터나 셰르파 기타 지원조의 지원을 받지 않으며 산소기구를 휴대하거나 사용하지 않는 등반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조항들은 히말라야 등반에 있어 어떤 규제라기보다 하나의 가이드라인으로 불 수 있을 것 같다. 

 오영훈 외국에서는 알파인 등반이란 용어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 외국 클라이머들의 경우 6,000m대 봉에서는 당연히 알파인스타일로 등반하기 때문일 것이다. 단지 6,000m가 넘는 고봉을 알프스 등반 스타일로 등반하면 알파인스타일 등반이라 표현하고, 그런 등반을 슈퍼 알파인 클라이밍(Super Alpine Climbing)이라 일컫는다. 물론 8,000m대에서 이루어졌다면 당연히 알파인스타일 등반을 했다고 표현한다.

히말라야 원정대의 90%가 8,000m급 고봉 노멀루트를 등반한다. 알파인스타일 등반이 차지하는 비중은 3% 정도다. 국가로 따지면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미국, 일본, 그리고 요즘 들어 중국의 몇몇 클라이머들도 알파인스타일 등반에 나서고 있다. 

한필석 알파인스타일 등반을 규정한 의미가 무엇인가.

김창호
김창호

김창호 국제산악연맹이 기준을 정해 놓기는 했지만 굳이 그 기준에 맞추려고 무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외국 클라이머들은 등반 스타일에 신경 쓰지 않는다. 스타일은 등반 방법일 뿐 목적이 될 순 없다고 생각한다. 가고자 하는 산에 맞는 등반 스타일과 파트너를 찾아내는 게 더 중요한 일이다. 담을 허물고 자유스럽게 등반하는 게 등반 철학에 더 어울리고, 등반의 본질 면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말로리는 “산이 거기 있으니까”라고 말했다. 하버드대 학생의 질문에 말로리는 에베레스트에 가면 지질학자가 원하는 룰과 한계 검증의 장소, 도전의 장이다. 그런 것들이 거기에 있다. ‘Because it is there.’  말로리가 말한 ‘it’은 바로 그러한 것들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it’은 무엇인가?

한필석 세미 알파인이나 알파인 등반이란 말을 외국에서도 쓰나?

오영훈 세미 알파인 등반은 외국에선 쓰지 않는다. 

유학재 세미 알파인은 있다. 

김창호 에이드 클라이밍의 원푸시를 알파인 등반에 넣어야 하나?

유학재 에이드 클라이밍은 알파인 등반에 들어가지 않는다 본다. 

유학재 알파인스타일 등반은 고난도 등반이다. 암벽, 빙벽, 혼합 등반뿐 아니라 비박 테크닉에 이르기까지 종합적인 등반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 한 해 겨울 설악산에서 1박2일 등반을 두어 번 한 것이 고작인 사람들이 알파인스타일 등반을 하겠다고 나서는 게 문제다. 도전하고자 하는 산에 걸맞은 기술을 모두 배우고 나서야 한다.

또한 대원이 여럿인데 한두 명에 의존하는 원정에 나서면 절대 안 된다. 극지법 등반의 경우는 한두 명이 길을 내주고 나머지 사람들이 뒤좇으면 된다. 그러나 알파인스타일 등반은 다르다. 믿었던 사람이 사고를 당했을 때 다른 파트너가 능력이 안 되면 끔찍한 상황을 만날 수 있다. 대원 모두 자신의 능력으로 등반할 수 있어야 한다. 

김창호 알파인스타일 등반은 창의적인 등반이다. 순발력도 필요로 한다. 이런 등반이 부각되는 것은 사회 현상이 그렇듯이 등반도 자연스럽게 성숙돼 가는 과정으로 받아들어야 할 듯싶다. 2012년 히말라야로 원정 가는 20여 팀 중 반은 대규모다. 반면 서너 명이서 트랑고타워와 같은 중급 높이의 대상지를 노리는 팀도 늘어났다. 이런 면에서 우리 산악계가 다변화하고 성숙돼 가고 있지 않나 싶다. 

김세준 내 경우 벽등반할 때 경우에 따라 로프를 깔기도 하고 그냥 올려치기도 한다. 방식이나 방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등반 대상지가 점점 높아지면서 장비와 식량이 부담스러워지는 것이 사실이다. 지난 여름 라톡2봉 등반 때에도 예전에 비해 장비를 10%밖에 사용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경량 알파인스타일 등반으로 가는 것 같다. 좀 쫓기면서 등반하는 게 아닌가 싶지만 이제는 고산 거벽 등반 쪽으로 눈을 돌려야 하지 않나 싶다. 

