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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최선웅의 고지도이야기ㅣ마우로의 세계지도] 중세 지도제작의 금자탑을 이룬 프라 마우로의 세계지도

글·최선웅 한국지도학회 이사, (주)매핑코리아 대표
  • 입력 2014.01.20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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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Isola de Cimpagu)을 표기한 최초의 유럽 지도

“베네치아의 산미켈레디무라노 수도원에 거주하는 카말돌리회(the Order of Camaldules)에 소속된 지도 제작자로서 나도 미지의 세계를 찾아 지구상의 길을 방황했던 그들의 족적을 도면에 그리는 것을 일생의 과업으로 삼았다. 항해자의 이야기는 아무리 사소해도 들을 가치가 있으며 여행자의 평범한 일기도 읽을 가치가 있다. 다른 사람들이 마주친 세계를 연구하기 위해 수학과 물리학을 포기한 후로 나는 그들의 관찰에 의지해 왔다. 기억하는 한 나는 늘 여행하기를 원했다. 내 이름은 프라 마우로, 나이가 꽤 든 비만기 있는 수도사이다.”

위의 글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작가 제임스 코완(James Cowan)이 1996년 중세의 지도제작자인 프라 마우로의 일기를 바탕으로 쓴 <프라 마우로의 세계지도(원제 A Mapmaker's Dream : The Meditations of Fra Mauro, Cartographer to the Court of Venice)>에 실려 있는 글이다.

남쪽을 위로 해 제작된 프라 마우로의 세계지도. 원형 밖의 왼쪽 위가 천계도(天界圖) 이고, 아래가 지상의 낙원, 오른쪽 아래가 대권도(帶圈圖) 이다.
남쪽을 위로 해 제작된 프라 마우로의 세계지도. 원형 밖의 왼쪽 위가 천계도(天界圖) 이고, 아래가 지상의 낙원, 오른쪽 아래가 대권도(帶圈圖) 이다.
프라 마우로의 일생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으나, 젊었을 때 상인과 군인 신분으로 여러 곳을 여행했고, 특히 중동지역 사정에 밝았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 베네치아 본섬 북동쪽에 위치한 무라노(Murano)섬의 산미켈레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사로서 지도제작 일을 하다가 1460년에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산미켈레 수도원은 학문과 인쇄의 선도적 중심지였다고 한다.

그는 1457년 포르투갈의 제10대 왕인 아폰수 5세(Afonso V)의 의뢰로 세계지도를 제작하게 되는데, 수도원에 들어간 이후 다시는 자유롭게 여행할 기회가 없었지만 성직자 신분으로 항해에서 돌아 온 선원과 시중의 상인들을 쉽게 면담할 수 있었다. 그들로부터 전해들은 각지의 사정과 소문 외에 외지로부터 보는 편지나 문서 등은 그가 제작하는 세계지도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지리적 정보원(情報源)이 되었다.

지도는 2년 뒤인 1459년 4월 24일에 완성되어 탐험항해를 위한 추가 지금을 조달하기 위해 아폰수 5세의 삼촌인 항해왕자 엔히크(Henrique)에게 전해졌으나, 현재 남아 있지 않다. 그 후 프라 마우로는 베네치아의 성모 마리아를 위해 이 지도의 복제본을 만들다가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가 죽은 뒤 지도제작에 협력했던 선원이자 지도제작가인 안드레아 비앙코(Andrea Bianco)에 의해 완성된 복제도가 현재 베네치아의 마르치아나국립도서관(Biblioteca Nazionale Marciana)에 보존되어 있다.

지상의 낙원, 천계도, 지구 대권도 등 네 모서리에 따로 그려져

지도는 원형의 커다란 양피지에 그려져 나무틀에 끼워져 있는데, 지도만의 크기는 직경 190.5cm에 달하고 지도를 포함한 전체 크기는 가로 196cm, 세로 193cm에 이른다. 지도의 방위는 이슬람의 전통적인 지도와 같이 남쪽이 위로 되어 있고 8방위를 가리키는 방위표가 지도 가장자리에 그려져 있다. 종래의 지도와 달리 예루살렘이 지도 정 가운데 위치하지 않고 약간 서쪽으로 치우쳐 있다. 이 같은 그리스도적 세계관과 모순되는 점에 대해서는 세계의 서쪽은 사람이 많이 사는 유럽이기 때문에 인구밀도를 고려한다면 예루살렘이 서쪽으로 치우쳐 있어도 경도로 봐서는 세계의 중심이 된다는 설명주기를 덧붙였다.

