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화제 인물ㅣ탁발 마라토너 진오 스님] "달리고 또 달리면 땀이 빛이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지요"

월간산
  • 입력 2017.08.14 11:1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외국인 노동자 돕기 위해 1만2,000km 달린 울트라 마라토너 스님

진오眞悟·54 스님은 불교계를 대표하는 울트라 마라토너다. 그는 어려운 이들을 돕기 위해 달린다. 2011년부터 지금까지 뛴 거리만 1만 km가 넘는다. 정직한 땀방울로 후원금 모금을 모아, 소외된 외국인 노동자들을 돕는 데 앞장서 왔다.

스님이 달리기 시작한 건, 교통사고를 당하고 달랑 5만6,000원만 통장에 남은 베트남 노동자 토안을 위해서였다. 1km마다 100원, 200원씩 모금을 받는 방식으로 지금까지 약 1만2,000km를 달렸다.

스님의 달리기는 점점 관심을 끌고, 도움을 청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모금 대상과 규모도 점점 커졌다. 현재까지 총 4억 원의 후원금을 모아 국내 이주노동자 쉼터 운영과 다문화 한부모가족 돕기, 베트남 농촌지역 35개 학교에 해우소(화장실)를 지었다.

세계 각지의 어려운 이들을 돕기 위해 달리는 탁발 마라토너 진오 스님.
세계 각지의 어려운 이들을 돕기 위해 달리는 탁발 마라토너 진오 스님.
진오 스님은 측은지심惻隱之心을 바탕으로 어려운 이들을 도와왔다. 2003년부터 경북 구미에서 ‘꿈을이루는사람들’ 단체를 설립해 이주노동자센터와 외국인쉼터를 운영해 왔으며, 2008년부터는 법인으로 전환해 가정폭력 피해 이주여성 보호시설, 다문화 한부모가족 달팽이모자원을 운영하는 등 이주민 인권보호에 매진하고 있다.

외국인에 대해 처음 관심을 가진 건, 2000년 스리랑카 노동자를 만나면서다. 구미역에서 만난 검은 얼굴의 외국인이 “불교 스님을 만나 너무 기쁘다”며 그에게 인사를 해왔다. 스님은 그가 한국말을 잘하는 것이 신기해 “또 잘하는 한국말이 있냐”고 물었다. 스리랑카 노동자의 “때리지 마세요”라는 대답에 충격을 받은 진오 스님은 그때부터 이들에게 관심을 가졌다.

“맞고, 월급 떼이고, 아파도 말이 안 통해 병원 못 가고, 심각했어요.”

스님은 억울한 이들을 돕기 위해 사방팔방 뛰며, 때론 법률 전문가가 되었고, 때론 인권운동가 역할을 했다. 

“한국으로 시집온 베트남 여성들의 폭력 피해도 심각했어요. 한 번은 때리는 남편을 피해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했는데, 이들은 아무 설명도 없이 화장한 유골함만 베트남 가족에게 보냈어요.”

말이 통하지 않고 한국에 아는 사람도 없어 도망칠 곳 없이 맞기만 하는 이들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스님은 이들을 돕기 위해 숱한 노력을 했다. 건물을 구입해 외국인 가정폭력 피해여성 거주를 위한 쉼터를 마련한 것이다. 현재 스님이 마련한 경북 구미의 센터에는 이렇게 갈 곳 없고 상처 받은 40여 명의 외국인 노동자와 모자 가족들이 머물고 있다.

2015년 베트남에서 모금을 위해 2,200km를 달렸다.
2015년 베트남에서 모금을 위해 2,200km를 달렸다.
매달 일주일씩 유모차 밀며 탁발 마라톤

속리산 법주사에서 행자 생활을 했고, 김제 금산사에서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송월주 스님을 스승으로 만나 출가했다. 1985년 동국대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조계종의 엘리트 코스를 밟던 진오 스님은 불의의 사고로 삶의 방향이 바뀌었다. 군복무를 위해 공군 군법사로 배치 받은 지 6개월 만에 군 차량 사고로 왼쪽 눈을 실명했다.

스님은 “사고를 통해 육신의 눈을 잃으면서 마음의 눈을 얻었다”며 “국군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그동안 볼 수 없었던 타인의 아픔이 보였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제대 후 불교계 전화상담기관인 ‘자비의 전화’와 병원에 입원한 군인을 위로하는 불교간병인회를 만들어 1997년까지 운영했다. 눈이 실명되며 받은 보상금은 아껴두었다가 2006년 외국인들을 위한 센터 부지 구입에 사용했다.  

운영비와 후원금 마련이 문제였다. 과로로 건강이 악화된 진오 스님은 의사의 권유로 달리기를 시작했고, 우연히 참가한 달리기 대회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엄청나게 많은 인파가 모였고, 홍보 문구를 옷에 매달고 뛰는 이들도 있었던 것. 가만히 있어선 후원을 받을 수 없다고 판단한 스님은 이때부터 모금을 위해 뛰었다.

