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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여름 알프스 특집 | Tour du Mont Blanc] 억겁 세월이 빚어낸 경이로운 자연을 만끽하는 산길

월간산
  • 입력 2017.10.12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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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드몽블랑 트레킹

플랑드에귀(2,317m)에서 몽탕베르역(1,909m) 가는 길에 만나는 풍광. 알프스 명봉 드류(Drus. 3,754m)가 송곳처럼 날카롭게 치솟아 있다.
플랑드에귀(2,317m)에서 몽탕베르역(1,909m) 가는 길에 만나는 풍광. 알프스 명봉 드류(Drus. 3,754m)가 송곳처럼 날카롭게 치솟아 있다.

알프스의 자연은 거대하고 아름다웠으며 장엄하기까지 했다. 수억만 년에 걸쳐 이뤄진 자연현상에 의한 결과물이라고 하지만 어떻게 저토록 아름다운 자연을 형성하고 뽐낼 수 있는지 그저 감탄스러울 뿐이었다. 기껏 해봐야 2,000m 이하 산에서 놀던(?) 사람 눈에는 경이롭고도 신비로운 풍경이었다. 또한 곳곳에 케이블카와 곤돌라를 설치해 해발 4,000m 가까이까지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게 한 고도의 기술은 감탄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알프스 몽블랑(4,810m)’이라고 하면 ‘베이비부머’ 세대들은 어린 시절 대부분 듣도 보도 못한 곳이었다. 그들의 청소년 시절이었던 1970, 1980년대까지만 해도 ‘몽블랑’이라는 단어를 듣고서 눈부시게 아름답고 높고 거대한 설산이라고 상상한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그저 상위 1% 정도의 부잣집 친구들이 가지고 다닌 고급만년필 이름인 줄 알았을 뿐이었고, 백마 탄 나폴레옹 장군이 그려진 이발소 그림이나 위인전 삽화에 등장하는 전설 속의 산이었다.

우리 일행 15명도 그런 남녀노소 중 일부였다. 6·25 전 태어난 칠순 선배 두 분과 그 이후 태어난 베이비부머 세대의 개성 강한 남녀 여러 명 그리고 40대 후반의 싱글녀와 이제 갓 성년이 된 신세대 대학생이 함께 투르드몽블랑Tour du Mont Blanc, 이하 TMB 트레킹을 떠났다. 수적으로는 많은 인원은 아니었으나 연령대와 체력의 폭이 넓다 보니 결코 적은 인원도 아니었다.

게다가 그랑드조라스 등반팀까지 포함하다 보니 모두를 만족스럽게 하는 일정과 트레킹 동선을 짜는 데 상당한 시간소요와 애로가 있었다. 결국 되도록 적은 경비로 알찬 여행을 하기 위해 TMB 전 구간 트레킹 대신 프랑스 샤모니에서 이탈리아 쿨마이어까지의 TMB 구간 절반만 탐방하는 계획을 세웠다. 그 이유는 알프스의 가장 핫Hot한 지역인 마터호른Matterhorn(이탈리아 체르비노Cervino)과 스위스의 그린델발트를 중심으로 융프라우Jungfrau 일대를 연이어 탐승하기 위해서였다. 결과적으로 매우 만족스러운 계획이자 일정이었다.

플레제르산장은 샤모니와 몽블랑 산군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조망 포인트다. 오른쪽에 보숑빙하와 몽블랑 정상부가 바라보인다.
플레제르산장은 샤모니와 몽블랑 산군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조망 포인트다. 오른쪽에 보숑빙하와 몽블랑 정상부가 바라보인다.
브레방전망대(2,526m)에서 우슈로 가려면 3~4시간 동안 1,500m 고도를 낮춰야 한다.
브레방전망대(2,526m)에서 우슈로 가려면 3~4시간 동안 1,500m 고도를 낮춰야 한다.
거대한 산군, 위대한 인류의 흔적, 에귀뒤미디전망대

스위스 제네바국제공항에서 미리 예약해 둔 알피버스Alpibus를 타고 국경을 지나 프랑스 샤모니의 숙소에 도착한 시간은 늦은 밤이었다. 주변이 깜깜했지만 차고 맑은 공기가 폐로 들어오는 것을 느끼면서 이곳이 바로 말로만 듣고 TV나 영화에서만 보았던 알프스구나 생각했다.

