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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1월의 클라이밍 | 고경한·인성식] 인공등반으로 그리는 나의 등반 이야기

월간산
  • 입력 2017.01.18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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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스트림라이더 등산학교 동문들의 유양리채석장 스케치

섬세한 손놀림으로 펙커를 박는 고경한. 인공등반으로 유양리채석장을 오른다.
섬세한 손놀림으로 펙커를 박는 고경한. 인공등반으로 유양리채석장을 오른다.

확보자가 없다. 등반 중 추락했을 때 로프에 제동을 걸어 목숨을 지켜 줄 사람이 없는 것이다. 사내가 혼자 벽을 오른다. 무모한 도전은 아니다. 장비를 사용해 스스로 확보하며 벽을 오르고 있다. 양주 유양리채석장 인공등반 루트를 오르는 고경한·인성식이다.

익스트림라이더 등산학교 동문인 두 사람이 동시에 단독등반을 한다. 각각 다른 루트에서 인공등반기술로 단독등반을 한다. 조용한 오름짓이다. 화려한 몸놀림은 없으나 고요한 긴장감과 철제 장비의 마찰음이 추임새처럼 채석장을 울린다. 떨어지지 않기 위해, 분주하게 장비를 사용하며 조금씩 고도를 높인다. 손 때 묻은 낡은 장비와 능숙한 손놀림에서 베테랑 클라이머의 진한 향이 풍긴다.  

고경한(58)은 2016년 6월 미국 요세미티 엘캐피탄 조디악 16피치를 단독등반으로 7일에 걸쳐 완등했다. 이 중 5일을 벽에 매달려 지냈는데, 이튿날 침낭과 침낭커버가 바람에 날려가는 바람에 4일 동안 밤마다 추위에 떨면서 잠을 자야 했다. 그는 ‘꼭 탈출해야 하는 이유가 세 가지만 있으면 내려가자’고 마음먹고 고민했으나, 이유를 찾을 수 없어 계속 올라갔다. 물을 끓여 담은 수통을 양말에 넣어 끌어안고 잤으며, 여러 번의 추락으로 손가락이 찢어져 피가 흐르기도 했다. 이때 의료용 밴드가 없어 버프로 지혈하던 응급처치의 순간에도 “리얼 클라이머 같은 느낌이 들어 으쓱해졌다”는 긍정 마인드의 소유자다.

등반 마지막 날, 거지꼴로 새벽 2시경 정상에 올랐을 때 “아내와 친구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스테이크와 술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었다”며, “정말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회상하는 고경한이다.

벽 최상단에 오른 고경한과 인성식 뒤로 양주시 광적면 일대가 시원하게 드러난다.
벽 최상단에 오른 고경한과 인성식 뒤로 양주시 광적면 일대가 시원하게 드러난다.
캠을 설치하는 인성식. 자유등반과 인공등반, 빙벽등반까지 고루 즐긴다.
캠을 설치하는 인성식. 자유등반과 인공등반, 빙벽등반까지 고루 즐긴다.
그는 화가다. 홍익대 미대 서양화과를 졸업했으며, 대학 4학년 때 중앙미술대전 특선과 청년미술대전 대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미술계의 촉망 받는 젊은 화가였다. 전업화가를 꿈꾸었으나, 대학시절부터 산을 탔다. 학과 동기들과 의기투합해 미대 산악회를 만들었다. 홍대 산악부와는 별도로 미술대학산악회를 만든 것이었다. 1991년 백두대간을 50일간 일시 종주할 때는 지금처럼 등산로가 잘 나있지 않아 낫을 들고 길을 만들었을 정도로 힘들게 완주했다. 이때 ‘이제 진짜 산악인이 되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산과 깊이 호흡하는 계기가 되었다.

대학시절 암벽등반은 하지 않았다. 산악회 동기였던 친구는 “바위는 하지 말자”고 강조했다. “너무 재밌어서 그림을 못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우연이었는지 필연이었는지 친구는 바위를 하지 않았고, 상을 많이 받아 현재 미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백두대간을 다녀온 이듬해 암벽등반을 시작한 그는 오랫동안 해왔던 미술학원마저 접고, 현재 프리랜서 등산강사를 직업으로 하고 있다.

