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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포커스] “독도, 국제사회에 물어보자?”

월간산
  • 입력 2012.09.10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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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독도 문제 국제사법재판소 공동 제소 제안… 韓, “일고의 가치도 없다” 일축

8월 10일 이명박 대통령이 우리나라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독도를 방문한 이후 한일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자국 영토에 대통령이 방문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이고, 일본은 남의 땅에 무단으로 침입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1 광복절을 하루 앞둔 지난 8월 14일 독도에 입도한 관광객들이 배에서 내리고 있다.
1 광복절을 하루 앞둔 지난 8월 14일 독도에 입도한 관광객들이 배에서 내리고 있다.

일본 외무상은 8월 10일 신각수 주일한국대사를 불러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에 대해 항의했다. 다음날인 11일에는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관련해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를 포함해 추가 대응 조치를 검토하기로 결정했다.

광복절 전날인 8월 14일에는 이 대통령이 응수했다. 이 대통령은 일선 교사들과 학교 폭력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일왕이 한국에 오려면 독립 유공자들의 묘소를 찾아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이 대통령이 한일 과거사에 관련해 일왕의 사과를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처음이었다. 일본 언론은 이 대통령의 발언을 강한 논조로 비평했다. 우익 성향의 산케이신문은 “이명박 정권 하에서 일왕의 방한은 구체화된 적이 없다”면서 “이 대통령의 발언은 당돌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마이니치신문은 “이는 믿을 수 없는 발언이며 수년에 걸쳐 두 나라 관계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대통령 독도 방문 계기로 갈등 커져
일본 정부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노다 요시히코 총리는 “이해하기 어려운 발언이고, 지극히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마쓰바라 진 공안위원장 겸 납치문제담당상도 8월 15일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 후 “이 대통령의 일왕 사과 요구는 독도 방문을 포함해 적절한 행동이 아니다”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결국 17일 노다 총리는 주일 한국대사관을 통해 이 대통령의 독도방문 및 일왕 사죄요구 발언에 대한 유감을 표시하는 서한을 전달했다. 또한 양국이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2 동도를 배경으로 태극기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객들. 3 8월 19일 독도에 세운 독도 표지석. 대통령 명의의 표지석을 세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 동도를 배경으로 태극기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객들. 3 8월 19일 독도에 세운 독도 표지석. 대통령 명의의 표지석을 세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대통령은 또 다시 응수했다. 이번에는 독도에 대통령의 이름이 새겨진 표지석을 세웠다. 19일 독도의 동도에 세워진 독도 표지석 앞뒷면에는 이 대통령이 직접 쓴 ‘독도’와 ‘대한민국’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또한 옆면에는 ‘이천십이년 여름 대통령 이명박’이란 글씨를 새겨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강한 메시지를 담았다. 독도에는 2008년 당시 한승수 국무총리가 ‘동해의 우리 땅 독도’라고 새긴 표지석 등은 있었으나 대통령 명의의 표지석을 세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8월 21일, 일본 정부는 노다 총리를 비롯해 오카다 가쓰야 부총리, 겐바 고이치로 외무상 등 내각의 핵심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독도 관련 관계 각료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에서 일본 정부는 우리나라에 독도문제의 국제사법재판소 제소 및 1965년 한일협정의 교환공문에 의거한 조정을 정식으로 제안했다. 일본이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자고 한국에 제안한 것은 1962년 이후 약 50년 만이다. 우리나라가 국제사법재판소 제소와 조정 신청을 거부할 경우 단독제소로 전환한다는 방침도 세웠다.

국제사법재판소 공동 제소는 우리나라가 거부하면 그만이다. 일본으로서는 득이 될 것이 없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국제사법재판소에 집착하는 이유는 독도 분쟁을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한 ‘꼼수’로 해석된다. 한편으론 노다 내각의 지지기반이 흔들리고 있고, 보수우익 세력이 독도와 센카쿠섬, 쿠릴열도 문제와 관련해 강경외교를 주문하는 상황에서 독도문제를 걸고넘어짐으로써 정치적 위기를 벗어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공동 제소 일고의 가치 없다
우리나라 정부는 국제사법재판소 제소 제안에 대해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외교통상부 조태영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독도는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명명백백한 대한민국의 고유 영토로 영토분쟁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일본 측 제안을 무시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22일, 국제사법재판소 단독 제소를 검토하기로 했다.

