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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4월의 클라이밍 | 전용학·강정희] “오리를 백조로 만드는 것이 저희들 직업입니다”

월간산
  • 입력 2017.04.10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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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G 프로 마운틴 가이드들의 “스스로 개척한 길 오르기”

도봉산 연기봉 ‘요세미티 가는 길’ 2피치 날개 크랙을 유연한 동작으로 오르는 전용학.
도봉산 연기봉 ‘요세미티 가는 길’ 2피치 날개 크랙을 유연한 동작으로 오르는 전용학.

신석기 유물인 줄 알았다. 녹슬 대로 녹슬어 만지면 가루로 날아가 버릴 줄 알았다. 도봉산 연기봉에서 발견한 1970년대 하켄은 40년이 아닌 4,000년 전 흔적 마냥 모질게 닳아 있었다. 산 정상 가까운 곳에서 수십 년을 버텼으니 그럴 만했다.

하켄은 하켄이었다. 여전히 원형을 유지하고, 슬링까지 연결된 채 지금도 “바위틈에 박아준다면, 널 지켜줄게” 하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닿아 부스러지기 직전까지 산에서 떠나지 않겠다고 고집 부리는, 두 개의 하켄은 그들의 것이 아닐까? 1965년 이곳을 초등한 서울대 문리대 산악부 이연우·우원기씨의 이름을 한 자씩 따서 이름이 유래하는 연기봉. 그들의 열정을 닮은 전용학·강정희(KMG)는 연기봉에 ‘요세미티 가는 길’을 개척했고, 봄의 길목에서 다시 찾았다.

클라이머를 당기는 흡입력이 있는 크랙 라인. 거인의 장딴지 같은 거벽의 위용이 두렵고도 설레게 다가온다. 돌기가 만져지는 시작 지점에 서자 왜 인기 루트가 되었는지 알 것 같다. 전용학(51)은 2001년부터 설악산 소토왕골에 ‘산빛JK’, 적벽에 ‘자유 2836’, 노적봉에 ‘그들과 함께라면’ 등을 개척했다. 그가 개척한 바윗길은 모두 인기를 끌었다. 등반 라인을 읽는 눈썰미가 빼어났고,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부지런함이 있었다.

첫 바위는 늘 두렵고 설렌다. 바위는 그가 지난겨울 어떻게 보냈는지 단번에 읽어낸다. 단호하여 노력한 만큼만 내어준다. 긴 머리의 사내가 조심스럽게 바위를 탄다. 첫 피치 하단이 5.11a 난이도가 매겨지는 크럭스다. 살짝 튀어나온 날개가 있어 쉬워 보이지만 손가락을 넣을 틈이 없는 밴드라 자유등반으로 오르는 이가 드물다. 시작부터 추락하고 싶은 이는 없다.

몸 풀 사이도 없이, 전용학이 악전고투를 벌인다. 그의 무브는 겉멋이 없다. 심해에서 막 잡아내 살아 펄떡이는 상어처럼, 어떻게든 몸을 써 올라선다. 날 것의 몸짓,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느냐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벽과 나만 남는 고요의 세계에 그가 있다.

도봉산 연기봉을 오르는 강정희 뒤로 겨울과 봄이 공존하는 독특한 풍경이 펼쳐진다.
도봉산 연기봉을 오르는 강정희 뒤로 겨울과 봄이 공존하는 독특한 풍경이 펼쳐진다.
전용학은 생존을 위해 등반한다. 등반이 생업인, 마운틴 가이드다. 충남 부여가 고향인 그는 일제 강점기에 마라톤 선수로 활약했을 정도로 강골이었던 부친의 피를 이어받았다. 1990년 군 제대 후 친구들과 책 대여사업을 시작했으나 1년 반 만에 접었고, 이후 무역회사에 취직해 2003년 퇴사할 때까지 13년을 일했다. 이후 치킨집을 열었으나 이마저도 망하고, 부친마저 2005년 교통사고로 숨을 거둬, ‘안 좋은 일이 이렇게 한꺼번에 올 수 있구나’란 걸 실감했다.

실의에 빠져 유리창 닦이를 하며 근근이 생활하고 있을 때 여행사에서 일본 북알프스 안내등반을 요청했고, 이를 계기로 KMG(코리아 마운틴 가이드)를 세워 프로 등반 가이드를 직업적으로 시작했다.