첫날 일정은 여유롭게 잡았다. 아침에 일어나 알프스 최고의 전망대인 ‘에귀뒤미디Aiguille du midi·3,842m’에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 몽블랑산군들을 마음껏 감상한 후, 하산 시에 중간역인 플랑드에귀(2,317m)에 내려서 몽탕베르역까지 걸어서 가는 일정이었다.

식사 후, 높은 설산에서 내려오는 신선한 아침공기를 마시면서 예쁜 목조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깨끗한 도로를 따라 10여 분 걸어가니 전망대로 올라가는 케이블카 승강장이 있었다.

정원 50~60명 정도 될 법한 커다란 케이블카에 올라타니 무척이나 가파른 각도의 궤도를 쏜살 같이 올려쳤다. 샤모니의 풍경이 마치 만화책의 그림과 같이 순식간에 작아져 버리면서 주변의 크고 작은 산군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세계 각지에서 온 모든 사람들이 탄성을 내지르면서 감탄했다. 거대하고 웅장한 산들과 그곳을 쉽고 빠르게 올라갈 수 있게 만든 케이블카 시스템에 다들 입을 다물지 못했다.

플랑드에귀(중간역)에서 다시 케이블카를 갈아타고 순식간에 에귀뒤미디전망대로 가는 동안에 발아래로 보숑빙하가 눈에 들어왔다. 몽블랑산군의 정상 설릉에서 샤모니마을 위까지 보숑빙하가 늘어져 있는 모습이 마치 두꺼운 백색 비늘을 덮어쓴 거대한 뱀의 형상 같았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한 해 다르게 빙하 길이는 짧아지고 있다는데, 과거 사진으로 본 빙하의 거대한 모습과 현재 모습이 내 눈에도 확연히 다르게 느껴졌다.

드류봉을 배경으로 서있는 샤모니의 레프라즈(Les Praz) 교회.
드류봉을 배경으로 서있는 샤모니의 레프라즈(Les Praz) 교회.
우슈의 숙소 앞에서 이날 18km를 걸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우슈의 숙소 앞에서 이날 18km를 걸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하루 2~3번 만나는 산장과 카페들. 음료수나 맥주 한 캔에 5,000원 정도 한다.
하루 2~3번 만나는 산장과 카페들. 음료수나 맥주 한 캔에 5,000원 정도 한다.
감탄하는 동안에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잠시 허리를 구부리고 신발끈을 고쳐 매는 짧은 순간 숨이 찼다. 3,800m의 높은 고도에서 산소가 부족한 탓이었다. 심호흡을 하면서 되도록 천천히 느리게 움직이는 관광객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케이블카 종착역인 북봉에는 테라스가 세 곳 있어서 동서남북으로 펼쳐진 알프스의 정경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세 테라스 모두 올라 몽블랑산군의 아름답고 신비한 모습을 눈으로 감상하고 카메라에 담을 것을 적극 추천한다. 대자연의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을 느끼고, 깊고 깊은 샤모니 계곡을 보면서 인간의 의지와 무한한 도전정신에 다시 한 번 감탄할 것이다.

날씨가 기가 막히게 좋았다. 덕분에 전망이 툭 터지는 테라스의 여기저기에서 360도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풍광을 즐길 수 있었다. 북쪽에는 우리가 둘째 날이자 산중에서 첫 밤을 지낼 플레제르산장이 있었고, 그 뒤로 아름다운 락블랑이 자리하고 있었다.
북서쪽으로는 브레방전망대(2,526m)와 우슈마을로 가는 TMB 코스 일부가 눈에 들어왔다. 남쪽으로는 알프스의 가장 높은 봉우리인 몽블랑이 하얀 만년설을 뒤집어쓴 채로 형제봉들을 거느리고 의젓하게 자리 잡고 있었으며, 전망대의 동쪽으로 3명의 등반대가 도전하는 그랑드조라스(4,208m)의 깎아지른 북벽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어마어마하게 크고 높은 산봉들이 360도 돌아가면서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의 경계를 이루면서 자웅을 겨루듯 우뚝우뚝 솟아 있었다.