서기석
서기석

서기석 알파인스타일 등반은 요즘 당연한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우리 산악인들 사이에도 10~20년 전 알파인스타일 등반을 한 사람들이 있다. 단지 당시엔 그런 개념이 없었을 뿐이다. 예전 선배들은 준비를 많이 했다. 엄청난 훈련을 하고 공부도 많이 했다. 그런데 간혹 황당한 사람들이 찾아온다. 무조건 아무도 가지 않은 산을 찾아달라고 한다. 그런 자세로 무슨 좋은 등반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싶다.

왜 좋아하는 산에서 외줄타기를 해야 하나
김창호 히말라야 14개 거봉을 완등한 이후에서 험난한 등반을 하고 있는 카자흐스탄의 데니스 우룹코를 마칼루에서 만난 적이 있다. 황금피켈상을 세 번이나 받은 대단한 클라이머다. 후배를 트레이닝시키는 모습을 봤다. 마칼루라(7,200m)에 텐트를 쳐놓고 후배와 줄을 묶고 두어 시간 훈련을 하고 텐트에 돌아와 차 한 잔 마시고 하는 식의 훈련을 거듭했다. 두 친구는 마칼루 정상에도 올라섰고 결국 초오유 남벽에서 새로운 길도 냈다.

그러나 초오유 남벽 등반에 대해 유럽 친구들의 시각은 다양하다. 무엇보다 ‘우룹코는 자기만 갈 수 있는 길로 등반한다’는 시각이다. 유럽 친구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눈사태와 같은 자연재해를 무시하는 등반은 감점을 준다.

한필석 8,000m 고봉이나 노멀루트 등반이 평가절하되면서 클라이머들이 알파인스타일 등반으로 쫓기듯 몰려가는 듯싶다. 

김미곤
김미곤

김미곤 우리가 히말라야 고산에 가는 것은 산악인으로서 자연스런 성장과정이었다. 산이 좋아 다니다 보니 대상이 점점 높아진 것이다. 그런데 그 좋아하는 곳에서 굳이 외줄 타기를 해야 하나 싶다. 나는 반드시 살아서 돌아올 수 있다는 생각으로 원정을 떠나곤 한다. 적당히 스릴을 느끼는 것은 맞지만 목숨 걸고 등반하는 것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간혹 선배들이 “요즘 누가 8,000m 고봉에 가냐. 6,000~7,000m대 벽에 가야지”라고 말한다. 그런 얘기에 끌려 들어가다 보면 안전은 뒷전이 되고 만다. 평소에 알파인스타일 등반을 할 환경이 되지 않는 우리가 굳이 서양 스타일을 따라가야 하나 싶다. 유럽 클라이머들은 요즘 들어 안자일렌도 잘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하산길에 누가 처지면 과감하게 포기하고 내려온다. 그런 인간미 없는 등반을 하는 서구의 클라이머들이 만들어놓은 틀에 맞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최석문 개인적으론 아무도 안 가는 곳에 길을 낸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초등 이후 아무도 안 간 루트는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등반시즌이면 줄을 서야 등반할 수 있는 인수봉 같은 바위에도 몇 년 동안 등반되지 않는 길이 있다. 이런 루트는 역시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 

유학재 위험도를 어려운 것으로 착각하는 게 문제가 아닌가 싶다.

최석문 유럽 쪽에서는 남들이 등반한 봉이 낮더라도 난이도가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유럽의 알파인스타일 등반가들은 고난도 암벽 등반 능력을 지니고 있다. 5.13급 루트를 해낼 수 있을 만큼 기본기가 탄탄하다. 일본의 기리기리보이즈 멤버 중 카란카(6,913m) 북벽을 등반해 낸 사토 같은 친구도 5.14급 수준에 경험이 많은 클라이머다. 

오영훈
오영훈

오영훈 알파인스타일이냐 극지법이냐는 등반자 개인의 선택일 뿐이다. 뭐가 낫고 뭐가 뒤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얼마 전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데니스 우룹코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는 초오유 남벽 등반에 대한 논란에 대해 “등반선에 대한 선택은 개인의 능력이다. 리스크 해법은 있다”며 일축했다. 그는 “그린란드 같은 대상지는 너무 쉽다. 그러나 히말라야는 남들이 생각하지 않은 등반 가능성이 있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어렵고 곤란한 대상이 있다”고 말했다.

나는 알파인스타일 등반에 대해 더 많은 가능성이 있는 등반이라 말하고 싶다. 진정한 어려움을 좇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알파인스타일 등반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때문에 짐을 적고 가볍게 메야 한다. 무엇보다 짧은 시간 안에 등반을 끝내야하는 속공등반이기 때문이다.

