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따라 걷기 | 남원 춘향제와 지리산신선둘레길] 춘화<春花>가 만발하니 춘향<春香>이 스미누나! 신선길 걸으며 춘향제나 즐길까나!

입력 2013.04.18 11:00

춘화(春花)가 온 세상에 만발하니, 춘향(春香)이 코끝을 자극하는 계절이다. 봄이 왔다. 시샘하는 겨울도 이제는 산 위에서만 볼 수 있고, 들판에는 새순들이 파릇파릇 상큼한 모습을 막 드러내고 있다. 갓 피어난 꽃과 그 꽃 사이를 날아다니는 벌과 나비, 지저귀는 새들이 어우러지는 젊음과 생명의 신비를 느끼게 한다. 거기에 화사하고 상큼함을 더한다.

봄은 여인의 옷깃에 스민다. 두툼한 외투를 하나둘 벗고 봄나들이에 나선다. 그래서 ‘봄은 여인들의 옷깃에서 온다’는 말도 있다.

봄은 붉음으로 상징된다. 붉음은 여인의 정열적 사랑을 의미한다. 우리 고전에서 정열적 사랑을 노래한 대표적인 작품이 ‘춘향전’이다. 춘향은 봄의 향기다. 봄의 향기가 스미는 따뜻한 봄날에 이도령과 성춘향이 남원골에서 처음 만났다. 봄은 만물이 생동하는 계절임을 알리는 동시에 사랑도 봄에 시작되는 것을 전하고 있다.

시간은 거슬러 조선 중·후기쯤으로 올라간다. 전라도 남원 부사 이등의 아들이 공부를 하다 어느 따뜻한 봄날에 나들이를 간다. 그는 이름하여 이몽룡이다. 방자는 광한루로 안내한다. 이때 기생 춘향이 흥에 겨워 그네를 타고 있는 모습을 이도령이 목격한다. 이도령이 “선녀가 하강하였나보다”고 첫눈에 반해 버린다. 이렇게 이도령과 춘향은 어느 따뜻한 봄날, 사랑을 시작한다. 봄이라는 시간적 배경과 춘향이라는 인물적 배경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고전소설이다. 거기에 둘의 나이가 이팔청춘 16세, 청춘의 봄이 사랑의 시작을 의미한다는 상징까지 더했다. 절묘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다.

이렇게 시작된 그들의 사랑은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다. 남원골에서 그들의 사랑을 주제로 매년 춘향제를 개최하고 있는 것이다. 소설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다시 소설이 되는 사랑의 서사시가 바로 ‘춘향제’다. 올해 춘향제는 4월 26~30일까지 광한루원 일원에서 열린다. 다양한 행사와 판소리 등 풍성한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주무대는 광한루원. 이도령과 춘향이 처음 만난 장소다.

춘향제가 열리는 광한루원 안의 광한루 누각과 느티나무
달나라 미인 항아가 사는 월궁을 빗대 명명

광한루는 원래 조선 세종 원년(1419) 황희 정승이 남원으로 유배갔을 때 ‘광통루’라는 누각을 짓고 산수를 즐기던, 일종의 정원이었다. 이어 1444년 전라도 관찰사 정인지가 광통루를 거닐다가 아름다운 경치에 취해, 이곳을 달나라 미인 항아가 사는 월궁 속의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라 칭한 후 광한루라 부르게 됐다. 그래서 한국 최고의 정원 ‘광한루원’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광한루원은 명승 제33호로 지정된 문화재다. 1461년엔 부사 장의국이 광한루를 보수하고, 요천의 맑은 물을 끌어다가 하늘나라 은하수를 상징하는 연못을 만들었다.

1582년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한 정철은 광한루 은하수 연못 가운데 신선이 살고 있다는 전설의 삼신산을 상징하는 봉래·영주·방장섬을 조성했다. 봉래섬에는 백일홍, 방장섬에는 대나무를 심고, 영주섬에는 영주각이란 정자를 세웠다. 하지만 정유재란 때 왜구들의 방화로 모두 소실됐다. 현재의 광한루는 1639년 남원 부사 신감이 복원했다.

