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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9월의 클라이밍 | 손정준·손승민] 최대치를 끌어내고 한 번 더 끌어낼 때 자유로워지리라

월간산
  • 입력 2016.09.07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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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등반의 물결을 이끈 클라이밍박사와 무서운 신예로 떠오른 아들

인수봉 남측 슬랩의 크랙 라인을 부드럽고 능숙한 동작으로 오르는 손정준.
인수봉 남측 슬랩의 크랙 라인을 부드럽고 능숙한 동작으로 오르는 손정준.

자유등반은 자유롭지 않다. 20m 이하의 벽이 아닌, 산에서의 자유등반은 더 그렇다. 장비를 이용하지 않고 자신의 신체 능력만으로 벽을 올라야 한다. 수백m 공중에 매달려 손끝 힘만으로 몸을 끌어올려야 하는 상황에 마주칠 때, 자유롭기는커녕 ‘살아남아야 한다’는 원초적인 본능이 정신을 지배한다. 물론 로프를 묶었으니 목숨의 위협까지는 아니지만, 압도적인 고도감을 극복하고 미세한 홀드를 이용해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행위가 자유등반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자유등반가와 인수봉을 찾았다. 그는 1999년 태국 프라낭에서 한국 최초로 5.14급을 올랐으며, 맨 몸으로 오를 수 없는 벽이라 여겨졌던 설악산 적벽을 2000년 자유등반으로 올랐다. 2008년에는 우리나라의 가장 큰 벽인 울산바위 비너스길을 자유등반으로 올랐으며, 지난 6월에는 세계적인 거벽 요세미티의 엘캡 노즈를 11시간 20분 만에 올라 한국인 최단시간 등반기록을 세웠다. 더불어 프리라이더를 자유등반으로 오르는 데 성공했다. 프리라이더는 최고 난이도 5.12d에 이르는 고난도 루트로 피치 길이가 60m 안팎에 이르며, 총 33피치다. 프리라이더를 자유등반으로 오르는 것은 미국에서도 톱 클라이머만 시도할 수 있는 무척 어려운 도전이다. 한국 클라이밍의 크럭스라 여겨졌던 한계를 선구적으로 돌파한 자유등반가 손정준(50)이다.

인수봉 남측 슬랩 1피치 종료 지점에서 등반라인을 살피는 손정준 부자.
인수봉 남측 슬랩 1피치 종료 지점에서 등반라인을 살피는 손정준 부자.

중학생 때 5.14c 오른 무서운 신예

짧게 자른 머리카락, 예리한 눈매, 차돌처럼 다부진 인상의 청년은 손정준의 아들 손승민(21)이다. 상지대학교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그는 아버지의 피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오히려 아버지는 자신이 젊었을 적보다 아들의 등반능력이 더 낫다고 본다. 손승민은 중학교 3학년이던 2011년 스페인 말라가에서 5.14c급을 완등해, 클라이머들을 놀라게 했다. 지난 6월에는 아버지를 따라 후등으로 요세미티 프리라이더를 올랐다. 군입대를 앞둔 현재 매주 설악산 울산바위를 찾아 거벽 자유등반에 몰두하고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찾은 곳은 인수봉 서면 하강 지점의 안부. 요세미티 등반의 피로가 아직 풀리지 않은 터, 가볍게 남측 슬랩을 오른다. 빠르고 부드럽다. 촬영을 위해 나름 천천히 오르는데도 평지 산행하듯 편안하게 올라선다.

손정준은 최초의 스포츠클라이밍 박사다. 2013년 경희대학교에서 ‘스포츠클라이밍 동호인들의 체력 비교 분석’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석사 학위 때는 ‘스포츠클라이밍 선수들의 젖산과 피로회복’에 관한 논문을 썼다. 박사 과정만 6년이 걸렸다. 당시 국내에 스포츠클라이밍 관련 연구를 한 사례가 없었기에 적벽 자유등반 못지않은 어려운 도전이었다. 문무를 겸비한 선구적 클라이머로 거듭난 것이다. 이에 대해 그는 “경제적인 부분을 아내가 맡아서 해줬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고마움을 표현한다.