그를 클라이머로 바꿔 놓은 건, 정승권 교장과 고(故)최승철·김형진이었다. 1997년 정승권등산학교 암벽반을 수료하며 등반세계에 입문한 그는 월간<山> 기사를 통해 최승철·김형진을 알게 되었고, 이들의 등반 열정에 깊게 매료되어 익스트림라이더 등산학교도 수료했다. 이후 정승권등산학교 동문산악회인 산빛산악회 등반대장을 맡았으며, 익스트림라이더 강사를 맡아 산사람들과 깊은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는 1999년 가을 탈레이사가르 북벽 신 루트 등반 중 추락사한 최승철·김형진의 정신을 이어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가진 않은 길’을 택해 더 어렵고 새로운 등반을 하고자 했던 그에게 ‘개척등반’은 당연한 것이었다. 때문에 원정도 늘 어려운 거벽을 택해 치열하게 모든 걸 쏟아붓는 등반을 했다. 2002년 당시 국내 정보가 거의 없었던 남미 파타고니아 포인세노트에 도전했고, 2005년 알프스의 험봉 드류 북벽을 단독 등반했다.

2007년엔 중국 야오메이(6,250m) 남벽에 신 루트를 냈다. 3일 동안 28피치를 지독하게 밀어붙여 올랐다. 2009년에는 파키스탄 유스사르(6,000m) 서벽을 초등했다. 어떤 이들은 “등반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과 갔다면 더 좋은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는 “실력이 부족한 사람과 가서 함께 정상에 서는 것이 더 보람 있다”고 말한다.

부드러운 성격처럼 차분하고 안정적인 등반을 하는 강정희.
부드러운 성격처럼 차분하고 안정적인 등반을 하는 강정희.
차분하고 온화한 젠틀맨, 강정희

강정희(44)는 차분하다. 주변을 고요히 가라앉히는 온화한 힘이 있다. 부드럽고 믿음이 가는 목소리, 뿔테 안경과 웃음에서 전해 오는 반듯한 인상. 산사람치곤 무척 바른 인상이라 궁금증을 자아낸다. 등반 스타일도 인상과 닮아 있어, 더블로프를 사용해 안전하게 오른다. 자기 과시라곤 전혀 없는 동작, 담백한 변형 레이백 동작을 계속 바꿔가며 최대한 효율적으로 오른다. 역시 겉멋이라곤 1%도 없다.

충남 서산이 고향이며 중고교 시절을 인천에서 보낸 그는 일반 회사원을 거쳐 2003년부터 지금까지 삼성생명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다. 2006년까지 마라톤 풀코스를 15회 완주했을 정도로 운동을 즐겼던 그는, 2006년 코오롱등산학교 리지반을 수료하며 등반을 시작했다. 2008년 전용학이 운영하던 KMG 대암벽반을 2기로 수료하며 바위 맛에 깊게 빠졌다.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 강했던 그는 대한산악연맹 등산강사 2급 자격과 한국적십자 응급처치 전문 자격을 취득했으며, 한국산악회 산악연수원 등산강사 프로그램을 이수했다.

2011년부터 전용학과 함께 KMG 강사를 겸한 가이드로 활약하며, 미국 요세미티에서 여러 루트를 등반했으며 국내 개척등반을 함께 해왔다. 지난해부터는 한국산악회 등산학교 강사도 겸하고 있다. 5년 이상 전용학을 도와 KMG를 이끌어온 그는 “같은 강사의 입장이라기보다 스승과 제자 사이”라고 한다. KMG 강사와 가이드 활동이 경제적인 이익을 주지는 않지만, 그는 전용학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다. “산에 대한 그의 철학이 좋고, 인간관계가 계산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KMG는 소규모 전문 교육으로도 좋은 평을 얻고 있다. 동계 알파인반, 암벽입문반, 리더반이 있는데 등반대장을 위한 리더교육은 국내 어느 등산학교에도 없는 과정이다. 등반시스템에 있어서의 안전등반과 리더 소양, 등반 기술, 구조 교육 등을 진행한다. 교육이 매번 새롭게 바뀌는 것이 오히려 좋은 평가를 얻고 있다. 마운틴 가이드 특성상 외국을 자주 나가고 해외 등반가들을 자주 접하는데, 새로운 등반기술이나 시스템이 있으면 일단 수용해서 연구하고 검증해서 좋으면 교육에 적용한다. 교육이 폐쇄적이지 않고 발 빠르며, 주입식이 아닌 소통 교육이라 합리적이라는 것이 강정희의 설명이다.

KMG를 통해 직업 프로 등반 가이드의 길을 개척한 전용학.
KMG를 통해 직업 프로 등반 가이드의 길을 개척한 전용학.
대표적인 프로 마운틴 가이드, 전용학

2피치 크랙을 오른다. 꽃샘추위를 머금은 찬바람이 두 사람을 구경한다. 전용학은 특유의 치열한 몸짓으로 크랙을 당겨 자세를 잡는다. 겨우내 산악스키를 타느라 등반에 최적화되지 못한 근육들이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개척자의 자존심으로 추락 없이 검은 크랙을 돌파한다.

