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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크리스마스트리 산행 | 화악산 르포] 제왕의 산에 울리는 크리스마스 캐럴

월간산
  • 입력 2016.12.13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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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무락골~중봉~언니통봉~조무락골 15km 원점회귀 산행,
중봉 부근이 경기도 최대의 구상나무 자연군락지

오밀조밀한 구상나무숲 너머로 동양화 같은 산그리메가 우아하게 선을 풀어놓았다. 중봉 일대는 경기도 최대의 구상나무 자연 군락지다.
오밀조밀한 구상나무숲 너머로 동양화 같은 산그리메가 우아하게 선을 풀어놓았다. 중봉 일대는 경기도 최대의 구상나무 자연 군락지다.

능선은 좀처럼 가까이 오지 않았다. 낙엽이 다 떨어진 앙상한 산을 찾는 이는 없었다. 산을 채운 건 맑은 공기와 바람 소리뿐. 낡은 등산화와 잘 어울리는 외로운 산을 올랐다. 잡념도 거친 숨결 속에 지워지고, 언젠간 끝나겠지 하며 걷던 센 비탈에서 기품 있는 그를 만났다. 초록색을 띤 채 곧게 뻗은 기품 있는 나무, 구상나무다. 문득 얼굴에 차가운 무언가가 와 닿는다. 순식간에 구상나무는 하얀 장식을 매단 크리스마스트리가 되었다. 첫눈이 내리고 있었다.

12월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크리스마스트리로 유명한 한국 토종 구상나무 산행을 하기로 했다. 대표적인 자생지는 한라산, 지리산, 덕유산. 산 좀 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본 산이라 다른 곳을 찾던 중 화악산이 떠올랐다. 오래된 월간<山> 등산지도에 구상나무 군락지라 표시되어 있을 정도로 화악산 중봉은 등산인들에겐 이미 알려진 구상나무숲이다. 다만 학계에선 덕유산 이남의 고산에 자생한다고 알려져 있어, 검증이 필요하다. 구상나무와 구별이 어려울 정도로 비슷한 분비나무일 확률도 높기 때문이다.

들머리는 조무락골. 계곡으로 중봉에 올라 능선을 타고 언니통봉을 거쳐 조무락골로 내려오는 원점회귀 코스다. 보통 석룡산 조무락골이라 부르는데, 화악산과 석룡산 사이의 골이지만 조무락골로 석룡산을 오르는 이가 더 많아서 그리 굳어졌다.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길로 간다. 동행한 이는 등산을 즐기는 숲해설가인 석지영씨다.

1 중봉에서 애기봉으로 이어진 주능선. 중봉 부근에는 구상나무가 드문드문 자라고 있다. 2 마지막 단풍의 화려함을 보여 주는 조무락골.
1 중봉에서 애기봉으로 이어진 주능선. 중봉 부근에는 구상나무가 드문드문 자라고 있다. 2 마지막 단풍의 화려함을 보여 주는 조무락골.
물 맑기로 유명한 조무락골은 새들이 조잘거리는 소리만 남아 있다. 조무락이란 이름은 ‘산새들이 조무락거린다(재잘거린다는 뜻의 사투리)’에서 유래한다. 한자로 지명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새가 춤추며 즐거워하는 계곡이라 하여 ‘鳥舞樂’이라 했다. 조무락골이 오래 전부터 많은 팬을 거느려 왔음을 감안하면 충분히 어울리는 이름이다.

골짜기를 따라 임도마냥 너른 산길을 오른다. 손님이 떠난 잔칫집처럼 낙엽이 수북하게 설거지마냥 쌓였다. 옛날 이 골짜기에는 호랑이들이 득실댔다고 한다. 여름이면 폭염에 지친 호랑이들이 폭포 아래 바위에 엎드려 더위를 씻었다는 말도 전해지는데 복호동(伏虎洞)폭포 역시 이로 인해 유래한다. 야윈 물줄기를 뿌리는 폭포는 화려하지 않지만 잠깐 숨 돌릴 수 있는 볼거리다.


1 조무락골의 우람한 잣나무숲. 조무락골은 완만한 임도가 4km 이상 길게 이어져 초반 산행이 수월하다. 2 하산길에 만난 묘한 분위기의 협곡. 오래된 등산지도에는 산길이 표시되어 있지만 지금은 길이 사라진 듯하다. 749.7m봉을 지나 조무락골로 내려서는 계곡길.
1 조무락골의 우람한 잣나무숲. 조무락골은 완만한 임도가 4km 이상 길게 이어져 초반 산행이 수월하다. 2 하산길에 만난 묘한 분위기의 협곡. 오래된 등산지도에는 산길이 표시되어 있지만 지금은 길이 사라진 듯하다. 749.7m봉을 지나 조무락골로 내려서는 계곡길.

