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따라 걷기 | 안동 국제탈춤페스티벌 + 유교문화길] 탈춤과 유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공존, 그 ‘뭔가’를 보다

[551호] 2015.09
  • 글·박정원 부장대우
  • 사진·정정현 국장
    입력 2015.09.18 10:16

    9월 25일~10월 4일 탈춤축제… 병산서원에서 하회마을~부용대까지 약 9km 걸어

    탈춤과 유교, 전혀 상반된 개념이다. 탈춤은 가면과 해학으로 대변되고, 유교는 권위와 형식을 중시한다. 가면에서 권위가 나올 수 없다. 권위는 직선적이다. 가면은 은유적이고 곡선이다. 해학은 웃음을 주지만 형식은 굳은 표정이다. 어쩌면 물과 불의 관계일지 모른다. 하지만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로 자처하는 안동에서는 탈춤과 유교가 수백 년 동안 상존하면서 전승되어 왔다. 특히 탈춤의 대표격인 안동 하회탈은 병산탈과 함께 국보 제121호로 지정돼 있다.

    탈춤은 유교의 역사보다 훨씬 오래 됐다. 탈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원시인들은 사냥을 하면서 위장의 수단으로 탈을 사용했다. 동물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짐승의 소리를 내면서 동물에게 접근하곤 했다. 그리고 신성한 자연물을 숭상했던 토템가면, 기우제를 지내며 썼던 기우가면, 농사가 잘되도록 제의를 지낼 때 썼던 풍요제의가면(豊饒祭儀假面), 나쁜 액을 막기 위해 썼던 벽사가면(僻邪假面), 사원이나 사당에 안치해 두고 숭배하며 제사 지낼 때 쓰는 신성가면, 건강하기를 기원하고 악귀를 쫓아내는 의술가면, 죽은 사람을 추도하고 넋을 기리는 추억가면, 전쟁 시 위엄을 주기 위해 썼던 전쟁가면, 악령으로부터 죽은 사람을 보호하고 영혼이 저승으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례가면, 성인식에 사용되는 입사가면, 무용과 연극 등에 사용되는 예능가면 등 다양한 형태와 용도로 탈을 이용했다.

    부용대에서 내려다 본 하회마을 전경. 낙동강이 삼면을 휘돌아 감은 전형적인 연화부수형의 지형을 보인다.
    부용대에서 내려다 본 하회마을 전경. 낙동강이 삼면을 휘돌아 감은 전형적인 연화부수형의 지형을 보인다.

    탈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숨기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드러낸다. 얼굴을 가리면서 사회의 불의를 과감하게 지적하고 드러나게 한다. 일종의 ‘숨김의 미학’이다. 때로는 신에게 다가가기 위해, 때로는 인간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신명을 표현하기 위해, 그러면서 사회적 불만을 표출하기 위해 탈을 쓰고 춤을 췄다. 숨김으로써 사회의 불의를 드러내고, 드러냄으로써 원하는 바를 얻고자 했던 것이 바로 ‘탈’이다.

    하회탈은 하회마을에서 12세기 상인들에 의해 연희되어 온 탈놀이로 알려져 있다. 하층민들이 즐겼던 하회별신굿탈놀이와 양반들이 즐겼던 선유줄불놀이로 나뉘어 있다. 별신굿은 강신(降神)-오신(娛神)-송신(送神)의 구조로 행해지는 탈놀이 중 오신행위에 해당한다. 즉 마을의 성황신을 즐겁게 함으로써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면서 시작됐다.  

    하회별신굿탈놀이는 ‘탈난 것을 탈잡아 탈을 쓰고 춤추어 탈난 것을 탈친다’라는 문구로 대표된다. ‘탈난 것을 탈 잡는다’는 의미는 탈춤을 추고 나면 탈을 태워 없애 복을 기원했다는 뜻이다. 이는 모순을 극복하려는 민중의 풍자와 해학의지가 강한 대동연희였다.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에서 하회탈을 쓰고 신명나게 한풀이를 하고 있다. 사진 안동시 제공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에서 하회탈을 쓰고 신명나게 한풀이를 하고 있다. 사진 안동시 제공

    탈춤은 마을 갈등구조 해소 위한 화합의 장

    이처럼 하회별신굿탈놀이는 하회마을 사람들이 소중히 모시는 신에 의해 만들어지고 신을 즐겁게 하기 위해 추는 마을 사람들의 소망이었다. 또한 하회별신굿탈놀이 내내 공연자는 평민이지만 재정적 지원은 양반들이 아끼지 않았다. 양반들을 조롱하는 놀이였지만 이들의 재정적 지원으로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일종의 마을의 갈등구조를 해소하기 위한 화합의 장이었다. 평민은 갈등을 해소함으로써 1년간 평화와 마음의 안식을 누리며 삶을 영위했다.