2011년 서울 불교 108km 울트라마라톤대회에 참여해 1,000여만 원의 성금을 모았다. 현장 모금과 페이스북 같은 ‘SNS 시주’를 통해 마라톤 동호인, 불자, 일반인 가릴 것 없이 폭넓게 홍보하며 후원자를 모았다. 여세를 몰아 6월엔 부산 낙동강 200km, 7월엔 김해마라톤대회 풀코스를 뛰어 1km당 200원씩 후원받았다. 9월엔 308km 한반도횡단마라톤을 뛰어, 강화도에서 강릉 경포대까지 63시간 35분 만에 주파했다. 제한시간 64시간이었으니 턱밑이었다. 1,900여만 원이 모였으나 과정은 쉽지 않았다.

대관령을 넘을 땐 극도의 고통이 엄습했다. 땀으로 뒤범벅이 된 얼굴로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흘렀다. 도대체 내가 왜 이렇게 몸이 부서져라 뛰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스님은 “생각해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었다”며 기어코 완주했다.
“나는 가진 게 몸뚱이뿐이니까. 내 몸을 촛불처럼 태울 테니, 관심을 보여 달라고 호소하는 것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어요.”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친 토안을 바래다주기 위해 베트남을 찾은 스님은 학교의 화장실을 보고 엉망인 위생 상태에 놀랐다. 또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으로부터 민간인 피해를 입은 이들이 상당한 적개심을 가진 것을 보고 놀랐다. “한국 사람들은 일본의 위안부 문제에 대해선 사과를 주장하면서 왜 베트남 민간인들을 윤간하고 죽인 것에는 사과하지 않느냐”는 베트남 사람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이후 진오 스님은 베트남에 ‘108 해우소 세우기’를 목표로 뛰고 있다. 해우소는 ‘근심을 푸는 곳’이란 뜻이니, 한국과 베트남 사이의 쌓인 근심을 풀자는 의미다. 2012년부터 현재까지 베트남 농촌지역 35개 학교에 해우소를 지었다. 이렇듯 모금 마라토너 진오 스님의 열정은 국내에만 머물지 않아 2012년 베트남에서 608km를 달렸고, 2015년 두 번에 걸쳐 베트남 2,200km를 달렸다. 오는 9월에도 베트남 사파Sapa 지역에서 열리는 트레일러닝대회 70km 코스에 참가할 예정이다.

매월 일주일씩 유모차에 짐을 싣고 탁발 마라톤을 하고 있다.
매월 일주일씩 유모차에 짐을 싣고 탁발 마라톤을 하고 있다.

결승선 통과할 때 원망이 감사로 바뀌어

스님의 측은지심은 베트남을 넘어 세계 곳곳으로 퍼졌다. 2013년 독일에서 700km를 달렸으며, 일본에서도 쓰나미돕기를 위해 1,000km를 달렸다. 2014년 세월호 희생자 추모를 위해 522km, 2016년 에콰도르 지진피해 돕기 국토순례 300km, 네팔 지진피해 돕기 300km, 2017년 캄보디아 돕기 330km 등 세계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곳을 위해 신발이 닳도록 뛰었다.

큰 대회뿐만 아니라 생활 속에서도 진오 스님은 매일 뛴다. 2015년부터 한 달에 일주일씩 국내 ‘탁발 마라톤’을 하고 있다. 즉 곳곳을 돌며 모금을 하고 있는데, 일주일씩 뛰다 보니 필요한 것이 많아 유모차에 짐을 싣고 밀면서 뛰게 되었다. 간혹 오해를 사기도 하는데, 강원도 고성에서 “치매 노인이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뛴다”는 신고를 받아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저녁이 되면 인근의 조계종 사찰을 찾는데 간혹 문전박대를 당할 때도 있다. 불교계 안에서 스님이 달리며 수행하는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스님은 불꽃같은 의협심과 측은지심으로 꿋꿋이 유모차를 밀며 뛴다.

진오 스님은 “사람의 마음이 모여 이룬 것”이라며 스스로를 낮춘다. 지난 6월에는 다빈치 출판사를 운영하는 트레일러닝 마니아 박성식 대표의 도움으로 ‘서울 강북 둘레길 108km 모금 달리기 대회’를 열어 320만 원을 모았다. 9월에 참가할 베트남 사파 트레일러닝 대회에는 스님의 뜻에 공감하는 러닝 동호인 22명이 함께 갈 예정이다.

스님은 “아직 갈 길이 멀다”며 “2018년 스리랑카 홍수 피해 돕기 300km, 2019년 인도네시아 300km 달리기, 2010년 미국 대륙횡단 5,130km를 뛸 계획”이라 말한다. 이를 위한 경비 모금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마음으로 “오직 뛰겠다”고 말한다.

‘참된 깨달음’이란 법명의 ‘진오眞悟’ 스님은 “결승선을 통과할 때면 모든 원망이 감사로 바뀐다”며 “달리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고, 땀이 빛이 되는 귀한 경험을 하지도 못했을 것”이라며 환한 웃음을 짓는다. 

 

 

저작권자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