아내 윤경임은 1991년 선운산 병바위에서 손정준과 바윗길 개척을 하던 중 척추뼈가 부러지는 큰 부상을 입었다. 남편의 로프가 꼬인 걸 풀어 주려 확보 없이 3m를 올랐다가 추락한 것이다. 3개월 동안 누워만 있었을 정도로 힘든 시간이었지만, 재기에 성공해 5.12를 오르는 실력을 갖추었다.

인수봉 남서벽 크랙을 유연한 자세로 오르는 손승민.
인수봉 남서벽 크랙을 유연한 자세로 오르는 손승민.
손승민이 인수봉을 오른다. 슬랩에선 조심스럽지만 미세한 홀드라도 붙잡을 게 있으면 거침없다. 균형 감각과 힘이 탁월하며, 계속된 거벽 등반으로 체력까지 좋아 경험만 쌓는다면 아버지의 뒤를 잇는 걸출한 등반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7세에 아버지를 따라 등반벽 길이만 200m에 이르는 설악산 울산바위를 처음 오른 그는 “이 세상에 멋지지 않은 게 하나도 없다” 감탄했다. 손정준은 아들에게 울산바위를 처음 보여 주었던 그 순간을 지금도 기억한다.   

손승민은 “아버지에게 끌려서 이 산 저 산 다녔지만 등반을 직업으로 할 생각은 없다”며 “그래서 체육관련 학과가 아닌 경영학을 택했다”고 한다. 그러나 5.13d급을 온사이트로 오를 정도로 재능이 뛰어나며 등반에 대한 열정도 뜨겁다. 실력에 걸맞은 목표도 갖고 있다. 해외에서 5.15에 도전하고, 노즈를 자유등반으로 오르고, V15 볼더를 하고 싶다는 것. 그는 “클라이밍을 골고루 다 하고 싶다”고 반짝이는 눈빛으로 말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어떤 길을 가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는 “안정된 직업이면 좋겠지만, 본인이 갈 길을 찾아야 한다”며 “판단력과 창의성이 뛰어난 편이라 등반이 아니더라도 무엇이든 잘 할 수 있을 것”이라 아들에 대한 믿음을 표현한다.

손정준이 남측 슬랩 1피치 종료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는 국내 최초로 5.14급을 올라 한국의 고난이도 등반시대를 앞당겼다.
손정준이 남측 슬랩 1피치 종료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는 국내 최초로 5.14급을 올라 한국의 고난이도 등반시대를 앞당겼다.
전남 여수 금오도가 고향인 손정준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1983년 서울로 상경했다. 단 3만 원을 쥐고 올라와 봉제공장에서 일하다 부천의 제일베어링에 입사하며 경제적인 안정을 이루었다. 주말에 할 것을 찾던 그는 사내(社內) 산악회인 심산산악회에 가입하며 1984년부터 산을 찾았다. 로프를 둘러멘 클라이머들의 배낭에 반한 그는 인수봉 암벽등반을 전문으로 했던 돌무리산악회에서 활동하며 바위 맛에 빠져들었다.

열정적이고 등반실력이 뛰어났던 그는 부천산악연맹의 푸모리 원정대원으로 뽑혀 2년을 열심히 훈련했지만, 원정이 무산되며 다니던 회사마저 그만두게 되었다. 이때 받은 퇴직금으로 1990년 일본 조가사키 등반을 다녀왔다. 이후 다양한 바윗길과 일본 클라이머들의 뛰어난 기술에 자극 받아 실력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1990년 마산에서 열린 볼더링 대회와 1991년 설악산에서 열린 암벽대회에서 우승하며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린 그는, 1995년부터 1997년까지 전국 인공암벽대회 3연패를 하며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사람들은 그에게 선천적으로 타고난 신체 조건이 좋다고 하지만, 그는 “노력으로 얻은 것”이라 한다. 어릴 적 개한테 물려 오른손 엄지손가락이 잘린 걸 실로 꿰매었기에, 지금도 남들처럼 홀드를 잡지 못한다. 2002년에는 태국에서 프랑스 클라이머들에게 자세를 설명하다 왼쪽 무릎 십자인대가 끊어지고 연골이 파열되는 큰 부상을 입어 지금도 무릎이 완전히 굽혀지지 않는다. 2008년에는 미국 요세미티에서 15m 추락으로 발목 골절을 당해 완전히 재활하는 데만 7년이 걸렸다.