    탈놀이의 핵심적인 개념이 신명(神命)이다. 흔히 “신명나게 놀아보세~”라고 흥을 돋운다. 신명은 인간에 내재하는 신기(神氣), 즉 신령스러운 기운이다. 이 신기가 어떤 계기에 의해 발현되는 것이 곧 신명풀이다. 신명의 발현은 맺히고 묶여 있던 것을 푸는 과정과 일치한다. 결국 신명풀이는 한풀이 과정과 상통한다.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에 참가한 외국인들도 탈춤 한마당에서 탈춤을 따라 추고 있다. 사진 안동시 제공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에 참가한 외국인들도 탈춤 한마당에서 탈춤을 따라 추고 있다. 사진 안동시 제공

    우리의 탈춤은 사회문화적, 정치경제적 억압에 대한 도전과 부정을 통해 맺혀 있던 한을 풀어냄으로써 공동체 구성원들을 집단적 신명풀이의 판으로 이끌어내는 신명의 발전소였다. 이는 하회별신굿탈놀이의 초랭이로 대표된다. 초랭이는 하회별신굿탈놀이의 하인으로서 양반의 허위와 모순에 대한 신랄한 풍자와 공격을 주도하는 인물이다. 하층민의 입장에서 맺힌 한을 풀어냄으로써 관중들이 신명을 풀어내도록 이끄는 핵심인물인 것이다.

    하회별신굿탈놀이가 악대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사진 안동시 제공
    하회별신굿탈놀이가 악대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사진 안동시 제공

    그 신명나는 한풀이 마당이 매년 9월 마지막 주 금요일부터 10일간 안동체육관 옆 축제광장과 하회마을 일원에서 펼쳐진다. 올해는 9월 25일부터 10월 4일까지다.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은 1997년 처음 열리자마자 그해 문화체육부 선정 10대 문화관광축제로 뽑혔다. 이어 1999년엔 전국 문화관광축제 종합평가 2위를 차지하더니, 이듬해인 2000년엔 전국 최우수축제로 선정됐다. 2001년엔 전국 축제 종합평가 1위에 이어 관광대상까지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급기야 2000년부터 2007년까지 8년 연속 전국 최우수축제로 선정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2007년과 2008년, 2009년엔 전국에서 최초로 3년 연속 대한민국 대표축제로 선정되는 쾌거를 이룩했다. 2008년엔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 “가장 한국적인 마을”이라고 칭송하면서 탈춤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중탈을 쓴 파계승이 파계의 여인을 희롱하며 즐거움을 역설하고 있다. 사진 안동시 제공
    중탈을 쓴 파계승이 파계의 여인을 희롱하며 즐거움을 역설하고 있다. 사진 안동시 제공

    축제로서 받을 수 있는 평가와 칭송, 영광까지 모두 안은 탈춤페스티벌은 더 이상 받을 수 있는 상이 없어지자 정부 지원이 끊길 우려가 생겼다. 이에 문광부에서 2014년부터 글로벌육성축제를 새로 만들어 지정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안동 국제탈춤페스티벌은 당연히 첫 번째로 선정됐다.

    그동안 외국 언론에서도 “가장 한국적인 축제”로 소개되면서 가장 많이 보도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CNN, 영국 BBC, 중국 CCTV, 일본 NHK, 러시아 국영TV 등 세계유수 방송에서 안동 국제탈춤페스티벌을 집중 취재 소개했다. 특히 미국 디스커버리 특별기획 취재로 안동탈춤과 하회마을·도산서원, 간고등어·헛제사밥 등을 모두 3차례에 걸쳐 보도하기도 했다. 미국 CNN go에서는 ‘올 가을, 한국을 방문해야 할 6가지 이유’로 안동 탈춤과 함께 부산세계불꽃축제, 부산국제영화제, 제주올레길걷기축제, 경주의 한류드림페스티벌, 전주의 한국음식관광페스티벌을 선정했다.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에 한 참가자가 탈을 쓰고 춤에 몰입하고 있다. 사진 안동시 제공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에 한 참가자가 탈을 쓰고 춤에 몰입하고 있다. 사진 안동시 제공

