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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해외여행ㅣ인도 잔스카르 자전거여행기 中] 낯선 행성에 불시착해 여행하는 기분

글·사진 이남석 서울 성동공고 교사
  • 입력 2017.02.13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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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스카르와 히말라야, 두 마리 용이 풀어내는 감동적인 풍경 속으로

고도 5,060m의 싱골라를 내려오는 길. 트사랍강이 가까워지면서 곳곳에 드러난 빙하를 건너야 한다.
고도 5,060m의 싱골라를 내려오는 길. 트사랍강이 가까워지면서 곳곳에 드러난 빙하를 건너야 한다.

싱골라에 발자국을 남긴다고 생각하니 감개무량했다. 인생은 분명 진행형이지만 누구도 그 길을 예측할 수 없다. 젊어서는 오직 자기 앞에 떨어진 이익만 줍는 데 시간을 소비했다. 인생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것은 사치이며 시간낭비라 생각했던 내가 생각을 바꾼 것은 자전거여행의 영향이 컸다. 마치 늙은 별이 마지막 빛을 우주에 남기듯, 오래된 느티나무가 스스로 가지를 죽이며 굵은 뼈를 유지하듯, 자전거 여행은 내 안에 침적된 고정관념을 깨끗이 닦아내 버렸다.

자전거로 오지 여행을 하며 높은 고개를 넘은 것이 한두 번은 아니지만 싱골라는 특별했다. 햇빛까지 식혀 버릴 것 같은 바람을 짊어진 채 마침내 싱골라 정상에 도착했다. 원래 구름이 가득한 날씨였는데, 고개 정상에 이르자 서풍이 구름을 벗겨내더니 오색 타르초(경전이 적혀 있는 깃발)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신성한 기운이 햇빛과 더불어 사방에 가득했다. 마치 서역의 미인을 닮은 듯 기이한 아름다움에 우리는 침묵한 채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싱골라 정상에서의 감동을 갈무리한 후 신음조차 허락하지 않을 정도로 고요한 잔스카르계곡으로 들어갔다. 붉은 암벽은 창공으로부터 흘러내리고, 눈을 뒤집어 쓴 예리한 봉우리는 검은 그림자 밑에서 완만해졌다.

오른쪽으로 펼쳐진 설산 자락은 쉬지 않고 나그네에게 라다크와 잔스카르의 노래를 불렀다. 얼마 안 가 우뚝하고 선명한 봉우리가 나타났다. 붉은 기운이 서려 있는, 첫눈에도 범상치 않은 봉우리였다. 이곳 잔스카르 사람들이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성산 곰바랑존(Gombarangjon)이었다. 봉우리의 오른쪽 허리가 라마의 선홍색 승복처럼 보였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물소리는 더욱 거칠게 들려왔다. 거의 800m를 내려와 마침내 강가에 도착했다. 야영지는 발견했지만 물을 구할 수 없었다. 별 수 없이 우리는 강을 건너 더 내려가기로 했다. 분명 지도에는 근처 어딘가에 야영지와 다바(여행자를 위한 휴게소)가 있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아직 저녁 빛이 살아 있는 북쪽의 설산은 빙하를 껴안은 채 신음소리를 냈다. 양들이 지나간 흔적을 지워버린 어둠이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완전히 해가 떨어지고 달이라도 뜬다면 식어가는 우리의 몸을 그대로 둘 것 같지 않았다. 북쪽의 설산은 점점 가까이 다가왔는데 마치 잠에서 일어난 늑대가 금방이라도 내려올 듯 사방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한 시간 정도를 걸어 내려가서 마침내 지도상에 나와 있는 라캉 야영지에 도착했다. 곰바랑존이 바로 뒤에 있고 앞으로는 싱골라로부터 달려온 물이 여러 계곡의 물과 합쳐져 유속을 줄인 채 아래로 흘러갔다.

