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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미식기행ㅣ방어·도루묵·양미리] "이 한 몸 기름지게 살찌워 가을 식객의 입을 즐겁게 하리라"

월간산
  • 입력 2017.11.09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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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에 기름기 가득 차는 방어, 부위마다 절정의 맛
알 가득 찬 도루묵, 양미리… 구워 먹고 조려 먹고

이맘때 제주도 모슬포에서 잡히는 방어는 낚시꾼들에게 짜릿한 손맛을 안겨준다.
이맘때 제주도 모슬포에서 잡히는 방어는 낚시꾼들에게 짜릿한 손맛을 안겨준다.

바닷물이 차가워지기 시작하면 찰진 생선들이 입맛을 돋운다. 찬물을 따라 우리나라 근해로 올라온 생선들은 몸에 기름이 좔좔 흘러 최상의 맛을 낸다. 이즈음 가장 맛있는 어종은 방어와 도루묵, 양미리가 대표적이다. 회를 떠먹어도 좋고 구워 먹어도 좋고 조려 먹어도 좋다. 깊어가는 가을과 다가오는 겨울 입맛을 책임질 제철 생선을 소개한다.

기름기 좔좔 흐르는 겨울 방어

이즈음 가장 인기가 좋은 생선은 방어이다. 방어는 농어목 전갱이과에 속하는 회유성 어종이다.

봄~여름에는 우리나라 동해안의 찬물에서 노닐다가 가을 이후가 되면 제주도 주변 해역으로 내려온다. 그런데 요즘에는 수온 변화로 가을 이후에도 동해안에서 내려오지 않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단다. 

방어는 연근해에서 연중 잡히지만 한여름 방어는 ‘개도 안 먹는다’고 할 정도로 맛이 없고 기생충이 있을 수도 있어 거의 먹지 않는다. 가을에 접어들면 방어는 차가운 바닷물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에 지방을 축적하기 시작해 몸값을 올린다. 이때가 방어가 가장 맛있을 때다.

방어는 참치처럼 미끈하고 날렵한 몸매를 가지고 있어 낚시꾼들은 방어를 일컬어 ‘미사일’이라 부르기도 한다. 등 쪽은 회청색을 띠고, 배 쪽은 은백색이 돈다. 방어는 크기에 따라 보통 3~5kg인 것을 소방어, 5〜8kg의 것을 중방어, 10kg 이상의 것을 대방어라 부른다. 10㎏ 정도면 몸길이가 1m 정도다. 일본에선 방어가 자라면서 크기에 따라 하마치ハマチ, 부리ブリ 등으로 이름을 바꿔 부른다.

방어와 생김새가 비슷한 생선이 부시리와 잿방어다. 이 두 종은 전문 낚시꾼들조차 자세히 보지 않으면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비슷하게 생겼다. 두 종 모두 날렵한 몸매와 몸 색깔을 가지고 있지만 주상악골主上顎骨이라 부르는 위턱 뒤끝 모서리 부분을 보면 금방 구분할 수 있다. 이 부분이 각이 져 있으면 방어, 둥글면 부시리이다. 흔히 방어와 부시리를 ‘히라스ヒラス’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부시리의 일본어인 ‘히라마사ヒラマサ’에서 유래한 말로 일본 관서지방 방언이다. 

모슬포 어부들이 갓 잡아온 방어를 임시 어장에 풀어 넣고 있다.
모슬포 어부들이 갓 잡아온 방어를 임시 어장에 풀어 넣고 있다.
방어는 겨울에 맛이 좋고 부시리는 여름에 맛이 좋다. 식당에서 여름에 방어회를 낸다면 거의 100% 부시리다. 회를 떠 놓으면 방어와 부시리의 차이를 더 잘 알 수 있는데, 방어는 붉은색이 감도는 반면 부시리는 그보다는 더 흰색이다.

부시리는 방어보다 몸집이 더 커 낚시꾼들에겐 여름철 벵에돔, 돌돔과 함께 손맛 좋은 대상어종으로 인기가 좋다. 방어는 거의 대부분 채낚기(외줄낚시)로 잡는다. 가을이 제철인 잿방어는 방어나 부시리보다는 몸통 세로 길이(체고)가 높고 눈을 비스듬히 지나가는 갈색 띠가 있다. 몸의 색도 좀더 흰색이다. 

방어는 양식을 하지 않는다. 다만 작은 방어를 가두리에 가둬놓고 사료를 먹여 대방어 수준으로 키워 시장에 내놓는 ‘축양畜養’은 한다. 방어는 대방어 수준까지 길러 시장에 파는 것이 금전적으로 훨씬 이익이기 때문이다.

