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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시즌특집 단풍&억새 | 명성지맥 자등현~명성산 구간] “시원하게 면도한 능선 따르면 새하얀 억새가 살랑~살랑”

월간산
  • 입력 2016.10.11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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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지맥 자등현~각흘봉~명성산~산정호수 약 15km
360도 조망 각흘봉, 억새 천지 명성산… 가을 맞춤형 지맥 종주 코스

명성산에는 10월부터 억새가 흐드러지게 펴 산객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명성산 산행만 하기 부족하다면 자등현에서 명성지맥을 따라 각흘봉~명성산을 종주해 보자. 사방 시원한 조망과 억새의 향연이 시종일관 펼쳐진다.
명성산에는 10월부터 억새가 흐드러지게 펴 산객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명성산 산행만 하기 부족하다면 자등현에서 명성지맥을 따라 각흘봉~명성산을 종주해 보자. 사방 시원한 조망과 억새의 향연이 시종일관 펼쳐진다.

가을산행의 테마는 누가 뭐래도 단풍과 억새다. 전국에 억새로 내로라하는 산이 많지만 수도권에서 억새로 이름이 드높은 산은 단연 명성산(鳴聲山·923m)이다. 명성산만 올라도 좋지만 명성지맥 중 자등현~각흘봉(角屹峰·838m)~명성산~산정호수 구간은 가을에 오르기 딱 좋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 방화선 능선을 지나기에도 좋고, 각흘봉에선 파노라마 조망을, 명성산에 이르면 새하얀 파도 같은 억새밭을 구경할 수 있다. 산정호수로 하산한 후에는 각종 별미로 뒤풀이를 할 수 있다.

각흘봉에서 약사령, 명성산으로 이어지는 명성지맥. 깔끔하게 면도한 것처럼 방화선이 나 있다.
각흘봉에서 약사령, 명성산으로 이어지는 명성지맥. 깔끔하게 면도한 것처럼 방화선이 나 있다.

포사격 훈련이 있는 날엔 출입금지

산행들머리인 자등현으로 갔다. 해발 440m의 자등현은 포천시와 철원군의 경계이자 경기도와 강원도의 경계다. 자등현에는 강원도의 상징동물인 곰 두 마리 동상이 이정표 역할을 한다. 넓은 주차장 맞은편은 박달봉 능선을 타고 광덕산으로 오르는 들머리다.

한북정맥에서 갈라져 나오는 명성지맥은 광덕산에서 분기해 명성산을 지나 사향산~관음산~불무산 등을 일으키고 고소성리 베모루에 있는 영평천에서 끝난다. 거리는 약 52km, 지맥 중에서는 우리나라의 최북단에 위치한다.

구삼각봉으로 오르는 길 뒤로 각흘봉이 우뚝 서 있다.
구삼각봉으로 오르는 길 뒤로 각흘봉이 우뚝 서 있다.
산행에는 한국등산중앙연합회 이영길(25시산악회) 회장과 김용원(네팔산악회) 이사, K-산악회 박호철 등반대장이 함께했다. 안내산악회 특성상 주말에 설악산이며 소백산, 지리산 산행을 ‘빡세게’ 하고 난 다음날인데도 흔쾌히 시간을 내주었다.

산불감시초소 뒤쪽 산행이정표 옆으로 산행을 시작했다. 각흘봉까지는 2.7km 정도 거리다. 이제부터 명성산까지 이르는 길은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과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경계를 이루며 뻗어나간다.

자등현에서 각흘봉에 이르는 길엔 멋진 잣나무 숲이 있다.
자등현에서 각흘봉에 이르는 길엔 멋진 잣나무 숲이 있다.
잣나무 숲을 지나 600m쯤 오르니 포사격지 경고판이 보인다. ‘절대출입금지’, ‘불발탄’ 등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단어들이 빨간색으로 쓰여 있다. 이거 그냥 올라도 되나 싶다.

“포사격 훈련을 할 때는 적색 깃발이 걸려 있어요. 군인들이 초소에서 통제하고요. 그런 것이 없으면 포사격이 없다는 거니까 올라도 됩니다. 주말엔 훈련하지 않으니 마음 놓고 산행해도 됩니다.”

각흘봉으로 가는 길엔 포사격 훈련과 관련한 초소 등 시설물이 많다.
각흘봉으로 가는 길엔 포사격 훈련과 관련한 초소 등 시설물이 많다.
안내산악회 연합 회장님의 말이니 믿음이 간다. 각흘봉 오르는 길은 다소 가파르긴 하지만 숲길처럼 걷기 좋다. 상수리나무며 굴참나무, 신갈나무 등이 울창해 가을에는 제법 단풍이 곱게 들겠다.

“와, 이것 좀 보세요. 소나무가 바위를 쪼개놨네요!”

헬기장을 지나 김용원 이사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바위에 뿌리를 내린 큰 소나무가 보인다. 소나무의 굵은 뿌리는 오랜 세월 동안 바위를 파고들어 돌마저 쪼개 놓았다. 그 모습이 신기함을 넘어 신묘하기까지 하다.