가장 힘든 등반할 때 함께 가고픈 사람

고경한은 인성식을 ‘가장 힘든 등반할 때 함께 가고픈 사람’으로 꼽았다. 등반 능력도 뛰어나지만 말수가 적으며 성격이 좋아 함께 원정을 가도 문제가 생길 일이 없다는 것이다.

천안 토박이인 인성식(46)은 20대 초반 회사에서 계룡산 워크숍을 갔다가 등산의 재미에 빠졌다. 2005년 코오롱등산학교 암벽반을 수료하며 등반의 세계에 발을 들였으며 등산학교 동기 산악회인 ‘알파인클럽 알피나’에서 지금까지 적극적인 등반을 하고 있다. 익스트림라이더는 2010년 정규반을 수료했다. 이는 고인이 된 민준영의 영향이다. 그는 “나보다 나이가 어렸지만, 등반력과 정신을 존경했다”며, “끊임없이 노력하고 혼자가 아닌 사람들과 같이 가는 모습이 좋았다”고 한다.

1 크랙에 맞는 너트를 가늠하는 인성식. 벽을 비추는 따스한 햇살이 겨울 인공등반을 돕고 있다.
2 피피를 걸어 허공에 뜬 몸을 지탱하는 고경한. 그는 요세미티 엘캐피탄의 거벽을 7일 동안 홀로 오른 집념의 클라이머다.
1 크랙에 맞는 너트를 가늠하는 인성식. 벽을 비추는 따스한 햇살이 겨울 인공등반을 돕고 있다. 2 피피를 걸어 허공에 뜬 몸을 지탱하는 고경한. 그는 요세미티 엘캐피탄의 거벽을 7일 동안 홀로 오른 집념의 클라이머다.
인공등반 장비를 들고 선 인성식과 고경한(오른쪽).
인공등반 장비를 들고 선 인성식과 고경한(오른쪽).
민준영이 운영하던 실내암장인 청주 타기클라이밍센터에서 운동하던 그는 암장 내 프로그램으로 인공등반 교육을 받고 있었다. 한데 마지막 한 주 교육을 마치지 못한 채 안나푸르나 히운출리 개척등반에 나섰던 민준영이 실종된 것이었다. 민준영을 추모하기 위해서라도 인공등반 교육을 마치고 싶었던 그는, 서울의 익스트림라이더 등산학교에서 인공등반 교육을 마무리 지었다.

이후 2011년 고경한·오재주와 함께 요세미티 엘캐피탄 메스칼리토 27피치를 8일간 인공등반으로 올라 완등했으며, 2016년 같은 산악회원인 이현상(제로그램 대표)과 산악인 유학재(비둘기산악회)와 함께 미국 휘트니산을 올랐다. 가장 최근에는 키르기스스탄 악사이산군 세메노바 텐산스코바(4,875m) 원정을 알피나산악회원들과 다녀왔다.

일이 바빠 해외원정을 자주 다니진 못했지만, 그는 늘 가슴속에 흰 산을 품어왔다. 그가 읽은 산악도서 80권 가운데 아트 데이비슨이 쓴 <마이너스 148도>를 기억에 남는 책으로 꼽는다. 추위와 강풍으로 악명 높은 알래스카의 북미 최고봉 데날리(6,194m) 동계 초등 이야기이며, 그에게 극한등반에 대한 동경을 품게 했다.

알프스의 당뒤제앙(4,013m) 역시 언젠가 가고 싶은 봉이다. 알피니즘의 창시자 격인 알버트 머메리가 당시 인간의 능력으로 오를 수 없는 봉우리라 여겨 등반을 포기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클라이머 인성식의 가슴속엔 알피니즘의 열정이 살아 있다.

등반을 마친 두 사람이 장비를 내려놓고 홀가분한 웃음을 짓는다.
등반을 마친 두 사람이 장비를 내려놓고 홀가분한 웃음을 짓는다.

