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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산따라 맛따라] “주거니 받거니 한잔 술에 산 친구들의 우정이 쌓이네”

글·사진 박재곤 고산자의 후예들 상임고문 www.sanchonmirak.com
  • 입력 2014.12.18 15:57
  • 수정 2014.12.23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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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 없어도 살 수야 있겠지만, 술 없는 세상에는 살고 싶지 않다.”

이 말은 ‘한국 주조사의 큰 별’로 남게 된 우곡 배상면 회장의 철학이자 자신이 창업했던 회사의 창업정신이었다. 유난히 술을 많이 마시는 집단이 있다. 산꾼들이 모이는 집단을 이 부류로 생각하거나, 심지어는 ‘산꾼’과 ‘술꾼’을 동일 부류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비록 모든 산꾼들에게 해당되지는 않을지언정 이 평가가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술은 잘 마시면 약이 된다. 그래서 ‘약주’라고 했다. 술은 음식이기도 하고 때로는 약일 수도 있었기에 옛 선조들은 집에서 술을 빚었다. 우리 역사상 금주령이 엄하게 내렸던 시절에도 조상에게 올리는 제주(祭酒)와 약제를 넣어 담그는 약주(藥酒)만은 허용되었다니, 결국은 금주령이 있으나 마나였다.

술의 기원은 원숭이가 나무 아래로 떨어져 천연으로 빚어진 과일의 액체, 즉 천연주를 마신 데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그러니 술의 역사가 인류의 역사와 함께한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겠다.

우리 술(전통주)은 삼국시대 중국까지 명성을 크게 떨쳤을 만큼 깊은 역사를 지녔고 집집마다 독특하고 다양한 술이 있기 마련이었다. 우리 전통술은 누룩곰팡이를 이용해 곡물을 발효시켜 빚는다. 물과 곡물의 종류, 제조 환경에 따라 술맛이 다르니 백주백미(百酒百味)일 수밖에 없다. 지금은 주조업이 크게 발달하고 다양한 종류로 대량 생산하기 때문에 같은 맛의 술을 쉽게 마실 수 있다.

우리나라 고유의 술은 고두밥과 누룩으로 발효시키는 술덧의 처리과정에 따라 막걸리, 약주, 증류주로 구분된다. 술덧이란 찹쌀이나 멥쌀을 물에 불려 시루에 찐 밥에 누룩을 첨가해 발효시킨 밑술을 말한다. 발효가 끝난 술덧을 체에 붓고 손바닥으로 으깨면서 거칠게 여과한 술을 막걸리 또는 탁주(濁酒)라고 한다. 약주는 술덧에 대나무로 만든 용수를 박아서 맑게 거른 술로 청주(淸酒)라고도 한다. 증류주는 술덧을 소줏고리에 넣고 증류한 술로 화주(火酒)라 하며 고려말 원(元)나라에서 전래되었다.

우리의 음주문화는 술을 서로 따라주는 수작(酬酌)의 문화, 즉 혼자 마시기보다는 함께 어울려 마시는 군음(群飮)의 문화다. ‘수작’이란 술 따를 ‘수(酬)’자에 술 받을 ‘작(酌)’자로 술잔을 서로 주고받으며 술을 즐기는 ‘술잔 돌리기’의 의미다. 정감이 통하는 사람들끼리 교감과 공동체 의식을 위한 예(禮)로 정착되었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술에 접대문화가 접목되고 ‘수작’이 ‘뇌물공여’라는 이미지로 변질, ‘수작부리지 말라’는 부정적 의미의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술을 함께 마시는 군음(群飮)은 곧 집단의 일원임을 확인하게 되는데 ‘건배’는 집단의 결속을 다지는 행위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술 마시는 방법에는 엄격한 법도와 예절이 따라야 한다. ‘승무’의 시인 조지훈 선생은 1956년 월간지 <신태양>에 ‘주도유단(酒道有段)’이라는 글을 남겼다. 초보인 1급에서 9급까지 올라가면 그 다음은 초단에서 9단까지의 유단자가 된다. 자신이 어느 수준의 ‘술꾼’인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산행 후 하산 길, 갓 만든 파전 안주에 얼음물 같은 막걸리 한 사발 들이키는 것은 ‘미각의 극치’다. 등산하는 사람들이 ‘하산주’라는 이름으로 한 잔 마시고 헤어지는 일이 일상이 되었고, 연말이면 술자리도 늘어난다. 이럴 때면 약주라는 술이 독주가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술이 지니는 순기능과 역기능이다. 술을 약주로 마실 것인가. 독주로 마실 것인가. 이는 마시는 사람의 의지 여하에 달렸다. 술이 지닌 역기능 때문에 술 권하는 풍토를 개탄하는 목소리도 높지만, 술잔이 도는 곳에 인정이 흐르고 산 친구들 간의 우정은 돈독해진다.

