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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산따라 맛따라] "한국천주교의 발상지, 건강한 먹거리도 선두주자"

글·사진 박재곤 우촌미디어 대표
  • 입력 2017.02.17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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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앵자봉(鶯子峰·667m) 자락에는 한국천주교의 발상지인 천진암이 있다. 18세기 중엽, 권철신(權哲身: 1736~1801)을 중심으로 한 남인계 소장학자들이 이익(李瀷)의 서학열을 이어받아 독특한 학풍을 형성하고 경기도 광주와 여주 등지의 사찰에서 강학(講學)을 가졌다.

원래 불교 암자였던 천진암은 이 강학장소 중의 한 곳이었다. 강학의 주 내용은 유교경전에 대한 연구였고, 당시 전래된 한역서학서(漢譯西學書)도 집중적으로 검토되었는데 결국에는 천주신앙으로 전개되었다. 천주교에 관계된 주요 인물인 이벽(李檗)과 정약용(丁若鏞)이 이곳을 자주 방문했다.

현재 천진암에는 100년 대계의 대성당을 건립 중이다. 연면적 약 4만5,398㎡(약 1만3,733평)의 2층 건물로 장차 ‘세계 10대 성당’ 안에 꼽힐 이 성당은 높이 85m, 추녀 끝에서 끝까지가 195m인 웅장한 건물이다. 처음에는 군청에서 ‘건축기간이 100년이나 걸리는 것은 건축법상 불법’이라며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천주교의 대표적인 장기사업인 천진암 성당 건립을 위해 로마의 교황이 머릿돌 강복문을 하사했다. 이 성당이 완공되면 앞으로 민족화해를 위한 통일대성당으로서 한국 천주교의 심장과 얼굴이 될 것이다.

또한 전국 신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1세기에 걸쳐 이루어지는 이 사업은 천주교뿐 아니라 온 국민들에게 부실공사를 예방하고 당대주의(當代主義)와 개인 중심의 공명심이나 업적주의를 줄이는 결과도 가져올 것이다.

천진암 대성당 건립의 총감독을 맡았던 변기영(卞基榮) 신부는 성당 건립 재정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정치인이나 재벌의 거액헌금은 달갑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낙성식 때 감사패라도 받을 수 있어야 돈을 내고 싶을 텐데 다 짓는 데 100년이나 걸리니 생전에 감사패를 받지 못할 것이고, 돈을 내고 나서는 빨리 지으라고 간섭할 테고, 나중에 이 역사적인 성당이 어느 힘 센 사람의 기부로 지어졌다는 기록이 남을 것이니 그런 일은 없도록 해야겠다는 것이었다.

국가 100년 대계로 고민해야 할 이 나라의 지도층 인사들, 특히 정치계의 인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천년이라도 이어갈 듯, 정당의 명칭에 천년을 붙였던 이름의 정당도 있었는데 100년은 고사하고 10년도 되지 않아 사라졌다. 2017년 1월 현재 대한민국 헌정 70년, 원내(院內)에 존재하는 3년 5개월 된 정당이 가장 오래된 정당이라는 코미디 같은 사실에는 참담한 심경이 된다.

천진암을 다녀오는 차속에서 故 김수환 추기경과 변기영 신부가 나누었다는 대화 한 토막이 다시 떠올랐다.

“어쩌다가 이렇게 한적한 산 속에 거처를 정할 수 있었소?”

“제가 부럽지요? 이곳에 살려면 자격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자격이오?”

“세상에서 아무데도 쓸모없는 무(無)자격자가 이곳의 자격입니다. 산중턱 높은 데 살면 멀리 볼 수 있지요. 갈매기가 낮게 날면 멸치 떼밖에 못 먹지만 높게 날면 정어리와 고등어도 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

-조선일보 ‘최보식의 인물기행’ 중에서-  


원조최미자소머리국밥
청와대에 돈을 빌려 달라고 편지 쓴 사연

‘직무가 정지된 대통령 사태’로 온 나라가 시끄럽고 뒤숭숭하다. 그래서 ‘원조최미자소머리국밥’의 최미자 할머니가 식당을 처음 시작하고 어려웠던 시절, 현직 대통령에게 편지를 써 ‘돈 거래’를 했던 드라마 같은 일이 떠오른다.

최미자 할머니는 “제 이야기는 장편소설 한 권으로는 부족할 것”이라고 했다. 역경을 넘고 넘은 수많은 이야기 중에서 이판사판으로 청와대에 편지를 띄운 이야기는 최 할머니의 두둑한 배짱을 읽을 수 있었기에 무척 흥미로웠다.