너트, 피톤, 훅, 해머, 래더까지 막강한 장비로 무장하고 벽과의 한 판 승부를 벌인다. 크랙에 캠을 넣고 로프를 걸고, 래더를 이용해 오르기를 반복한다. 단순해 보이지만 터지지 않게 확보물을 계산해 설치하는 치열한 시간이다. 인공등반의 묘미이며, 단독등반의 묘미다. 벽 앞에 홀로 선 단독자로서 자신의 선택을 책임지는 과정인 것이다.

인공등반 마니아인 고경한은 그 매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개척등반을 위해 시작된 것이 인공등반이에요.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갈 수 있죠. 그리고 장비를 쓰는 재미가 있어요. 장비를 만지고 머리를 굴려서 사용하는 게 재미있어요. 하지만 등반 윤리는 지켜야 해요. 함부로 볼트를 박아선 안 되고 깨끗한 등반을 해야 하죠. 하켄도 최소한으로 쓰려고 노력해요.”

‘인생 아무것도 아니구나’

고경한은 서양화과 동기였던 아내와 캠퍼스커플을 거쳐 결혼했다. 아내 역시 미대산악회였다. 그의 아내는 암벽등반은 하지 않지만 엘캐피탄을 등짐을 메고 오르는 8시간 산행 정도는 거뜬히 해낼 산행 연륜을 갖추었다. 화가 부부는 미술학원을 운영했는데, 그가 해외등반을 갈 때마다 학원 규모를 줄여야 했다. 2005년 익스트림라이더 빅월반과 빙벽반을 수료한 그는 이후 봇물이 터진 듯 등반을 다녔다.

2006년 일본 북알프스를 등반했으며, 2007년 알프스 몽블랑과 마터호른을 등정했다. 2009년부터 거의 매년 요세미티 엘캐피탄 등반을 했다. 20피치 이상의 긴 루트라 매번 7~8일간 벽에 매달려 꼬박 올라야 했다. 그는 화려하진 않지만 포기를 모르는 끈끈한 등반을 해왔다.

그는 요세미티만 6번을 다녀왔다. 여기에는 익스트림라이더 동기였던 고 김홍수의 영향이 있다. 등산학교를 수료한 다음해 췌장암으로 숨을 거둔 그의 꿈이 요세미티를 가는 것이었다. 고경한은 그의 죽음을 보며 ‘인생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깨달음과, ‘벽 앞에서 더 이상 겁먹을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푸른 창공 속에 클라이머가 있다. 로프에 메인 몸이지만
더 없이 자유로워 보인다.
푸른 창공 속에 클라이머가 있다. 로프에 메인 몸이지만 더 없이 자유로워 보인다.
난공불락의 성벽으로 돌격하는 군인처럼, 등반장비로
중무장해 벽 앞으로 다가서고 있다.
난공불락의 성벽으로 돌격하는 군인처럼, 등반장비로 중무장해 벽 앞으로 다가서고 있다.
고경한은 익스트림라이더 실습교장인 이곳 유양리채석장에서 김홍수의 사십구재를 치렀으며, 절친했던 동기들과 그의 장비를 나눠 가졌다. 그 장비로 요세미티를 올랐다. 이후 익스트림라이더 동문회 부회장을 6년 동안 맡았다.

대한산악연맹 2급 등산강사 자격을 취득한 그는 2010년부터 미술이 아닌 산을 업으로 삼았다. 서울시연맹 청소년등산교실, 전국생활체육협회 등산교육, 119 소방 인명교육 등 다양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기초등산부터 야영, 암벽등반까지 폭 넓은 교육을 했다. 한국산악회원인 그는 현재 영원아웃도어와 한국산악회가 함께하는 청소년 등산교육을 서울사대부속고교에서 2년째 등산 교육을 하고 있다.

빈 캔버스처럼 매끈한 벽을 고경한과 인성식이 장비를 써서 오른다. 촘촘하게 확보하며 오르는 이들의 등반라인이 한 폭의 그림이다. 캠과 너트를 꼼꼼히 설치하는 모습이 붓질을 하는 화가처럼 열정적이다. 미묘한 곡선을 이루며 뻗은 확보물들이, 두 사람이 걸어온 등반의 시간을 이야기하고 있다. 인성식에게 민준영의 이야기가, 고경한에게 김홍수의 이야기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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