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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세계 초등반 | 코리안웨이 강가푸르나 원정대] 시바 신의 한 오라기 머릿결’ 타고 ‘갠지스강의 여신’ 머리에 오르다

월간산
  • 입력 2016.12.07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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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푸르나 남벽에 코리안웨이 개척… 미등봉 아샤푸르나 남벽에 신 루트 개척, 정상 100m전 하강

코리안웨이 강가푸르나 원정대 김창호 최석문 박정용은 7일간 알파인스타일로 강가푸르나 남벽에 코리안웨이 신 루트를 개척했다. 이는 우리 산악인이 1962년 히말라야 진출한 이래 알파인등반 스타일로 개척한 가장 높은 봉우리였다. 얇게 얼어붙은 수직빙벽을 선등하는 김창호 대장
코리안웨이 강가푸르나 원정대 김창호 최석문 박정용은 7일간 알파인스타일로 강가푸르나 남벽에 코리안웨이 신 루트를 개척했다. 이는 우리 산악인이 1962년 히말라야 진출한 이래 알파인등반 스타일로 개척한 가장 높은 봉우리였다. 얇게 얼어붙은 수직빙벽을 선등하는 김창호 대장

8,000m급 14좌 무산소 완등 이후, 나는 어떤 길을 가야 할지 고민했다. 누군가는 잭 런던(Jack London)이 쓴 <야생의 부름(The Call of the Wild)>을 읽고 벅(Buck)의 모습을 모델로 삼았다지만, 미지에서 나침반처럼 바른 길을 알려주는 지표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히말라야와 같은 고봉에서 내가 산악인으로서 하고자 했던 등산 본연의 정신에 자문했다.

자신의 한계, 불확실성, 불가능, 길이 끝나는 곳에서부터의 순수한 탐험과 모험 등 깊이 숙고하지 않고 내뱉었던 말들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답에 이르렀다. 그래야 산악인이라는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코리안웨이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지금까지의 등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지구상에 남아 있는 아직 인간이 오르지 못한 미등정봉과 고산거벽에 자연스러운 하나의 선을 만드는 프로젝트이다. 고정로프 없이, 캠프 없이, 짐을 옮겨다 주는 고소등반 셰르파 없이, 모든 보조적 장비와 인력의 도움 없이 등반자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책임 하에 오르고자 했다.

앞으로 몇 년간 추진하게 될 코리안웨이를 위한 지구상 오지 곳곳의 산을 찾아 선정하는 데 여러 가지 검증과정을 거쳤다. ‘산까지의 접근은 탐험의 가치가 있는가?’ ‘산이 원주민에게 어떤 의미를 가졌는가?’ ‘등반라인은 자연스럽고 스마트(Smart)한가?’ ‘알파인 스타일로 고난이도 신 루트 개척이 가능한 등반선인가?’ 1차· 2차 ·3차에 걸쳐 고르고 골라 낙점된 첫 번째 봉우리는 네팔의 강가푸르나(Gangapurna·7,455m)와 그 서쪽에 솟은 아샤푸르나(Asapurna·7,140m)였다.

원정등반에서 첫 번째 난관은 베이스캠프 진입이었다. 폭포처럼 떨어지는 강물 위에 20여 m의 티롤리안 브리지를 만들어서 짐과 포터를 건너게 했다.
원정등반에서 첫 번째 난관은 베이스캠프 진입이었다. 폭포처럼 떨어지는 강물 위에 20여 m의 티롤리안 브리지를 만들어서 짐과 포터를 건너게 했다.
아샤푸르나 남벽의 6,300m 고도의 아이스폴을 오르는 최석문. 최석문은 아이스클라이밍 국제루트세터이며 국내에서 크랙 등반의 선구자로 활동하고 있다
아샤푸르나 남벽의 6,300m 고도의 아이스폴을 오르는 최석문. 최석문은 아이스클라이밍 국제루트세터이며 국내에서 크랙 등반의 선구자로 활동하고 있다
‘갠지스강의 여신’이라는 뜻의 강가푸르나. 이 산의 남벽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1952년 스위스 취리히 지질학자 토니 하겐 박사(Dr. Toni Hagen)가 네팔의 지질구조를 연구하던 차에 비행기에서 안나푸르나산군을 찍은 사진 한 장. 비행기 날개의 저쪽에 검은색 피라미드 형태로 치솟은 대암벽을 품은 흑백 사진이었다. 당시에는 그 봉우리 이름을 알지 못했지만 지금의 강가푸르나였다.

