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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화제 | 백패킹 세계여행 민미정] “세계를 누비는 ‘프로 노숙러’라고 불러 주세요!”

월간산
  • 입력 2018.01.26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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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5개월간 네팔·유럽·남미·미국 돌며 트레킹 여행 한 백패킹 마니아

1년5월간, 21kg 배낭을 메고 전체 일정의 7할을 텐트 치고 야영하며 세계 트레킹 여행을 한 사람이 있다. 주인공은 40세의 미혼 여성 민미정씨. 2016년 7월 출국해 2017년 11월 귀국할 때까지, 네팔을 시작으로 유럽과 북미·남미를 트레킹 코스 위주로 찾아다니며 최소한의 비용으로 여행했다. 특히 일정 대부분을 텐트 치거나 침낭만 덮고 자는 비박으로 소화해 인터넷 SNS상에서 ‘프로 노숙러(노숙 전문가)’, ‘자유로운 영혼’ 등으로 불리며 유명인사가 되었다.

페루 우아이우아시 트레일의 해발 4,145m에 위치한 호수. 12일 동안 혼자 야영하며 트레킹하던 중 건조식품에 질려 시도한 낚시에서 제법 큰 고기를 낚았다. 조리해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고 한다.
페루 우아이우아시 트레일의 해발 4,145m에 위치한 호수. 12일 동안 혼자 야영하며 트레킹하던 중 건조식품에 질려 시도한 낚시에서 제법 큰 고기를 낚았다. 조리해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고 한다.

충북 음성의 산골에서 1남 5녀 중 막내로 난 그녀는 초등학교 때 상경해, 서울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밝고 활달한 성격으로 수영, 사이클, 헬스, 무에타이, 클라이밍 등 다양한 스포츠 활동을 즐겼다. 일본어에 능통해 무역회사 MD(상품기획자)로 일하며 능력을 인정받아 팀장까지 올랐지만, 몸과 마음의 피곤을 풀어줄 새로운 탈출구가 필요했고, 그 대안으로 등산을 택했다.

서른쯤 시작한 등산은 민미정씨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인터넷 등산동호회에 가입해 멋모르고 따라간 첫 산행이 하필이면 ‘지리산 무박 화대종주’였다. 50km에 이르는 장거리를 24시간 꼬박 걸어 대원사로 하산했다. 지구력과 체력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기에 백두대간과 100명산 무박산행 등 초보자가 하기엔 어려울 수 있는 장거리 산행을 매주하면서 등산의 재미에 빠졌다. 그녀 인생의 또 다른 전환점이 된 건 백패킹이었다. 친언니 텐트를 빌려 시작한 백패킹은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다. 

“저는 도시의 화려한 야경보다 별 하나 떠 있는 산이 더 좋아요. 그냥 산에 있으면 편해요. 백패킹도 술만 먹고 나오는 것보다 정상 가서 야영하고 종주하는 게 좋아요. 백패킹을 알고부터 당일산행은 거의 안 했어요. 같이 갈 사람이 없으면 혼자 갔어요. 태풍이 치고 폭설이 내릴 때도 산에 가서 잤어요. 하고 싶은 건 꼭 해야 마음이 풀리거든요.”

“가파르고 빡 센 산행이 좋아요”

오트루트 트레일을 시작하기 전, 워밍업으로 GR5 트레일을 걸었다. 북유럽부터 프랑스 니스로 이어지는 장거리 트레일이지만 오트루트가 목적이라 레만호에서 시작해 샤모니까지만 걸었다. 뒤편의 산이 몽블랑이다.
오트루트 트레일을 시작하기 전, 워밍업으로 GR5 트레일을 걸었다. 북유럽부터 프랑스 니스로 이어지는 장거리 트레일이지만 오트루트가 목적이라 레만호에서 시작해 샤모니까지만 걸었다. 뒤편의 산이 몽블랑이다.

인터넷 백패킹 동호회에 가입해 체계적으로 야영을 배우고 인맥을 넓힌 그는 해외로 눈을 돌렸다. 2009년 야영배낭을 메고 혼자 후지산에 도전했으며, 2010년에는 동호회 지인들을 이끌고 후지산 정상에 올랐다. 이듬해부터는 2015년까지 매년 일본 북알프스를 찾았다. 이를 통해 해외 고산 트레킹에 대한 자신감을 얻어 마침내 2016년 7월 세계 트레킹 여행에 나섰다. 업무 능력과 친화력이 뛰어난 탓에 사직서가 반려되어 계획이 1년 늦춰지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어릴 적부터 고대하던 세계여행의 꿈을 향한 첫 발을 내딛었다.

