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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방한 인물 | V17 볼더러 날리 후키타이블] 바람같이 찾아와 바람같이 등반한 세계최강 볼더러

글·사진 앤디 맥킬리암(Andy Mckilliam호주 등반가) ·번역 류동일(한국 벽우회)
  • 입력 2017.06.13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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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간 부산‧경남지역 순회하며 12개 볼더 초등

밀양 백운산 볼더링 타운에서 고난이도 등반을 보여 주는 날리. 거꾸로 매달려 무릎을 끼우는 고난이도 동작을 취하고 있다.
밀양 백운산 볼더링 타운에서 고난이도 등반을 보여 주는 날리. 거꾸로 매달려 무릎을 끼우는 고난이도 동작을 취하고 있다.

세계 최강 볼더러인 핀란드의 날리 후키타이블Nalle Hukkataival‧30이 지난 3월 한국을 깜짝 방문했다. 고국인 핀란드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난이도인 V17의 ‘Burden of Dreams꿈들의 짐’ 볼더를 2년에 걸쳐 4,000번 시도 끝에 초등의 영광을 이루어 낸 그는 분명 세계 최고의 볼더러다.

현재 볼더링 등반 최고난도는 V17로, 한국에서 주로 통용되는 요세미티 난이도로 환산하면 5.15c이다. V17은 현재 인간이 완등한 최고의 난이도인 셈이다. 날리가 초등한 ‘Burden of Dreams’는 아직 재등자가 없으며, V17이라는 등급에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날리가 핀란드에서 학교체육 활동으로 인공암벽 클라이밍을 처음 경험한 것은 12세 되던 해였다. 그는 등반의 도전성에 매료되어 매일 실내암장에서 시간을 보내며 어려운 문제를 모두 풀었다. 등반 신동으로서의 능력을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인공벽의 지정된 플라스틱 홀드만 사용해서 오르는 것이 ‘한 발로 마라톤을 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 등반을 그만 두었다.

1년 후 자연 바위에서의 볼더링 경험은 그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이후 핀란드 헬싱키의 집 근처 바위를 오르는 데 빠져들었다. 그는 탁월한 기량으로 전 세계를 여행하며 새로운 바위와 어려운 볼더링 문제들을 개척해 왔다.

(왼)밀양 백운산 볼더링
타운에서 개척등반을
하는 날리. 슬랩
형태의 바위이며,
“난이도를 쉽게
결정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렵다”고 평가했다. (오)홀드를 살피며
청소하는
날리. 유쾌한
그의 표정에서
볼더링을
순수하게 즐기는
마음이 드러난다.
(왼)밀양 백운산 볼더링 타운에서 개척등반을 하는 날리. 슬랩 형태의 바위이며, “난이도를 쉽게 결정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렵다”고 평가했다. (오)홀드를 살피며 청소하는 날리. 유쾌한 그의 표정에서 볼더링을 순수하게 즐기는 마음이 드러난다.
그는 록스랜드의 V15급 하이볼 ‘Living Large’, 몰타탈의 ‘Bugeleisen Sit(V15)’, 매직 우드의 ‘The Understanding(V15)’ 등의 고난이도 등반을 해냈으며, 지난해 가을 그의 오랜 프로젝트인 V17급 난이도를 세계 최초로 초등하여, 이견의 여지가 없는 세계 최고의 볼더러로 인정받고 있다.

날리는 한국 방문 전, 프랑스 퐁텐블루Fontainebleau에서 무척 어려운 볼더링 문제 34개 연속 순회 완등(Black ED + circuit in Cuisiniere)을 세계 최초로 달성했다. 또한 고수들을 물 먹이기로 악명 높은 슬랩 볼더 ‘Duel(투쟁‧V11)’을 완등하며 유럽 등반여행을 마무리했다.

날리의 방문 목적은 한국에서 볼더링 체험을 하여, 새롭고 어려운 문제의 개척 가능성을 타진한 다음 올 연말쯤 세계 최고수로 꼽히는 볼더러들과 함께 한국으로 볼더링 등반 여행을 다시 오는 것이다. 일종의 볼더링 정찰 등반으로 한국을 찾은 셈이다.

필자는 과거 한국에 수년간 거주하며 등반했던 경험을 살려 이번 날리의 한국 볼더링 여행에 동행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9일간의 짧은 여정이었고 나쁜 날씨로 처음 세운 계획을 다 지킬 수 없었다. 우리는 논의를 통해 기존의 잘 개척된 지역(진안 운일암반일암, 무등산 선비바위, 내원사 볼더) 대신 오랫동안 풀지 못한 프로젝트들이 남아 있는 덜 개척된 곳을 찾기로 결정했다.

처음 3일간은 지리산국립공원의 외곽 계곡을 탐사했다. 피아골 남쪽에서 곧바로 시작해 공원 입구 4km 전방의 강둑에 자리한 두 개의 거대한 볼더가 있는 곳으로 갔다. 날리는 몸풀기로 기존의 몇몇 볼더 문제를 가볍게 해결한 후 초등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Pitsch Patsch (V10)’에 붙었다.