발레 블랑쉬 얼음동굴로 들어서니 제앙빙하와 발레 블랑쉬의 설릉을 안자일렌한 채 오르는 용감한 산악인들이 보였다. 설릉을 따라 삼삼오오 띄엄띄엄 걷는 그들을 보면서 20년 전에 이미 그 루트를 따라 오른 경험이 있는 친구와 선배가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다음날이면 우리는 플레제르 산장에서 현재 우리가 서 있는 에귀뒤미디 전망대와 몽블랑의 5형제봉들과 3인의 등반대가 오르고 있을 그랑드조라스를 보며 또 다른 추억을 만들며 걷고 있을 것이다.

해발 2,685m 높이의 프루언덕 오르는 길.
해발 2,685m 높이의 프루언덕 오르는 길.
1일차 플랑드에귀-몽탕베르-락블랑호수 왕복~플레제르산장
(약 20km, 총 소요시간 12시간)

에귀뒤미디전망대에서 더 오래 머물렀으면 좋았겠지만 한정된 일정으로 인해 아쉬움을 뒤로하고 플랑드에귀(2,317m)에서 몽탕베르(1,909m)역까지 트레킹을 하기 위해 케이블카로 하산했다. 플랑드에귀에서 몽탕베르역으로 이어지는 산길은 높낮이가 심하지 않은 비교적 유순하고 안전하다.

몽탕베르역까지 2시간15분이 소요된다는 이정표를 보고 일행 12명이 출발했다. 걸음이 빠른 사람도 있고 느린 사람들도 있으니 속도를 맞춰 걷기보다는 몽탕베르역까지 각자 알아서 가기로 했다. 중간 중간 이정표가 잘되어 있으니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빙하 녹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곳곳에 있어서 신선한 느낌을 더해 주었다. 산길이 수목한계선 위로 이어지기에 큰 나무들은 없었고 키 작은 관목숲과 초지가 형성되어 있었다. 초지에는 아름다운 야생화들이 자라고 있었고, 산길 곳곳에 키 작은 블루베리 나무가 자라 열매를 따먹는 재미도 쏠쏠했다. 좌측 계곡 아래 샤모니 일대의 마을을 내려다보거나 건너편 브레방과 플레제르 일대, 그리고 간혹 뒤를 돌아보면서 에귀뒤미디전망대 일대를 보면서 걷는 시간은 그야말로 힐링의 시간이었다. 8월 말의 햇살은 적당히 따사로웠고 고도 2,000m의 알프스의 기온은 가벼운 반팔 상의와 반바지를 입고 트레킹을 하기에 적당했고 습도가 높질 않아 땀도 거의 흐르지 않았다.

출발한 지 1시간 30분 정도나 되었을까, 처음으로 가파른 언덕이 눈앞에 나타났다. 거대한 메르데 글라스 빙하 지역을 훤히 내려다 볼 수 있는 절벽으로 가는 길이었다. 사진으로만 보았던 메르데 글라스 빙하를 발아래 두고 내려다보니 감개가 무량했다. 불과 100여 년 전만 해도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했다고 하는데 이제는 거의 다 녹아버려서 그저 황량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거대한 자연의 변화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프루언덕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려니 불쑥 외국인이 끼어든다. 모두 깔깔대며 하나 되는 TMB 트레킹이다.
프루언덕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려니 불쑥 외국인이 끼어든다. 모두 깔깔대며 하나 되는 TMB 트레킹이다.
전통 있는 모테산장의 저녁은 주인의 오르골 연주까지 곁들이며 흥겹게 이어진다.
전통 있는 모테산장의 저녁은 주인의 오르골 연주까지 곁들이며 흥겹게 이어진다.
메르데빙하가 만든 깊고 넓은 계곡의 측면을 구불구불 돌아내려가는 길을 따라 몽탕베르역에 도착했다. 역 근처 카페에서 점심을 먹으며 휴식을 취한 후에 빨간색 산악열차를 타고 편안하게 샤모니까지 내려갈 수 있었다. 샤모니에서 무료버스를 타고 플레제르 산장으로 가는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플라즈Plaz에 내리니 드류봉을 배경으로 아름답게 자리를 잡은 작은 교회가 있었다. 그곳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으면서 즐거워하고 있었다.