더욱이 강가푸르나의 어원인 강가에 대해 ‘라마야나’에 나오는 인도 신화는 나의 등반 열정을 더욱 자극했다.

태고에 히말라야에게는 두 딸 강가(Ganga)와 파르바티(Parvati)가 있었다. 파르바티는 시바(Shiva) 신의 부인이 되었고, 언니 강가는 천신들의 요청으로 지상에서 천상(天上)으로 보내줬다. 천상을 흐르는 강가는 그 강물에 닿는 것은 무엇이나 성스럽게 정화시켜주었다.

그런데 인간 조상의 죄를 씻기 위해서는 강가를 지상으로 모셔 와야 했고 강가의 떨어지는 힘이 너무 강해 땅이 무너질 수 있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시바 신의 도움이 필요했다. 결국 강가는 시바 신의 한 오라기 머릿결을 타고 내려와 인도 평원의 성스러운 강가의 물(Ganga River, 갠지스강)이 되어 불에 타서 죽은 인간 조상의 재를 적시어 죄를 씻고 생명을 얻었다고 했다.

신화처럼 강가푸르나 남벽은 평소 재가 쌓인 검은색 암벽이지만 겨울이 시작되면 마치 ‘시바 신의 한 오라기 머릿결’처럼 가느다란 빙벽이 중앙에 얼어붙는다. 등반은 자연의 법칙에 따라야 하고 만약 얼어붙지 않으면 등반은 되지 않는다.

강가푸르나 서쪽에 솟은 아샤푸르나는 아직 미등정봉이다. 대원들은 남벽 직등루트로 4박5일간 정상 능선까지 오르고 하산했다. 정상까지 걸어서 100여 m를 남겨두고. 정상은 원정대의 목표였지 목적은 아니다.
강가푸르나 서쪽에 솟은 아샤푸르나는 아직 미등정봉이다. 대원들은 남벽 직등루트로 4박5일간 정상 능선까지 오르고 하산했다. 정상까지 걸어서 100여 m를 남겨두고. 정상은 원정대의 목표였지 목적은 아니다.
아샤푸르나 남벽의 빙설벽을 연등 방식으로 오르는 최석문과 박정용. 박정용은 전 스포츠클라이밍 국가대표였으며 2008년 김창호 대장과 함께 마칼루를 등정한 등반가다.
아샤푸르나 남벽의 빙설벽을 연등 방식으로 오르는 최석문과 박정용. 박정용은 전 스포츠클라이밍 국가대표였으며 2008년 김창호 대장과 함께 마칼루를 등정한 등반가다.
두 번째 봉우리는 강가푸르나 서쪽에 위치하고 네팔 정부가 2014년 공식 개방한 아샤푸르나로 미등정봉이었다.

원정대는 9월 12일 출국했다. 네팔 카트만두에서는 이미 현지 준비가 모두 끝나서 이틀간만 머무르고 바로 상행 캐러밴을 시작했다. 캐러밴은 안나푸르나 남벽 베이스캠프(ABC)로 가는 루트에서 흔히 MBC라 부르는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에서 갈라져 나가 모디콜라강물을 건너야 한다. 작년 답사 때는 허벅지 정도의 수위여서 로프를 이용해 건널 수 있었다. 그러나 올해는 엄두도 못 낼 정도로 강물이 불어 있었다.

결국 쿡 치링 보테와 상의해 로지에서 구입한 대나무와 각재를 이용해 10여 m 길이의 다리를 가설했고 또 50m 높이의 미끄러운 바위절벽을 내려 가야 했다. 대부분이 포카라 여자들인 로컬 포터들은 길도 없는 위험천만한 곳으로 가는 것에 반대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포터 우두머리는 조선일보가 주최한 CEO 마르디히말 트레킹 때 나와 함께한 인연이 있어 그들을 설득해 운행을 지속해 주었다.

이후에도 베이스캠프로 가는 난관은 계속 이어졌다. 글레이셔돔의 남쪽에 형성된 지계곡의 강물 흐름에 포터들은 아연실색했다. 폭포처럼 떨어지는 강물 위에 20여 m 길이 티롤리안 브리지를 만들었고 짐과 포터를 넘겼다. 계획했던 해발 4,550m 지점에 가지 못하고 4,034m 높이의 옛날 베이스캠프에 우리도 한 달간 머물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위태로운 하산 걱정에 정상 100m 직전 돌아서

이번 등반의 최대의 관건은 낮은 해발고도의 베이스캠프로부터 각 봉우리의 실질적인 등반이 시작되는 벽 밑까지 최선의 접근 루트를 찾는 것이다. 벽 등반은 그 후의 문제다. 아샤푸르나는 우리 이전에 입산한 원정대가 없었고, 강가푸르나는 1981년 캐나다의 경우 4개의 캠프를 설치하면서 접근할 정도로 상부 빙하는 크레바스와 세락으로 혼돈상태이다.

