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 | 서울대 인기강의] 등산 통해 인생 배우는 교양강의 ‘산과 인생’

입력 2017.02.22 10:39

1분이면 수강신청 마감… 담당교수는 산악인 김진성씨

서울대 교수들
관악산에 오른 서울대학교 교양강의 ‘산과 인생’ 학생들과 교수진.

매년 2월과 8월 신학기 시작 직전 대학생들은 명절 귀향길 기차표 예매에 버금가는 치열한 수강신청 전쟁을 벌인다. 어떤 강의를 듣느냐에 따라 한 학기 생활패턴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특히 인기 있는 교양강의는 전공에 상관없이 누구나 수강이 가능하기 때문에 유독 경쟁이 치열하다.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들이 모인다는 서울대학교 역시 사정이 다르지 않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학교 최고 인기 교양강의 중 하나가 바로 등산과 관련된 ‘산과 인생’이라는 과목이다. 이 강의는 등산 이론을 배우고 여러 차례 산행과 야영까지 참여해야 학점을 딸 수 있는 체험교육의 성격이 강한 과목이다.

‘산과 인생’은 2009년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에서 교양체육 교과목 중 하나로 개설되어 올해 9년째를 맞고 있다. ‘등산’ 관련 강의가 생긴 배경에는 현 서울대미술관장인 정영목 교수와 서울대교수산악회 교수들의 노력이 뒷받침 됐다. 또한 체육교육학과 나영일 교수의 강의 개설에 대한 의지도 큰 역할을 했다.

안나푸르나트레킹 참석자들
2014년 2월 ‘산과 인생’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 참석자들.
산악계 유명인사의 특강도 편성

‘산과 인생’ 강의 소개 자료에 따르면, ‘학생들에게 산이라는 열린 교육의 장에서 여러 학문들과의 융합을 통해 산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와 산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기본 소양을 제공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쉽게 말해 학생들이 학과 과정을 통해 산을 접하며 호연지기를 기르고 리더십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강의는 한 학기 총 15주 동안 이론교육과 함께 삼성산, 관악산, 북한산, 도봉산을 오르는 주제별(독도법, 종주산행 등) 일반등산이 진행된다. 또한 모험등산을 주제로 인공암벽등반과 1박2일 야영을 체험해 볼 수 있는 시간도 마련되어 있다. 또한 매학기 1회 특강을 편성해 이인정 아시아산악연맹(UAAA) 회장, 성기학 영원무역 회장, 강태선 블랙야크 회장, 허영만 화백, 홍성택 대장, 김창호 대장 등 산악계의 유명 인사를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등산을 다양하게 경험하며 학점도 딸 수 있는 흥미로운 수업인 것이다.

‘산과 인생’ 담당교수는 산악인 김진성(52)씨가 맡고 있다. 서울여자대학교와 동국대학교 등에서 등산 관련 강의를 이미 진행하고 있던 김 교수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서울대학교에서 9년째 강의를 이어오고 있다.

김 교수는 아이거 북벽 등정과 에베레스트 남서벽, 안나푸르나 1봉, 마나슬루 등을 등반한 전문산악인으로, 히말라야의 별이 된 박영석 대장의 동국대 산악부 동기이자 30년 지기 악우다. 현 박영석탐험문화재단 상임이사로 재직 중으로, 2012년과 2016년 안나푸르나 1봉 수색대장으로 팀을 꾸려 박영석 대장을 찾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공교육 현장에서 등산을 가르친다는 것은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던 젊은 학생들이 산을 오르고 단체생활을 하면서 변화되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대부분의 학생이 등산 경험이 없지만 서로 도우며 천천히 함께 하다 보면 목적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겸손과 타인에 대한 배려에 눈을 뜨게 됩니다. 등산을 통해 인생을 배우고 느끼는 것이지요.”

‘산과 인생’ 강의는 2학점으로 서울대학교 모든 학과의 학생이 신청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평소 만날 기회가 없던 다른 학과 학생들과 교류할 수 있는 마당이 되기도 한다. 체육 계열은 물론 서울대 모든 학생들이 강의를 듣고 있다. 이들은 조를 이뤄 활동하며 자연스럽게 친해져, 강의와 별개로 지리산 종주를 함께하는 등 친목을 이어가고 있다. 일부 학생은 산악부에 가입해 좀더 전문적인 등산 활동에 발을 들여놓기도 한다.

“고학년 학생들이 수강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학점을 따면서 기분 전환도 할 수 있으니, 공부 스트레스가 많은 서울대 학생들에게 안성맞춤인 과목이죠. 그러다 보니 경쟁이 심해서 수강신청이 시작된 지 1분 만에 60명 정원이 마감될 정돕니다. 추가 신청에도 많은 인원이 몰려 적극적으로 참여의사를 밝히는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이 강의가 인기 있는 이유는 입소문 때문이다. 강의를 들었던 학생들이 친구나 후배들에게 ‘괜찮은 강의니 들어보라’며 적극 권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수강신청 때 경쟁률이 치솟는 것이다.

김상빈 외
2013년 2학기에 강의를 들었던 경제학부 김상빈 학생. 서울대학교 인기 교양강의 ‘산과 인생’ 김진성 담당교수.
히말라야 트레킹 참가한 학생도

2013년 2학기에 ‘산과 인생’을 수강했던 경제학부 4학년 김상빈(27)씨는 “친구의 권유로 강의를 듣게 됐는데, 생각보다 배울 점이 많아서 놀랐다”면서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동안 몰랐던 산에 대해 눈을 뜰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그는 학기를 마치고 아르바이트로 참가비를 충당해 2014년 2월에 진행된 안나푸르나 트레킹에도 참가했다.

“보통 인기 과목은 학점 취득이 상대적으로 쉽거나 시간적인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산과 인생’은 큰 부담 없이 들을 수 있지만 금요일 오후 시간을 꼬박 투자해야 하는 강의라 만만한 과목은 아닙니다. 산행이 잡힌 날은 저녁때까지 시간을 비워야 하고, 1박2일 야영도 참가해야 합니다. 그렇게 공을 들이다보니 다른 교양강의에 비해 남은 게 훨씬 많은 것 같습니다.”

2014년 추진한 안나푸르나 트레킹은 지금껏 수강했던 학생들을 위해 기획한 프로그램이었다. 히말라야 트레킹을 통해 좀더 높고 넓은 자연을 체험하고, 현지 학교에 물품과 기부금을 전달하며 베풂의 의미를 되새기는 기회도 가졌다. 당시 행사에는 김상빈, 장동규 학생 외에 학교 관계자 10여 명이 참가했다.

김진성 교수는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함께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분명 얻은 것도 많았다”며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히말라야 트레킹을 통해, 학생들이 교실에서 배우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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