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2월의 클라이밍 | 고철준·전명숙] “힘에 집착하지 마라! 테크닉은 발에서 나온다”

월간산
  • 입력 2017.02.08 11: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년 넘게 5.13급 등반실력 유지해 온 사내와 첫 빙벽등반 나선 여인의 구곡빙폭 오름짓

구곡빙폭 상단을 오르며 활짝 웃는 고철준. 안정된 N바디 자세에서 고수의 향이 묻어난다.
구곡빙폭 상단을 오르며 활짝 웃는 고철준. 안정된 N바디 자세에서 고수의 향이 묻어난다.

괴수가 돌아왔다. 춥지 않은 겨울이었고, 계류는 능청스럽게 쏟아졌다. 빙벽등반 마니아들은 따뜻한 겨울을 원망했다. 나흘간 강추위가 찾아오자 겨울 괴수가 돌아왔다. 계곡을 아홉 굽이 돌아가면 만난다는 구곡폭포. 50m 높이의 수도권 최강 괴수가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고, 하얀 살기를 뿜어낸다.

1월 중순이 돼서야 결빙된 구곡폭포, 아이스클라이머에겐 금싸라기 같은 얼음이다. 웃을 때 동그랗게 휘어지는 눈 맺음새가, 사람을 당기는 묘한 힘이 있는 사내가 빙벽화를 신는다. 권총 같은 스크루를 허리에 차고 장검 같은 아이스바일을 들고 하얀 괴수에게 뛰어든다.

폭포 전망데크를 찾은 관광객들은 손에 땀을 쥐며 바라보지만, 사내에겐 긴장감이 없다. 물 만난 고기다. 구곡빙폭 시즌 첫 등반, 얼음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조심스러울 법한데 거침없이 오른다. 낙수가 많아 하단 빙질이 나쁘다고 판단했는지, 스크루를 박지 않고 자신 있게 쭉 오른다. 부드럽고 소탈한  그가 빙벽에 붙자 겁 없는 강력한 사내로 변신한다.

기막힌 발놀림이다. 다양한 각도와 모양의 얼음이 호락호락하지 않게 덤벼든다. 힘으로 제압하지 않고, 발놀림으로 타고 오른다. 현란한 기교로 괴수를 타고 논다. 얼음의 흐름에 맞게 무브를 변주해 자연스럽게 중력을 무너뜨리고 구곡의 머리 위에 선다.

타격 지점을 주시하며 초보답지 않은 등반을 하는 전명숙. 그녀의 톱로핑 등반을 고철준이 아래에서 돕고 있다.
타격 지점을 주시하며 초보답지 않은 등반을 하는 전명숙. 그녀의 톱로핑 등반을 고철준이 아래에서 돕고 있다.
대림대 산악부 창립멤버 고철준

충남 홍성이 고향인 고철준(55)은 어릴 적부터 산이 익숙했다. 백월산 자락에 살던 그는 매일 10리(4km) 길을 걸어 통학했다. 어머니를 따라 약초 캐고 나무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하루에 적어도 2시간은 걷는 것이 일상이었기에, 성인이 된 후 강건한 체력도 어릴 적 다져진 것이라 믿는다.

본격적인 등반을 한 것은 1982년 대림대학교 산악부 창립멤버가 되면서부터였다. 산에 가서 기타치고 야영하며 놀자는 마음에서 시작했지만, 등반의 꿈으로 바뀌는 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산악부 창립등반으로 도봉산 오봉을 갔다. 30m 로프 한 동으로 선후배들이 줄지어 암벽등반을 했다. 가슴 떨렸던 놀랍고 신선한 경험은 꿈속에 바위가 나올 정도로 그를 사로잡았다.

당시 그는 안양 집에서 서울 도봉산까지 레드페이스 ‘RF 암벽화’를 신고 왔다갔다 반복했다. 발이 불편한 건 당연지사였지만 바위에 대한 열정이 모든 불편을 상쇄시켜 버렸다. 1980년대 그는 도봉산 선인봉을 매주 찾았다. 워킹산행과 스포츠클라이밍, 빙벽등반에도 열정을 쏟았다. 16박17일 동안 횡성에서 강릉까지 산과 계곡을 넘는 직선종주를 했으며, 설악산 울산바위 아래에 보름 동안 텐트를 치고 등반하기도 했다.

도봉산 오봉을 오른 그때부터 34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는 매주말 산을 찾는다. 생계가 바빠 몇 년씩 산을 놓았다가 다시 찾는 이들이 많지만, 그는 34년간 꼬박 산을 찾았다. 산을 향한 그의 마음은 변치 않는 성실함이었다. 또한 현실의 선을 넘지 않았다. 뛰어난 등반실력을 갖췄음에도 해외원정을 거의 나가지 않았다. 외국의 높은 산, 멋진 거벽을 가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경제적인 여건 때문에 포기했다.