정확한 발동작들을 연결하고 고도의 긴장감이 요구되는 오버행의 불안한 경사면을 스미어링smearing 기술로 올랐다. 작은 돌기를 발끝으로 문질러 디디며 정교하게 올라 초등을 해냈다.

정작 그가 관심을 보인 건 계곡 위쪽의 엄청난 오버행 볼더였다. 필자가 볼더러들과 2014년 피아골 볼더를 개척할 때 이 거대한 바위에 눈길이 갔지만 너무 어려워 등반 가능성에 의구심만 들었다. 날리는 이 바위 위에서 하강해 청소하면서 홀드를 살펴본 후 “시작 부분의 아주 미끄러운 바위면 몇 동작은 엄청난 파워 무브로 직등해야 될 것 같지만 등반은 가능하겠다”고 했다.

동행한 사람들이 홀드 청소와 동작을 잇는 연습을 하는 동안 2시간이 흘렀다. 날리는 하단 부분의 연결동작을 완성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날이 저물어 등반은 계속할 수 없었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답사 차원의 여행이며 내일 다른 장소에서의 등반을 위해 체력을 비축해 둬야 했기에 다음 방문 때까지 미등으로 남겨 두었다.

이날 저녁 우리는 지리산 서쪽으로 이동해 눈부시게 아름다운 칠선계곡에 도착했다.

거대한 단독 볼더들이 늘어서 있는 이 계곡에서 대화와 커피로 긴 아침시간을 보낸 후 필자의 오랜 프로젝트인 ‘Seven League Gloves(V6)’에 붙어 몸을 풀었다. 날리는 이 루트의 여러 동작을 몇 동작의 다이노 무브로 줄여 직선으로 연결하면서 V11 난이도로 업그레이드시켜 올라 지켜보던 이들을 놀라게 했다.

칠선계곡 하류의 작은 섬에 놓여 있는 거대한 바위를 발견하고 한동안 살펴보았다.
하지만 바위 위에 소나무가 자라는 등, 뭔가 신성한 느낌의 바위라 등반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판단했다. 계곡 조금 위쪽의 기존 볼더들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날리는 그동안 우리들이 사투를 벌이며 완등과 싸워왔던 문제들을 빠르고 쉽게 풀어 버렸다. 초등의 주인을 기다리던 어려운 볼더들마저 모두 해결해 우리를 허탈감에 빠져 들게 만들었지만 세계 최고의 등반을 보는 즐거움이 더 컸다.

1 지리산 피아골의 ‘Pitch  Patsch(V10)’를 신중하게 오르는 날리. 추락에 대비하는 스파터는  크리스토 하퍼. 2 Boots(V11)’의 상단 턱을 폭발적인 점프로 낚아채는 순간의 날리 후키타이블. 
3 지리산 칠선계곡 하류의 V11 루트를 청소 중인 날리. 그는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과 음식, 소주, 친절한 문화를 무척 좋아했다.
1 지리산 피아골의 ‘Pitch Patsch(V10)’를 신중하게 오르는 날리. 추락에 대비하는 스파터는 크리스토 하퍼. 2 Boots(V11)’의 상단 턱을 폭발적인 점프로 낚아채는 순간의 날리 후키타이블. 3 지리산 칠선계곡 하류의 V11 루트를 청소 중인 날리. 그는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과 음식, 소주, 친절한 문화를 무척 좋아했다.
프로 볼더러는 술도 프로처럼 마신다!

3일째 되는 날, 날씨가 나빠질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좀 더 남쪽으로 차를 몰아 우리의 오랜 숙제로 남아 있던 멋진 오버행 볼더가 있는 중산리로 장소를 옮겼다. 착지 지점을 정리하고 홀드를 청소한 후 등반을 시작하려 할 때 가는 비가 내렸다. 지금이 아니면 이번 여행에서 이곳 바위를 오르지 못할 것을 알고 있기에 날리는 바로 바위에 붙었다.

바위 면을 몸을 압축시켜 오르다가 아주 작은 핀치 홀드에 의존해, 스카이콩콩 스타일의 요상한 다이노 동작으로 마지막 홀드를 낚아채며 ‘Dry Finish(V12)’를 초등해냈다. 가랑비는 곧바로 폭우로 변했다. 마을로 차를 몰고 가서 맥주와 라면으로 조촐한 초등 축하 파티를 한 후 부산으로 돌아왔다.

날리는 “기포 형상의 특이한 홀드가 많은 회색 화강암의 지리산 볼더들이 무척 인상적이다”고 했지만, 지난 3일간 미끄러운 경사면의 볼더와 씨름했던 그는 남은 일정을 좀더 깨끗하고 마찰력이 좋은 볼더를 원했다.

다음날, 밀양 부근에서 등반하기로 결정했지만 바위 면이 너무 젖어 있어서 우리는 날리에게 부산 관광을 시켜주었다. 자갈치시장과 몇몇 장소에서 생선회와 소주, 삼겹살 등으로 유쾌한 하루를 보냈다. 그는 “프로 볼더러는 술도 프로처럼 마셔야 된다”면서 소주를 무척 좋아했다.