1 송산주막

더 이상 완벽할 수 없는 한우생고기 전문점

1994년 12월 18일에 개점, 올해 만 20년이 되는 ‘송산주막’은 정직과 자부심으로 금자탑을 쌓아 온 업소다. 개점 당시 야외 공간의 옛 주막 분위기의 건물에서 된장찌개와 보리밥, 잔치국수를 차려 내었는데 5년 후인 1999년 5월에 한우전문점으로 메뉴를 바꿨다.

1997년 10월 14일자 조선일보 지면에 ‘맛있는 집’으로 소개된 이후, 각종 매스컴을 통해 세상에 크게 알려졌다. 지금은 의정부경전철 경기도청 북부청사역에서 멀지 않은 의정부시 신곡동에 반듯한 새 건물을 짓고 깔끔하게 꾸며 영업을 하고 있다.

세상사 모든 일이 ‘사람이 중심’이어야 하는데 송산주막은 그 시범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창업주 김태선(金泰善) 대표는 육군 영관급장교로 예편했다. 20년간의 오랜 장교생활에서 몸에 밴 절도와 리더십이 식당경영에 조화롭게 반영되고 있음을 금방 알게 해준다. 무엇보다 식당경영의 철학과 비전이 뚜렷하다. 자신이 경영하는 식당이 단순한 돈벌이나 생계의 수단만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밝히고 있다. 차려 내는 음식에 정성과 혼을 담는다. 그런 다음 음식이 손님들로부터 감동을 받아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음식 맛은 기본, 그리고 그 맛은 언제나 변함이 없도록 하며 손님들로부터 “돈 좀 벌었다고 음식 맛이 달라졌네”라는 평가는 절대로 받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식당의 청결을 철저하게 유지하고 손님들이 편안하고 즐겁게 식사할 수 있도록 모든 종사자가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식당운영의 기본지침으로 지켜진다. ‘대한민국 최고의 식당’을 지향한다는 업주의 의지와 노력 덕분에 ‘송산주막’은 경기도가 선정한 ‘으뜸음식점(2011. 12. 5)’을 위시, 여러 가지 타이틀을 갖고 있다. 특히 국가안전관리가 가장 우선되어야 할 과제로 떠오르고 있는 작금, 소방관리 우수업체로 선정(2013. 8. 9)된 것은 크게 돋보인다.

식당에서는 강원도 철원의 청정지역 농가에서 정성껏 잘 기른 한우 암소만을 엄선해 사용한다. 직접 도축을 의뢰해서 갖고 오니 유통과정의 비용이 절감되고 손님들에게는 저렴한 가격으로 음식을 제공할 수 있다. 식당에서 고기를 저울질할 때는 절대로 눈금을 속이지 않는다. 화학조미료는 일절 사용하지 않고 천연조미료만을 사용한다. 주방에는 화학조미료가 있을 리 만무한데 부인 주화숙 여사가 주방관리를 철저하게 하고 있다.

송산주막은 이제 개점한 지 불과 20년, 100년 대계를 염두에 두고 ‘100년 가게’를 상상해 본다고 했다. 고맙게도 하나뿐인 아들(김광유) 내외가 부모의 가업을 승계하겠다는 당찬 의욕으로 가게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아버지로서는 고맙기 짝이 없다고 한다.

식당 벽면에는 여러 점의 사진과 그림, 서예작품이 걸려 있다. 그중 ‘요행을 꿈꾸지 말라. 절대 제 힘으로 살아가라. 일을 취미삼아 하라. 시작한 일은 끝장을 내라. 수입 이하로 생활하라’는 글귀가 가슴에 찡하게 와 닿았다.