자전거를 타기는커녕, 조금만 실수해도 추락할 수 있는 험한 산길을 오른다.
자전거를 타기는커녕, 조금만 실수해도 추락할 수 있는 험한 산길을 오른다.
천 한 조각, 나무토막 하나도 소중한 재산

다바의 야영장에 텐트를 치고 김시우·조성원 대원은 텐트에서, 나는 다바에서 하룻밤을 머물기로 했다. 다바 안에서 싱골라를 넘기 전 말몰이꾼들과 함께 차에서 내렸던 독일 사람을 만났다. 대화를 나눠보니 독일에서 지방의 작은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지휘자였으며 티베트 불교에 경도되어 이곳 사원에서 수행을 하는 것 같았다. 비록 그와 짧은 대화를 나눴지만 보통 사람과는 다른 내적인 근기가 충만한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라캉은 옆으로 트사랍강의 지류가 지나감에도 불구하고 고요했다. 급하게 달려온 강물이 평평한 지형을 만나 넓게 퍼지고 유속이 느려져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따금 밖에 매어 놓은 말들이 추위에 몸을 떠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불을 끄고 눈을 감아도 영 잠이 오지 않았다. 김시우 대원과 조성원 대원 모두 고소증세는 지나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직 아침에 두통이 오는 걸 보면 힘든 여정에 고소증이 겹치며 피로가 완전히 풀리지 않은 것 같았다.

라캉부터 탕제까지는 강을 따라가는 길이라 자전거를 타고 가기에는 힘들지 않았다. 다만 초반에 자갈이 많고 큰 바위가 깔린 너덜지대가 자주 나타났다. 우리는 셔터가 열린 카메라처럼 좌우로 펼쳐지는 풍광들을 각자의 느낌으로 기록했다. 두 사람은 입맛이 없을 때 먹겠다며 한국에서 쌀을 가져왔지만 압력밥솥으로 하지 않는 이상 밥이 되질 않았다. 김시우 대원의 아이디어로 코펠에 물을 많이 부은 후 약한 불꽃으로 서서히 쌀을 익혔지만 워낙 고도가 높다 보니 밥은 항상 설었다. 끼니마다 식사를 해결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지만 우리는 주어진 조건에서 에너지를 잃지 않고 여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뒤로 라캉의 성산 곰바랑존을 바라보며 카지악(Kargyak)으로 가는 길은 마을 사람들과 트레커들이 왕래하는 길로 좁지만 단정하고 사람 때가 많이 묻어나는 길이었다. 별을 모아놓은 호수처럼 계곡은 야생화와 여러 가지 색의 흙과 바위가 한데 뒤엉켜 있어, 자전거 바퀴가 길을 이탈할 때가 잦았다. 매를 부리는 사냥꾼처럼 봉우리 끝에서 시작된 시선은 능선의 가장자리에 도착하고 마침내 계곡 언저리에 내려와 멈추었다. 느낌은 노래가 되었고 그것을 기록한 정신은 끝을 찾을 수 없는 무한대였다.

길가에 있는 마니석(경전을 새긴 돌) 무더기에서 무사히 완주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했다.
길가에 있는 마니석(경전을 새긴 돌) 무더기에서 무사히 완주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했다.
탕제마을 야영지에서 만난 프랑스 트레커들. 잔스카르를 찾는 외국인은 거의 유럽 사람들이다.
탕제마을 야영지에서 만난 프랑스 트레커들. 잔스카르를 찾는 외국인은 거의 유럽 사람들이다.
여행자를 위한 휴게소인 다바의 주인이 음식을 만들기 위해 불을 켜고 있다.
여행자를 위한 휴게소인 다바의 주인이 음식을 만들기 위해 불을 켜고 있다.
잔스카르산맥은 우측으로부터 용의 형상으로 가파른 계곡과 호흡했으며, 좌측으로 늘어진 히말라야는 그 큰 몸을 가누려고 용틀임하는 거인처럼 무거운 몸을 천천히 일으키고 있었다. 때로는 휘파람을 불면서 사람들의 흔적을 찾다가도 갑자기 나타난 두 마리 용을 발견하고 스스로 놀라기도 했다.