그 다음날 날씨가 좋아져 새로 개척된 밀양 백운산 인근의 볼더링 지역으로 향했다.
날리는 이곳에서 “아직 내가 세상 어디서도 보지 못했던 형태의 아주 매력적인 볼더들이 널려 있다”고 말했다. 어떤 볼더는 스위스의 유명한 볼더링 지역인 클레시아노Cresciano에 있는 것과 아주 흡사하다고 하며 좋아했다.

날리는 그동안 고수 볼더러들이 몇 달에 걸쳐 풀지 못한 동작을 모두 해결하며 많은 루트 초등을 해냈다. ‘두엔데Duende : 스페인어로 불가사의한 매력’라는 새 루트를 슬랩 형태의 바위에 개척했지만 난이도를 쉽게 결정하지 못할 정도로 어려웠다. 그는 인기 있는 다이노 프로젝트인 ‘Dr. Nick(V7)’을 멋지게 해결하는 동작을 보여 주며 등반여행을 마무리 했다.

날리 후키타이블과 동행한 클라이머들은 모두 난이도 V10 이상을 등반하는 고수들이며, 내원사 지역과 금정산 등에서 많은 볼더를 개척한 부산경남 지역의 주한 외국인들이다. 날리는 이들이 풀지 못했던 모든 문제를 방문기간 동안 해결하고 12개의 루트를 초등하며 세계 최강 볼더러다운 모습을 보여 주었다.

특히 그는 “한국의 볼더링은 정말 좋은 점이 많다”며, “다양한 등반 스타일과 다양한 형태의 바위들이 인상적”이라고 했다. 날리는 “여러 나라를 돌며 볼더링을 해왔지만, 다수의 볼더들이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게 되고, 결국 지겨운 등반이 되었다”고 했다. “한국은 이런 경우와 확실히 다른 다양한 등반을 할 수 있는 나라”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가장 매력적인 것은 등반 자체보다 자연 속의 아름다운 장소에 볼더가 있다는 것과, 시내에서 접근성이 쉽다는 것, 독특한 문화 경험, 훌륭한 음식과 사람들의 친절함이라고 얘기했다.

설악산 울산바위 부근의 사진을 보고는 속초 지역 볼더링 탐사에 관심을 가졌다. 국립공원 구역은 등반 제약이 엄격하다는 사실에, 국립공원 측과 볼더링 동호인들이 대화를 통해 개방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 세계적인 볼더링 장소로 문이 열리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더 깊이 있는 탐사와 개척을 위해 빠른 시일 안에 한국을 다시 찾을 것”이라 약속했다.

interview

날리 후키타이블

Q 한국에서의 볼더링은 어땠나? 전체적인 경험을 즐겼고 다양한 타입의 등반이 좋았다. 어떤 나라들의 경우 등반성은 좋지만 단조롭고 금방 지겨워진다. 한국은 전혀 다르다. 이 점이 정말 매력적이다. 아울러 내가 한국에서 다녔던 모든 볼더링 지역이 너무 아름다웠다.

Q 한국에서 볼더를 더 개척할 것인가?
물론이다. 그럴 가능성이 높다. 나는 단지 일부만을 보았을 뿐이다. 여유 있는 일정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지 알아보고 있다. 한국에서의 시간은 내게 긍정적인 측면에서 아주 놀라운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Q 한국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등반은?
사실 많다. 내가 개척한 밀양의 ‘Basic Instinct’는 유별난 등반 중 하나다. 스위스 풍의 바위 덩어리였고, 독특한 연결동작과 미친 듯이 위아래 무릎 빗장대기를 반복해야 했다. 그 옆의 ‘Hump and Pump’는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정말 특별한 바위였다. 또한 지리산 중산리의 ‘Dry Finish’도 기억에 남는 훌륭한 볼더였다.

Q 한국에서 시간이 없어 끝내지 못한 프로젝트가 있었나? 밀양에서 개척한 볼더다. 아주 어려운 직등 스타트가 요구되는 ‘Tree of Perdition’을 꼭 다시 돌아와 해보고 싶다. 내가 브러시로 청소한 지리산 피아골의 인상적인 하이볼(하이볼더: 높이 5m 넘는 바위)은 정말 어려울 것 같다. 이번 여행 중 의도적으로 너무 깊이 등반에 몰입하지 않은 이유는 가능한 한 많은 가능성을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Q 다른 등반가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곳이 있었나? 붐비는 곳이 아닌, 흥미로운 등반 대상지를 찾는다면 한국을 누구에게나 강력 추천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 볼더링은 아직 초기 개척 단계인 것 같다. 가이드북을 들고 그냥 와서 바위 손질도 안 하고 많은 등반을 하겠다고 덤벼들기는 좀 힘들어 보인다.

Q 한국 음식은 입맛에 맞았나?  한국 음식은 정말 좋다. 돌솥비빔밥이 훌륭했고 삼겹살은 아주 맛있었다. 가장 좋았던 음식은 울주 언양 근처에서 등반 후 먹었던 김치찌개다.

Q 한국에 다시 방문할 것인가? 물론이다! 다음에는 한국의 다른 지역도 둘러보고 싶다. 설악산이나 서울 같은 북쪽 지방도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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