최석문과 박정용은 자신의 한계까지 밀어 붙였다. 정상 능선으로 한 걸음 내 딛는 사이 뒤에서 마차푸차레(6,993m)가 구름을 뚫고 솟구쳤다.
최석문과 박정용은 자신의 한계까지 밀어 붙였다. 정상 능선으로 한 걸음 내 딛는 사이 뒤에서 마차푸차레(6,993m)가 구름을 뚫고 솟구쳤다.
남벽으로 이어지는 빙하는 벽 못지않게 험난했다.
남벽으로 이어지는 빙하는 벽 못지않게 험난했다.
우리는 아샤푸르나를 등반하면서 강가푸르나 남벽 빙하를 우회하는 접근 루트를 찾을 예정이었다. 베이스캠프 북쪽의 5,000m급 봉우리에서 고소적응을 하고 망원경으로 루트를 관찰했다.

10월 5일, 원정대는 4일간 알파인스타일 등반계획으로 아샤푸르나로 출발했다. 7.5mm×60m 2동, 아이스스크루 4개, 스노바 3개, 800g 무게 2인용 텐트, 1m 길이 매트리스, GPS, 여벌 의류, 화이트가솔린 버너와 가스버너, 식량을 넣은 배낭 무게는 8~10kg 정도 됐다. 남남동릉으로 뻗어 내린 지능선을 따라 제1비박지(5,806m)에서 자고 경사가 심해지는 빙설벽과 세락을 등반했다. 6,200m 두 번째 비박지에서 위쪽에 복잡한 상부 빙하로의 등반로를 찾기 위해서 하루 더 머물렀다. 날씨는 가스가 끼고 밤 10시 이후부터 눈이 내렸다.

8일 새벽 1시30분 3명은 안자일렌으로 정상을 향했다. 가파른 설빙벽을 확보하지 않고 연등방식으로 끝없는 어둠속으로 올랐다.

원정대원은 3명이다. 최석문과 나는 이미 2001년 파키스탄 멀티피크 원정, 2007년 남미 파타고니아 토레스 델 파이네 중앙봉 등정, 2008년 당시까지 지구상에 최고(最高) 미등정봉으로 남아 있던 바투라2봉(7,762m) 세계 초등정으로 호흡을 맞춰 왔다. 박정용도 2004년 로체(8,516m) 남벽 등반과 2008년 마칼루(8,463m) 등정으로 서로를 알 수 있는 시간을 가진 바 있다.

우리는 확보하지 않고 서로를 믿었다. 빠른 속도로 아샤푸르나 정상으로 거슬러 올랐다. 날이 밝아 왔고 태양빛에 얼었던 몸이 녹아내렸다. 뒤에서 좇아오는 석문과 정용은 밀려오는 졸음과 싸우느라 등반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오전 8~10시 정상에 서려던 계획은 지연됐다. 우리는 모여서 상의했다.

6,800m 암벽의 아래 얼음을 깎아 내고 눈을 쌓아 제3비박지의 잠자리를 마련했다. 3명이 엉덩이를 걸치고 다리는 허공에 내밀었다. 기온은 영하 18~20℃였다.
6,800m 암벽의 아래 얼음을 깎아 내고 눈을 쌓아 제3비박지의 잠자리를 마련했다. 3명이 엉덩이를 걸치고 다리는 허공에 내밀었다. 기온은 영하 18~20℃였다.
“형 혼자 정상에 다녀와야 할 것 같아요.”

마음속 갈등과 고뇌 끝에 내린 석문과 정용의 의견이었다.

정상이 멀지 않았다. 우리는 정상에 함께 가야 하고 비박지로 함께 내려가야 한다. 그리고 등반을 마치고 함께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 더 가지 않으면 세계 초등정은 ‘실패’하고, 더 올라서 정상에 서면 ‘성공’이라는 단어가 기다린다. 그러나 정상이 끝은 아니다. 1,000m 높이 벽을 아발라코프 시스템과 스노볼라드, 그리고 클라이밍다운의 기술을 총동원하더라도 하산 중에 어두워지고 이후 위험은 상상할 수 없이 커질 것이다. 우리에게는 안전하게 되돌아가게 해 줄 고정로프가 없다.

‘우리의 원정등반은 어느 정도까지 위험을 받아들여야 할까?’