카지악은 햇빛이 풍부한 곳이며, 사방에서 물이 모이는 형상이라 사람들이 모여 살 만했다. 곰바랑존이 보이는 곳에는 많은 영탑(불교식 탑)과 마니석을 쌓아놓은 돌무더기가 있었다. 아마도 순례자들은 여행을 하다가 마지막으로 신성한 산이 보이는 이곳에서 하루를 머물렀을 것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곳 마을에서 구할 수 없는 건축자재나 생필품들은 말이나 사람들의 등짐으로 옮겼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여기서는 천 한 조각, 나무토막 하나도 소중한 재산이었다.

안무마을의 다바 주인과 아이. 친절하고 음식솜씨가 좋았다.
안무마을의 다바 주인과 아이. 친절하고 음식솜씨가 좋았다.
잔스카르 산줄기를 배경으로 음식을 하는 얄(Yal)마을 여인들.
잔스카르 산줄기를 배경으로 음식을 하는 얄(Yal)마을 여인들.
“정말 난 이곳에서 행복하다”

잔잔한 바람은 구름과 살을 부대끼며 달아나고 너울처럼 반복되는 계곡으로 빛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색으로 가득했다. 이것들은 시시로 변하고 모양을 바꾸었으며 계속 바라보면 마치 꿈 안에서 다시 꿈을 꾸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개울은 지류를 만나 양을 불리고, 경작지를 가득 채운 보리는 영글기 시작했으며, 사원으로부터 들려오는 경전의 독송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높이와 크기로 이곳을 지나는 이들에게 평화를 선물했다. 영탑과 타르초가 나부끼는 곳에 자전거를 세워놓고 산과 하늘을 번갈아 보며 생각에 빠지다 보면 그 자체가 자연스러운 명상이고 수행이었다.

탕제(Tanze)는 조그만 마을이었다. 집들은 키를 낮추고 길은 쓸쓸하며 무거운 고요함은 빈객의 쓸쓸한 심장을 끌어안았다. 빈 광주리를 닮은 마을 앞 공터에는 트레커들의 짐을 옮겨 주는 말몰이꾼들이 쉴 수 있는 야영장과 소박한 다바가 있었다. 다바는 마치 지친 나그네를 위한 객잔과 같았는데 한 여인이 그 다바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한 프랑스 트레커는 그동안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트레킹 명소를 많이 다녔지만 잔스카르만큼 경치는 물론 영적인 충격을 주는 곳은 없다고 했다. 아마도 그녀는 평소에 자신이 좇던 정신적인 이상을 잔스카르 트레킹을 통해 경험한 것 같았다.

조성원 대원은 아직 완벽하게 컨디션이 올라오지 않았는지 겉으로 내색하지 않지만 힘든 것이 분명했다. 김시우 대원 역시 돌길을 쉽게 가기 위해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자전거를 탔기에 허리 통증과 더불어 고소에 의한 두통을 호소했다. 비록 호흡이 힘들고 근육의 이완이 마음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서늘한 듯 가벼운 공기를 밀치면서 달리는 느낌은 마치 우주선을 타고 가다가 낯선 행성에 불시착한 후 그곳을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때로는 북극의 빙원에 내려앉은 것 같기도 했으며 갑자기 구름이 많아졌다가 어느 순간 구름을 빗자루로 쓸어낸 듯 청명했다. 자전거 라쳇이 미끄러지는 경쾌한 음과 함께 페달을 밟아 잔스카르 깊숙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얄(Yal)마을에 도착하기 전 다시 한 번 강을 건넜다. 비록 일반 평지에서 보는 강과 달랐지만 살아 있는 용처럼 온 몸을 휘저으며 계곡 사이를 빠져나가며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때로는 선과 악을 가르치는 신처럼 느껴졌다.

길은 강 위 절벽으로 나있어 가팔랐다. 7~8부 능선으로 난 길에서 바라본 풍경은 말문이 막힐 정도였다. 밑으로 살아 있는 용을 닮은 강이 달리고, 좌우로 굽이굽이 펼쳐진 계곡, 눈 덮인 산줄기와 봉우리들은 히말라야와 잔스카르의 정수였다.