    올해 세계 10여 개국 600여 개 공연

    올해 안동 국제탈춤페스티벌도 중국, 일본, 필리핀, 프랑스, 러시아, 태국 등 세계 10여 개국 탈놀이 공연단이 참가해 600여 개의 공연으로 화려하게 막을 올린다. 주요행사는 역시 신명나는 놀이판이다. 국가지정 무형문화재인 한국 전통탈춤인 봉산탈춤·은율탈춤·강령탈춤·북청사자놀이와 산대놀이인 송파산대놀이·양주별산대놀이, 농촌형 탈춤인 하회별신굿탈놀이와 강릉관노가면극, 야류 오광대인 동래야류·수영야류·통영오광대·고성오광대 등으로 참가자뿐만 아니라 관객들의 흥을 돋운다. 뿐만 아니라 국내외를 망라한 탈·마임·인형·페인팅·포면·변장·캐릭터를 활용한 공연물을 선보인다. 전통탈춤을 계승한 마당극과 창작탈춤도 공연한다. 한마디로 전 세계 탈춤 한마당이고 가면놀이극의 장인 것이다.

    축제 기간 중 안동의 민속대동놀이인 차전놀이와 놋다리밟기도 남자와 여자로 나눠 벌인다. 부대행사는 인간문화재와 함께 탈춤 한사위 체험행사를 벌인 탈춤따라배우기, 국내와 외국 탈 만들기, 축제소품만들기, 탈 복장 입어보기, 양반들의 놀이인 선유줄불놀이 체험행사, 전통혼례 시연, 내방가사경장 시연, 읍면동화합한마당, 시님한마당잔치, 전통농악시연, 씨름대회, 궁도대회, 달집태우기, 성황제 등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한 한국의 전통문화가 펼쳐진다.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에 참가한 외국공연팀이 탈춤을 선보이고 있다.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에 참가한 외국공연팀이 탈춤을 선보이고 있다.

    전시행사도 탈깃발전, 안동관광기념품전, 한지작품전, 닥종이인형전 등으로 나눠 방문객들에게 선보인다. 10일간 안동 일원에서 열리는 탈춤페스티벌  방문객은 매년 100만 명을 상회한다. 유료입장객만 계산해서 나온 숫자다. 2010년 102만 명, 2012년 110만 명, 2014년 110만 명 등이 찾았다.

    안동축제관광재단 권재환 사무처장은 “축제기간 중 방문객은 지역민 30%, 외지인 70%의 비율이다. 전통탈춤은 외지 방문객용이고, 현대탈춤과 공연은 지역민 참가를 이끌어 내기 위한 행사다. 지역민과 외지인들에게 공통적으로 호응 받는 접합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축제내용과 본질이 조금은 희석되는 경우가 있다. 탈춤축제는 전통을 최대한 살리면서 현대적 내용도 가미하려고 노력했다. 즉 지역민 참가와 외부인들의 관심을 동시에 끌기 위한 내용을 구성하려고 노력을 기울였다. 물론 평가는 관객들 몫이지만 더욱 평가받는 탈춤페스티벌로 매년 거듭날 것이다”고 각오를 밝혔다.

    안동시 축제담당 김창균 체육관광과 계장은 “경북도청이 10월 말부터 안동으로 이주한다. 그러면 안동 인구가 늘어날 것이며, 관광객도 자연스레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하회마을 연 100여 만, 탈춤 100여 만, 유교랜드와 고택체험 등 안동 명소를 찾는 연 방문객이 600여 만 명에 이른다. 하지만 앞으로 1,000만 관광객 시대를 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고 각오와 포부를 다졌다. 

    온 몸에 보디페인팅을 한 여성 참가자가 꽃잎 속에 있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온 몸에 보디페인팅을 한 여성 참가자가 꽃잎 속에 있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하회마을은 ‘물도리동’으로도 불려

    하회별신굿탈놀이가 전승됐던 하회마을은 2009년 영국여왕이 방문한 데 이어 201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국내외 방문객들이 매년 늘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하회마을이 지닌 전통성과 하회별신굿탈놀이가 큰 몫을 했다.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하회별신굿탈놀이는 매주 4회 하회마을에서 공연이 이뤄지는 재미와 멋, 한(恨), 신명이 한데 어울린 한국의 아름다운 예술로 평가받고 있다.