굵은 소금 솔솔 뿌려 연탄불에 굽는 도루묵 구이. 톡톡 터지는 알이 별미다.
굵은 소금 솔솔 뿌려 연탄불에 굽는 도루묵 구이. 톡톡 터지는 알이 별미다.
제철 방어는 붉은 살점에 지방이 소고기 마블링처럼 끼어 입에서 살살 녹는다. 방어의 지방은 불포화지방산으로 몸에 유익하고 살찔 염려도 없다. DHA와 EPA 등 오메가3 지방이 풍부해 혈액 순환을 도와주고 기억, 학습능력을 높이며, 치매예방에도 효과가 있다.

방어는 크면 클수록 맛도 좋다. 미식가들은 방어의 회 부위 중에서도 볼살과 배꼽살을 귀한 부위로 꼽는다. 볼살은 방어에서 단 두 점만 나오고, 배꼽살(대뱃살)은 가장 기름이 많은 부위인 데다 몇 점 나오지 않는다. 이밖에도 자르는 부위에 따라 척추에 붙은 사잇살, 꼬릿살, 등살 등으로 나눈다. 어느 부위든지 기름기가 가득 차 씹는 맛이 일품이다. 기름기가 많으니 쓴 소주나 정종(사케) 등과 궁합이 딱 맞는다.

방어는 참치처럼 부위별로 맛이 다르지만 활어活魚로 먹느냐, 선어鮮魚로 먹느냐, 선어라면 어느 정도 숙성시키느냐에 따라서도 맛의 차이가 크다. 대개 붉은 살의 등 푸른 생선은 선어회로 먹어야 제 맛이지만 활어를 선호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방어도 활어로 즐겨 먹는다.

방어회는 보통의 회처럼 고추냉이간장을 찍어 먹지만 살점에 소금을 약간 뿌리면 단맛이 더해진다. 쌈을 싸 먹을 때는 마른김에 회를 올리고 묵은지를 한 점 올려 먹으면 그만이다. 기름소금장에 찍어 먹어도 좋다.

두툼한 살점에 데리야키 소스 등을 발라 스테이크처럼 구워 먹으면 와인 등과도 잘 어울린다. 일본에서는 심장과 위 등 내장을 소금구이로 먹거나 살을 샤브샤브로 먹기도 한다. 회를 뜨고 남은 대가리와 뼈로는 맑은 탕을 끓여 먹으면 별미다. 민어처럼 뽀얀 국물이 우러나 소금간만 해서 먹는다.

방어는 가을부터 기름이 올라 고소한 맛이 절정에 이른다.
방어는 가을부터 기름이 올라 고소한 맛이 절정에 이른다.
톡톡 터지는 알 맛 기막힌 도루묵

동해안으로 가면 도루묵과 양미리가 한창이다. 방어처럼 근사한 몸매를 가지거나 압도적인 크기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두 생선 모두 바닷가 사람들의 배고픔을 달래 주는 소박한 음식 재료로 사랑받아온 것들이다.

강원도 속초, 양양, 주문진, 삼척 등의 바다에는 10월부터 12월까지 도루묵이 산란을 위해 연안으로 몰려온다. 이때의 도루묵은 몸에 기름기를 가득 머금는다. 특히 ‘도루묵은 알 맛으로 먹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알이 특미다. 도루묵 좀 안다는 사람들은 11월에 수심 10m 안팎에서 잡히는 알배기 도루묵을 최고로 친다. 속초와 양양 등에서는 11~12월에 도루묵축제를 개최하기도 한다.

‘말짱 도루묵’이란 말로 유명한 도루묵에 관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조선시대 선조가 피란길에 ‘묵어(목어)’라는 생선을 먹었는데 맛이 참 좋았다. 하지만 묵어라는 이름이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한 선조는 그 생선에 ‘은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후 궁으로 돌아와 은어를 먹었지만 그때 그 맛이 아니라 실망해서 “도로 묵어로 부르라”고 했다는 내용이다. 최근에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선조가 아닌 태조라는 설도 있다. ‘도로 묵어’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도 정확하지는 않다.

이름에 관한 유래는 어쨌든 간에 지금 동해안엔 도루묵이 지천에 널렸다. 도루묵이 산란하기 위해 연안 수초가 있는 곳에 찾아오기 때문이다. 2006년부터 자원회복사업을 벌인 결과 도루묵의 개체 수도 대폭 늘어나는 추세다.