지금의 춘향제는 1931년 일제 강점기에 남원의 유지들과 지역의 국악인들이 힘을 합하여 민족의식 고취와 춘향의 절개를 이어 받고자 춘향사당을 건립하고 제사를 지냄으로써 제1회 대회가 시작됐다. 4회 대회부터 춘향 생일인 음력 4월 초파일에 제사를 올려 규모와 격식을 갖췄으며, 제20회(1950년)부터 남원군이 주관해 명창대회, 춘향선발 등 문화축제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특히 명창대회는 조상현, 성찬순, 안숙선 등 국보급 명창들을 배출하여 한국 국악의 혼을 계승해 왔다.

1986년에는 사단법인 춘향문화선양회를 발족해 민과 관이 함께하는 춘향제로 재탄생했다. 올해로 83회째를 맞는 춘향제는 가장 오래된 축제일뿐만 아니라 한국전통예술문화 축제를 대표하는 문화관광축제로 인정받았다. 특히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 문화관광우수축제로 지정됐다. 명실상부 한국을 대표하는 축제로 공인받은 셈이다.

(위부터)마당 춘향 창극에서 변사또의 수청을 거부한 춘향이 곤장을 맞는 장면. / 춘향제의 하이라이트인 미스 춘향 선발대회. 지난해 미스 춘향전에 출전했던 미인들이 결선에서 미스 진의 영광을 다투고 있다. 사진 남원시청 제공 / 지난해 춘향국악대전 신인부에 출전한 아마추어들이 기량을 맘껏 뽐내고 있다. 사진 남원시청 제공 / 지리산신선둘레길은 뱀사골 주민들이 직접 옛길을 찾아 매우 정감 있고 운치 있는 길로 가꿨다.
봄의 화사한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춘향과 이도령이 처음 만나 사랑을 나눈 광한루원을 거닐어본다. 광한루원에 들어서는 순간 입구인 큰 대문에 ‘淸虛府(청허부)’란 현판이 눈에 띈다.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 한자말 그대로 뜻풀이를 하자면 ‘더 없이 맑은 정원’이란 뜻 정도 되겠다. 광한루원 안에 있는 ‘璇聚閣(선취각)’에 그 뜻을 자세히 설명해 놓았다. 청허부란 뜻은 ‘광한루는 일찍이 천체우주를 지상에 옮겨 놓은 작은 우주로서 천상의 달나라에는 옥경이 있고, 옥경에는 광한전이 있으며, 광한전에는 청허부가 있어, 이 월궁을 상징해 광한루원 정문을 청허부라고 했다’고 안내하고 있다. 한마디로 별천지 같은 정원이라는 거다. 과연 그 정도인지 관심을 더욱 자극한다.

춘향이 그네 타는 모습을 보고 마치 선녀가 세상에 내려오는 것 같다며 이도령이 첫눈에 반한 그네도 덩그러니 있다. 바로 그 옆 선취각에 춘향 관련 설명과 남원의 문화유산에 대해 안내하고 있다. 주막으로 꾸며놓은 월매집도 방문객을 반기는 듯하다.

연못 한가운데 운치 있는 정자가 우뚝 서 있다. 완월정(玩月亭)이다. 달을 보고 노는 정자라는 뜻이다. 안내문이 전설을 전한다. ‘옥황상제가 계신 옥경에는 광한전이 있고, 은하수 위에 오작교가 놓여 있다. 계관(달나라 궁전)의 절경 속에서 아름다운 선녀들이 노닐었다고 한다. 이를 재현한 것이 광한루원이다. 광한루는 천상의 광한전을 재현한 것이며, 완월정은 이 달나라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 지은 누각이다.’ 이 완월정이 춘향제가 열리는 메인 무대다.

1931년 일제 때부터 축제 시작

인근 요천에서 끌어온 물로 연못을 만들었고, 그 물은 광한루원을 한 바퀴 돈다. 그 연못 위에 칠월칠석날 견우와 직녀가 1년에 한 번 만난다는 오작교가 놓여 있다. ‘지리산 계곡물이 모여 강이 된 요천수를 유입시켜 만든 호수는 은하수를 상징한다. 전설과 함께 이몽룡과 성춘향의 사랑이야기가 담겨 있는 오작교를 건너면, 사랑이 이루어지고 복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고 안내문이 전한다.