할머니는 세상 어디를 둘러보아도 의지할 곳 하나 없는 상황에서 홀로 어린 4남매를 훌륭히 키워야겠다는 강한 의지 하나만으로 청와대에 ‘식당 꾸릴 종자돈 500만 원만 빌려 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이후 청와대로부터 ‘귀하가 살고 계시는 행정관서에 의뢰하십시오’라는 짧은 회신을 받았고, 얼마 후 면사무소 직원이 찾아왔다. 직원은 “아주머니, 왜 이루지도 못할 일을 만들어 우리만 곤란하게 하십니까”라고 짜증을 내며 10만 원의 위로금을 건네주고 갔다.

할머니는 ‘이왕지사 빼 든 칼인데’라고 생각하며 청와대에 또 다시 편지를 썼다. 이번에는 면사무소 간부가 찾아와 생활계획서를 대신 작성해 주고는 동네 이장의 보증으로 은행으로부터 200만 원을 대출받게 해주었다.

대출금으로 장사를 시작해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가던 도중 ‘열심히 살아가는 서민들의 진솔한 삶’을 소개하는 한 TV프로그램을 보다가 최미자 할머니는 문득 자신도 출연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방송국 프로그램 담당자와 연결이 되었고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우선 노래부터 한 곡조 뽑겠다” 하고는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을 거침없이 불렀다는 것이다.

그토록 원했던 TV에 출연하게 되었고, 다음날부터 소머리국밥을 먹겠다고 손님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고 한다. 장사가 무척 잘되었고 할머니는 그동안 30만 원 빌려 준 사람에게는 50만 원을, 50만 원 빌린 사람에게는 70만 원을 갚았다. 종업원들에게도 특별수당을 두둑하게 주었다.

최 할머니의 소머리국밥이 인기를 끌자 경기도 광주군 실촌면의 작은 마을이었던 곤지암리는 일약 전국적으로 유명한 고을이 되었고 전국 각지에는 ‘곤지암소머리국밥’이라는 이름의 음식점들이 우후죽순 생겼다.

2001년 경기도 광주군은 ‘광주시’로 승격되었고 실촌면은 ‘곤지암읍’으로 승격되었다. 곤지암읍으로 명칭이 바뀐 배경에 ‘최미자 아주머니’의 이야기가 큰 영향을 주었으니 이는 ‘전설의 고향’으로 남고도 남을 사건이다.

1981년 식탁 4개로 시작한 조그만 식당이 우리나라 굴지의 외식업소가 되기까지 수많은 시련들이 있었지만 그것을 모두 이겨내고 오뚝이처럼 일어섰다는 최미자 할머니는 “이제는 건강이 예전 같지 않으니 ‘세상만사 호사다마’라는 말이 꼭 맞는 것 같다”며 씁쓸해 하셨다.

주변에선 이젠 쉬면서 편히 살라고 하지만 놀아 본 사람이 잘 논다고, 놀 줄 몰라서 놀 수도 없다는 것이다.

모든 종업원들과 같은 복장, 같은 일을 하면서 매일을 열심히 살아가시는 할머니에게 건강과 영광 있으시기를 빌면서 자리를 떴다.


앵자산장
별(星) 볼 일 있는 시산제와 단합대회의 명소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우산리와 여주시 산북면 주어리의 경계선상에 위치한 앵자봉은 해발 667m로 이 부근에서는 가장 높은 봉우리다. 앵자봉은 ‘산세가 꾀꼬리가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라고 해서 얻어진 이름이다.

앵자봉을 오르기 위해 우산리의 계곡을 따라 오르면 한국천주교의 발상지 천진암과 만난다. 여기서 찻길 따라 조금 더 오르다가 더 이상 차가 달릴 수 없는 곳에 ‘앵자산장’이 있다.

산장주인 이우탁씨는 이곳 토박이로 지역 특산물인 토마토와 표고버섯, 아사이베리 재배와 양봉을 함께하는 ‘앵자농장’의 주인이다. 자신의 집 마당이 산행나들목이라 이곳을 지나는 등산객들에게 음식을 먹으면서 쉬었다 갈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겠다는 마음으로 산장 간판을 걸게 되었다고 한다. 해가 바뀌고 시산제의 계절이 되면 수많은 단골산악회가 앵자산장에서 시산제를 연다. 넓은 마당과 계곡이 있는 곳에 펜션도 운영하고 있다.