드라마 속 한 장면처럼 만난 첫눈

조무락골을 버리고 중봉 쪽 이정표를 따라든다. 부드러운 산길도 여기까지다. 경기도 최고봉이 그 힘을 드러내며 체력을 시험한다. 가파른 산길이 밀려와 잡념을 삼켜버린 찰나, 눈발이 날린다. 잔뜩 흐린 하늘에 비가 오지 않을까 걱정했던 마음이 녹아내린다. 첫눈이다.

빈 가지만 나부껴 황량하던 화악산이 화이트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바뀌었다. 기품 있는 구상나무 위로 사르륵 사르륵 눈이 내리고,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던 일행들의 얼굴도 환하게 바뀌었다. 캐럴 소리가 들릴 것 같은 낭만적인 구상나무숲으로 변한 것이다.

구상나무는 신갈나무, 잣나무와 함께 자란다. 구상나무로만 빽빽했다면 훨씬 볼 만했겠지만 다른 나무와 함께 자라는 숲이라 더 건강하다. 한 가지 해충이나 재해에 숲이 몰살당하지 않는 강한 생존력을 갖추었다. 구상나무와 분비나무 구별은 수목학과 교수들도 쉽지 않다. 결정적 단서는 열매의 껍질 부위가 뒤로 젖혀진 것인데, 열매가 없어 구분이 어렵다.

조무락골 복호동폭포. 숲해설가인 석지영씨가 넝쿨식물을 관찰하고 있다.
조무락골 복호동폭포. 숲해설가인 석지영씨가 넝쿨식물을 관찰하고 있다.

1,400m가 넘는 주능선에 이르자 도사 같은 구상나무가 곳곳에 있다. 크리스마스트리로 꾸미기 아까운, 칼바람 맞으며 한 세월을 버틴 전설 같은 나무들이 도도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툭 튀어나온 바위에 올라서자 구상나무숲 너머로 첩첩산중이 아득하게 펼쳐진다. 흰 종이에 검은 먹만으로 그려낸 대가의 단순명료한 산그리메가 망막을 지나 가슴속으로 방울방울 스며든다. 거친 바람 소리가 화악산 주릉을 휘감는다. 산이 우리를 부르고 있다. 제왕의 칼바람 속으로 들어갈 시간이다.

화악산은 경기도의 제왕이다. 1,468.3m로 가장 높고 덩치도 웅장하다. 위성봉도 숱하게 거느리고 있으니 걸출한 장군들과 수많은 병사를 거느린 경기도의 군주격 산이다. 하지만 정상의 군부대로 인해 산행지로는 인기가 없다. 중봉(1,446m)은 등산인들의 정상이다. 통제되어 있어 더 이상 갈 수 없다. 데크에 올라서자 속 시원한 경치가 빵 터진다. 꾸역꾸역 비탈길을 올라온 인내의 땀을 한방에 날려버린다.

강원도와 경기도의 산줄기가 동시에 드러난다. 흘러내린 능선의 결을 따라 낙엽송이 노랗게 물들어 예쁜 반점을 이루었다. 구상나무는 드문드문 꼿꼿한 자세로 초록 잎을 틔우고 있다. 초소의 사병들은 혹시나 카메라를 시설물 쪽으로 돌릴까봐 전전긍긍이다. 인사를 하고 하산한다.

1 깨끗한 물과 풍부한 수량으로 여름이면 많은 사람들이 찾는 조무락골. 2 하산길에 만난 원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은밀한 낙엽송숲.
1 깨끗한 물과 풍부한 수량으로 여름이면 많은 사람들이 찾는 조무락골. 2 하산길에 만난 원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은밀한 낙엽송숲.
하산길에 만난 신비로운 계곡

적목리로 이어진 서쪽 능선에 몸을 던진다. 고도를 뚝뚝 떨구던 산길은 간간이 언니통봉(928m), 749.7m봉 같은 봉우리를 세워 근육을 골고루 쓰도록 유도한다. 고도를 내려서인지 눈이 비로 바뀌었다. 재미있는 이름의 언니통봉은 유래를 알 수 없다. 터지는 경치도 없어 바로 지나친다. 2시간을 넘게 고도를 내렸지만 능선은 여전히 오르내림을 끝낼 생각이 없다. 날은 벌써 어둑하고 빗방울은 굵어진다. 749.7m봉을 지나 안부에서 조무락골로 방향을 튼다. 조무락골 방향으로 이정표는 없지만 매달린 표지기를 믿고 간다.