전용학의 등반가이드 능력은 외국에서도 정평이 나있다. 2008년 요세미티 조디악을 6명의 대원을 이끌고 오른 것은 당시 미국 클라이머들에게 ‘놀라운 사건’이었다. 보통 2~3명이 팀을 이뤄 오르는 거벽을 73세와 59세의 노장 클라이머들을 이끌고, 3박4일 만에 완등했기 때문이다. 평균의 2인1조팀 등반시간과 같은 기록이었다. 애초에 ‘저 팀은 얼마 못 가 포기할 것’이란 소문이 돌았기에 “도대체 전 피치를 선등으로 오른 리더가 누구냐”고 궁금해 했고, 엘캡리포트닷컴(elcapreport.com)에 전용학 팀의 기록이 상세히 소개되었다.

그는 대원들을 국내에서부터 훈련시켜 각자 임무에만 충실하도록 했다. 오로지 장비 회수만 하고, 고정로프만 설치하고, 어센더만 해서 오르고, 홀링만 하고, 로프 정리만 하도록 훈련해 효율적인 방식으로 완등했다. 그의 등반은 콧대 높은 미국 클라이머들로부터 “오리를 백조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일본 북알프스와 유럽알프스에서도 이런 성공이 반복되자, 한국 인바운드 등반도 의뢰받게 되었다. 한국의 대표적인 프로 마운틴 가이드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그는 정상에 못 갈 것 같은 사람을 정상에 가도록 하는 능력이 있다. 등반 기술이 떨어지고, 체력이 떨어지고, 체중이 많이 나가는 등 악조건을 가진 사람들을 안전하게 정상에 오르도록 하는 것이 자신이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체력이나 등반기술보다 중요한 것이 정신력”이라며, “어떤 손님이라도 본인이 포기하지 않으면 정상에 갈 수 있다”고 말한다. 마운틴 가이드로 자리를 굳혔지만, 그렇다고 수입이 대단히 좋은 건 아니다. 하지만 일에 대한 만족도는 천직이라 할 정도로 높다.

‘요세미티 가는 길’ 2피치를 선등으로 오르는 전용학과 확보를 보는 강정희. 두 사람은 항상 더블로프 방식으로 안전에 만전을 기한다.
‘요세미티 가는 길’ 2피치를 선등으로 오르는 전용학과 확보를 보는 강정희. 두 사람은 항상 더블로프 방식으로 안전에 만전을 기한다.
등반은 함께하는 것, 남을 지켜주는 것

“산에 가는 것도 좋아하지만, 사람들과 함께 돌아다니는 ‘등반여행’ 자체가 너무 좋아요. 또 사람들에게 추억을 만들어 줄 수 있어서 좋아요. 그래서 한 사람이라도 다치지 않도록 항상 확률적으로 더 안전한 시스템을 추구하는 거예요.”

강정희는 “등반에 대한 눈높이가 낮다”고 자신을 낮춘다. 그는 “전위적인 등반을 추구하는 등반가들과 생각이 다르고, 현실적인 여건 속에서 산에 갈 수 있는 것만으로 만족한다”고 말하지만 그렇다고 등반에 대한 열정까지 약하진 않다.

“사람마다 자기 파동이 맞는 영역이 있어요. 제게는 산이 그런 곳이에요. 젊을 적부터 산은 포근한 곳이었고 가슴 뛰는 곳이었어요. 앞으로도 좋은 사람들과 다치지 않고 산을 다니고 싶어요.”

전용학이 보는 강정희는 “배려심 깊고 남을 잘 지켜주는 사람”이다. 함께 산에 가는 사람들이 부담스러워할까봐 보험 컨설턴트라는 직업조차 잘 밝히지 않는다. 등반할 때는 사소한 것까지 사람들이 다치지 않게 신경을 써 세심하게 등반을 한다는 것이 전용학의 설명이다. “어떤 사람을 맡겨도 전혀 걱정이 안 된다”며 두터운 믿음을 이야기한다.

아직 잔설이 남은 도봉산, 멀티피치 등반을 하려면 2~3주 정도는 더 지나야 할 것 같다. 1~2피치 등반을 마친 두 사람이 하강한다. 시즌 첫 바위의 짜릿함 때문에 환한 미소가 번지며, 훨씬 활기찬 기운이 감돈다.

등반은 혼자 하는 것,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전용학과 강정희는 생각이 다르다. 등반은 함께하는 것, 등반을 못 하는 사람도 안전하게 이끌어 주는 것, 함께 행복을 나누는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하고 싶은 등반보다, 남들이 원하는 등반을 하도록 도와주는 두 사람.

한때 주변에선 “KMG가 얼마 못 가 사라질 것”이라 수군거렸다. 하지만 KMG는 10년 넘게 명맥을 이어왔고, 지금은 이들을 보는 시선이 많이 바뀌었다. 전용학의 부단한 노력이 상업등반 가이드에 대한 인식마저 변하게 했다. 때문에 그는 “KMG가 없어지는 건, 내가 산에 가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내가 산에 안 가면 어딜 가겠어요. 산이 내 인생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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