    안동 하회마을은 낙동강이 돌아 흐른다고 해서 물도리동이라고도 부른다. 산은 물을 얼싸 안고, 물은 산을 휘감아 돌아 산태극·수태극의 절묘한 지형을 빚어냈다. 풍수지리상으로도 태극형 또는 연화부수형이라고 한다. 또 배가 짐을 가득 싣고 막 떠나려고 하는 행주형이라고도 한다. 다리미같이 생겼다고 해서 다리미형국이라고도 한다. 이중환의 <택리지> 복거총론에서도 시냇가에 살기 좋은 곳으로 영남의 도산과 하회를 으뜸으로 꼽고 있다. 이러한 풍수지리로 인해 하회마을에서는 우물이 없고, 집의 좌향이 동서남북 모든 방향이 다 있는 것이 특징이다.

    유교문화길의 병산서원 만대루 앞에서 박순화 문화해설사가 병산서원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유교문화길의 병산서원 만대루 앞에서 박순화 문화해설사가 병산서원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안동팔경 중에 제8경이 하회청풍이다. 하회마을의 푸른 물이다. 뿐만 아니라 하회 16경과 병산10경이 따로 있을 정도로 경치가 뛰어나다. 이 모든 경치를 두루 살피며 걷는 길이 유교문화길이다.

    안동에는 고려 공민왕이 충주-문경새재-예천-안동 송야천까지 노국공주와 함께 갔던 ‘몽진길’이 있고, 퇴계 이황이 청량산에 반해 도산서원에서 청량산까지 가던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길’이라고 극찬했던 ‘퇴계오솔길’ 또는 ‘녀던길’이 있고, 병산에서 하회마을까지 ‘유교문화길’이 있다. 유교문화길은 몇 개 코스로 나뉘어 있지만 사실상 병산서원에서 하회마을까지가 길의 모든 것을 보여 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병산서원에서 출발해 하회마을을 거쳐 부용대까지 갔다가 다시 하회마을 주차장까지 돌아오는 코스가 약 9.7km 나왔다. 그 유교문화길을 한 번 걸어보자.

    병산서원에서 박순화 문화해설사가 배롱나무를 보며 설명하고 있다.
    병산서원에서 박순화 문화해설사가 배롱나무를 보며 설명하고 있다.

    인물의 반은 경상도, 그 반은 안동 출신

    병산서원은 서애 류성룡(1542~1607) 사후 그를 따르던 제자들이 1614년 세운 사액서원이다. 철종 14년(1863) 병산이라는 사액을 내린 서원으로, 사적 제260호다. 원래는 풍산읍에 있던 풍악서당이었으나 철종이 사액을 내린 이후 병산서원으로 불렸다. 병산은 서원 앞에 병풍을 쳐놓은 것 같이 생긴 산의 이름이다. 낙동강과 어울린 그 경치가 가히 일품이다. 낙동강 옆 널찍한 모래사장은 옛날엔 피서를 즐기는 사람들로 붐볐다고 동행한 안동시 문화해설사 박순화씨가 전한다. 부시 대통령 부자가 모두 방문, 병산서원과 주변의 풍광에 감탄을 금치 않았다고 한다.

    병산서원은 경치가 뛰어나지만 앞의 병산과 뒤쪽의 화산에 갇혀 풍수적으로 좋은 터는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갇혀 공부하기에 딱 좋은 곳이라고 한다. 애초 이곳에 서원이 자리 잡은 이유가 ‘갇혀 열심히 공부해서 과거에 빨리 급제해서 나가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유교문화길만 하더라도 하회마을에서 병산서원으로 공부하러 다니던 길이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엔 안동의 병산서원과 도산서원에서 공부한 선비들이 중앙 관직으로 부지기수 진출했다. 안동에서는 “인물의 반은 경상도 출신, 경상도 출신의 반은 안동”이라고 할 정도다.