도루묵 풍년에 낚시꾼들도 너나 할 것 없이 도루묵 잡기에 나선다. 도루묵은 주로 바늘이 여러 개 달린 카드채비나 전어 훌치기 채비, 통발을 던져 잡는데 제철에는 통발을 한 번 던지면 수십 마리씩 걸려 올라온다.

‘일반인들의 도루묵 통발 잡이가 불법이다, 아니다’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간단히 정리하면 항구를 제외한 갯바위나 해수욕장에서의 1인 1통발은 괜찮다. 즉 항구와 방파제에서 1인 2통발 이상을 놓으면 불법인 셈이다. 하지만 실제로 항구에 나가보면 한 사람이 서너 개의 통발을 던져놓고 차 트렁크 가득 도루묵을 잡아가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는 엄연한 불법행위이며 어족자원 보호를 위해서라도 너무 많은 도루묵을 잡지 않는 게 좋다. 

도루묵은 보통 구워 먹거나 조림으로 먹는다. 도루묵의 알은 잡은 즉시 구워 먹는 것이 가장 맛있다. 잡은 지 오래되거나 냉동을 하게 되면 알이 질겨져 맛이 떨어진다.

 

크기가 큰 대방어는 참치처럼 부위마다 이름이 다르고 맛 또한 다르다.
크기가 큰 대방어는 참치처럼 부위마다 이름이 다르고 맛 또한 다르다.
도루묵은 서민들이 즐겨 먹던 생선인 만큼 요리법이 다양하다. 알이 밴 도루묵에 굵은 소금을 뿌려 석쇠에 올려 연탄불에 구워 먹는 게 정석이다. 처음부터 내장을 발라내면 먹기 편하지만 전어처럼 굳이 내장을 발라내지 않고 구운 후 먹을 때 발라내도 상관없다.

커다란 냄비에 무나 감자를 깔고 알배기 도루묵을 올리고 매콤한 양념을 얹어 조려 먹으면 밥도둑, 술도둑이 따로 없다. 이때 반건조한 도루묵을 사용하면 씹는 맛이 더욱 탱탱해진다. 과거에는 도루묵을 소금에 절여 장독에 저장했다. 이렇게 하면 조림할 때 도루묵의 맛이 더욱 진해진다.

뼈째 썰어 먹는 ‘세꼬시’도 일품이고, 좁쌀이나 멥쌀로 밥을 지어 적당히 말린 도루묵과 고춧가루 등 각종 양념을 넣어 삭힌 도루묵 식해도 갓 지은 흰쌀밥과 함께 먹으면 맛있다. 밥을 지을 때 도루묵을 넣기도 한다. 이때 도루묵을 미리 구워 살만 발라내 넣고 밥을 지으면 구수한 맛이 배가된다. 도루묵밥은 양념간장을 넣어 비벼 먹는다. 도루묵을 포를 떠 튀기면 아이들 영양 간식으로 아주 좋다.

이즈음 도루묵과 어깨를 견주는 것이 바로 양미리다. 양미리는 우리나라와 일본, 사할린, 오호츠크해 등에서 살며 찬물을 따라 다니는 한류성 어족이다. 등이 푸르고 배는 은백색인데다 주둥이가 뾰족해 언뜻 꽁치와 비슷하게 생겼다. 예부터 흔하고 저렴하게 먹을 수 있어 어부들의 술안주로, 밥반찬으로 사랑받아 왔다. 

사실 동해안에서 양미리라 부르는 생선의 올바른 이름은 ‘까나리’다. 서해안에서 액젓을 만드는 그 까나리다. 크기가 달라 다른 생선으로 오해하지만 같은 종이며 형태 및 유전적인 특징이 다를 뿐이다. 또한 서해안에서는 봄에 어린 까나리를 잡아 젓갈을 담그고, 동해안에서는 산란기에 있는 다 큰 까나리를 잡아먹기에 다른 생선이라고 오해하는 것이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양미리’라는 이름의 생선은 따로 있다는 것. 까나리는 농어목 까나리과이고 진짜 양미리는 큰가시고기목 양미리과의 생선이다. 진짜 양미리는 10cm 정도의 크기로, 봄철 강원도 바다에서만 잠깐 볼 수 있는데 이제는 거의 모습을 감추었다. 흔히 볼 수 없으니 겨울에 흔하디흔한 까나리가 양미리란 이름을 달아도 이상할 것이 없다. 