김태선 대표와 송산주막은 ‘으뜸 중의 으뜸음식점’으로 내세워도 조금의 모자람이 없어 외식업을 처음 시작하는 분들이라면 한 차례 방문해서 ‘본보기 업소’로 삼아도 좋겠다.

메뉴 모둠구이 100g 1만 원. 꽃등심, 특수부위 각 100g 각 2만 원. 차돌박이 100g 1만2,000원. 버섯불고기 100g 6,000원
전화 031-853-1010
찾아가는 길 경기도 의정부시 청사로6번길 7-14(신곡동)

2 오뎅식당

의정부 ‘명물찌개’의 원조집

오뎅식당은 1960년 창업주 허기숙씨가 28세 때 문을 열었다. 처음에는 ‘오뎅’을 파는 포장마차로 시작했기에 ‘오뎅식당’이라는 옥호를 사용했다. 그 옥호는 50년 넘게 그대로 사용하고 지금은 의정부본점, 의정부별관, 의정부신세계백화점, 잠실제2롯데월드 등 총 4개의 직영점을 운영하고 있다.

개점 초기에는 저녁시간에 미군부대 근로자들이 찾아와서 어묵을 먹곤 했는데 어느 날, 손님 한 사람이 햄과 베이컨, 소시지를 갖고 와서 찌개를 끓여 달라고 한 것이 ‘부대찌개’의 유래라고 한다. 이후 오뎅식당에서는 어묵과 부대찌개를 함께 차려 냈다. 오뎅식당에서는 어묵보다 부대찌개가 더 인기가 좋았고, 가까운 동두천과 파주를 위시 서울과 오산, 부평과 인천 등 미군기지가 있는 곳으로 소문이 퍼져 나갔다.

한동안 일부 미군의 철수로 부대손님들이 떠나면서 손님이 줄고 식재료 확보까지 어려워져 불황의 시기도 겪었지만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이 열리면서 식자재수입이 용이해졌고 경기도 회복되었다. 업주 허기숙씨는 지금도 지난날 미군부대에서 나오던 미국산 햄을 수입해 주식재료로 사용하고 있다.

햄의 성분은 돈육 64%, 계육 28%, 감자전분, 식염, 설탕 외 8%다. 각종 언론매체가 오뎅식당 기사를 내보내고 50년 전통의 맛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어 수십년 전에 식당을 찾던 고객들이 대를 이어 식당을 찾는 등 유명세를 타고 있다.

의정부시에서는 1996년 오뎅식당이 있는 골목 전체를 ‘부대찌개거리’로 지정해 음식관광지구로 정했고, 허기숙씨가 지역발전에 끼친 공로를 인정해 의정부시 문화상을 수여했다. 허기숙씨는 2014년 7월에 작고했다.

메뉴 부대찌개 1인분 8,000원. 모둠사리 7,000원. 각종 사리 1,000~5,000원
전화 031-842-0005
찾아가는 길 경기도 의정부시 호국로 1309번길 15(의정부동)

3 밀가마국시집

국시와 국수가 어떻게 다르지

우스갯소리로 “국시와 국수가 어떻게 다르지?” 하고 물으면 그 답이 걸작이다. “국시는 ‘밀가리’로 만든 것이고 국수는 ‘밀가루’로 만든 것”이라는 답변을 듣게 된다. 천보산자락, 의정부시 자일동에는 손칼국수를 먹을 수 있는 유명한 식당인 ‘밀가마국시집’이 있다.

식당 간판 찾기가 보물찾기처럼 어려운 데도 이 집 손칼국수와 만두를 먹기 위해 찾아오는 손님들은 줄을 서야만 겨우 자리를 잡을 수 있다.이러다보니 업주 측에서는 자신의 업소가 매스컴을 통해 홍보되는 것을 ‘정중하게’ 사양해야 하는 형편이다. 그래서 착하디착한 업주(박종관씨)는 본의 아니게 오해를 받기도 한다.

이 집에서는 매주 일요일은 휴업한다. 주인 내외가 성당을 가고 봉사활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지식하고 비사교적인 이미지로 세상에 비칠지는 몰라도 속내를 알고 보면 남몰래 착한 일을 골라서 한다는 것이 주인 내외분을 반세기 넘게 지켜보았다는 누군가의 귀띔이다.