바위를 뚫고 뿌리내린 신묘한 소나무.
바위를 뚫고 뿌리내린 신묘한 소나무.
소나무를 지나 5분 정도 올라 주능선에 안착한다. 각흘봉을 350m 앞에 둔 지점이다. 울창한 숲길을 지나 비로소 사방으로 조망이 트인다. 가히 장관이다. 오른쪽 철원지역으로는 드넓은 철원평야가 펼쳐지고, 왼쪽 포천지역은 백운산, 가리산, 사향산, 관음산 등이 그야말로 첩첩산중을 이루고 있다.

“여기가 대득지맥 분기점입니다. 북쪽으로 뻗은 저 능선이 대득지맥이에요.”

대득지맥은 명성지맥에서 분기해 악희봉과 대득봉~태봉을 거쳐 한탄강 남대천까지 이어지는 34.3km 능선이다. 이곳 역시 포사격 훈련장의 일부라 ‘진입금지’ 팻말이 붙어 있지만 훈련이 없는 날엔 오갈 수 있어 지맥꾼들이 즐겨 찾는다. 

면도한 듯 황량한 방화선 능선

5분 정도 걸어 각흘봉 정상에 올랐다. 일망무제 조망이 여전하다. 앞으로 가야 할 명성산이 저 앞에 있고, 오른쪽으로는 금학산과 지장봉이, 그 밑에는 용화저수지와 신철원이 펼쳐져 있다. 철원평야 뒤로는 보개지맥 분기점인 소이산이 멀리 보인다.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니 대득지맥이 북쪽으로 뻗어나가고 대성산과 광덕산도 위세를 떨치며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사방이 산, 그야말로 ‘산의 세계’다.

“면도 한 번 깔끔하게 잘했네!”

각흘봉에서 약사령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은 방화선이 구축되어 있다. 포탄이 떨어져서 파헤쳐진 곳도 있지만 혹시라도 불이 옮겨 붙을 것을 막기 위해 방화선을 다른 곳보다 확실하게 구축해 놓았다.

“이 지역은 38선 북쪽이라 날이 맑으면 북한의 산도 다 보여요. 그나저나 배가 고프니 일단 여기서 밥을 먹고 가지요.”

약사령까지는 줄곧 내리막이니 기암괴석에 뿌리를 박은 소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만든 명당자리를 찾아 도시락을 꺼냈다.

배를 든든하게 채운 후 이제는 바위를 타고 내려간다. 앞에 주능선이 미끈하게 뻗어 있어 쉽게 갈 수 있을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밧줄 난간을 잡고 각흘봉 정상 바위를 내려서는 일이 만만치 않다.

낑낑대며 바위를 내려오니 각흘봉에서 손에 잡힐 듯 바로 앞에 있었던 능선에 닿는다. 이제 약사령까지는 오르막이 간혹 나타나지만 해발을 520m까지 낮춘다. 능선길 양쪽은 까마득한 절벽이라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한참을 내려가 임도가 가로지르는 약사령에 닿았다.

“1975년 8월 17일 이곳에서 민주화운동가 장준하 선생이 돌아가셨어요. 약사계곡에서 약사령을 통해 약사봉에 올라와 하산하다가 실족했다는데 아직도 ‘실족사다’, ‘타살이다’ 말이 많지요.”

이 회장은 “그 사건으로 인해 당시 인솔했던 안내산악회가 문을 닫아 당시를 잘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준하 선생은 등산을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산에서는 항상 안전을 강조했다. 그런 그가 왜 굳이 구두를 신고 14m 높이의 절벽으로 내려오려고 했던 것일까. 우리나라 역사는 아직도 후손에게 말하지 못한 비밀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약사령에서 계단을 올라 명성산의 영역으로 들어선다. ‘이곳이 억새로 유명한 명성산’이라는 걸 말해 주듯 억새가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약사령에서 1.2km를 걸어 명성산과 삼각산의 갈림길에 선다. 왼쪽으로 가면 삼각봉, 오른쪽은 명성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다. 명성산은 300m 거리로, 정상에 올랐다가 삼거리로 되돌아와 삼각봉 방향으로 길을 이어야 한다.

명성산은 ‘울음산’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신라 말 경순왕의 아들인 마의태자가 나라가 망한 뒤 이곳을 지나는 길에  울었다고도 하고, 궁예가 왕건에게 패한 후 이곳으로 피신해 크게 울었다고도 한다. 재미있는 전설과는 달리 명성산 정상은 잡목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어 볼거리가 덜하다. 잠깐 둘러본 후 다시 삼거리로 돌아와 삼각봉 방향으로 길을 잇는다.

“삼각봉 정상에 해태상이 있어요. 2008년에 설치한 건데 산불예방을 염원하는 뜻이죠.”

해태는 화재를 물리치는 신수(神獸)다. 주로 궁궐 등에 장식돼 왔으나 산 정상에 설치된 것은 삼각봉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포천에서 세운 거라고 포천 쪽을 바라보고 있네. 철원 쪽도 좀 봐주면 안 되겠니?”