    지금은 역으로 병산서원에서 하회마을로 가고 있다. 병산서원을 나오자 풍산그룹 화악서당이 보인다. 서당이라기보다는 별장으로 지은 고택이다. 이어 전형적인 들길이 나온다. 들길 사이 밭은 각종 밭작물들이 자라고 있다. 두충나무 군락도 보인다. 들길 양쪽으로 야생화가 만발해 향기 가득하다. 빛바랜 유교문화길 이정표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길은 외길. 굽이굽이 흐르는 쪽빛 낙동강물의 물빛, 산도화, 산벚이 어울린 산빛, 뭉게구름과 푸른 하늘이 어울린 하늘빛은 한 폭의 수채화며 산수화다. 유려히 흐르는 물을 보며 문득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전달한 ‘상선약수(上善若水)’란 족자가 떠오른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로 ‘물은 항상 낮은 곳으로 흐르며 서로 다투지 않고 제자리 찾아 가듯이 최고의 선은 물과 같이 사는 것’이란 의미다. 세계 최고의 권력자에게 최고의 선은 자신을 낮추라고 덕담을 건넨 여유가 존경스럽다.

    낙동강 옆을 지나던 유교문화길은 화산 자락으로 접어들어 시원한 숲속 오솔길로 이어진다.
    낙동강 옆을 지나던 유교문화길은 화산 자락으로 접어들어 시원한 숲속 오솔길로 이어진다.

    낙동강을 따라 한쪽은 병산 절벽이고 다른 쪽은 평지다. 평지에 사람들이 터전을 내리고 밭을 일궈 살았다. 강물이 한 번씩 범람하며 배후지를 비옥하게 만들었고, 그 토지에 의존해서 살았을 것이다. 배후지는 깨, 고추, 안동마 등 각종 밭작물이 여기저기 자라고 있다.

    강변 따라 가던 길이 다시 오솔길 숲으로 이어진다. 약간 고도가 높아진다. 숲속으로 들어가자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 물줄기가 아래에 있다. 강물이 휘감아 돈다는 ‘하회(河回)’란 말을 만든 그 낙동강 줄기다. 은빛 모래는 한낮 햇빛을 받아 더욱 반짝거린다.

    이제부터 본격 화산자락으로 들어선다. 이윽고 쉼터가 나온다. 나무가 무성한 곳에 자리 잡았다. 잠시 쉬어간다. 골바람이 시원하게 땀을 식혀 준다. 여름엔 역시 골바람이 최고 피서다.

    햇빛이 내리쬐는 여름 평일인데도 간혹 길을 걷는 사람이 보인다. 서울에서 연극을 한다는 젊은 처자가 혼자 걷는다. 같이 가기로 했다. 외국 남녀와 마주쳤다. 말 붙일 틈도 없이 부리나케 지나간다. 유교문화길이란 의미를 알고 걷는지 궁금했다.

    하회마을을 배경으로 화산으로 가고 있다. 오른쪽에 끝자락에 보이는 절벽이 부용대.
    하회마을을 배경으로 화산으로 가고 있다. 오른쪽에 끝자락에 보이는 절벽이 부용대.

    조선시대로 돌아간 듯 초가·한옥 즐비

    박 해설사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경주 양동마을은 교수나 학자들이 많지만 하회마을은 기업가나 관리들이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하회마을 출신 중에는 풍산금속과 유성기업, 서울막걸리, 풍산그룹 등 기업가들이 많았다. 그리고 조선시대까지 ‘인물의 절반은 안동’이라는 말이 있듯 한 시대를 풍미한 세도가들도 안동 출신들이 즐비하다.

    화산 고개를 돌아서자 하회마을이 서서히 눈에 들어선다. 삼태봉과 문필봉도 선명하게 보인다. 삼태봉은 3개의 봉우리가 연봉으로 이어져 정승이 3명이나 나온다고 해서 붙여졌고, 문필봉은 붓같이 뾰족한 봉우리가 학자를 많이 배출한다고 해서 명명했다.

    하회마을은 한적한 시골마을이다.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촌마을이 됐지만 몇 십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냥 평범한 농촌에 불과했다. 탈춤과 초가집을 가꾸며 전통을 잘 지킨 덕분에 상전벽해로 변했다.

    이윽고 하회마을 안으로 들어선다. 영국여왕의 표현대로 가장 한국적 마을로 들어가는 과거로의 여행 같다. 고택이 연이어 나온다. 첫 집이 서울막걸리 별장이고, 그 옆이 유성기업, 그 옆이 전 국회의원, 그 옆이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사람들의 한옥들이 계속 이어진다. 전부 풍산 류씨들이다.