못하는 사람 이끌어주는 등반도 좋은 등반 아닌가?
김미곤 결론만 가지고 과정 내용이 생략되어 있다. 문화의 차이라고 본다. 우리에게 맞는 산악문화를 만들고 서구의 시선에 끌려가지 말자.

김창호 끌려갈 수밖에 없다. 히말라야 진출과 등반의 역사, 깊이가 다르다. 외국 클라이머들은 초등이니 뭐니 누릴 건 다 누려서 양적인 부분보다 질적으로 가는 것이다. 우리 산악계도 이제 양적으로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다고 본다. 

서기석 알파인스타일 등반이 극지법에 비해 좀더 자극적이라는 것은 사실이고, 그걸 좇는 것은 인간 본능이다. 외국도 히말라야 원정 초창기에는 국가적 차원의 대규모 원정을 했다. 알파인스타일 등반은 시간도 없고 돈도 넉넉하지 않은 현대 클라이머들이 할 수 있는 자연스런 등반 스타일이다.

엔도르핀은 고통 속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 히말라야 등반을 하다 보면 이 추운 데서 왜 이런 짓을 하나 싶을 적이 있다. 그런 면에서 알파인스타일 등반은 고통을 즐기는 행위가 아닌가 싶다. 

최석문 그래서 알파인스타일 등반이 암 예방에 좋다고 하는가보다. 산을 가장 자유스럽게 등반할 수 있는 방법이란 면에서는 좋은 등반법인 건 맞는 것 같다.

이성재
이성재

이성재 뭔가 배울 게 많겠다 싶어 오늘 이 자리에 참석했다. 2006년 제대하자마자 아마다블람 원정에 참가했다. 그런데 후배가 6명이나 돼 부담이 많았다. 기대를 많이 했던 원정이었는데 너무 재미가 없었다. 아마다블람이 진정 내가 가고 싶은 산이었나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한 6개월간 그 좋아하던 인수봉도 가지 않았다.

무엇보다 가고 싶은 산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2009년 내가 가고픈 산을 갔더니 만족도가 높았다. 이런 경험을 후배들에게 넘겨주고 더 높은 산을 오르고 싶다. 무엇보다 산에 가서 후회하고 싶지 않고, 좋은 감정을 여러 사람이 나누고 싶다. 다시 산에서 후회하고 싶지 않아 내공을 키우고 있다.

오영훈 알파인스타일 등반은 서유럽의 개인주의적이 사고에서 비롯된 등반법이다. 여러 사람이 등반하려면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다. 개개인의 만족도를 높이려면 인원을 최소화해야 한다. 그러나 러시아 같은 나라에서는 단독 등반은 미친놈들이 하는 등반으로 치부한다. 지금도 팀워크 등반을 지상 최고의 등반으로 꼽는다. 황금피켈상을 네 차례나 받고 고난도 거벽등반을 여러 차례 단독으로 해낸 러시아의 발레리 바바노프는 이단자 취급을 받고, 극지법 등반과 알파인스타일 등반을 별로 가리지 않고 하는 카자흐스탄의 데니스 우룹코 역시 그 지역에서 드문 경우다.

그런 면에서 우리도 굳이 알파인스타일 등반을 추구하는 게 맞는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잘하는 사람 한두 명이 등반하는 것도 좋지만 못하는 사람을 이끌어주면서 등반하는 것도 좋은 등반 아니겠나 싶다. 

김세준 우리나라에 이런 얘기를 귀담아듣고 좋은 방향을 잡아줄 수 있는 산악평론가가 적다는 게 아쉽다.

김미곤 지난 가을 프랑스 클라이머와 함께 시샤팡마 남벽을 등반했다. 그 친구는 “왜 고정로프를 설치하느냐”고 묻더라. 그래서 “안전하게 하산하기 위해 설치한다”고 대답했더니 프랑스 친구는 “무모한 등반하기로 소문난 한국 등반대가 내려올 것을 생각하면서 등반하느냐?”고 반문하더라. 그 친구는 정상 공격에서 실패하니까 스키 타고 쏜살같이 내려가 버렸다. 목적이 스키 활강이었던 것이다. 

김세준
김세준

김세준 늘 미지의 벽이 등반대상이다보니 준비와 정보가 미흡할 적이 많다. 대상지를 정하면 대개 3~4년 준비한다. 그런데도 막상 부딪칠 때면 부족한 게 많다 싶다. 예전에는 등반 대원만 생각했는데 요즘 들어 베이스캠프 매니저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를 대비해서다. 

