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 산행기] 영남알프스 태극종주

[541호] 2014.11
  • 김영민 서울시 서초구 반포동
    입력 2014.11.28 10:57

    오락가락하는 비와 바람과 안개,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짙은 푸름이 함께 했던 영남알프스 태극종주 55km는 멀고 먼 길이었지만 하늘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멋진 산행이었다. 태풍 나크리의 북상으로 걱정했지만 현지 날씨는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기다리며 어렵게 만든 기회다. 당초 계획대로 진행한다는 우리 해밀산악회 ‘봉순이 오빠’ 총대장님의 결정이 내려졌고, 태극종주 12명과 하늘길 종주 11명이 동참하기로 했다.

    영남알프스는 울산시 등 영남 동부지역에 위치한 1,000m 이상의 산군이 유럽의 알프스처럼 아름답다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하며, 태극종주는 그 산군들을 연결하여 태극 모양의 길을 만들어서 종주하는 것이다.

    영남알프스 태극종주의 주요구간은 석골사~운문산~가지산~능동산~천황산~재약산~영축산~신불산~간월산~배내고개다. 이 중에 운문산, 가지산, 재약산, 신불산은 산림청이 선정한 100대 명산이다.

    영남알프스 종주 중 신불산 정상에서 회원들과 함께.
    영남알프스 종주 중 신불산 정상에서 회원들과 함께.

    나는 왜 이 힘든 길을 가려고 하는지 나 자신에게 많이 궁금했다. 치열한 경쟁과 뚜렷한 목표를 추구하는 삶의 방식에 익숙해 있다 보니 ‘그냥 좋아서 간다’와 같은 추상적 개념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산을 가는 것에서도 하나의 분명한 이유를 찾고 싶었던 생각들은 산이라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는 사실, 잘 어울리지 않는 생각의 틀인 것 같다.

    처음 산을 가면서 산이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무척 궁금했다. 산은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가치와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목적일 수 있다. 산은 내게 새로운 세상을 안겨 주었고, 자유로움과 평온함을 주었다.

    8월 1일 오전 6시 산행 들머리인 석골사에 도착했다. ‘영알태극’은 초반 운문산, 가지산이 된비알로 많이 힘들다고 한다. 체력관리를 잘해야 한다. 석골사 입구 약수터에서 물 한 잔 마시고 산행을 시작한다.

    한참을 치고 올라가는데 이번 산행 후미대장을 맡은 산한구비님과 유강님이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알바인 것 같다. 봉대장님이 상황을 확인하고 이탈된 위치에서 운문산 정상까지의 길을 잡아주었다.

    잠시 상운암에 들렀다. 스님은 밭일을 하고 계신다. 상운암에는 산객들이 쉬어갈 수 있는 의자도 있고 멀리 팔공산까지 보이는 조망이 참 좋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오르니 운문산 정상이다. ‘구름이 지나가는 문’이라 운문이라고 했던가. 비가 조금씩 오고 안개가 많아 조망이 없을 것 같아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안개가 잔뜩 깔려 있다가도 필요한 때에는 세찬 바람이 안개를 밀쳐내 깨끗하고 청량한 조망을 만들어 주었다. 멀리, 우리가 가야 할 산릉을 바라보면서 잠시 상념에 잠긴다.

    영남알프스의 비경과 마주하다

    이제 영남알프스 최고봉 가지산을 향한다. 운문산에서 아랫재까지 급격히 떨어졌다가 가지산으로 치고 올라가니 무척 힘이 들었다. 태풍 때문인지 세찬 바람에 몸이 떠밀릴 것 같았다. 여기저기 멋진 조망터들을 지나 가지산에 올랐다. 가지산은 영남알프스 최고봉으로 낙동정맥 길이 지나는 지점이며, 운문지맥의 분지점이기도 하다.

    능동산을 지나 천황산 가는 길에 샘물상회에 들렀다. 산행을 하다보면 가끔 정말 힘들 때가 있는데 나는 이 구간이 가장 힘들었다. 길이 어렵지는 않았는데 운문산, 가지산에서의 체력소모가 컸던 때문인 것 같다.

    금수강산님은 다리에 쥐가 나기 시작해서 탈출했고 유강님도 힘들 것 같다며 탈출해야겠다고 했다. 마침 샘물상회에서 동행할 수 있는 산우님들이 있어 그분들과 함께 내려가기로 했다.

    천황산, 재약산을 거쳐 숙소를 향해 낯익은 이름의 죽전마을로 내려가는데 가파른 내리막길이 무척 고됐다. 저녁식사는 상선약수님이 염소구이를 찬조해 맛있게 먹으며 힘을 보충했다.

    다음날 느긋하게 오전 8시쯤 일어나 2일차 산행을 시작하였다. 당초에는 조금 수월한 청수좌골로 해서 하늘길 팀과 동행하기로 했는데 기왕 시작한 거 태극종주를 제대로 하자고 해서 청수우골로 가기로 했다. 2시간가량 가파른 오르막을 치고 올라가서 영알능선에 도착하니 좀 살 것 같았다.

    안개가 자욱한 능선길을 한참 올라서니 영축산이 나온다. 영축산은 우리나라 3대 사찰로서 신라시대 자장선사가 당에서 모셔온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는 불보사찰 통도사를 품고 있다.

    영축산을 조금 내려서니 안개가 걷히면서 환상의 들판이 나타났다. 영축산에서 신불산으로 넘어가는 신불평원 하늘 길은 너무 아름다웠다. 가을 억새가 아니어도, 설원의 눈밭이 아니어도 1백만 평이 넘는다는 한여름 신불평원은 초록의 푸름과 장쾌한 조망, 넘칠 듯 살아 있는 생명이 내주는 상큼한 숲의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신불공룡능선도 보면서 그 꿈결 같은 하늘 길을 따라 계속 걸어서 신불산을 넘어 한참을 가다보니 멀리 간월재가 보이고 하늘길 종주에 참여했던 회원님들이 보였다. 간월재 입성 환영식이 끝나고 종주팀은 먼저 내려가고 우리는 잠시 쉬어 가기로 했다.

    이제 종주의 마지막 산인 간월산으로 향한다. 간월산은 억새천국과 더불어 조선말 천주교 박해를 피해 신앙생활을 이어가던 간월공소, 죽림공소 등이 있어 천주교 신자들의 성지순례 코스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이곳은 역사에서 소외받고 세상에 저항하는 이들이 숨어들기에 적당한 곳이었다고 한다. 현실의 고통을 견디고 극복해 내기 위하여 민중이 선택한 땅이었던 것이다.

    유서 깊은 역사적 상념을 뒤로하고 마지막 봉우리 배내봉을 거쳐 배내고개에 도착했다. 드디어 영남알프스 태극종주 55km의 대장정이 21시간 만에 끝났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 멀었던 길, 주저앉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 스스로가 선택한 자유의지의 길을 이루어 냈다는 뿌듯함 때문은 아닐까. 다시 또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또 그 길을 선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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