세계여행을 준비하며 민미정씨는 꼭 가보고 싶은 트레킹 대상지 4곳을 뽑았다. 유럽 알프스, 베네수엘라 로라이마, 남미 파타고니아, 페루 우아이우아시를 6개월 일정으로 계획했던 것이 1년 5개월로 훌쩍 늘어났다. 돌아온 것도 여행에 싫증나서가 아니라 국내에 거주하던 전셋집 계약 문제와 신용카드 유효기간 만기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혼자였던 건 아니다. SNS를 통해서 만난 베테랑 산꾼 남녀 세 명이 함께 시작했다. 시작은 트레킹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네팔이었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 오른 뒤 5,000m대 고개 3개(콩마라패스, 촐라패스, 렌조라패스)를 넘는 에베레스트 쿰부 3패스 트레킹을 했다. 일반적인 안나푸르나 트레킹 대신 3패스 트레일을 택한 건, “관광 같은 트레킹이 아닌 더 산행답고 모험적인 트레킹을 하고 싶어서”였다. 

프랑스로 이동한 이들은 알프스의 장거리 트레일인 GR5를 열흘간 걷고, 알프스 산맥을 오르내리는 오트루트(The Haute Route) 트레일을 12일간 걸었다. 오트루트에서는 길을 잘못 들어 절벽에 가까운 암릉구간을 21kg 배낭을 메고 로프도 없이 개척산행으로 올랐다. 산행이라면 자신 있는 그녀였지만, 무시무시한 고도감에 ‘진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울면서 올랐다고 한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3,000m에 이르는 봉우리 정상에 섰다.

이후 행선지 차이로 일행과 헤어져 이탈리아 돌로미테로 이동, 알타비아1 코스와 트레치메 트레킹을 11일간했다. 이후 일행들의 권유로 다시 합류해 스페인 산티아고순례길을 걸었지만, 3일 만에 홀로 떨어져 나왔다. 다이내믹한 산행과 백패킹을 즐기는 그녀에게 평지를 걷는 것은 지루했고, 경치 좋은 야영 장소도 없어 포기했다고 한다.

여행 내내 트레킹만 한 건 아니다. 산티아고순례길 트레킹을 그만둔 그는 북아프리카 이집트로 건너가 3주 동안 수영을 즐겼다. 저렴한 비용으로 스쿠버다이빙 상급자 자격증을 따고 산소통 없이 잠수하는 프리다이빙 자격증도 취득했다. 

2016년 11월 아르헨티나에 들어서면서 민미정씨는 물 만난 고기처럼 산을 누볐다.

(윗쪽 사진) 친구가 된 현지 가이드와 함께 페루 마테오(5,159m)를 올랐다. 
(아랫쪽 사진) 마추픽추 살칸타이 트레일을 네덜란드 친구들과 함께 4박5일 동안 걸었다.
(윗쪽 사진) 친구가 된 현지 가이드와 함께 페루 마테오(5,159m)를 올랐다. (아랫쪽 사진) 마추픽추 살칸타이 트레일을 네덜란드 친구들과 함께 4박5일 동안 걸었다.

남미 특유의 깨끗한 자연과 저렴한 물가, 순수한 현지인들의 마음 씀씀이에 반한 것이다. 피츠로이 트레킹을 마치고 파타고니아에선 W트레일 대신 더 길게 둘러볼 수 있는 O트레일을 열흘간 걸었다. 간혹 산장 예약을 못 한 탓에 하산의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특유의 친화력과 어디서든 잘 수 있는 생존력으로 잘 풀어나갔다.

꼭 가보고 싶은 관광 코스는 특유의 방식으로 즐겼다. 볼리비아의 명소 우유니사막은 차를 타는 대신 12km를 걷고 야영했으며, 베네수엘라 로라이마는 4박5일 코스를 마음에 드는 곳에서 하루 더 야영하는 방식으로 6일 동안 걸었다.

(윗쪽 사진) 피츠로이에서 트레킹을 시작한 지 1시간 만에 도착한 카프리 호수가 너무 아름다워서 주저 없이 배낭을 내리고 텐트를 쳤다. 
(아랫쪽 사진) 돌로미테 알타비아 트레일에서의 솔로 비박. 일정이 꼬여 캠프사이트까지 가지 못했던 탓에 텐트를 못치고 비박을 감행했다.
(윗쪽 사진) 피츠로이에서 트레킹을 시작한 지 1시간 만에 도착한 카프리 호수가 너무 아름다워서 주저 없이 배낭을 내리고 텐트를 쳤다. (아랫쪽 사진) 돌로미테 알타비아 트레일에서의 솔로 비박. 일정이 꼬여 캠프사이트까지 가지 못했던 탓에 텐트를 못치고 비박을 감행했다.

그녀의 강점은 체력도 좋지만 고소적응력도 좋다는 것이다. “빡센 산행을 좋아한다”는 산처녀답게 볼리비아 와이나포토시(6,088m)를 20m 빙벽등반을 하며 정상에 올랐다. 현지 가이드 한 명을 고용해 장비를 빌려 오른 것이다. 마찬가지로 빙벽등반이 포함된 페루 레인보우 마운틴(5,200m)과 아우상가테(6,384m), 야나팍차(5,450m), 피스코(5,765m), 마테오(5,150m)를 등반했으며 대부분 정상에 섰다.

