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무명용사 정신’ 산악운동으로 계승한 ‘백운의 혼’ 추모제 열려

[561호] 2016.07
  • 글·월간산 김기환 기자
  • 사진·한넝쿨산악회 제공
    입력 2016.07.26 13:07

    현충일 백운산장 앞에서… 대산협과 한산 등 산악단체 50여 명 참석
    최근 추모비 설립자 강의식 선생과 연락 닿아 옛 기록 확인

    백운산장 앞마당에 자리한 ‘백운의 혼’ 충혼탑.
    백운산장 앞마당에 자리한 ‘백운의 혼’ 충혼탑.

    암벽등반의 메카 북한산 인수봉 자락에 자리한 백운산장 앞마당에는 ‘백운의 혼’ 충혼탑이 세워져 있다. 이 탑은 연중 인파가 붐비는 길목에 자리한 보기 드문 ‘국가지정 현충시설’로, 이곳에서 매년 6월 6일 현충일 한넝쿨산악회(회장 박순배)가 주관하는 추모행사가 열리고 있다. 이 행사는 2006년부터 대한산악협회, 한국산악회, 한국대학산악연맹, 한국산악동지회 등 주요 산악단체가 참가하는 합동추모제로 치러져 올해로 10회째를 맞고 있다.

    올해 진행된 현충일 추모행사에는 대한산악협회 이인정 회장과 한국산악회 정기범 회장 등 산악계 인사 50여 명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한넝쿨산악회 박순배 회장은 “현충일 ‘백운의혼’ 추모행사를 대한민국 산악계를 대표하는 산악단체와 합동으로 치른 지 벌써 10년이 되었다”면서 “무명용사의 숭고한 뜻을 ‘산악운동 정신’으로 승계한 선배들의 마음을 후대에 이어가기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또한 “올해 추모행사에 앞서 ‘백운의 혼’ 충혼탑을 세우는 데 앞장섰던 ‘백운의숙’ 설립자 강의식 선생과 연락이 닿아, 한넝쿨산악회 초대회장으로 추모행사를 시작했던 이수철 선배와 함께 만나는 기회가 있었다”고 밝히며, “강 선생님은 90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당시 무명용사들의 시신을 우이동에 안장하고 기념탑을 세운 모든 과정을 상세하게 기억했다”고 전해 주었다.

    ‘백운의 혼’ 충혼탑은 1950년 6월 28일 미아리전투에서 퇴각하던 국군장교와 연락병이 서울 함락을 비통해하며 이곳에서 자결한 것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추모비다. 당시 현장에서 두 사람의 죽음을 목격한 백운산장지기 이남수씨가 우이청년단에 이 사실을 알려 시신을 수습해 근처에 가매장했는데, 1955년 소식을 전해들은 육군정훈학교 강의식 소령이 이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우이동으로 이장해 안치했다. 이후 1959년 강 소령이 설립한 애국단체 ‘백운의숙’과 T.S.A, 홍지회 등 산악단체가 이들을 기리기 위해 백운산장 앞에 ‘백운의 혼’ 충혼탑을 세우게 됐다.

    1 올해 현충일 추모행사에 참가한 산악인들.
    1 올해 현충일 추모행사에 참가한 산악인들. 2 추모행사 참가자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충혼탑에서 정기 추모제가 열린 것인 1973년부터다. ‘백운의숙’과 함께 활동했던 산악단체 홍지회가 한넝쿨산악회로 개명해 창립 이후 매년 ‘무명용사’를 위해 추모행사를 가져왔다. 이후 이러한 사연이 세상에 알려지자 국방부는 1995년 6·25전쟁 45주년을 맞아 우이동에 있던 무명용사의 묘를 대전국립묘지로 이장했다. 2008년에는 국가보훈처가 ‘백운의 혼’ 충혼탑을 백운산장과 한넝쿨산악회가 관리하는 현충시설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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