플레제르산장에 도착하자마자 필자를 포함한 일행 3명은 락블랑을 보기 위해 물통만 챙겨들고 다시 길을 나섰다. 산장에서 왕복 3시간 30분이 걸린다고 했기에 저녁식사를 포기하고 다녀오기로 했다. 락블랑 가는 길은 가파르기는 했지만 너무도 아름다웠다. 깊은 계곡 건너편으로 우리가 오전에 걸었던 허리길이 가로지른 알프스 설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었다.

가파르기는 했으나 구불구불 돌아서 올라가는 탓에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의젓한 알프스 산양을 만나는 행운도 얻었다. 에메랄드 빛깔의 호수물이 담긴 락블랑 뒤로 넘어가는 석양을 보기 위해 부지런히 올라간 덕분에 락블랑산장에 편안하게 앉아 맥주를 마시면서 여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수많은 알프스의 암봉과 설봉들을 즐길 수 있었다.

2일차 플레제르-플랑프라즈-브레방전망대-샤모니시내-우슈
(약 17km, 총 10시간 소요/샤모니 관광 포함)


플레제르 산장을 떠나 플랑프라즈의 케이블 정류장(2,000m)까지 가는 길도 고도차가 거의 없는 유순한 길이었다. 일행 중 샤모니마을을 구경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브레방전망대(2,526m)에서 알프스의 또 다른 면모를 감상한 후에 케이블카로 편안하게 플랑프라즈를 거쳐 샤모니로 내려가서 시내관광을 했다.

이탈리아로 넘어가기 전 프랑스의 마지막 숙소인 모테산장.
이탈리아로 넘어가기 전 프랑스의 마지막 숙소인 모테산장.
이탈리아 쿠르마유르로 가는 길의 콤발호수(lac combal). 맑은 물과 빙하에서 녹은 청녹빛 물이 합류한다.
이탈리아 쿠르마유르로 가는 길의 콤발호수(lac combal). 맑은 물과 빙하에서 녹은 청녹빛 물이 합류한다.
샤모니는 오래된 산악마을이자 관광마을이어서 볼거리가 꽤 많았다. 관광안내소에서 지도를 구해 이리저리 다니면서 구경을 하다가 힘들면 길가 카페에 앉아 와인이나 커피를 마시면서 휴식을 취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었다.

원래의 TMB 코스는 브레방전망대에서 벨라샤산장(2,152m)과 메를레 주차장(1,370m)을 지나 우슈(1,000m)로 내려오는 고도차 1,500m 정도의 가파른 하산길이다. 하지만 길은 뱀이 똬리를 튼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그렇게 위험하거나 힘들지는 않다. 이 길도 좌측으로 시종일관 몽블랑의 산군을 바라보면서 걷는 코스이기에 무척이나 매혹적이었다.

3일차 우슈-벨뷰언덕-트리코고개-미야지산장-콩타민
(약 18km, 총 7~8시간 소요)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된다. 거리도 제법 되고 코스의 높낮이가 꽤 크기 때문이다. 우슈에서 벨뷰언덕(1,801m)으로 곧바로 오르는 케이블카를 타면 하루의 일정이 많이 쉬워진다.

벨뷰언덕을 지나 제법 짙게 우거진 침엽수림을 지나자마자 빙하가 녹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만나고, 출렁다리(1,720m)로 계곡을 건넌다. 그곳에서부터 트리코고개(2,120m)까지 완만한 오르막이다. 머리 위로는 하얀 설산이 우람한 근육을 드러내놓고 있다.

트리코고개에 서면 올라가는 동안 힘들었던 기분을 한순간에 날려주는 시원한 바람과 광활한 풍경이 반겨준다. 터줏대감인 듯한 몇 마리 산양들이 산객들의 점심과 간식을 뺏어먹기 위해 막무가내로 달려들기도 한다. 고개에서 하산 방향으로 내려다보면 미야지산장(1,559m)이 장난감같이 자리 잡고 있다. 우슈에서 아침 일찍 출발한 사람들이 대부분 점심을 먹는 장소이다. 점심을 먹은 뒤라 되도록 천천히 고도 1,720m에 위치한 트릭산장까지 걷는다.

