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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명산순례기 | 공작산] 비단결같이 부드럽고 우아한 숲의 나라

글 · 사진 윤제학 동화작가·월간山 기획위원
  • 입력 2017.09.06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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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산 남릉 오름길에서 본 공작산저수지.
공작산 남릉 오름길에서 본 공작산저수지.

풀벌레 소리가 애잔하게 들린다면 가을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다. 물론 풀벌레는 닥쳐올 운명을 예감하고 자신의 목소리에 (풀벌레가 목으로 우는 것은 아니지만) 비감을 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마음이 당겨서 가을을 느끼기 때문이라 하기에도 좀 그렇다.

여름의 풀벌레 소리와 가을의 그것은 분명 다르다. 여름의 풀벌레 소리는 축축하고 무거운 공기에 부딪치면서 소리 또한 둔중하다. 가을 풀벌레 소리는 가벼워진 공기 사이를 조용히 미끄러진다. 날개처럼 가볍고 여린 소리가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달력에 박힌 절기는 우리가 체감하는 것과는 딴판인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오랜 시간 동안 다듬어진,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집단적, 역사적, 과학적 감각이라 해야 할 그것은, 계절과 계절 사이에 존재하는 미세한 결의 차이?이를테면 풀벌레 울음소리의 농도 차이 같은 것?에서 찾은 시간의 마디라 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공작산 능선의 굴참나무숲. 본디 나무가 사는 곳은 하늘이라는 듯, 꼿꼿이 자유롭다.
공작산 능선의 굴참나무숲. 본디 나무가 사는 곳은 하늘이라는 듯, 꼿꼿이 자유롭다.
아침 바람은 싱그럽고, 저녁 바람은 스산하다. 밤 사이 차가워진 공기에 아침 햇살이 내려앉고, 한낮의 열기를 삭힌 공기는 저녁 어스름 속으로 가라앉는다. 지금은 여름의 끝자락, 혹은 가을의 문턱. 능소화는 더는 꽃피우기를 멈추고 그 빈자리를 국화 향기에 내어 줄 채비를 할 것이다.

이런 때에는 산도, 밤과 아침 사이?저녁과 밤 사이에 부는 바람 같았으면 좋겠다. 공작산(887m)이 그런 산이다. 그리 높지도 험하지도 않고, 호령하듯 우람을 뽐내지 않는다. 이름대로 공작처럼 우아하게, 남북으로 긴 강원도의 허리께에 부드러운 날개를 펴고 조용히 깃들어 있다.

“공작산은 현의 동쪽 25리에 있다. (이 산에) 정희왕후의 태를 봉안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 홍천현 산수 조의 기록이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공작산’이라는 이름은 상당히 오래 전에 붙은 것 같다. <한국지명총람>은 그 이름의 내력을 ‘골짜기가 깊고 기암절벽으로 된 봉우리들이 하늘을 찌르듯 겹겹이 솟아 있는 모습이 공작새와 같다 하여 공작산이라 한다’고 했다. 홍천군청 홈페이지의 설명도 ‘산세가 공작이 날개를 펼친 모습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고 한 걸 보면 다들 ‘공작새’에 근거해 이름의 내력을 찾는다.

공작산 능선의 우아한 참나무숲길.
공작산 능선의 우아한 참나무숲길.
공작산 정상으로 오르는 첫 번째 암릉.
공작산 정상으로 오르는 첫 번째 암릉.
공작산 북서 자락의 굴운리. 산과 마을이 만나는 곳에 굴운저수지가 있다.
공작산 북서 자락의 굴운리. 산과 마을이 만나는 곳에 굴운저수지가 있다.
지도를 펴고 보면 공작골 쪽으로 펼쳐지는 남릉, 군업리 쪽으로 뻗은 북릉의 줄기가 공작의 양 날개 같기도 하니, 부회라고까지 할 수는 없겠지만 문헌으로 확인 가능한 근거는 없다. 그래도 <한국지명총람>의 설명은 과장이 심하다. 공작산은 ‘기암절벽으로 된 봉우리가 하늘을 찌르듯 겹겹이 솟아 있는’ 산이 아니다. 정상 부분과 수타사에서 오르는 약수봉 능선은 곳곳이 암릉이지만 전체적으로 공작산은 육산이다. 그렇다고 만만히 여기면 곤란을 겪게 된다. 능선의 기복이 심하고 적설기의 암릉은 ‘악산’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긴장을 요한다.

공작새는 워낙 친숙한 새여서 산조차도 그렇게 느껴지게 하지만 사실 이 새는 근대의 동물원을 통해서 접했을 뿐 본디 우리에게는 없는 새였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이름이 붙여졌을까? 이에 대해서는 인문적 혜안으로 산을 바라보는 모범을 보인 김장호 선생의 견해에 기대어 볼 만하다. 선생은 ‘공작’이 불교 전래와 함께 서역에서 들어온 말임을 전제해 ‘공작산이라는 이름도 부처님의 품속같이 희귀하고 아름다운 공작새의 날개깃 속에 수타사를 감싸 안고 있는 산쯤으로 풀이함직하다’ 했다.