오작교를 건너면 보물 제281호 광한루(廣寒樓)가 나온다. 광한루 앞 연못에 삼신도를 만들었다. 한 섬은 방장섬이라 명명하고 대나무를 심었다. 다른 섬은 봉래섬이라 붙여 백일홍을 심었고, 나머지 한 섬은 영주섬이라 하고 연정(蓮亭)을 지었다. 한국의 삼신산이 이곳에 있는 것이다.

이어 1931년 건립된 춘향사당엔 이당 김은호 화백이 그린 춘향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그림으로 봐도 절세의 미인이다. 젊은 이몽룡이 한눈에 반할 만한 인물이다. 따뜻한 봄날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그들의 사랑이야기를 만끽한 뒤 신선 같은 걷기길로 도보여행을 떠나자.

(위 왼쪽부터.)지리산에서 사과로 유명한 원천마을길을 따라 신선둘레길을 걷고 있다. / 지난해 열린 남원농악예능공개 발표회에서 출전한 선수들이 상모돌리기 등을 하고 있다. / 지리산신선둘레길 가는 중에 원두막 옆에 우람하게 자란 육송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지리산둘레길에서 남원만의 특색을 살린 지리산신선둘레길은 산내면 장항마을부터 시작한다. 장항마을~원천마을~팔랑마을~바래봉까지가 1코스, 팔랑마을~내령마을~뱀사골까지가 2코스다. 지리산 신선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수려한 비경을 즐기며 바둑을 두면서 놀다 돌아갔다는 전설을 살려 지리산신선둘레길이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그 이름을 붙인 남원시청 환경과 왕길성 계장이 직접 안내했다. 왕 계장은 “신선들이 다니던 길을 복원해서 모든 사람들이 단 하루라도 신선같이 마음을 비우고 편안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거닐 수 있도록 조성했다”고 밝혔다. 박병수 환경과장도 팔랑마을에서부터 합류, 바래봉까지 동행했다.

장항마을은 지리산둘레길을 거친다. 분기점에 신선둘레길 이정표가 커다랗게 안내하고 있다. 마을을 가로질러 원천마을까지 그대로 간다. 원천생태마을에서 신선둘레길을 직접 찾아 닦고 조성했던 내령마을 장만호 이장도 합류, 가는 길마다 얽힌 이야기들을 들려줬다. 내령마을은 지리산골 중에서 특히 사과로 유명하다. 마을 전체가 사과나무로 뒤덮여 있다. 왕 계장은 “이 마을은 사과나무꽃이 피는 초여름과 열매 맺는 가을에 오면 볼 만하다”고 적극 추천했다.

솔가리들이 길을 덮은 푹신한 임도 등산로를 따라 소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운다. 왕 계장은 애초 길을 조성할 때 전문가들에게 많은 자문을 구했다고 했다. 도보길은 햇빛과 그늘이 3 대 7로 적절히 분배돼야 하고, 춥지도 덥지도 않게, 마을주민들의 소득증대와도 연계시켜야 민원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나름 기준을 정했다고 한다.

신선둘레길 이름을 낳게 한 내령마을 산신바위가 저 밑에 있다고 장만호 이장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실제 산신바위를 쳐다보려니 절벽 아래 무성한 나무에 묻혀 확인할 수 없었다.

마을 주민들이 직접 나서 신선둘레길 조성

걷기 편한 길이다. 그동안 사람이 별로 다니지 않은 것 같다. 저만치 허름한 정자 같은 원두막과 그 위에 가지를 드리운 운치 있는 소나무가 눈길을 끈다. 왕 계장은 “소나무 옆에 있는 묘지 주인이 원두막을 조성했다”며 “여름엔 그늘에서 쉬고 가을엔 송이를 지키기 위한 다목적용 원두막”이라고 설명했다.

원두막에 드리운 소나무는 곰솔이라고 한다. 장 이장에 따르면, 이곳은 원래 원천마을에 사는 경주 최씨 선산으로 곰이 하늘을 쳐다보고 누워 있는 형국이라고 해서 곰재라고 부르게 됐다는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샘물이 나온다. 참샘이다. 지리산 산신령이 인간세상을 살피다가 세상 사람들이 욕망으로 가득 찬 모습을 보고 탄식하다 천왕봉으로 가던 중 이슬처럼 맑고 깨끗한 물을 발견하여 한 모금 마시니 모든 탄식이 사라지고 순수해져서 ‘참샘’이라고 했다고 전한다.