주머니가 가벼운 민미정씨가 가이드를 고용할 수 있었던 비결은 페루 현지 가이드들과 친구가 되었기 때문이다. 채소와 고기를 시장에서 구입해 불고기 같은 한국요리를 직접 만들어 저녁 식사를 대접한 것이 주효했다.

특히 “남미 사람들은 순수해서 친구가 되기 쉽다”고 한다. 짧은 영어와 손짓 발짓으로 친구가 되었고, 이들은 일이 없는 날 그녀에게 무료로 등반 가이드를 해주었다. 그녀의 친화력은 큰 강점으로 작용해, 남미에 본사를 두고 유럽과 북미에 지사까지 둔 여행사에서 아시아 에이전시 운영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홀로 트레킹을 한 곳도 수두룩하다. 최고 고도가 5,000m대인 페루 산타쿠르즈 트레킹 5일, 69호수 트레킹 3일, 파론호수 2일, 추룹호수 2일, 이신카 트레킹 3일, 우아이우아시 트레킹 12일, 알파마요 트레킹 8일 등을 혼자 걸었다. 특히 중간에 식량을 보급할 곳이 없어 와이와시에서는 12일치 식량을 모두 메고 걸었다.

최대한 가벼운 건조식량을 준비하고 옷은 최소한만 준비했다. 1년 5개월 동안 그녀가 가지고 다닌 옷은 바람막이재킷 1벌, 얇은 패딩 1벌, 긴팔 상의 1벌, 티셔츠 2벌, 우모바지 1벌, 반바지 1벌, 레깅스 2벌이 전부였다. 추울 땐 패션에 신경 쓰지 않고 무조건 껴입는 방법을 택했다.

“캐리어보다 배낭이 편해요. 오랫동안 백패킹을 해서 무거운 걸 잘 못 느껴요. 오히려 가볍게 빨리 가는 게 더 어려운거 같아요. 이 정도 무게는 당연한 것이라고 순응하며 다니다 보니 무게에 적응된 것 같아요.”

“세상에는 생각보다 좋은 사람 많아요”

기대 없이 갔던 미국 브라이스 캐년이 너무 좋아 해가 질 때까지 있다가, 다음날 아침 일찍 찾아가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기대 없이 갔던 미국 브라이스 캐년이 너무 좋아 해가 질 때까지 있다가, 다음날 아침 일찍 찾아가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두려움을 모르는 여성 같지만, 자신은 “진짜 겁이 많다”고 한다. 겁이 많은데 어떻게 먼 타국의 깊은 산 속에서 혼자 텐트를 치고 잘 수 있는지 묻자, “일단 텐트 치고 밤이 되면 밖에 못 나간다”고 답한다. 달이 밝거나 다른 야영객들이 있을 때만 야경 사진을 찍으러 나간다.

민미정씨는 트레킹 욕심 말고 둘째가라면 서러운 것이 사진 욕심이다. 늘 셀카봉에 음성인식되는 고프로(아웃도어 촬영에 최적화된 액션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경치가 좋은 곳에선 “고프로 촬영”하고 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경치가 가장 아름다운 뷰포인트만 골라 찍은 사진을 SNS에 올려 고정 팬층이 생겼을 정도다.

그녀의 야영은 산이 아닌 도시에서도 일관되게 이어졌다. 공항이나 역에서 매트리스 깔고 침낭 덮고 자는 건 기본이고, 공원이나 외딴 골목 끝에서 텐트 치고 자는 날도 많았다. 긴 여행에 적응되었는지 열악한 곳에서는 몇 끼를 걸러도 배고프거나 목마르지 않고, 안전한 호스텔에서 잘 때는 배가 고파 몇 끼 분의 음식을 먹을 때가 많았다. 

혼자 여행하기에 위험할 것 같지만 “세상에는 생각보다 좋은 사람이 많았다”며 “사정을 얘기하면 도와주었다”고 한다. 특히 정 많고 친절했던 곳이 “페루,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캐나다와 유럽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그녀의 강한 생존력(?) 덕분에 6개월을 예상했던 세계 여행 기간이 3배로 늘어났다. 적은 예산으로 시작했지만 비용을 아낄 수 있는 방법이 생각보다 많아, 예산이 떨어질 때까지 다닌 것이다.

남미의 트레킹 코스를 샅샅이 훑은 그녀는 캐나다와 미국으로 건너가 짧은 트레킹과 여행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세계 여행 후 그녀는 많은 것이 변했다고 한다.

“집착이 사라졌어요. 떠나기 전에는 뭔가 더 쌓고 가지려 했는데, 지금은 무소유에 익숙해져 그런지 집착이 없어졌어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더 걱정해요. 제가 힘이 있는데 화장실 청소든, 뭐든 해서 못 살겠어요?”

그의 마음은 이미 세계를 향해 뻗어 있다. 하늘 먼 곳을 응시하며 혼잣말처럼 말한다.

“다시 간다면 미국·캐나다·동남아에서 제대로 트레킹하고, 아프리카로 가고 싶어요.”

‘백패킹 마니아’에서 세계를 누비는 ‘프로 노숙러’가 된 민미정씨의 두 번째 세계 여행이 벌써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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