나는 자문했다.

석문과 함께 3피치 빙벽 홈통을 더 올라 정상 능선에 섰다. 인간의 발자국이 남겨지지 않은 아샤푸르나의 정상이 로프 2동 길이 채 100여 m도 안 되는 서쪽에 둥글게 보였다. 시계 GPS는 7,100m가 넘었다. 바람 부는 정상 능선에 서서 석문이가 올라올 때까지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원정대장으로서 ‘등정의 실패’냐, ‘대원의 안전한 귀환이냐’를 고뇌하며. 실패, 성공 따위의 단어들로부터 자유로워지자 석문이가 올라왔다.

“석문아, 정용이한테로 내려가자.”

출국 전 나는 인터뷰에서 “어떠한 원정등반이라도 ‘From home to home(집에서 집까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석문에게는 아들 보건이가, 정용에게는 딸 화인이가, 나는 이번 출국 일주일 전에 태어난 딸 단아가 세계 초등정의 정상보다 우리의 가슴속 진정한 정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확보지점을 만들며 수없이 반복되는 하강을 했다. 어두워진 7시 30분경 비박지의 텐트로 돌아왔다. 정용이가 끓여 주는 물 한 잔을 마신 기억 후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베이스캠프로 내려왔다. 5일간의 아샤푸르나 등반은 다시 등반을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 베이스캠프에서 MBC 로지로 이틀간 휴식 차 내려갔다. 고도를 낮춰 산소분압이 높은 곳에서 빠른 회복을 기대했다.

등반 4일째 80~90도 암벽 면에 얼어붙은 빙벽을 9피치 더 올랐다.
등반 4일째 80~90도 암벽 면에 얼어붙은 빙벽을 9피치 더 올랐다.
5일간 시바 신의 머릿결을 타고 강가푸르나 정상에 올라 코리안웨이는 완성되었다. 많은 체력 소모, 굶주림, 영하 18~20℃의 추위에 노출되어 있었다.
5일간 시바 신의 머릿결을 타고 강가푸르나 정상에 올라 코리안웨이는 완성되었다. 많은 체력 소모, 굶주림, 영하 18~20℃의 추위에 노출되어 있었다.
아샤푸르나는 다시 시도하지 않았다. 원정의 가치는 어떠한 스타일로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정상은 목표였으나 목적은 아니었다. 우리는 아샤푸르나의 정상 능선까지 올라 신 루트를 만들었다.

강가푸르나 남벽, 코리안웨이 완성

이제 주목표인 강가푸르나 남벽. 다행히 벽 밑까지 빠르게 접근하는 루트를 찾았다. 아샤푸르나의 제1비박지에서 동쪽으로 사면을 횡단해 상부 빙하로 들어서고 여기에서 다시 같은 고도로 횡단하는 루트다.

문제는 날씨였다. 이번 시즌 네팔의 일기는 예년과 달랐다. 여름 계절풍 몬순이 10월 초순이 되어도 물러가지 않고 비가 왔다. 건기가 시작되는 10월 12일 네팔 다샤인 축제가 시작되어서야 변화가 찾아왔다. 시바 신의 머릿결은 얼어붙었다.

아샤푸르나 등반 후 장염과 설사로 8일간 고생하고 있는 석문과 무릎 인대와 근육통으로 자가 치료를 계속하고 있는 정용, 모든 상황이 정상은 아니었다.

10월 16일 베이스캠프부터 정상까지 3,400m의 고도차를 7일간의 등반계획으로 출발했다. 5,806m 비박지, 6,000m 벽 밑에서 비박했다. 3일째 벽 하단부를 세 명이 연등방식으로 오르고 빙벽에서는 확보를 보며 등반했다. 6,000m대 이하는 구름 바다였고, 다행히 위쪽은 맑았다. 베이스캠프에는 비가 내릴 것이다.

6,800m 암벽 밑에 얼음을 깎아 내고 눈을 쌓아 제3비박지의 잠자리를 마련했다. 3명이 엉덩이를 걸치고 다리는 허공에 내밀었다. 얇은 노스페이스 침낭을 뒤집어쓰고 절벽으로 떨어지지 않으려 안전벨트를 차고 아이스스크루에 확보한 채 잠을 청했다.