팔랑마을에 들어서기 전 수백 년은 족히 된 듯한 소나무가 그늘을 드리워,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속리산의 정2품송을 빗대 정3품송이라고 입을 모은다.

신선둘레길을 찾는 데엔 장 이장과 마을 사람들이 가장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이 길은 내령마을 사람들이 팔랑마을을 거쳐 운봉까지 숯과 약초·고사리 등을 가져가 운봉의 곡물과 물물교환을 하기 위해 왕래하던 옛길이었다. 이 길을 찾아 많은 사람들이 다시 운치 있게 걸을 수 있게 만드는 것만이 뱀사골 지역경제를 다시 회생시키는 길이라고 장 이장과 마을사람들이 일심동체로 길을 만들었다고 한다. 장 이장은 “내령마을이 전국에서 최초로 고사리를 재배한 곳”이라고 자랑삼아 말했다. 길옆 곳곳에 고사리와 송이 재배지역이 눈에 띈다.

저 멀리 지리산과 마주보고 있는 삼정산 정상도 보인다. 3명의 정승이 나올 명당자리라고 해서 삼정산이라고 이름 붙여졌다고 장 이장은 설명했다. 이전에 갔을 때 정상 봉우리에 묘지가 있어, ‘어떻게 이 높은 곳에 묘를 조성했는지’ 의아했는데, 이제야 그 사연을 알겠다.

길이 가팔라졌다. 숨이 턱 밑까지 차서 헉헉거린다. 눈물고개라고 한다. 몇십 년 전 화전을 일구어 감자나 고구마, 약초 등을 재배해서 지게로 운반하며 살던 화전민들의 어렵고 힘든 삶의 애환이 깃든 눈물고개라는 설명이다. 눈물고개를 올라서자마자 반야봉, 삼도봉, 중봉 등 지리산 주능선 봉우리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길은 마을 사람들이 직접 손으로 가꾸었고, 여태 사람들이 다니지 않았던 길이라 신선한 멋이 있다. 몇십 년 전 화전민들이 살았던 자리에 심었던 나무는 이제 제법 자라 그늘을 드리울 정도다. 주민들이 직접 조성해서 그런지, 전문가들의 짜 맞춘 듯한 관 주도의 여느 길들과 달리 시골에서 느낄 수 있는 소박하고 정감어린 분위기가 곳곳에 감지된다.

더욱이 길을 걸으면서 물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지리산 ‘어머니의 산’기슭이라 그런지 아기 젖 주듯이 산 곳곳에 샘물이 흐른다. 아마 세상 어느 곳에도 지리산 같은 산이 없지 싶다.

팔랑마을~바래봉 코스 단연 압권

이색적이고 정겨운 나무 한 그루가 눈앞에 나온다. 줄기 연리목은 자주 볼 수 있지만 뿌리 연리목은 드물다. 그것도 참나무와 물푸레나무다. 전혀 다른 두 나무의 뿌리가 바위틈을 비집고 나와 뒤엉켜 바위 위에서 공존하고 있다. 큰 바위를 감싸고 있는 형국이다. 왕 계장은 “남원은 목기로 유명한 곳”이라며 “그 목기는 지리산에서 많이 자라는 물푸레나무를 재료로 해서 만든다”고 연리목의 한쪽 나무인 물푸레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어 가재골이다. 가재가 많이 나는 계곡이라 해서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가재는 1급수에만 서식하는 환경지표종이다. 장 이장은 계곡물을 떠서 그냥 마시며 권한다.

지리산신선둘레길의 이름을 유래케 한 내령마을의 산신바위. 산신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놀다가 바위같이 신선하게 생겼다.
팔랑마을 들어서기 직전, 운치 있는 소나무가 그늘을 드리우며 방문객을 맞는다. 소나무를 지나자마자 산 사면에 드넓은 고사리밭이 나오고, 그 위로 길이 나 있다. 이국적인 정취를 확 풍긴다. 초원이 넓으면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 같다.