행복은 분명 주관적 견해이지만 내가 받아들이는 것은 하나의 원리였으며, 누가 질문을 하더라도 나는 단 하나의 위선을 완벽하게 배제한 대답 ‘잔스카르를 여행하는 동안 난 정말 행복하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두껍고 긴 검은 띠를 두른 듯 강물을 품은 채 버티고 있는 계곡은 양쪽으로 이어지는 잔스카르와 히말라야산맥의 존재를 더 영적으로 보이게 했다.

마을 사람의 도움을 받아 안무 마을과 연결된 행어브리지를 건너고 있다. 부실한 데다 흔들림이 심해 심장이 조마조마했다.
마을 사람의 도움을 받아 안무 마을과 연결된 행어브리지를 건너고 있다. 부실한 데다 흔들림이 심해 심장이 조마조마했다.
이날 이동한 거리는 겨우 20km 이내였으니, 자전거로 이동하기에 얼마나 열악한 길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자전거를 탈 수는 있지만 조금이라도 실수해 핸들을 잘못 돌리면 목숨을 잃는 낭떠러지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니 충분히 탈 수 있을 것 같은 길에서도 자전거를 끌 수밖에 없었다.

얄(Yal)은 문명이 벗어난 곳에 있는 마을 같았는데 구름은 한 뼘 높이로 떠 마을을 덮고 있어 우주선 밖에서 쳐다본 풍경처럼 신비했다. 도저히 물이 없을 것만 같은 척박한 곳임에도 가까운 설산으로부터 흘러내리는 물로 농토를 개간해 경작과 유목을 병행하는 마을이었다.

얄의 다바 주인은 매우 젊었으며 이곳 사정에 밝았다. 그는 잔스카르에서 트레커들을 위해 직접 안내를 하거나 짐을 옮겨주는 말과 말몰이꾼을 소개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잔스카르로 트레킹을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트레킹 전문여행사와 계약을 하는데 여행사에서는 현지 말몰이꾼과 안내자들에게는 적은 액수만을 주고 대부분 여행사 주인들이 돈을 가져간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라마유르나 숨도에 와서 현지인들과 접촉해 직접 말몰이꾼 겸 안내자를 구한다면 훨씬 유리하게 계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얄에서 푸르니(Purne)마을로 가는 길은 전보다 훨씬 열악했다. 계곡 강바닥까지 내려가야 하는 가파른 내리막길로, 푸르니 직전 강을 건너는 다리까지 단 한 번도 브레이크를 놓지 않을 정도로 경사가 급했다. 힘은 들었지만 경치 하나만큼은 천하절경이었다.

푸르니에 도착하니 아직 해가 남아 있었지만 더 이상 이동하기는 무리일 것 같아 근처 야영장에 텐트를 쳤다. 얄에서 만났던 다바 주인의 충고대로라면 푹탈(Phuktal)곰파까지 이동해 사원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어야 했지만 자전거를 끌고 4km를 더 올라가기에는 무리였다. 나만이라도 푹탈 사원까지 다녀오겠다고 하자 김시우 대원이 선뜻 같이 가자고 나서니 속으로는 얼마나 반가운지 몰랐다.

사실 나도 많이 지쳐 있는데다가 왕복 8km를 걷는다는 게 부담스러웠다. 푹탈곰파(사원)는 라하울의 타보곰파와 스피티곰파, 그리고 라다크의 라마유르곰파에 이르기까지 티베트 불교가 이동한 경로를 보여 주는 중요한 사원이니 어떻게 지나칠 수 있겠는가. 푸르니에서는 싱골라로부터 흘러내리는 강과 푹탈곰파로부터 달려온 트사랍강이 합쳐지는데 두 강의 성격이 완전하게 달랐다. 싱골라로부터 발원한 강은 빙하가 녹은 탁류인데 반해 푹탈로부터 흘러내리는 강물은 하늘빛을 담은 듯 맑은 물이었다.
벼랑에 자리한 신비로운 사원, 푹탈곰파.
벼랑에 자리한 신비로운 사원, 푹탈곰파.