유학재 촐라체 북벽 사고의 경우 김형일, 장지명 대원이 로프로 서로 연결하지 않은 채 따로 떨어져 침낭 속에 들어가 휴식을 취하던 중 추락했다는 점으로 미루어 눈사태가 일어났거나 또는 쉬기 위해 다져놓았던 눈이 주저앉으면서 일어난 사고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래서 무척 아쉽다. 등반에 앞서 가능한 한 페이스나 쿨와르로는 등반하지 않는 게 좋다고 권했다. 아무튼 내 경우 벽 등반을 할 때는 절대 설사면이나 쿨와르로 들어서지 않는다. 등반라인도 3개 라인은 잡아놓는다. 등반 도중에 막히거나 너무 어렵다 싶을 때 다른 선을 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36시간 안에 북벽등반과 노멀루트 하산까지 해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시도였다. 2005년 동계시즌에 등반한 박정헌과 최강식의 경우 3일간 비박하고 정상을 거쳐 하산하다가 사고를 당했다.

정보가 많다고 능력도 덩달아 상향되는 것은 아니다
한필석 말로는 알파인 등반이라 하지만 곁에선 지켜볼 때 준비가 미흡해 보인다. 좀 더 치밀했더라면, 등반에 앞서 대상지를 좀더 눈여겨봤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김창호 우리 클라이머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별다른 고소적응 없이 본 등반에 나서곤 했다. 내 경험으론 그게 가능할까 싶다. 외국 친구들은 알파인스타일 등반에 앞서 베이스캠프 주변의 봉이든 아니면 다른 곳에서 등반을 하고 오든 꼭 고소적응 과정을 거친다.

미국의 고산의학자의 조사에 의하면 아무리 높은 곳에 적응됐다 해도 해수면 가까이 내려와 2주가 지나면 고소적응력이 사라지는 것으로 나왔다. 내 경우에도 1년에 4개 고봉을 가더라도 그때마다 7,000m 고소에 가면 머리가 아프다. 알파인스타일 등반은 굉장히 역동적인 등반이다. 대원 중 한 명이라도 컨디션이 나빠지면 등반은 깨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알파인스타일 등반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로서 고소적응을 꼽는 거다. 

유학재 고소는 많은 경험이 쌓이면 충분히 컨트롤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알파인스타일 등반에서는 사실 준비할 게 별로 없다. 그보다 눈 덮인 벽에서 어떻게든 움직이고 자야 하는가 경험을 쌓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겨울산에서 야영조차 제대로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알파인 등반을 하겠다고 나대니 문제다. 정보가 너무 흔하다 보니 정보만으로 내 능력이 상향되는 것으로 착각한다. 정보와 내 능력은 전혀 다르다. 그 정보를 토대로 철저하게 훈련하고 준비해야 한다.

특히 고산 거벽 등반을 하려면 대원 누구나 리딩 능력을 갖춰야 하고 서밋도 해낼 수 있어야 한다. 등반 중 능력이 안 된다 싶으면 포기하고 내려올 줄도 알아야 하고, 벽 등반을 끝낸 다음 정상 욕심이 나더라도 마음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벽 등반만으로 얼마든지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데 날씨나 시간 여건이 맞지 않는 상황에서 정상까지 밀어붙이다 일어나는 사고가 많다. 쿠르티카의 경우 가셔브룸4봉 서벽 등반 후 하산했다. 벽 등반이 목표였고, 더 이상의 등반은 위험을 초래하기 때문이었다.

우리 클라이머들에게 가장 큰 문제는 훈련량이 너무 적다는 것이다. 또 원칙을 지켜야 한다. 내 경우 벽 등반을 할 때 언제나 립(rib·좁은 암릉)을 택한다. 등반 길이가 늘어나기는 하지만 낙석이나 눈사태 위험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형일이한테도 절대 설사면이나 설벽 쪽으로 가지 말라 충고했었다. 설사면은 클라이머의 의지와 관계없이 밀려 내려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등반 노하우를 클라이머들끼리 공유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우리 클라이머들은 등반 다녀온 뒤 느낀 바를 잘 밝히지 않는다. 외국 친구들의 경우 트위터나 블로그를 통해 자신의 경험을 올리고 그러면 그에 대해 동조하는 의견이나 상반된 의견을 밝히면서 더욱 좋은 방법이나 기술을 찾아낸다. 지난 겨울 김형일이 추진한 동계 산악인 모임에서 그런 얘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참가자 중 한 사람이 토왕폭에서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무척 아쉬운 일이었다.