메뉴 손칼국수 7,000원. 만두 6,000원
전화 031-851-6046
찾아가는 길 경기도 의정부시 호국로 1723번길 28(자일동)

4 원조설악추어탕 의정부 금오점

가을날의 시식(時食)은 추어탕이지요

추어탕은 미꾸라지를 넣어 끓이는 국물 요리의 총칭이다. 미꾸라지는 한자로 물고기 어(魚) 자에 가을 추(秋) 자가 붙은 ‘추(鰍) 자’를 쓴다. 실제로 추어탕은 가을에 가장 맛있다. 가을이 제 맛인 추어탕은 벼농사가 끝나고 물을 빼는 과정에서 잡은 미꾸라지를 끓여먹었던 것에서 유래한다.

추어탕은 미꾸라지를 소금으로 씻어 기름과 해감을 제거한 후에 요리하는데 지역에 따라 방법이 약간씩 다르다. 미꾸라지를 통으로 넣고 양념과 채소를 넣어 끓이는 것과 미꾸라지를 삶아 육수를 내고  미꾸라지는 건져서 뼈째 갈아 넣고 끓이는 두 가지 방법으로 나뉜다.

의정부 천보산자락 의정부성모병원 앞쪽, 큰길 건너편에는 ‘원조 설악추어탕 의정부 금오점(대표 정필구)’이 의정부의 유명 업소로 영업 중이다. 55개 체인점이 산재해 영업 중인 원조 설악추어탕은 본거지가 경기도 화성시에 있다. 택배(10인분 이상) 주문도 받는다.

메뉴 추어탕 8000~9,000원
전화 031-841-2986
찾아가는 길 경기도 의정부시 금오동 115-6

5 무봉리 토종순대국

국내외 300개 업소를 거느린 순대국 식당 본점

전국 어느 곳에서나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노란 바탕의 순대국’ 간판. 이 노란 간판의 접두어가 되어 있는 ‘무봉리’가 포천시 소흘읍 무봉리 지명이고, 본점 역시 무봉리에서 멀지 않는 소흘읍 이동교리, 천보산에서 멀지 않는 산자락이다. 체인사업으로 국내외 300여 점포망이 이미 구축되어 있다. ‘무봉리토종순대국’의 창업자 김종복·이희자 대표 내외는 1995년, 의정부에서 식탁 6개로 순대국집을 차렸고 2년 후 포천으로 업소를 옮기면서 재래시장의 분위기를 일신하고 맛도 차별화시키는 데 주력한 것이 크게 성공, 오늘이 있게 했다.

메뉴 순대국 7,000원
전화(본점) 031-542-4464
찾아가는 길 경기도 포천시 호국로 475(이동교리)

‘부대찌개’ 유감 의정부 시민들의 자존심을 위하여

먼 훗날, 초등학교 교실에서 한 어린이가 선생님께 “선생님! 어제 아빠랑 엄마랑 식당에 가서 ‘의정부 부대찌개’를 먹었는데 그 찌개 이름이 왜 ‘의정부 부대찌개’인지 알고 싶어요”라고 질문했다. 그 질문에 선생님이 “궁핍했던 6·25전쟁 시절, 경기도 의정부에서는 미군 부대에서 버리는 음식 중 햄과 소시지만 따로 골라 묵은 김치를 넣고 찌개를 끓여 먹었다. 그래서 그 찌개 이름에 ‘부대’라는 단어가 따라 붙었다”고 한다면 의정부의 이미지가 어떻게 될 것인지, 지금의 의정부 시민들은 한 번쯤 깊이 생각해 봐야겠다.

필자는 조선일보 지면과 <월간山>을 통해서 수차례 “‘의정부 부대찌개’는 적절한 명칭이 아닌 것 같으니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기고를 했었다. 요즘에 우리가 먹는 속칭 ‘부대찌개’는 우리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던 옛날의 그 부대찌개가 아니다. 우리의 축산물로 만든 햄과 소시지로 조리해  저렴하면서도 영양가 높고 맛도 좋은 당당한 우리 음식이다. 한때 언론계 출신의 시장이 재임했을 때 ‘의정부명물찌개 골목’이라는 아치를 세운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아치를 볼 수 없다. 음식 이름 앞에 수치심과 불쾌감을 느끼게 하는 ‘부대’라는 단어가 꼭 들어가야만 하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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