대신 그는 국내 등반에 매진했다. 집안에 대소사가 없으면 주말은 무조건 산에 간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켜, 가족들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1990년 결혼하면서 서울 강북구 수유동으로 이사한 것도 산 가까운 곳에 있고 싶어서였다. 1990년대부터는 실내암장에서 운동하며 암장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산을 찾았다. 서울의 두 번째 실내암장이었던 정승권 교장의 클라이밍아카데미를 개업할 때부터 다녔다. 이후 충무로 헥사실내암장에서 운동하며 주말이면 회원들과 산을 찾았다.

고철준은 간현의 강자로 불린다. 주말 간현암을 가면 5.13급 고난이도 루트를 멋지게 오르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도봉산을 좋아하지만, 선인봉은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오르는 길이 됐어요. 사람이 몰리니 바윗길이 막혀서 등반도 마음껏 못 하죠. 간현암은 하루 동안 가장 효율적인 등반을 할 수 있는 곳이에요. 선운산도 좋지만 멀어서 다음날 일하는 데 지장이 있고요.”

그의 성실함은 등반에서도 드러난다. 1990년대에도 간현암 5.13급 루트를 완등했고, 지금도 같은 등반능력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50대로 접어들면서 힘이나 순발력은 떨어졌으나, 더 무르익은 테크닉으로 효율적인 등반을 한다. 세월이 흐르며 5.13급 등반을 하는 사람도 실내암장마다 여럿이 있지만, 20년 넘게 같은 등반능력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눈에 확 띄는 등반을 한 건 아니지만, 아무나 넘볼 수 없는 등반을 해온 것이 고철준이다.

1 고철준이 유연한 동작으로 변화무쌍한 빙벽라인을 타고 오른다. 2 침착하게 아이스바일로 타격을 하는 전명숙. 추운 날이 길지 않았던 때라, 물이 흐르는 얼음 곁을 지난다.
1 고철준이 유연한 동작으로 변화무쌍한 빙벽라인을 타고 오른다. 2 침착하게 아이스바일로 타격을 하는 전명숙. 추운 날이 길지 않았던 때라, 물이 흐르는 얼음 곁을 지난다.
전명숙, “나는 등반을 잘하고 싶다”

긴 팔다리의 여성이 구곡을 오른다. 오늘이 첫 구곡빙폭 등반이다. 초보자 같은 모습은 없다. 압도적인 빙벽에 주눅들 법도 한데, 침착한 동작으로 쉬지 않고 쭉 오른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지나치게 불안하지도 않은 동작에서 스포츠클라이밍을 해온 기본기가 드러난다.

전명숙(44)은 2014년 갑상선에 문제가 생기며 체력이 엉망진창인 채 당고개 인공암벽을 찾았다. 운동의 필요성을 느낄 때, 우연히 당고개공원에 갔다가 백발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10m가 넘는 인공암벽에 매달려 등반하는 모습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이다. 등반의 재미에 눈 뜬 그녀는 ‘등반을 잘하고 싶다’는 단순하지만 해갈이 쉽지 않은 욕구에 휩싸였다. 이후 잘 가르쳐 준다는 서울의 여러 실내암장을 거쳐 2015년 정승권등산학교 암벽반을 수료했다.

고철준을 만난 건 1년 넘게 운동하고 있는 상계동의 위클라이밍센터였다. 산악회나 단체에 얽매이는 걸 싫어했던 고철준은 확보를 해줄 자일파트너가 필요했고, 전명숙은 체계적으로 가르쳐줄 스승이 필요했다. 두 사람은 스승과 제자라는 거창한 표현보다는 멘토와 멘티에 가깝다고 이야기한다. 전명숙에게 평소 고철준이 가장 강조하는 것을 물었다.

등반을 마친 전명숙의 얼굴이 낙수로 젖었다. 완등했다는 후련함에 미소가 감돈다.
등반을 마친 전명숙의 얼굴이 낙수로 젖었다. 완등했다는 후련함에 미소가 감돈다.
‘기본’과 ‘힘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테크닉이며 ‘테크닉은 발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등반은 발이 하는 것이며, 기본기를 위해 실내암장 벽에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몸을 움직이면서 붙어 있으라는 것이다. 고철준의 지도로 그녀의 등반은 급상승 중이며 현재 간현에서 YS길(5.12b)을 등반하고 있다. 그녀는 “높이에 대한 두려움보다 등반의 재미가 더 크기 때문에 계속 하게 된다”고 말한다.