그는 “어렵고 힘든 데서는 사고가 안 나고, 항상 소홀히 했던 쉬운 곳에서 사고가 생긴다”며 “하지만 부상을 딛고 일어섰을 땐 더 강해진다”고 이야기한다. 체력적으로는 분명 약해진 것이지만 정신력이 더 강해졌기에 전체적으로 등반능력이 성장한다는 것이다.

(왼)침착하게 서면벽 등반라인을 살피며 오르는 손승민. 아버지는 자신이 젊었을 적보다 아들의 등반능력이 더 뛰어나다고 평가한다. (오)서면 벽 크랙 리듬에 몸을 맞춰 오르는 자유등반의 대가 손정준.
(왼)침착하게 서면벽 등반라인을 살피며 오르는 손승민. 아버지는 자신이 젊었을 적보다 아들의 등반능력이 더 뛰어나다고 평가한다. (오)서면 벽 크랙 리듬에 몸을 맞춰 오르는 자유등반의 대가 손정준.
손정준은 클라이밍 교육에 있어서도 눈에 띄는 활동을 해왔다. 코오롱등산학교와 한국산악회등산학교에서 강사 활동을 했으며, 현재 한국등산학교에서 교육을 하고 있다. 인천대와 경희대에서 강의했으며, 이번 가을학기부터 을지대에서 시간강사가 아닌 겸임교수로 강의하게 되었다. 손상원 같은 걸출한 클라이머들이 찾아와 트레이닝을 받을 정도로 그의 지도력은 정평이 나있다. 

그는 기술적인 면보다 인성을 더 중요시 여긴다. “스포츠클라이밍의 장점이자 단점이, 개인주의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지는데, 이를 지도자가 잡아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한국의 등반실력에 비해 등반문화가 뒤처져 있기에 사람을 배려하고 자연을 보전하는 더 성숙한 문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인수봉 남서벽 2피치를 오르는 손승민과 예의 깊게 주시하며 로프를 풀어주는 손정준.
인수봉 남서벽 2피치를 오르는 손승민과 예의 깊게 주시하며 로프를 풀어주는 손정준.
풀 한 포기도 고귀한 생명, 자연 상태 그대로 등반하라

손정준은 자연 그대로의 등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자연을 훼손하며 등반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풀 한 포기도 생명인데 그것조차 뽑지 말고 등반해야 해요. 어쩔 수 없는 경우만 아니라면 자연 상태 그대로 등반해야 합니다.” 

그는 지금껏 시대를 앞당기는 등반을 해왔다. 5.14시대를 연 것이 그랬고 적벽 자유등반이 그랬다. 지금은 설악산 울산바위와 미국 요세미티를 바라본다. 우리나라 최대의 바위벽인 울산바위의 루트들을 2012년부터 보수작업을 하고 때론 개척자들의 허락을 받아 현대등반에 맞게 탈바꿈시키고 있다. 울산바위 등반에 몰두하는 건, 국내 최대 벽에서 훈련을 해야 요세미티 같은 한 피치 길이만 60m에 이르는 진짜 벽을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울산바위에서 강한 체력과 기술, 정신력을 길러야 한다고 말한다.

한여름 뜨거운 햇살을 피해 그늘진 인수봉 후면, 남서벽으로 향한다. 아무도 없는 인수봉의 뜨거운 오후, 크랙을 레이백 동작으로 당기며 그가 비상한다. 빠르거나 느리지 않게 자연 그대로의 리듬으로, 오를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그 끝을 향해 올라간다. 그가 벽을 오르는 풍경은 너무나 자연스러워, 원래부터 거기 있었던 존재 같다. 물아일체의 몰입에 이른 자유등반가 손정준이다.
등반 실력 못지않게 환한 미소까지 닮은 아버지와 아들.
등반 실력 못지않게 환한 미소까지 닮은 아버지와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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