팔랑마을엔 지리산억새집이 눈길을 끈다. 다른 집은 현대식으로 바꿨지만 이 집만 전통 그대로 억새로 지붕을 엮어 보존하고 있다. 지리산억새집이란 커다란 간판으로 안내하고 있다. 이미 많이 겪은 듯 카메라를 들이대도 주인 할머니는 별로 기분 나빠하는 기색도 없이 반갑게 맞는다.

팔랑마을의 유래는 진한시대로까지 올라간다. 진한의 왕은 달궁을 방어하기 위해 서쪽 10리 밖의 고개(지금의 정령치)에 정 장군을, 동쪽 20리 밖의 영마루(지금의 황령치)에 황 장군을, 남쪽 20리 밖의 산령(지금의 성삼재)에는 성이 각기 다른 3명의 장군을 배치했다. 또한 북쪽 30리 밖의 높은 산령(팔랑치)에는 8명의 젊은 장군을 배치해서 외적의 침입을 막아냈다고 해서 각각 정령재, 황령재, 성삼재, 팔랑재 등의 이름이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물론 팔랑마을은 8명의 젊은 장군이 지킨 산령의 이름인 팔랑(八郞)에서 유래한 것이다.

팔랑마을 고도를 GPS로 확인하니 620m쯤 됐다. 웬만한 산높이에 마을이 형성돼 있다. 마을 앞으로 삼정산, 노고단 등 지리산 주능선이 펼쳐져 있고, 뒤로는 철쭉으로 유명한 바래봉이 연결된다. 팔랑마을에서 철쭉 군락지인 팔랑치 간의 거리는 왕복 6㎞ 정도 된다고 한다. 철쭉 계절에 많은 등산객들이 바래봉으로 오르기 위해 이 마을을 찾는다고 왕 계장은 전했다. 장 이장은 “바래봉 철쭉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운봉으로 올라가지만 그 길은 나대지라 덥고 황량하다”며 “반면 이 길은 운봉보다 덜 알려져 있지만 숲이 우거져 한 번 찾은 사람은 계속 찾게 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팔랑마을부터 바래봉까지는 국립공원 구역이라 그동안 공단서 관리하다 개방한 지 불과 3년밖에 안 된 코스다. 사람들 발길도 닿지 않은 덩굴식물이 교목에 그대로 뒤엉킨 상태로 아직 남아 있었다. 땅도 푹신푹신했다. 경사가 조금 급해서 그렇지, 등산로는 전부 그늘이 드리워져 여느 등산로보다 훨씬 매력적이었다.

지리산신선둘레길의 종착점인 바래봉 정상 인근에서 마지막 힘을 다하고 있다.

8명의 젊은 장군이 지켰다고 해서 ‘팔랑’

조금씩 보이던 철쭉나무들이 1,000m 고지가 가까워지자 한꺼번에 엄청난 군락으로 나타났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한마디로 철쭉숲이고 철쭉터널이다. 꽃이 만개했을 때 오면 꽃에 취하고 향기에 취할 것만 같다.

곧 이어 팔랑재(치)다. 사방 철쭉은 계속 됐다. 철쭉 옆으로 강아지풀도 몽우리를 터트릴 준비를 하고 있다. 전망대도 나오고 정령치까지 연결되는 능선도 뚜렷이 보인다. 백두대간 줄기다. 이정표는 팔랑마을 2㎞, 바래봉 1.5㎞를 가리키고 있다. 바래봉 정상도 보인다. 밋밋한 정상 바로 아래 주목과 구상나무가 군락을 이뤄 초록을 뽐내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바래봉 일대가 철쭉 군락이 됐는지 궁금했다. 팔랑마을부터 합류한 박병수 과장이 그 이유를 설명해 줬다. 1970년대 초 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 이야기다. 박 대통령이 호주의 면양을 보고 온 뒤 털은 섬유용으로, 가죽은 공업용으로, 지방은 비누제조용으로 다양한 용도로 쓰이는 면양을 키울 장소를 물색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공무원들은 여기저기 알아보다 바래봉 일대가 최적지라고 추천했다. 즉시 바래봉 일대에 철조망이 쳐지고 나무가 잘려지고 전형적인 면양목장지대로로 조성됐다.