남촌매운탕
팔당호에서 잡은 참붕어 맛

1973년 준공한 광주시 퇴촌면과 남종면 일대의 팔당호는 2,300만 명의 수도권 사람들에게 식수를 공급하며 주변도로는 호수를 휘돌아 돌면서 수려한 풍광을 연출한다. 특히 봄날 벚꽃이 만발한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는 많은 이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이처럼 상춘객이 많은 덕분에 남종면 산수로 물가에는 팔당호에서 잡아 올린 참붕어를 요리하는 붕어찜 전문업소가 20여 곳 있다. 이 업소들 중 ‘남촌매운탕’의 신상균 대표는 전남 영광군 굴비의 고장, 법성포 출신임을 내세우면서 자신이 조리해 내는 참붕어찜은 굴비의 원래 이름인 조기(助氣)처럼 기운을 돋우는 요리라고 자랑했다.



쇠뫼기
정지수 여사의 가야금 연주에 취하다

앵자산 북쪽 자락에는 88번지방도가 지난다. 이곳에 있는 토속한식집인 ‘쇠뫼기’는 경기도가 지정한 으뜸음식점이다. 직접 담근 간장, 된장, 고추장 등을 사용해 철저하게 전통의 맛을 고집한다. 온갖 조미료와 양념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색다른 맛으로 느껴질 수 있을 법하지만 쇠뫼기에서 차려내는 이 맛이야 말로 어릴 적에 먹던 어머니의 전통적인, 바로 그 손맛이라는 것이다.

식당 근처 계곡 건너편 비닐 온실에는 수많은 장독이 묻혀 있다. 10년 앞을 내다보며 저장해 둔 양식인 셈이다. 직접 재배한 무공해 농산물들도 전통 방식으로 저장해 놓았다.

오밀조밀한 실내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손님을 맞는 업주 정지수 여사가 가야금 반주에 맞춰 불러 주는 가요는 참으로 소중한 추억거리다. 매주 수요일 휴점.



건업리보리밥집
100% 국산콩으로 직접 담근 된장과 청국장


앵자봉 산행은 크게 두 가닥의 나들목으로 나뉜다. 그 첫 번째 가닥이 남쪽인 광주시 곤지암읍 건업리 쪽이고, 두 번째 가닥은 북쪽인 광주시 퇴촌면 우산리 천진암 쪽이다. 건업리 쪽은 44번지방도 상에 있는 마을로, 이 마을의 큰길가에는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건업리보리밥(대표 구본희)’이 있다.

경기 연천과 충북 제천에서 생산된 100% 국산콩만을 써서 직접 담근 된장과 청국장이 유명하다. 이 장류와 반찬들은 따로 살 수 있고 택배 배달도 된다. 지난해 연말 본관 옆에 2관인 ‘엄마의 뜰’을 열었다. 아침 7시부터 뷔페식으로 식사를 할 수 있다.



느티나무가든&펜션
주어사 있던 계곡에 자리한 식당 겸 산장

앵자봉 동남쪽 기슭 한 곡간(谷間)에는 주어사(走魚寺)의 흔적이 남아 있다. 창건 연대와 폐사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이 절은 ‘한 승려가 절터를 찾던 중 잉어를 따라 가는 꿈을 꾸고 자리를 찾았다’는 창건 이야기가 전해진다.

주어사는 1779년(정조 3) 권철신을 위시, 정약전(丁若銓) 등 당대 신진 유학자들이 머물며 천주교 강학을 했던 장소로 우리나라 천주교 발상의 요람지로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여주시는 2009년 주어사지에 대한 지표와 학술조사에서 수습된 기와와 도자기 등의 유물을 토대로 주어사가 지어진 시기가 조선 후기(17~18세기)로 추정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주어사가 있던 계곡에는 식사를 할 수 있고 잠도 잘 수 있는 ‘느티나무가든’과 ‘느티나무펜션’이 큰 공원처럼 자리하고 있다. 겨울에는 개점휴업상태라 이용하고자 할 때는 사전예약이 필수다.



그때 그 집
별미 중의 별미 토끼탕으로 새해 단합대회를

2017년은 정유년(丁酉年) 닭의 해다. 그런데 요즘 닭이 조류독감(AI)으로 수난을 당하고 있다. 조류독감은 닭, 오리 등 가금류에 발병하는 전염성 호흡기 질환으로 인간과 가금류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산자락 음식점 대부분이 대개 닭 요리를 내는데 요즘은 조류독감 때문에 장사가 어렵다고 한다.

여주시 산북면 명품리에는 1998년에 문을 열어 20년의 연륜을 쌓고 있는 토끼탕 전문점 ‘그때 그 집’이 있다. 닭 요리 대신 토끼탕을 드시겠다고 찾아오시기에 손님은 조금 늘어났지만 착한 부부로 소문나 있는 업주 이자명·정영자 내외분은 마음이 마냥 편치만은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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