    연화부수형인 하회마을의 꽃술에 해당하는 자리에 위치한 삼신당목. 수령 600년이 넘은 느티나무는 이 마을의 역사와 같이 하며, 소원을 비는 곳으로도 통한다.
    연화부수형인 하회마을의 꽃술에 해당하는 자리에 위치한 삼신당목. 수령 600년이 넘은 느티나무는 이 마을의 역사와 같이 하며, 소원을 비는 곳으로도 통한다.

    이어 삼신당이다. 하회마을이 물 위에 떠 있는 연꽃과 같은 ‘연화부수형’인데, 그중에서 꽃술에 해당하는 자리가 바로 삼신당이라고 한다. 마을 성황당목이다. 류성룡의 아버지 류종혜가 처음 마을에 자리를 잡을 때 심은 것으로 전한다. 수령 600년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마을 동제를 지낼 때 이곳에서부터 하회별신굿탈놀이가 시작된다. 바로 앞에는 풍산그룹 회장의 한옥이 있다. 삼신당과 바싹 붙어 있어 마치 삼신당이 풍산그룹의 한옥 안에 있는 나무 같다.

    풍산 류씨 대종택인 입암고택도 멀지 않다. 보물 제306호인 양진당이 입암고택이다. 류성룡의 아버지 류중영의 호가 입암(立岩)이다. 입암은 하회마을을 휘감는 낙동강 물줄기를 내려다볼 수 있는 부용대를 가리킨다고도 한다. 입암고택 대문에서 문필봉이 뚜렷하게 보인다. 뒤로는 자연병풍 부용대, 동쪽은 화산, 앞으로는 문필봉이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다. 류성룡 같은 인물이 나올 수밖에 없는 지형이고 산세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차경(借景)문화에 익숙하다. 집 안에 정원을 따로 꾸미지 않고 자연의 경관에 따라 집의 위치와 방향을 맞춰 조화를 이루도록 배치하는 구조를 말한다. 선조들이 자연과 함께 사는 지혜다.

    충효당은 류성룡의 종택이다. 보물 제414호. 그의 호 서애(西厓) 같이 서쪽 언덕을 향하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473호인 만송정 솔숲을 지나 나루터에 머문다. 부용대로 가기 위해서다. 만송정 솔숲은 풍수지리적으로 서쪽의 지기(地氣)가 약해서 보완하기 위해 조성한 비보림이다.

    강물을 건너 부용대로 오른다. 중간쯤 옥연정사가 있다. 류성룡이 지은 정사다. 류성룡이 <징비록>을 쓴 곳이기도 하다. <징비록(懲毖錄)>은 임진왜란을 극복하면서 직접 경험한 사실을 기록한 책으로, ‘미리 징계해서 후환을 경계한다’는 의미다. 국보 제132호.

    부용대에서 하회마을을 보면 환상적이다. 정말 하회마을을 삼면으로 강물이 휘감는 지세는 영락없는 연화부수형 같아 보인다. 그 아름다운 하회마을에서 양반과 하층민의 갈등구조를 탈춤을 통해서 해소하면서 수백 년을 이어왔다. 탈춤과 유교,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문화가 공존하는 그 뭔가는 결국 양반과 하층민의 소통과 융합이었다. 하회마을의 핵심 키워드다. 하층민의 불만을 해소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그 비판을 가감 없이 수용한 문화가 있었기에 지금의 안동이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유교문화와 하회탈춤, 몇 세대에 걸쳐서 지극히 어울리는 문화로 전승되고 있었다.

    유교문화길 개념도

    하회탈, 어떻게 만들어졌고 무슨 기능했나?