지리산신선둘레길 리본이 붙어 있는 길 옆으로 남원시청 환경과 왕길성 계장이 앞장서 걷고 있다. / 산신이 내려와 물을 마시고 갔다는 참샘바위.

바래봉 정상과 그 주변 일대는 면양들이 활동하기 좋게 민둥산으로 만들면서 초원지대로 변화시켰다. 대관령목장이 당시 바래봉 일대에 있었다고 상상하면 되겠다.

수천 마리의 면양이 바래봉 일대에 방목됐다. 면양들이 주변 나뭇잎과 풀들을 죄다 뜯어먹었다. 하지만 철쭉잎만은 아예 접근조차 하지 않았다. 면양들이 싫어하는 독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나무와 풀들은 모두 없어졌는데, 철쭉만 고스란히 살아남게 됐다. 그 철쭉이 몇 십 년 흐른 뒤 엄청난 군락으로 변해, 전국 제일의 철쭉 명소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 사이 면양목장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20여 년 전 폐쇄됐다고 한다. 외진 등산로 부근에 면양 목장의 흔적으로 철조망이 아직 남아 있다.

몇 년 전 철쭉이 활짝 피었을 때 어느 매체에서 ‘바래봉 불났다’고 보도한 것이 화제가 됐다고 한다. 정말 바래봉이 불난 것같이 철쭉이 활짝 핀 모습을 상상해 보라! 우리나라에 철쭉 군락으로 유명한 산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바래봉이 단연 으뜸이라고 남원시청 박 과장과 왕 계장은 이구동성 자랑한다.

바래봉은 면양 키우던 목장

바래봉 삼거리로 접속했다. 여기서부터는 임도다. 주변 풀숲엔 노루와 멧돼지 배설물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한두 군데가 아니다. 무리를 지어 다니면서 건강한 생태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 눈에 그려졌다. 스님들이 음식을 담는 조그만 그릇을 바래기(바라기)라고 하는데, 봉우리가 바래기를 엎어놓은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바래봉이라 명명했다고 한다.

광한루원 오작교 위에서 국악경연대회를 열고 있다. / 춘향제당에서 여자 제관을 앞세워 춘향제를 지내고 있다. 사진 남원시청

남원 춘향제, 어떤 행사 열리나
바래봉 정상에 마침내 도착했다. 장항마을에서 오전 9시30분에 출발해서 5시간 반 걸려 오후 2시30분에 바래봉에 다다랐다. 하산길은 장 이장이 이끄는 대로 가파른 등산로를 가로질러 내려왔다.

팔랑마을로 원점회귀하니 오후 4시45분. 총 7시간 15분 걸렸다. 장항마을에서 바래봉까지는 10.6㎞. 팔랑마을에서 바래봉까지는 3.6㎞. 장항마을에서 신선둘레길을 전부 돌아보기엔 하루 코스로 너무 길고, 팔랑마을에서 바래봉 철쭉을 둘러보고 다시 내려오면 7㎞ 내외로 하루 코스로 안성맞춤일 것 같다. 개방된 지 얼마 안 된, 아직 사람들 발길이 뜸한 지리산신선둘레길을 신선 같이 돌아보다 바래봉 철쭉과 산골마을에 흠뻑 매료될 그런 코스다.

춘향 선발 등 일제시대 때부터 열린 명실상부 최고 축제

남원 춘향제는 올해로 83회째를 맞는다. 한국의 최고 정원인 명승 제33호 광한루원 일대에서 춘향제향, 전국 춘향선발대회, 춘향국악대전, 방자놀이 등 다양한 행사를 선보인다. 매년 방문객들로 넘쳐난다. 메인 무대인 광한루는 보물 제281호. 축제 개최 5일 동안 지난해에만 76만여 명이 찾았다. 5일 동안의 방문객 치고는 전국 최고 수준이다. 올해는 4월 26~30일까지 5일간 열린다.