양미리는 바다 바닥 모래 밑에 숨어 있다가 동이 틀 무렵이면 먹이 활동을 위해 나온다. 이때 모랫바닥에 촘촘한 그물을 깔아 놓으면 모래에서 튀어나오는 양미리가 그물코에 걸려 잡힌다. 걸려든 양미리를 그물에서 빼내는 것을 ‘양미리를 딴다’ 혹은 ‘양미리를 벗긴다’고 하며 몸통에 손상이 가지 않게 따내는 것이 중요하다.
1 좁쌀처럼 통통한 알 맛으로 먹는 도루묵찜 / 2 도루묵은 잡는 즉시 통째로 구워야 알이 질기지 않고 맛있다. / 
3 연탄불에 구워 술안주로, 밥반찬으로 제격인 양미리 구이 / 4 양미리는 20마리를 한 두름으로 엮어놓는다.
1 좁쌀처럼 통통한 알 맛으로 먹는 도루묵찜 / 2 도루묵은 잡는 즉시 통째로 구워야 알이 질기지 않고 맛있다. / 3 연탄불에 구워 술안주로, 밥반찬으로 제격인 양미리 구이 / 4 양미리는 20마리를 한 두름으로 엮어놓는다.
점점 몸값 귀해지는 양미리

도루묵은 개체 수가 많이 늘었지만 양미리는 점점 귀해지는 추세다. 가장 큰 이유는 수온상승으로 찬물을 찾아다니는 양미리의 서식지가 바뀌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강원도 속초 등에서는 겨울에 양미리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양미리 또한 도루묵처럼 구워 먹거나 조려 먹는다. 강원도 고성, 속초, 주문진 등 양미리가 많이 나는 지역의 사람들은 회나 칼국수, 찌개 등 더욱 다양한 요리법으로 양미리를 먹는다. 미꾸라지처럼 갈아서 추어탕식으로 끓여 먹기도 한다.

제철 양미리도 알을 가득 배고 있다. 양미리의 알은 크림처럼 부드럽고 살살 녹는 맛이 특징이라 구워서 통째로 입에 넣어 오물오물 씹으면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극대화된다. 

안동 등 경북 북부 내륙 지방에서는 양미리를 ‘호메이고기’라고 불렀다. 호메이는 호미의 경북 사투리다. 동해안에서 나는 양미리를 노란 끈에 묶어 가져오다 보면 살이 마르면서 허리 부분이 굽어진다. 이 모습이 호미를 닮았다 해서 호메이고기라고 불렀으며 생선을 맛보기 어려웠던 내륙 지방에선 겨울철 별미로 굽거나 조려서 먹었고 제사상에 올리기도 했다. 

본래 제사상에는 ‘치’나 ‘리’로 끝나는 이름을 가진 생선을 올리지 않지만 양미리를 엮어 말리면 호미처럼 생김새가 변하기에 호미에 고기를 붙여 호메이고기라 하고 제사상에 올렸다는 것이다. 

집에서 만드는 도루묵·양미리 요리

도루묵찌개

· 재료(2인분 기준) 도루묵 10마리, 양파 1개, 무 1/4개, 대파 1개, 진간장 1큰술, 식용유, 양념(고춧가루 1/2큰술, 진간장 1큰술, 마늘 1큰술, 생강청 1/2큰술, 참기름 2큰술, 후춧가루 약간 )

· 만드는 법

1 냄비에 물을 붓고 무와 양파를 넣고 간장 1큰술을 넣어 푹 끓인다.
2 도루묵의 아가미와 지느러미를 가위로 잘라내고 배를 갈라 내장을 손질한다. 천일염을 푼 물에 잠시 담갔다가 꺼내면 알과 살이 탱글탱글해진다.
3 무와 양파를 넣고 끓인 냄비에 식용유 2큰술을 넣고 손질한 도루묵을 가지런히 올린다.
4 재료를 섞은 양념장을 도루묵 위에 끼얹고 대파를 올려 뚜껑을 덮고 조린다.
5 알이 터질 때까지 적당히 조린 후 통깨를 뿌려 마무리한다.

양미리 구이 

· 재료(1인분 기준) 양미리 8마리, 양념장(양파 1/4개, 청양고추 2개, 간장 3큰술, 설탕 1큰술, 식초 2큰술, 후춧가루 약간), 굵은 소금 약간.

· 만드는 법

1 양미리는 찬물에 담가 깨끗하게 씻은 뒤 흐르는 물에 다시 한 번 씻어 물기를 제거한다. 쌀뜨물에 씻으면 비린내를 더욱 효과적으로 없앨 수 있다.
2 달군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양미리를 올려 굵은 소금을 약간 뿌린 후 앞뒤로 노릇하게 굽는다.
3 양파와 청양고추를 큼직하게 썰고 간장, 설탕, 식초, 후춧가루를 넣고 양념장을 만든다.
4 노릇하게 구운 양미리구이를 양념장에 찍어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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