강가푸르나 남벽 아래 캠프지(6,000m). 남벽 신 루트 등반에 성공한 최석문, 박정용 대원이 철수에 앞서 장비를 챙기고 있다.
강가푸르나 남벽 아래 캠프지(6,000m). 남벽 신 루트 등반에 성공한 최석문, 박정용 대원이 철수에 앞서 장비를 챙기고 있다.
밤은 길었다. 졸다 깨기를 수차례, 누워서 자고 싶었지만 누울 수 없었다. 삼중화를 무릎 위에 놓고 이마를 대고 조는 것이 그나마 나았다. 침낭이 눈과 얼음으로 덮였다.
4일째 수직의 암벽 면에 얼어붙은 빙벽을 9피치 더 올랐다. 세컨드를 맡고 있는 석문이가 올라오는 시간이 많이 소요되면 등반시간을 줄이기 위해 빌레이 없이 선등했다.

마지막 대암벽 사이 쿨와르 속의 실폭을 오르자 경사가 수그러들었다. 정상부였다. 7,100m 설사면에 텐트를 설치했다. 밤새 제트기류의 하강으로 텐트를 날려버릴 듯 강풍이 불었지만 누워서 잘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가. 대신 이제는 뜨거운 물밖에 먹을 수 없었다. 먹는 것보다 굶는 것이 차라리 편했다. 이제 지상에서 천상으로 가는 길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정상적이지 않은 몸 상태, 많은 체력 소모, 굶주림, 영하 18~20℃의 추위에 노출되어 있었다.

신화 속으로의 상승은 끝났고, 살아 돌아왔다

10월 20일, 체력은 바닥나고 정상을 바라보는 눈동자와 정신력만이 남았다. 한 걸음 한 걸음 지상의 끝자락으로 올랐다. 정상에 서면 강가의 여신이 있을까, 정상의 북쪽으로 시바 신의 거처 카일라스봉우리가 멀리 보일까?

석문과 정용은 자신의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정상은 가까워지고 있었다.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정용이 말했다.

“형, 저는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정용아, 네가 가지 못하면 우리도 가지 않는다.”

나는 대답했다.

정용은 잠시 휴식시간을 가진 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시간여 이후 3명은 함께 줄을 묶고 강가푸르나 정상에 섰다. 서로의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그곳에서 원정대가 추구했던 욕망의 죄를 성스러운 강가푸르나 여신에게서 정화시켰다. 5일간 시바 신의 머릿결을 타고 오른 코리안웨이는 완성되었고 신화 속으로의 상승은 끝났다.

경사가 수그러드는 7,100m의 정상부로 빠져나가는 빙벽을 오르는 김창호 대장.
경사가 수그러드는 7,100m의 정상부로 빠져나가는 빙벽을 오르는 김창호 대장.
출국 전에 그린 강가푸르나 코리안웨이 루트개념도. 실제 등반도 같은 라인으로 이루어졌다.
출국 전에 그린 강가푸르나 코리안웨이 루트개념도. 실제 등반도 같은 라인으로 이루어졌다.
1,500m의 수직벽으로 하강이 남았다. 암각, 스노볼라드, 아발라코프 시스템, 클라이밍다운, 안자일렌의 기술을 구사해 25번의 하강으로 이틀 동안 하산했다.

베이스캠프로 내려간 다음날 아침, 젖은 장비와 의류를 카고백에 정리해 베이스캠프를 철수했다. 우리가 산에 남겨 둔 것은 박정용 10kg, 김창호 8kg, 최석문 6kg의 체중과 스노바 2개뿐이었다. 코리안웨이는 자기 스스로 육체를 태워 오르는 고행의 길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살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원정개요

원정대명 2016 코리안웨이 강가푸르나 원정대
목적산 강가푸르나(7,455m) & 아샤푸르나(7,140m)
네팔 서부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산군
등반루트 강가푸르나 남벽 직등루트
원정대원 김창호 최석문 박정용
등정자 김창호 최석문 박정용
원정기간 2016년 9월 12일~10월 29일(48일간)
등반기간 아샤푸르나-10월 5~9일, 4박5일(등반 4일간, 하강 1일간)
강가푸르나-10월 16~22일. 6박7일간(등반 5일간, 하강 2일간)
등반결과 아샤푸르나-10월 8일 정상 100여 m 전까지 등반: 신 루트 개척
강가푸르나-10월 20일 오후 12시45분(네팔 시각)   3명 등정

강가푸르나 등반

등반방식 알파인스타일(Alpine Style)
등정일 10월 20일 12시 45분(네팔 현지시각)
등반고도 3,400m(베이스캠프 4,034m~정상 7,455m)
등반난이도 ED+(Extreme Difficult +)
하강 60m 로프 25회(아발라코프 시스템, 스노볼라드, 암각)+다운 클라이밍+안자일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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