춘향제는 오랜 역사가 말해 주듯 전통 경연과 전통문화예술을 바탕으로 전통의 현대화와 체험화라는 취지로 개최한다. 춘향과 이도령의 사랑이 싹텄던 조선 숙종 시대 속으로, 방자체험마당, 요천체험마당 등 ‘타임머신’을 타고 오가며 즐길 수 있다. 주최 측은 그 무대를 광한루원뿐만 아니라 인근 요천까지 넓힌다.

지리산신선둘레길의 마지막 지점인 바래봉에 철쭉이 만발해 있다. 사진 남원시청 제공
전체 프로그램은 전통경과 창극 춘향전 등 전통문화 행사와 공연·전시 예술행사, 놀이·체험행사, 부대행사 등 모두 4개 분야 27개 종목으로 펼쳐진다. 1957년부터 시작된 춘향제의 백미 춘향선발대회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완월정 수중무대에서 진행된다. 광한루 경내의 경관 조명과 잘 어우러진 분위기 속에서 야간에 진행되며, 외형적인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윤리의식, 가치관 등의 기준으로 우리나라 최고의 전통미인을 선발한다.

광한루원 앞 요천 사이 도로는 축제기간 동안 차 없는 거리가 된다. 정문 방자마당에서는 마당공연 및 놀이로 줄타기, 장구, 상모돌리기, 난타 공연과 짚풀공예 전시 및 만들기 등 체험행사가 열리고, 춘향전을 희극화한 마당극이 관객과 함께 즐기는 공연으로 매일 펼쳐진다.

요천 둔치에서는 삽다리와 황금소금배, 나루터 주막, 풍물장터, 미꾸리 잡기 등 전통문화를 내방객들이 아름다운 요천을 바라보며 함께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사랑의 소원 등 게시용 상징물이 큰 규모로 설치돼, 매년 연인들이 각종 소원들을 담아 남긴다. 삽다리는 길이 100m로, 요천을 사이에 두고 광한루원과 사랑의 광장을 오가며 밟을 수 있도록 설치했다. 삽다리 밑에는 남원의 사라진 옛 모습 중에 하나인 소금배 2대를 띄워 옛 정취를 자아낸다.

춘향문화예술회관에서는 가장 오랜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춘향국악대전이 3일 동안 열린다. 이 대회는 제1회 장원을 차지한 조상현 명창을 비롯해 성창순, 최승희, 안숙선 등을 배출한, 우리 시대 최고의 소리꾼 등용문이다. 춘향사랑길놀이와 대동길놀이는 지역단체, 동아리, 문화예술인, 직장인과 학생 등 다양한 단체가 참여해 시민이 함께하는 한마당으로 열린다.

남원시청 축제제전위원회 김정님씨는 “춘향제는 일제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매년 제사를 지내며 광복을 기다렸던 민족정신이 담겨 있으며, 제관이 여자라는 사실은 남녀평등 사상도 함께 상징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리산 신선둘레길 개념도
문의 춘향제전위원회 063-620-4861. 홈페이지(www.chunhyang.org) 참조.

교통 서울에서 승용차로 경부고속도→천안논산고속도→호남고속도→익산포항고속도→ 순천완주고속도 오수IC 거쳐 춘향로를 따라가면 주행사 무대인 광한루원이 나온다. 남원 가는 고속버스는 고속버스터미널 호남선에서 매일 15회 왕복운행한다.
약 3시간 10분 소요.

광한루원에서 신선둘레길이 있는 장항마을까지는 30㎞가 채 안 된다. 남원시외버스터미널에서 장항마을과 원천마을까지 가는 시외버스가 있다. 첫차가 오전 7시30분에 출발해서 약 1시간~1시간 20분 간격으로 매일 11회 운행한다. 약 40분 소요. 둘레길 문의 남원시 환경과 063-620-6231. 남원시 관광과 063-620-6165.

숙식(지역번호 063) 남원의 별미는 단연 추어탕. 요천을 따라 광한루원 위아래로 추어탕 거리가 형성돼 있다. 문의 남원시 관광과 620-6165. 종합관광안내센터 632-1330.

뱀사골 내령마을 입구 천왕봉식당은 장만호 이장이 운영하며 민박, 야영도 가능하다. 문의 626-1915 또는 011-678-0502. 원천마을 문의 636-2032. 숙박과 취사 가능한 흥부골자연휴양림 636-4032.
#축제따라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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