빨리 산을 떠나려는 마음을 제왕에게 들키고 말았다. 길이 점점 희미해지더니 낙엽송 숲에서 사라졌다. 어차피 계곡만 따라가면 되는 짧은 코스라 막무가내로 뚫고 내려가면 되지만, 숲이 걸음을 세운다. 쓰러진 거대한 낙엽송마저 부드러운 이끼로 치장한 비밀의 계곡, 시간과 공간이 바뀐 듯한 착각이 든다. 원시 숲으로 온 듯 묘하게 공기가 바뀌었다. 다른 세계로 통하는 입구 같은 협곡을 지나자 인가가 나온다. 신비로운 느낌의 계곡을 빠져나오자 순도 높은 어둠이 깊게 깔린다. 첫눈의 추억을 만들어준 구상나무 산을 떠난다.

1 첫눈이 내려앉은 새끼 구상나무를 보여 주는 석지영 숲해설가. 2 화악산 정상은 군사시설이 있어, 중봉이 등산인들의 실질적인 정상 역할을 한다.
1 첫눈이 내려앉은 새끼 구상나무를 보여 주는 석지영 숲해설가. 2 화악산 정상은 군사시설이 있어, 중봉이 등산인들의 실질적인 정상 역할을 한다.
화악산

1468.3m
경기 가평 북면


산행 거리 14.7km
산행 시간 7시간
산행 난이도 중상(가파른 비탈길 길어)

산행 길잡이

산행 들머리 고도가 350m, 중봉 정상 고도가 1,446m이다. 해발고도를  1,100m가량 높여야 한다. 때문에 산행은 어느 코스로 잡아도 만만치 않다. 조무락골은 4km 동안 완만한 임도가 길게 이어져 초반 산행이 수월하다. 중봉 주능선까지 2km 정도 가파른 산길만 지나면 힘든 오르막은 없다.

중봉 정상은 표지석과 전망데크가 있으며 군초소가 인접해 있어 사진촬영에 주의해야 한다. 언니통봉을 거쳐 조무락골로 내려서는 능선길은 5km로 제법 길다. 3개의 봉우리가 있어 오르막도 있지만 짧은 편이라 힘들지 않다. 자칫 적목리 쪽인 남쪽 산길로 빠질 수 있으므로 봉우리에서 길이 갈라질 때 왼쪽 길로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능선을 버리고 조무락골로 내려설 때 초반에는 산길이 있지만 낙엽송숲으로 접어들면 길이 사라진다. 계곡을 따라 내려서기만 하면 되고, 위험한 곳은 없으므로 덤불만 주의해서 내려서면 된다. 육산이라 특별히 위험한 곳은 없지만 산길이 길어 지구력을 요한다. 총 7시간 정도 걸린다.

교통

상봉역에서 가평역으로 가는 경춘선복선전철이 20분 간격(05:10~23:55)으로 운행한다. 1시간 걸리며 요금은 2,250원. 가평역에서 조무락골 입구인 용수동행 버스가 1일 10회(06:10, 08:35, 09:40, 10:30, 11:10, 13:20, 15:40, 16:00, 16:40, 19:10) 운행. 용수동에서 가평행 버스는 1일 10회(07:10, 09:50, 10:50, 11:40, 12:20, 14:30, 15:50, 17:10, 17:50, 20:20) 운행. 용수동버스 종점에서 조무락골 들머리인 삼팔교는 500m 떨어져 있다.

자가용 이용 시 비포장길로 1km쯤 들어가면 나타나는 조무락펜션 주차장에 차를 세울 수 있다. 유료 1일 3,000원.

숙식(지역번호 031)

조무락골 입구에 위치한 조무락골산장(010-2679-5007)은 한방백숙, 도토리묵·촌두부·감자전 등의 메뉴를 내며 민박도 운영한다. 조무락골 입구의 38교매점(582-4664)은 닭도리탕·백숙, 두부전골 등의 메뉴가 등산인들에게 인기 있다. 민박도 가능.

가평과 조무락골 사이에 위치한 북면소재지인 목동에 위치한 범바위식당(582-9730)은 두부 요리가 맛깔스럽기로 이름나 있다. 두부전골과 청국장이 주메뉴다. 목동막국수(582-1955) 또한 북면의 인기 있는 식당이다. 막국수와 냉면, 돼지고기수육이 주 메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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