바다에 둘러싸인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 세 대륙의 표현은 종래의 지도를 그대로 답습한 형태이다. 지도의 내용도 고대와 중세로부터 전승되어 온 전설적인 내용과 마르코 폴로에 의한 새로운 지리적 지식이 번잡한 그림과 함께 설명주기로 표현되어 있어 중세 지도의 전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중세 지도와 다른 점은 지상의 낙원과 천계도(天界圖), 지구 대권도 등이 지도 바깥쪽 네 모서리에 따로 그려져 있다. 이같이 프라 마우로의 지도는 전통적인 세계관을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지리 지식과 천상세계의 상징을 병립시키는 새로운 시도라고 할 수 있다.

프라 마우로의 지도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표현이다. 종전의 지도와 달리 아프리카는 바다에 둘러싸인 온전한 대륙으로 표현되었고, 아프리카의 최남단을 디아브(Diab)곶이라 이름 붙이고, 1420년경 동양으로부터 탐험 항해가 있었다는 설명주기를 붙였다. 지도를 확대해 보면 최남단에 중국 정크선으로 보이는 배가 그려져 있다. 그렇다면 이 지도는 1488년 포르투갈의 탐험가 바르톨로메우 디아스(Bartolomeu Dias)가 희망봉에 도착한 것보다 30년이나 앞서 제작된 것이다.

아프리카의 끝 부분은 좁은 해협에 의해 섬으로 분리되어 있어 이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나, 이 섬을 마다가스카르섬이라고 밝힌 학자는 일본의 지도사학자 오다 다케오(織田武雄)가 유일하다. 이 섬 주변에는 아라비아어와 인도어로 된 크고 작은 많은 섬들이 점재해 있는데, 이 섬들에 대해 마르코 폴로는 소코트라 섬이라고 했고 어떤 중세 지도제작자는 동남아시아의 싱가포르나 필리핀 근처라고 했으나 상상 속의 섬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아시아에서 아라비아반도의 모습은 뚜렷하나 인도반도는 분명치 못한 모습이다. 그로나 실론섬은 지나치게 크게 그려졌고 그 남서쪽에 비스듬히 일렬로 늘어선 섬들은 몰디브제도를 나타낸다. 말레이반도 역시 길게 돌출되어 보이지 않고,  그 앞에 커다란 섬에는 실론섬의 옛 이름인 타브로바네와 시오메트라(Siometra)라고 표기되어 있으나 이 섬은 수마트라섬이라고 한다. 수마트라섬 북쪽으로 정동(正東)을 가리키는 방위표가 있는 곳에 있는 긴 섬은 자바섬이고 그 아래쪽에는 ‘Isola de Cimpagu’라는 일본을 나타내는 섬이 있다. 따라서 이 지도는 일본이 그려진 최초의 유럽 지도로 기록되고 있다.

산미켈레수도원의 독방에서 수도사이자 지도 제작자인 프라 마우로는 앞서 제작된 프톨레마이오스의 세계지도를 비롯해 포르톨라노 해도, 포르투갈이나 이슬람 등지에서 제작된 수많은 지도를 참고해 지도의 틀을 갖추고 소식을 듣고 찾아오는 상인과 선원, 학자들 그리고 각국의 사절들이 들고 오는 온갖 정보와 기상천외한 이야기 등을 참고해 마치 죽음을 앞둔 순교자처럼 고뇌와 열정을 바쳐 이 장대한 세계지도를 완성해 냈다. 그가 그린 지도는 중세 지도의 세계관을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지리적 지식을 적극 반영하는 한편 천상세계의 상징과 병립시키는 새로운 회화적 창의를 짜낸 야심작으로 중세 후기 세계지도의 금자탑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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