박호철 대장이 “해태상이 너무 야박하게 한쪽만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며 농을 던졌다.

명성산 하산 길에 바라본 산정호수.
명성산 하산 길에 바라본 산정호수.
명성산 하이라이트 억새밭

삼각봉을 지나 또다시 능선을 잇는다. 왼쪽으로는 포사격장이 내려다보인다. 나무팻말에 ‘구삼각봉’이라고 적힌 곳을 지나 얼마간 걸어 억새군락지에 닿는다. 명성산 명물인 빨간 우체통과 ‘가짜’ 명성산 정상석이 있다. 이 정상석 때문에 혹자들은 이곳에 명성산 정상인 줄 착각하기도 한다.

아직은 조금 이른 가을이라 억새들이 푸름을 벗고 농익은 흰색 물결을 이루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할 듯하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이곳에선 축제가 열리고 ‘사람 반, 억새 반’이 될 것이다. 저 빨간 우체통에도 1년 후의 희망을 담은 편지들이 가득 쌓일 것이다.

광덕산에서 영평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명성지맥의 명소들이 있을 것이지만 가을엔 단연 이 억새밭이 ‘히트 중의 히트’다. 10월에 명성지맥 종주를 할 요량이라면 꼭 명성산을 포함해야 하는 이유다.

산행 길잡이

자등현 들머리에는 넓은 주차장이 있고 간이화장실도 있다. 자등현에서 각흘봉으로 오르는 길은 대체로 가파른 오르막이지만 2.7km 거리로 1시간 20분 정도면 주능선에 오를 수 있다. 등산로 곳곳에 이정표가 잘 설치되어 있어 길을 헤맬 염려는 없다.

주능선에 닿기 전은 잣나무 숲과 신갈나무 숲 등이 이어지는 호젓한 숲길이다. 등산로 곳곳에 초소가 있고 포사격 경고 안내판이 있다. 주말에는 훈련을 하지 않아 안전하다. 평일에 훈련이 있으면 빨간 깃발과 함께 군인들이 지키며 통행을 금지시킨다.

각흘봉 정상 주변은 바위가 많다. 위험할 정도는 아니지만 바위 곳곳엔 밧줄을 매달아 놓았다. 비교적 넓은 정상에선 사방으로 조망이 좋다. 정상에서 내려서는 바위 구간이 가팔라 밧줄 난간을 설치해 두었다.

약사령까지는 방화선 능선이 이어진다. 약사령에는 임도가 지나간다. 서쪽 용화저수지부터 올라오는 길이다. 약사령부터 명성산까지 줄곧 오르막이 이어진다. 삼각봉 삼거리에서 명성산까지 300m 거리다. 정상에 올랐다가 삼거리로 되돌아와야 한다.

삼거리에서 팔각정까지 오면 억새밭이 펼쳐진다. 이곳에서는 매년 억새축제가 열린다. 올해 명성산억새꽃축제는 10월 1일부터 31일까지 한 달 내내 이어진다. 팔각정에서 하산은 자인사 방면과 등룡폭포 방향 등으로 할 수 있다. 자인사 방향은 2.2km로 가장 짧지만 경사가 매우 심하다. 등룡폭포 방향으로 가는 길은 4.2km로 다소 길지만 경사가 완만하고 폭포 구경도 할 수 있다. 책바위를 지나 비선폭포로 하산하는 길은 3km 정도다. 등산객은 등룡폭포 방향을 가장 많이 이용한다.

교통

동서울터미널에서 하루 27회(첫차 07:10, 막차 20:50) 운행하는 자등리행 버스를 탄다. 요금 9,400원. 1시간 35분 소요. 정류소는 자등6리에 있는데 버스기사에게 동의를 구해 자등현에서 내릴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자등6리에서 약 3.5km를 걸어와야 한다. 와수리행 버스(하루 44회 운행, 첫차 06:00, 막차 20:50)를 이용해도 된다. 요금 1만900원. 이동면으로 간다면 30분마다 운행하는 김화행 버스를 타면 된다. 택시를 타면 1만5,000원 정도 나온다. 산정호수에서 포천까지는 하루 12회 버스(첫차 06:10, 막자20:30)가 다닌다.

승용차로는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퇴계원나들목으로 나와 47번국도를 타고 이동면을 지나 도평교차로에서 직진하면 왼쪽에 넓은 자등현주차장이 나온다.

숙식(지역번호 031)

자등현 근처에 ‘산마루캠핑장 (010-5248-7059, cafe.daum.net/sanmarucamping)’이 있다. 캠핑장과 황토방펜션, 방갈로를 운영한다. 캠핑장 파쇄석 사이트 3만5,000원. 나무데크 사이트 4만5,000원. 자등6리에 자등네펜션민박(458-1777), 자누리펜션(458-5289) 등 이 있다. 산정호수 쪽에 ‘새마음식당(533-7776)’, ‘비룡식당(531-5071)’, ‘다리목(533-2750)’, ‘숲속의 하얀집(533-2784)’ 등의 식당이 몰려 있다. 포천시 일동면과 이동면에는 포천갈비집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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