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이슈 |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운동] 설악산 케이블카 ‘환경영향 평가서’ 오류ㆍ조작 논란

월간산
  • 입력 2016.03.24 13:1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책 연구기관 KEI, “환경영향 평가서 부실ㆍ오류 많아” 지적

지난 1월 25일 원주지방환경청사에서 ‘설악산 케이블카 취소’를 요구하며 고공시위를 벌인 박그림 설악산 지키기 국민행동 대표를 비롯한 시민환경단체 회원들.
지난 1월 25일 원주지방환경청사에서 ‘설악산 케이블카 취소’를 요구하며 고공시위를 벌인 박그림 설악산 지키기 국민행동 대표를 비롯한 시민환경단체 회원들.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 승인의 발판이 되었던 강원도 양양군이 제출한 환경영향 평가서가 오류 논란에 휘말리고, 한국대학산악연맹·대한산악연맹·한국산악회·서울시산악연맹 등 대표적인 산악단체가 ‘설치 반대 성명서’를 채택하면서 케이블카 사업 타당성이 위기를 맞았다.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환경정책 평가연구원(Korea Environment Institute: 이하 KEI)은 강원도 양양군이 제출한 ‘설악산 오색 삭도(케이블카) 설치사업 환경영향평가서(초안)’를 검토한 결과, “입지의 적절성과 계획의 타당성이 미흡할 뿐 아니라, 국립공원위원회의 조건부 심의 결과에 배치되고 부실 조사와 각종 오류를 담고 있다”고 지적했다.

KEI의 이런 검토 의견은 박그림 설악산 지키기 국민행동 대표를 비롯한 시민환경단체들이 제기해 온 주장과 대부분 일치하는 것이다.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사업은 지난해 8월 28일 환경영향 평가서를 바탕으로 국립공원위원회에서 심의해 조건부 가결된 바 있다.

KEI는 케이블카가 설치되는 지역의 산림 훼손 면적이나 수목량이 애당초 계획에 비해 감소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증가하고 있고, 사업계획 대상지는 ‘아고산대’로 산양 등 법정보호동식물의 주 서식지일 가능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특히 상부 정류장 부근에 조성될 산책로에서 관광객이 이탈할 경우, 불과 260m밖에 떨어지지 않은 백두대간에 직접적인 영향이 예상되고 그 수준은 매우 심각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불어 환경영향평가서에 담긴 식물 현황의 경우 설치될 시설물로부터 100m 범위 내를, 동물 현황의 경우 직접영향권인 500m와 간접영향권인 1,000m를 중점 지역으로 설정해 조사했다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케이블카의 지주와 노선 부근만 조사해 현장의 현황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문제점들은 국립공원위원회가 조건부 심의에서 제시한 7가지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고 KEI는 분석했다. 7가지 조건은 산양 문제 추가 조사와 멸종위기종 보호대책 수립, 상부 정류장 주변 식물보호 대책 추진, 탐방로 회피대책 강화 방안 강구, 시설 안전 대책 보완, 사후 모니터링 시스템 마련, 양양군·공원관리공단 공동관리대책 마련, 수익 15% 설악산 환경보존기금 조성 등이다.

또 양양군은 공사와 소음 등 인위적 요인에 의해 동물들이 주변으로 회피하는 영향만을 예측했지만, 헬기 이용으로 포유류, 조류, 곤충류들의 짝짓기와 번식, 먹이와 영역 활동에 심각한 영향이 예상되고, 멸종 위기 종인 산양과 담비, 삵 등은 서식지 파편화로 개체군이 감소할 것으로 우려된다고 설명했다.

1월 13일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모인 대산련ㆍ한산ㆍ대학산악련ㆍ서울시련 관계자들.
1월 13일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모인 대산련ㆍ한산ㆍ대학산악련ㆍ서울시련 관계자들.
이와 함께 사업 추진에 대한 반대 여론이 적지 않기 때문에, 주민 설명회와 공청회를 통해 환경영향평가에 대한 법적, 절차적 요건이 만족된다고 하더라도 환경 단체와 양양군 간의 추가적인 갈등 조정 노력이 필요하고 구체적인 내용을 평가서에 수록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권고했다. 환경영향평가 협의기관인 환경부(원주지방환경청)는 법령상 KEI의 검토 의견을 수렴하도록 돼 있다.