트리코고개(2,120m)에서 내려다보이는 미야지산장(1,559m) 일대. 거대한 분지를 이루고 있다.
트리코고개(2,120m)에서 내려다보이는 미야지산장(1,559m) 일대. 거대한 분지를 이루고 있다.
산장은 넓은 목초지에 위치해 있는데 작고 아담하지만 무척이나 아름다운 곳이다. 이곳에서 또 다시 여유를 부리면서 커피나 맥주 또는 와인을 마시면서 알프스의 정취를 느끼는 것을 추천한다. 몇몇 한국 트레커들은 이토록 아름다운 장소에 위치한 멋진 카페들을 그냥 지나치고 볼 것 하나 없는 길가에 앉아 휴식을 취하곤 하는데 참으로 낭만이 없는 사람들이다.

3일차의 숙소는 몽쥬아계곡 끝, 콩타민 마을 외곽에 있는 넓은 캠핑장 내에 있는 산장이었다. 산장은 크고 넓었으나 2층 침상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불편해 했다. 그래도 샤워장, 화장실, 식당, 매점, 기타 시설들이 적절하게 잘 갖추어져 있는 캠핑장이었다.

4일차 콩타민-발므산장-본옴므고개-글라시에마을-모테산장(약 25km, 9~10시간 소요)

4일차 코스를 일행은 가장 힘들어했다. 고도 1,160m의 캠핑장에서 2,665m의 푸르언덕까지 걸어 올라가야 했기 때문이다. 전날 내려온 고도보다 더 높이 올라가야 하는 힘든 구간이었다. 하지만 고도를 높이는 만큼 풍광은 점점 더 아름다워졌다. 산이 높으니 키 큰 나무들이 없고, 나무가 없으니 시계가 사방으로 훤하게 트여서 좋았다. 덕분에 발길이 그리 무겁지 않았다.

작고 아름다운 노트르담성당을 지나 낭보랑산장과 발므산장(1,706m)을 거쳐 조베평원에 닿으면 조베호수로 올라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조베호수는 본옴므고개(2,329m)에서나 푸르언덕에서도 멀리 조망이 되기는 하지만 시간과 체력이 충분하다면 조베호수에 다녀오기를 추천한다. TMB 코스는 본옴므 산장을 지나 사피유마을까지 가는 길이지만 현지 사람들은 날씨가 좋다면 푸르언덕을 넘어서 글라시에마을을 지나 모테산장으로 가는 코스를 추천했다. 우리도 그 코스를 택했다.

하산길은 심한 너덜길이었으며 이정표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발아래로 훤하게 목초지로 올라오는 길이 보였기에 그리 불안하지는 않았다. 돌고 도는 지루한 길을 따라 1시간 30분 정도 내려오니 글라시에마을에 닿았고, 다시 50분을 올라가니 프랑스의 마지막 산장인 모테산장이 나타났다.

콤발호수 주변의 주름진 암갈색 벽들이 예전 이 일대가 빙하지대였음을 알려준다.
콤발호수 주변의 주름진 암갈색 벽들이 예전 이 일대가 빙하지대였음을 알려준다.
아담한 산장은 견고하고 깨끗했으며 주인을 비롯한 종업원들이 무척 친절했다. 따뜻한 물이 나오는 샤워시설과 맛있고 푸짐한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이 있다. 저녁식사를 하는 동안 오르골 연주를 해주면서 산객들의 피로를 풀어 주었다. 에귀디 글라시에가 마치 병풍처럼 쳐진 산장의 위치와 분위기는 매우 훌륭해서 함께 온 사람들과 편안하게 앉아 대화도 나눌 수도 있고, 혼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사색에 잠길 수도 있다. 밤이 되면 은하수가 흐르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어린 시절의 추억도 다시금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5일차 모테산장-세이뉴고개-콤발호수-돌로네마을·쿠르마유르(또는 콤발호수-베니계곡-비자이 버스종점·쿠르마유르)
(약 27km, 10시간 / 버스 이용 변형 코스 약 30km, 8시간)