“등반을 시작하고 나서 건강이 굉장히 좋아졌어요. 평소 잘하고 싶다는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몰입해서 뭔가를 하는 게 처음이거든요. 제 실력은 5.12급이 아니지만 YS길 등반을 하면 제가 보완해야 할 부분이 그대로 드러나요. 따지고 보면 파워부터 테크닉까지 모든 걸 다 보완해야 해요.”

또한 그녀는 “어떤 등반을 하겠다는 목표보다는 모든 면을 두루 경험하고 싶다”며, “지금은 모든 걸 경험하는 단계”라고 냉정하게 스스로를 평가한다.

1 등반의 테크닉은 발에서 나옴을 강조하는 고철준의 발놀림. 2 고철준은 국내에서만 등반을 해왔지만 20년 넘게 5.13급 등반 기량을 유지하고 있는, 자기 관리에 성실한 클라이머다.
1 등반의 테크닉은 발에서 나옴을 강조하는 고철준의 발놀림. 2 고철준은 국내에서만 등반을 해왔지만 20년 넘게 5.13급 등반 기량을 유지하고 있는, 자기 관리에 성실한 클라이머다.
고철준의 두 번째 등반, 얼음이 두껍고 완만한 우측 라인을 두고, 송곳니처럼 날카로워 만만치 않은 좌측 라인을 오른다. 처음보다 훨씬 가벼운 발놀림, 무게 중심을 현란하게 왼쪽 오른쪽 자유자재로 바꾸며 오른다. 바일의 피크를 빙벽에 타격할 때 떨어지는 얼음이 거의 없다. 중국 관광객들이 전망대에서 그의 등반을 바라보며 감탄을 내뱉느라 잠시 시끄럽다.

그는 굴곡 많은 빙폭처럼 다양한 일을 해왔다. 동서식품 대리점을 8년가량 했으나 IMF 외환위기로 좌절되었고, 이후 아웃도어 관련 다양한 일을 했다. 코오롱등산학교 교육센터의 전신인 O2 인공빙장에서 빙장 관리를 맡았고, 밀레 봉천동 점장, 살레와 신월동 점장으로 일했다. 2011년부터 아파트 외벽 페인트칠을 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했던 일 중 가장 좋다”고 말한다. 외벽청소에 비해 능숙한 기술이 필요하기에 일거리도 충분하고 수입도 더 좋은 편이며, 산에 갈 시간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가 산을 못 갔던 유일한 시간은 토왕폭에서 추락해 발목이 부러졌던 9개월뿐이다. 등반을 마치고 산기슭으로 하산하고 했는데, 나무가 부러져 연결한 로프가 빠지며 10m를 추락했다. 배낭 덕분에 큰 부상은 면했지만 깁스를 해야 했고, 산에 못 가는 시간을 견딜 수 없어 한 쪽 발로 실내암장 벽을 올랐다.

송곳니를 드러낸 하얀 괴수 같은 구곡빙폭에 등반을 마친 두 사람이 섰다.
송곳니를 드러낸 하얀 괴수 같은 구곡빙폭에 등반을 마친 두 사람이 섰다.
“여러가지에 얽매이면 산에 가는 것, 불편해져”

현재 그는 산친구인 전언식씨 요청으로 두리등산학교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다른 등산학교나 단체에는 활동하지 않는다. 30년 넘은 그의 오랜 경력과 넓은 인맥을 보면 의외다. 그는 “나는 주말이면 무조건 산에 가야 하는 사람”이라며 “여러 가지에 얽매이면 산에 가는 것이 불편해진다”고 이유를 설명한다. 그저 “자유롭게 등반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내가 살아온 인생의 절반이 등반이었어요. 그동안 일주일에 하루 쉬는 일을 주로 해서, 산에 갈 시간도 부족했어요. 그러니 다른 취미를 가질 틈도 없었죠. 이젠 매년 외국 나가서 해보고 싶었던 등반을 원 없이 하고 싶어요. 알프스 3대 북벽, 태국 프라낭, 미국 요세미티도 가보고 싶어요.”

등반 욕구로 똘똘 뭉친 두 사람이 빙폭을 내려온다. 찬바람 몰아치는 구곡은 아직 부족한 얼음 살집을 키우려 애쓰는 모습이다. 두 사람에게서 풀려난 빙폭이 냉기를 뿜어내며 기지개를 켠다. 자유로운 등반을 마친 두 사람의 얼굴에 미소가 감돈다. 개운한 만족감이 차올라 에너지가 넘치는 모습이다. 아홉 굽이를 돌아 내려가는 이들의 걸음이 가볍다.
저작권자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핫키워드

#시즌특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