    12세기 중엽 완성… 마을 안녕·계층 화합에 큰 역할

    하회탈은 고려 중엽인 12세기에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면 누가, 왜 만들었을까? 안동에 전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하회마을에 정착한 허 도령이란 인물이 전염병으로 부모와 여동생을 한꺼번에 잃었다. 충격을 받은 허 도령은 매일 만취상태에 쓰러져 폐인이 되다시피 했다. 어느 날 꿈속에 신령이 12개 탈을 들고 나타났다. 신령은 “네가 지금부터 외부인의 출입을 막고 백일 동안 탈을 만들고 쓰고 굿을 하면 마을의 재앙이 물러갈 것이다. 탈이 다 만들어질 때까지 누구도 들여다봐서는 안 된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허 도령은 탈을 만들기 시작했다. 각시탈, 양반탈, 선비탈, 초랭이탈, 중탈, 부네탈, 별채탈, 백정탈, 총각탈, 할미탈, 떡다리탈, 이매탈 모두 12개를 차례로 만들어 갔다. 열두 번째 탈을 거의 완성할 무렵, 허 도령을 짝사랑한 처녀가 몰래 들어가 탈을 만드는 모습을 엿봤다. 갑자기 멀쩡하던 하늘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천둥 번개가 쳤다. 허 도령은 그 자리서 피를 토하고 죽었다. 그의 손에는 아직 다 깎지 못한 이매탈이 들려 있었다. 그래서 이매탈은 아직까지 턱이 없는 형상을 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탈을 쓰고 정성껏 굿을 했다. 별신굿이다. 그렇게 기승을 부리던 전염병이 씻은 듯 사라지고 마을에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허 도령이 완성한 하회탈은 모두 열두 개였으나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별채탈, 총각탈, 떡다리탈 3개를 훔쳐가고 지금은 9개가 남아 있다. 그중 하회탈은 국보 제121호로 지정돼 있다.

    하회마을엔 성황신을 받드는 동제를 지내왔다. 별신굿은 무당이 주관하는 무속의 일종이다. 양반이나 선비들은 원래 무속을 배척해 왔기 때문에 하회마을의 터줏대감인 풍산 류씨들은 별신굿에 관심이 없었고 행사에도 관여하지 않았다. 하층민들이 동제를 주관했다. 하지만 동제에 드는 모든 비용은 양반들이 부담했다.

    탈놀이는 하층민인 초랭이와 이매를 내세워 상류층인 양반과 선비를 조롱하고 비판하고, 중을 내세워 성직자의 타락상을 풍자하며, 할미를 등장시켜 서민들의 고달픈 삶을 표현한다. 서민들은 양반들로부터 소외당한 설움을 별신굿을 통해 해소함으로써 한을 풀었다. 이는 오랜 세월 동안 계층 간의 조화를 이루고 마을의 안녕을 유지하는 데 큰 힘이 됐다.

    전쟁과 변란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양반들의 집과 식량창고가 타격대상이다. 하지만 안동에는 하층민들의 한풀이를 매년 정기적으로 풀어와 양반과 하층민 간의 유기적 관계가 유지돼 왔다. 지금까지 안동에 가장 많은 고택이 남아 있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탈춤의 사회적 기능이라는 관점에서 탈춤은 계층 간 유대를 유지하는 힘으로 작용해 왔던 것이다. 

    유교문화길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 교통 •

    서울에서 승용차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영동고속도로→ 만종JC→ 중앙고속도로를 거쳐 서안동IC로 빠져나오면 된다. 약 3시간.

    고속버스는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오전 6시10분 서울을 출발해 하루 18회 왕복운행한다. 요금 우등고속 기준 1만6,500원. 3시간 내외. 동서울터미널에서도 오전 6시 첫 차가 출발해서 약 3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우등 1만6,500원, 심야우등 1만8,200원. 약 3시간.

    안동이야기택시는 안동문화원에서 이야기꾼양성과정 2기수 이상씩 수료한 기사들로 구성된 사람들로 현재 7명이 활동하고 있다. 관광지 안내, 문화재해설 등 민간홍보대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문의 054-853-1254 또는 010-2504-4059.

    안동터미널 인근 교보생명에서 46번 버스를 타면 하회마을까지 간다. 오전 6시10분 첫 출발해서 1시간1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병산서원은 하루 3회 왕복운행. 버스비 1,200원.

    •숙식(지역번호 054)•

    안동의 내륙지방이지만 의외로 전통적인 지역별미가 많다. 헛제사밥과 간고등어, 안동식혜는 까치구멍집(821-1056), 맛50년 헛제사밥(821-2944), 안동찜닭은 안동찜닭종손(855-9457), 한우는 풍전한식전문점(858-4036)이다.

    한옥체험 고택이 여러 곳 있다. 옥연정사(854-2202), 학봉종택(852-2087), 농암종택(843-1202), 치암종택(858-6121) 등이 한국관광공사 선정 우수 한옥체험 시설이다.

    기타문의 안동시 체육관광과(840-5510), 하회마을 종합관광안내소(840-6974), 병산서원(858-5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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