양국 국민의 여론도 들썩이고 있다. 독도 방문 다음날 아산정책연구원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83.6%가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지지했다. 반면 일본은 마이니치신문이 전국 성인 남녀 1,02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50%에 달하는 응답자가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한국에 대한 감정이 악화했다고 대답했다.

이와 더불어 NHK, 요미우리, 마이니치, 도쿄신문 등 일본 주요 언론은 독도를 ‘시마네(島根)현 다케시마(竹島)’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독도 방문 전에는 보수 우익지인 산케이신문이 유일하게 ‘시마네현 다케시마’라는 표현을 사용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우리나라 정부도 21일 “독도의 섬과 봉우리에 공식 지명을 제정하는 작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경상북도는 우선 탱크바위→전차바위, 동키바위→해녀바위 혹은 올림바위, 일출봉→태극봉 혹은 우산봉으로 바꾸고 대한봉은 그대로 부르기로 했다. 그리고 9월까지 순차적으로 독도의 섬과 봉우리 지명을 제·개정할 예정이다.

독도가 이슈화되자 독도를 찾는 탐방객도 증가하고 있다. 동해해양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8월 15일까지 독도를 찾은 탐방객은 14만3,142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1만492명보다 29.5% 증가했다. 이 같은 추세라면 2005년 3월24일 독도가 개방된 이후 처음으로 연중 독도 탐방객이 20만 명을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독도가 우리 영토인 근거는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고, 오래된 기록도 많다. 첫 번째 근거는 <삼국사기>의 기록이다. <삼국사기> 1145년 기록에는 “독도는 서기 512년 신라가 우산국을 복속한 한국의 영토”라고 명확히 적혀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의 1454년 기록에도 “우산(독도)·무릉(울릉도) 두 섬은 (울진)현의 동쪽 바다에 있고 두 섬은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청명한 날에는 섬을 볼 수 있다”고 기록돼 있다.

두 번째 근거는 1693년(숙종 19년) 어부 안용복이 일본으로 건너가 에도막부로부터 “울릉도는 일본 영토가 아니다”라는 서계를 받은 것이다. 독도는 울릉도의 부속 도서였기에 일본이 ‘독도는 대한민국의 땅’임을 인정한 것과 다름없다.

이외에도 1900년 대한제국의 칙령 41호로 독도가 울도군으로 소속된 것과 1946년 일본을 점령한 연합국 총사령부가 독도를 한국 영토로 확정하고 ‘반환해야 할 대표적인 섬’으로 명기하는 등 역사적 근거가 다양하고 확실하다.

하지만 국제사회에서 영토문제는 역사보다는 국제법적 근거가 우선이다. 일본은 1905년 시마네 현의 독도 편입을 가장 중요한 국제법적 근거로 들고 있다. 이에 대해 우리나라도 최근 국제법적 근거를 찾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 “울릉도에 출입하는 모든 화물에 세금을 징수하라”는 운영세칙이 담긴 ‘울도군 절목(1902년)’이란 문서를 발굴해 냈다. 이는 대한제국이 독도를 실효지배하고 있었으며 중앙 행정력이 독도까지 미쳤음을 공식적으로 확인해 주는 국제법적 근거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적, 국제법적 근거와 별개로 국제적 현실이 녹록하지만은 않다. 국외 90% 이상의 국가에서 독도는 일본의 영토(Sea of Japan)로 인식하고 있다. 일례로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영국의 유력 일간지 텔레그라프 인터넷 판은 “한국 대통령이 일본의 섬을 방문했다(South Korean leader visits Japanese islands)”는 제목의 기사를 올렸다가 우리나라 네티즌들의 항의를 받고 ‘일본의 섬’이라는 문구를 ‘분쟁 중인 섬’으로 바꾼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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