중요한 것은 원정대 수가 해가 갈수록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러다 우리 이후에 히말라야에 가는 사람이 없어지는 거 아닌가 싶다. 더 많은 사람들이 히말라야 등반을 시도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

사고에 대한 정확한 분석 나와야 다음 사고 막는다
서기석 8,000m 벽 등반은 늘 평균치 수준이지만 상업등반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아무튼 큰일이다. 이제 히말라야에 원정 가면 다 죽는 것으로 생각한다. 클라이머가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고산등반의 즐거움을 알려주는 게 중요하다. 안전하게 히말라야를 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등반 노하우를 교환해야 한다. 

유학재 처음 원정 나가는 사람들에게 언어, 등반력, 경험 등에서 오는 불안감을 없애주어야 한다. 나도 걱정이다.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이 늙어 버리면 우리 사회에서 고산 등반가란 어휘마저도 사라져 버릴 것이다.

박희용
박희용

박희용 그동안 등반 중 사고란 것을 머릿속에 그리지 않았었는데 이제 두렵다. 가고 싶은 마음도 많이 없어진 것 같다. 2011년 대한산악연맹과 한국산악회에서 큰상을 받은 것은 모두 선배들 덕분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선배들이 내가 지향하는 알파인스타일 등반을 추구하다가 사고를 당해 너무도 가슴 아프다.

지난 몇 년을 돌이켜보면 내가 원정 다닌 횟수보다 돌아가신 선배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이렇게 내 앞길의 방향 잡아줄 선배들이 사고를 당하고 보니 이제 내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과 더불어 이제 위험할 수 있겠구나 싶어 두려움이 생긴다. 그렇지만 산은 가야 하고 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선배들이 왜 사고를 당했는가 더 생각하게 된다. 더욱 좋은 등반을 하려면 그분들의 사고에 대해 정확한 분석이 나와야 할 것 같다. 그렇게 해서 실력이 부족하다면 실력을 키워야 할 것 같다. 

서기석 우리 산악 문화에 쏠림현상이 많다. 요즘 들어 알파인스타일 등반이 아니면 등반이 아닌 것으로 치부해 버린다.

꿈이나 명성을 좇으려고 나 자신 속여선 안 된다
유학재 등반의 형식은 등반가 나름대로 정하는 것이다. 너무 높이만 추구하는 사람들은 높이가 조금 낮으면 우습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트레킹하는 사람을 통해 산에 대한 진정성을 더욱 느낄 적이 있다. 해발 5,000m 전후 높이의 베이스캠프에서 고산을 바라보며 감동하며 눈물까지 흘리는 모습을 볼 때면 과연 내가 저들보다 산을 더 안다고,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싶다.

높고 험한 대상이 아니면 박수를 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나 역시 회사에서 6,000m급 무명봉에 가려 할 때마다 산에 대한 설명, 등반의 의의에 대한 설명을 하는 데 애를 먹는다. 촐라체에서 사고당한 형일이 역시 이런 게 늘 스트레스였다. 형일이가 “유명 산이 아니거나 알파인스타일 등반이 아니면 이 사회가 인정해 주지 않는다”며 스트레스를 받다가 대상지도 아라캄체(6,423m)에서 그보다 인지도가 높은 촐라체로 바꾼 것이다. ‘36시간 이내 등하산 완료’ 타이틀 역시 그런 측면에서 내건 것 같다. 

오영훈 선택은 클라이머들이 했는데 매스컴이 후원사의 입김에 의해 능력에 벗어나는 대상지를 등반했다는 둥 엉뚱한 쪽으로 몰아붙이는 경향이 있다. 이제 클라이머들은 ‘왜 우리가 등반을 할까’ 고민해야 할 뿐만 아니라 제3자 입장에서 평가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과연 그러한 외국 클라이머들보다 우리가 뛰어난 등반을 할 수 있느냐, 또 왜 그런 등반을 하려 하느냐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우리 클라이머들이 꿈만 앞서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등반을 하려면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솔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명성을 좇으려고 나 자신의 능력을 속이는 게 아닌가 싶다.

월간산 편집실에서 3시간 가까이 진행된 좌담회는 인근의 삼겹살 집으로 옮겨져 계속됐다. 술 한잔씩 들어가자 하고픈 말이 더욱 많아졌다. 술자리가 끝나기 전 누군가 말했다.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 사람에 대한 본능, 내 의식을 깨야만 자유로울 수 있다. 망설이던 걸 부수자! 대신 실행에 옮기기 전에 준비하라. 이상을 옮기기 전에 준비와 과정을 이겨라. 이상과 용기! 신체적 능력과 테크닉, 정신적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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