위태로운 행어브리지를 건너다

뜨거운 땀은 몸 안에서 녹아버리고 깊은 숨은 목젖에서 멈추었다. 계곡으로부터 들려오는 노래를 따라 불러도 지루하지 않은 것은 내 육체와 정신이 이미 잔스카르에 동화된 까닭이었다. 보살을 닮은 바위들은 주황이 섞인 선홍색 옷자락을 내려뜨린 채 양쪽 계곡에 매달려 있고 황소의 눈동자와 염소의 뿔을 닮은 기묘한 바위는 푹탈을 지키는 나한처럼 숨을 헐떡거리며 올라오는 나그네를 노려봤다.

푹탈곰파는 스피티곰파나 라마유르곰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수십 개의 작은 건물이 벌집처럼 절벽에 붙어 있었으며 중앙에는 큰 동굴이 있었다. 김시우 대원과 나는 감격해 사원에 경배했다. 신심이 절로 일어났다. 사원에 삼배한 후 트사랍강에 원하는 소망을 던지자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다음날 아침 김시우 대원이 심한 두통으로 몹시 괴로워했다. 조성원 대원도 컨디션이 완벽하게 회복되지 않아 출발부터 지금까지 순탄치 않았다. 하지만 다음 목적지인 안무(Anmu)마을까지만 가면, 이후 파둠(Padum)까지는 넓은 도로가 있다는 정보를 믿고 모두 힘을 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얄의 다바 주인과 아침에 푸르니를 출발할 때 독일 친구가 충고한 말이었다. 안무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강을 가로지른 행어브리지를 지나야 하는데 그 다리가 작년 홍수에 부서져 임시로 보수를 한데다가 다리를 건너던 여행자가 떨어져 사고를 당했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안무에 있는 다리 전, 차(Char)마을로 넘어가는 다리를 건너라고 했다. 하지만 막상 차(Char)로 가는 다리를 건너려니 한참을 내려가야 하는데다가 다리를 건너 본 길로 합류하는 오르막이 보통 경사가 아니었다. 결국 우리는 포기하고 안무까지 가서 강을 건너기로 했다.

안무에 도착하자 강 밑으로 행어브리지가 보였다. 히말라야 오지 곳곳을 누빈 나였지만, 과연 저 다리를 건널 수 있을지 겁부터 났다. 하지만 나에게는 가장 앞장서서 다리를 건너야 하고, 두 사람을 안전하게 건너가게 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강 밑으로 내려가 영국인 트레커의 충고를 받아들여 강 건너편에 있는 마을을 향해 소리를 질러 도움을 요청했다. 마침 건너편 가까운 곳에서 한 사람이 뭔가를 하고 있었는데 내가 모자를 벗어서 흔들면서 도움을 요청하자 그는 내 신호를 알아들었는지 손을 들고 강 아래 한 곳을 가리켰다. 너무 멀어 서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기 때문에 오직 신호만으로 상대방 뜻을 파악해야 했다. 처음에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그 사람 손짓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하다가 나중에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다리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도로를 만드는 작업자들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에게 부탁하라는 뜻이었다. 바로 그때 안무에서 트레커들이 도로 작업자들의 도움을 받아 다리를 건너 야영장으로 가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인부들 중 가장 연장자인 듯한 사람에게 찾아가 정중하게 부탁하자 다른 사람을 가리켰다. 강을 자주 건너면서 자재를 옮기는 사람이었다. 그의 도움을 받아 인부가 뒤에서 자전거를 끌고 나는 배낭을 멘 채 앞에서 행어브리지를 건넜다. 다리 중간쯤 와서는 다리 바닥이 몹시 흔들려 균형을 잡느라 진땀이 났다. 가느다란 밧줄과 돌과 나뭇가지를 깐 위태로운 다리였다. 뒤이어 두 사람이 언덕을 내려와 우리는 무사히 다리를 건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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