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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2016 한국청소년 오지탐사대 | 페루 안데스] “우리만의 봉우리를 올랐어요”

월간산
  • 입력 2016.09.08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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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카노타산군 시비나코차~아우상가테 위성봉~무지개 산 코스 답사

무지개산 정상에서 바라본 진기한 풍경.
무지개산 정상에서 바라본 진기한 풍경.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는 지금까지 회자되는 명장면이 있다. 한 원시인류 무리 중 한 명이 동물의 뼈를 도구로 인지하고, 이를 사용해 전투에 승리한 후 기쁨으로 뼈다귀를 하늘 높이 던진다. 그 순간 이 뼈가 우주선으로 바뀌며 미래로 시공간이 넘어간다. ‘동물과 별다를 바 없던 인간이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오게 됐다’는 한마디를 이보다 멋지게 표현할 수 있을까.

새로움에 대한 도전은 인류를 뼈에서 우주선까지 발전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2016 오지탐사대 남미 페루팀 또한 이러한 새로움에 대한 열망이 컸다. 우리는 새로움을 좇아 7월 17일부터 8월 8일까지 페루 안데스 빌카노타(Vilcanota)산군을 탐험했다. 페루 쿠스코에서 동남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이곳은 잉카문명의 중심이 되었던 산으로, 우리는 마리포사(La Mariposa·5,842m)를 오를 예정이었다.

우리만의 길을 만들어 가기 위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훈련과정부터 남달랐다. 모든 대원의 목소리를 듣고 각자가 리더가 되기로 했다. 또한, 매주 금요일 밤 탐사지인 남미와 페루를 이해하기 위한 독서토론을 했다.

페루에 가서도 많은 혼란을 겪어야 했다. 남미 특유의 예측 불가능한 일들이 시도 때도 없이 닥쳐왔다. 이번 탐사는 대행사나 가이드 없이 온전히 우리 힘으로 이뤄졌다. 가이드를 쓰지 못한다는 사실은 각 대원의 책임감에 무게를 실었다. 나는 5개월간 남미여행을 한 경험으로 행정을 맡았기에 현지 코디네이터 역할을 했다. 크게는 안전문제부터 세부적인 운행 일정까지 마음에 걸리는 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

원지현 대원이 운행 1일차 우피스 마을에 도착하여 노을을 감상하고 있다.
원지현 대원이 운행 1일차 우피스 마을에 도착하여 노을을 감상하고 있다.
페루에 도착해 귀국하는 그 순간까지 우리의 탐사는 1분 1초 그 앞을 예측하기 힘든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비행기 운행이 세 번이나 예고도 없이 바뀌었고 쿠스코에서 탐사 시작지점까지 가는 차량을 구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그리고 도착한 날 아침 우리를 태우러 나온 차는 약속과 달랐다. 짐이 다 들어가는 더 큰 차량을 보내달라고 씨름하다 결국 차량 두 대에 나누어 타고 예상보다 늦게 출발하니 시작 전부터 기운이 빠졌다. 과연 우리 탐사를 제대로 마무리 할 수 있을까 괜스레 불안해졌다.

유리처럼 맑은 이름 모를 호수.
유리처럼 맑은 이름 모를 호수.
마리포사 봉 대신 아우상가테 위성봉 등반

안데스의 광활한 대자연 속에서 지냈던 2주는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마부의 경험을 참고해 그날의 운행일정을 정했다. 가이드가 없으니 마부의 말에 많이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좀더 자세한 지도와 나침반이 있었다면 주체적으로 일정을 정했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처음 4,000m대에 도착해서는 고산병이 찾아오는 게 두려워 해가 뜨고 지는 게 무서웠다. 텐트 안에서 두통으로 끙끙거리며 대원들과 잠꼬대로 대화를 나눌 정도였다. 그러나 고산병이 잦아든 후 올려다 본 밤하늘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은하수와 별들이 눈동자를 가득 메울 정도로 들어왔다. 30℃의 일교차로 덜덜 떨다가 우연히 발견한 별똥별에 소원을 빌었다.

아우상가테 위성봉 정상에서 모두의 진심을 담아 스노바를 세웠다.
아우상가테 위성봉 정상에서 모두의 진심을 담아 스노바를 세웠다.
우리만의 봉우리를 가라는 뜻이었을까. 우리가 목표했던 마리포사봉의 북면 사진만 들고 탐사를 떠난 결과 눈앞에서 베이스캠프를 놓치고 돌아 남면까지 오게 되었다. 그러나 남면은 눈이 시릴 정도로 깎아지른 경사로 험난하게만 보였다. 결국 그 옆 아우상가테(Ausangate·6,384m)의 위성봉을 대신 오르기로 결정하고 아쉽지만 발길을 돌렸다. 비록 차선이었지만 위성봉 정상에서 본 경치는 숨 막힐 듯 아름다웠다. 백록담이 안데스에 풍덩 빠진 듯 푸른 호수 주위로 엄청난 크기의 빙하가 병풍처럼 겹겹이 들어서 있었다. 우리가 함께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정상이라는 스노바를 박고 돌아서는데 마음까지 두고 온 듯 정상 위 풍경이 계속 어른거렸다.

이후 다채로운 색깔의 담요를 덮은 무지개산까지 오른 뒤 쿠스코로 돌아왔다. 2주간 자연 속에서 온전히 시간을 보낸 것이 꿈같이 느껴졌다. 안데스에서 보낸 시간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솔직하게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게 했다.

비록 오르고자 했던 봉우리 정상에는 가지 못했지만 그 과정에서 진심으로 행복했고, 비로소 하나 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했다. 
대원들이 시비나코차 호수를 한껏 만끽하고 있다.
대원들이 시비나코차 호수를 한껏 만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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