모테산장 뒤쪽 언덕을 따라 고도를 600m 정도 올리면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국경인 세이뉴고개(2,516m)가 나타난다. 그저 황량한 흙길을 1시간 30분가량 꾸준히 올라가면 고개 정상이다. 국경이라고 해봐야 별 것 없다. 돌로 쌓은 표식과 각 지점까지의 거리와 방향을 표시한 이정표가 전부다. 하산 방향인 이탈리아 쪽으로 블랑쉬계곡과 베니골짜기로 이어지고 그 골짜기가 끝나는 부근에 쿠르마유르(1,226m)로 가는 버스정류장이 있다.

황량했던 프랑스 지역의 산과는 달리 이탈리아 쪽의 산은 크고 높았고, 8월 말임에도 여전히 하얀 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내리막을 따라 고도를 낮추다 보니 엘리자베타산장(2,195m)이 왼쪽의 산허리에 걸려 있었다. 잠시 들러 맥주와 커피를 마시면서 산장 뒤로 보이는 블랑쉬빙하에서 쏟아져 내리는 폭포를 감상하면서 휴식을 취했다.

블랑쉬계곡을 지나면 콤발호수(2,086m)가 나타난다. 그곳에서 메종비에유산장(1,956m)으로 가는 TMB 코스를 타고 쿠르마유르까지 걸어서 갈 수도 있고, 빙하천이 흐르는 계곡을 따라 걸어 내려가 비자이 버스종점에서 버스를 타고 쿠르마유르까지 갈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정규 TMB 코스로 가는 것을 적극 추천한다. 프랑스에서 본 알프스가 서면西面이라면 이 코스에서 바라보는 알프스는 동면東面이며 몽블랑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코스이기 때문이다. 돌로네마을(1,210m)까지의 하산길이 가파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산객들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다.

쿠르마유르는 제법 큰 마을이다. 가볍게나마 북부 이탈리아의 정취, 음식, 문화, 쇼핑 등을 즐길 수 있다. 가능하면 이곳에서 1박 할 것을 추천한다.

TMB 트레킹 TIP

■ 길이 뚜렷하고 이정표가 잘되어 있다. 심한 ‘길치’가 아니라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게다가 전문 가이드를 동반한 세계 각국의 트레커들이 있어서 그들을 따라가기만 해도 된다. 그래도 불안하다면 떠나기 전에 지도 앱을 다운받거나, 이동지역을 일자별로 저장해 두면 좋다.

■ 긴 트레킹의 편안함과 성공 여부는 배낭 무게다. 짐을 최대한 줄여라. 떠나기 전에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 품목들이 전혀 쓸모없는 경우가 많다.

■ 간식도 거의 필요 없다. 미숫가루, 초콜릿, 연양갱 등 먹을 여력이 없다. 산장에서 먹는 음식과 산장에서 제공하는 런치박스(과일, 요구르트, 빵, 초콜릿)도 남는다. 우리 일행의 3분의 2는 점심으로 제공된 햄과 치즈가 들어 있는 바게트와 식빵을 반도 먹지 못했다.

■ 옷을 최대한 줄여라. 산장에서 빨아 말려 입으면 된다(여름시즌에는 긴바지 한 벌, 반바지 한 벌, 상의는 긴 팔 한 벌, 반팔 두 벌이면 충분하다. 팬티 2장, 양말 3켤레) 캠핑장 내의 숙소에는 세탁기와 건조기가 비치되어 있는 곳도 있다.

■ 최대한 편한 신발을 신고 가라. 가벼운 슬리퍼를 지참하면 편하다.

■ 트레킹 출발 몇 개월 전부터 충분한 체력훈련을 하라. 훈련이 충분한 만큼 몸과 마음이 즐겁고 편해진다.

■ 기본 비상약은 반드시 챙겨라. 근육이완제, 타이레놀, 반창고, 소독약, 소화제, 바셀린 등.

■ 햇볕이 무척 강하다. 챙이 넓은 모자와 선블록은 필수 지참물이다,

■ 여행지나 산장에서는 기본 예의와 상식을 지키고 그곳의 규칙을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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