공작의 깃털 같이 품위 넘치는 숲의 나라

우리나라의 대부분 절이 그렇듯이 공작산과 수타사는 한 몸을 이룬 지 오래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수타사는 공작산에 있다’고 기록했다. 공작산과 수타사는 오래 전부터 홍천의 대표적인 산과 절이다. 수년 전 수타사를 통해 공작산을 탐승한 적이 있으므로 이번에는 공작산의 남쪽 자락인 공작골 쪽 줄기로 공작산을 만나보기로 했다. 그 느낌을 미리 말하자면, 공작산의 남릉은 ‘공작의 깃털같이 우아한 숲의 나라’였다는 것이다. 그랬다. (오르내림이 심한 걸 감안해도) 공작산의 능선 숲길은 비단결 같았다. 숲은 잘 가꾼 공원처럼 정갈했고, 길은 발의 일부가 된 듯 편안했다. 인공조림한 숲도 적재적소에서 산의 위엄에 격을 더해 주었다.

공작산저수지로 흘러드는 개울을 건너면 공작산과 작별이다.
공작산저수지로 흘러드는 개울을 건너면 공작산과 작별이다.
공작산 하산 길의 마지막 잣나무숲.
공작산 하산 길의 마지막 잣나무숲.
원추리 꽃이 지고 나면 성큼 가을이 다가올 것이다.
원추리 꽃이 지고 나면 성큼 가을이 다가올 것이다.
공작저수지를 뒤로하고 산자락으로 든다. 초입의 펜션을 지나자 문바위골 능선으로 이끄는 길이 낙엽송 사이로 열려 있다. 낙엽송 숲을 빠져 나오자 산자락을 에도는 길이 숲을 가른다. 나무들이 그리 굵지 않은 젊은 숲이다. 빽빽하지도 않아서 저마다 넉넉히 햇살과 바람을 마신다. 가풀막이 시작되면서 나무들이 굵어진다. 참나무가 우점한 가운데 드물게 아름드리 소나무가 숲 그늘을 시리게 한다.

공작저수지가 눈 아래로 보일 정도로 능선의 키가 높아지자 한결 우거진 숲이 하늘을 이룬다. 너른 안부에서 공작현(406번 지방도에 걸린 고개)에서 올라오는 등산로가 합류한다.

굴참나무숲으로 빨려든다. 울퉁불퉁한 껍질과 달리 곧게 뻗었다. 본디 나무의 거처는 하늘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아직 싱싱한 잎을 달고 있지만 이글거리지는 않는다. 한 시절 치열하게 살았으니 이제 더 이상 빛을 탐하는 일에는 초연한 듯한 모습이다. 사람도 나이가 차고 지위가 높아지면 저리 해야 하거늘.

공작산 능선은 숲에 가려져 있지만 가끔씩 선물처럼 시야를 열어 준다. 남서쪽으로 오음산이 눈높이로 걸린다. 다시 숲길은 굴참나무숲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물기를 머금은 바람이 숲을 흔든다. 이파리 뒤쪽의 하얀 솜털이 포말 같은 빛을 뿌린다. 내 귀는 바람소리 속에서 첨벙거린다. 원추리꽃도 바람에 얼굴을 씻는다. 아마도 마지막 단장일 것이다. 원추리꽃이 지고 나면 이제 나무와 풀들은 가을을 준비하기 시작할 것이다.

공작산 정상 북동~동남 조망.
공작산 정상 북동~동남 조망.
여름과 웃으며 작별 원하면 공작산처럼 우아한 숲길 찾아야

물길이 불현듯 벼랑을 만난 듯 내리막길이 나타난다. 떨어져 내리듯 낙엽송숲으로 미끄러진다. 몸보다 먼저 눈이 시원해지는 길이다. 낙엽송숲을 빠져나온 숲길은 다시 숲속으로 솟구친다. 단풍나무잎이 바람을 쓸고 있다. 고운 가을을 예감하게 한다. 단풍나무 숲길을 빠져나오자 다시 시야가 열린다. 멀리 푸른 산줄기들이 잔잔하게 출렁거린다. 아마도 치악산 일대의 산줄기일 것이다.

밧줄을 매달아 놓은 암릉이 곧추 서 있다. 부드러운 능선길의 극적 반전이다. 공작의 벼슬인 양 여긴다. 이제 곧 정상이라는 얘기이겠다. 연거푸 세 차례의 곧추 선 암릉을 밧줄에 의지해 오르자 공작산 정상석이 하늘을 이고 섰다. 정상의 암봉을 떠받치는 수풀 너머로 첩첩 산들, 그 사이로 새둥지 같은 논과 밭 그리고 사람의 집들. 사람의 세상도 먼눈으로 보면 이렇게 아름답다. 사람들도 가끔씩 먼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면 좋겠다. 외경의 눈으로 말이다. 그 아득한 시선 사이에 평화가 깃들도록, 한참 동안 그렇게 바라봤으면 좋겠다.

공작릉으로 내려서는 하산 길 또한 상쾌하게 미끄러지는 편안한 숲길이다. 능선을 다 내려서서 골짝물을 건너면 도열하듯 잣나무가 선 숲길이 정중한 작별의 인사를 건네 온다. 여름과 웃으면서 작별하고 싶으면 공작산처럼 우아한 숲길을 걸을 수 있는 산을 찾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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