한편 KEI의 검토 의견은 원주지방환경청 청사에서 “환경영향평가서 초안 부실 작성과 반려”를 주장하며 1월부터 40여 일 넘게 비박농성을 해온 박그림 설악산 지키기 국민행동 대표를 비롯한 시민환경단체들의 주장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계기가 되었다. 설악산 케이블카를 반대하는 시민환경단체 회원들은 강원도청 앞에서 1,000일 넘게 노숙농성을 해오기도 했다.

대산련ㆍ한산ㆍ대학산악련ㆍ서울시련 반대 성명 채택

박그림씨를 비롯한 환경단체 운동가들은 1월 25일 원주지방환경청사에서 ‘환경영향평가서 허위 작성’을 주장하며 ‘설악산 케이블카 취소’를 요구하는 대형 플래카드를 펼치며 고공시위를 벌였고, 원주경찰서는 이날 환경운동가 15명을 연행, 이 중 박그림 대표를 비롯한 3명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나 구속영장은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가 없다”며 기각되었다.

산악인들 역시 ‘케이블카 설치 반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해 8월 서울광장에서 열린 1박2일 동안의 반대 행사에는 원로산악인 김영도 대한산악연맹 고문을 비롯해 정광식, 윤대표, 정승권, 장경신, 윤대훈, 이기범, 최석문, 이명희 등 산악인들과 한국대학산악연맹 정영목 회장, 대한산악연맹 김재봉 전무 등이 참석했다. 이외에도 산악인을 비롯한 많은 등산동호인들이 페이스북·트위터·인스타그램 등의 SNS를 활용해 반대의 뜻을 나타냈다.

산악인들에 비해 입장 표명에 신중한 행보를 보이던 산악단체도 반대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한산악연맹과 한국산악회, 서울시산악연맹, 대학산악연맹 관계자들은 지난 1월 13일 ‘오색 케이블카 반대’를 주제로 모였다. 대한산악연맹 환경보전위원회 김윤희 부위원장, 한국산악회 이상세 총무이사·신동석 사무국장, 한국대학산악연맹 박용희 사무국장·배성우 총무이사·김동수 비상대책위원장, 서울시연맹 송정두 사무국장·장귀용 환경보전이사가 참석한 이날 자리에서 ‘반대의 목소리를 함께 낼 수 있는 하나의 연대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이 자리를 처음 제의하고 주도적으로 모임을 진행한 한국대학산악연맹 박용희 사무국장은 “산악단체들의 반대 의견을 담은 성명서를 채택했다”며 “대중의 주목을 받을 수 있도록 적당한 발표 시기를 조율 중”이라 밝혔다. 산악계의 대표적인 4대 단체가 ‘케이블카 설치 반대’에 한 목소리를 내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A등산학교 강사는 “설악산 케이블카가 논란이 된 지가 언제부터인데 대학산악연맹만 제 목소리를 낼 뿐, 산악인을 대표한다는 대한산악연맹의 입장 표명이 너무 늦은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1년에 최소 2번은 꼭 설악산을 찾아 쓰레기를 줍는다”는 경기도 고양시의 박 모씨는 “살아 숨 쉬는 생명의 산을 개발과 이익 논리로 접근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이제라도 설악산의 감동을 아는 산악인들이 뜻을 모아, 산을 대규모로 파괴시킬 케이블카 건설을 막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KEI의 환경영향평가서 부실·오류 지적에 이어, 시민환경단체와 산악인 및 산악단체의 전면적인 반대에 부딪힌 설악산 케이블카는 앞으로 더 큰 논란에 휩싸일 것으로 예상된다.
저작권자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