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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해외 등반 | 이탈리아 돌로미테] 포르도이 정상에 울려 퍼진 ‘진도 아리랑’

글〮사진 임덕용 꿈 속의 알프스 등산학교
  • 입력 2018.03.13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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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종숙 사장 일행과 함께한 폭설 속의 돌로미테 설경 즐기기

석양이 비추는 돌로미테 요크린산의 설사면을 썰매를 끌고 오르는 강종숙(제이에스투어 대표)씨.
석양이 비추는 돌로미테 요크린산의 설사면을 썰매를 끌고 오르는 강종숙(제이에스투어 대표)씨.

이탈리아 북부에 내린 30년 만의 폭설로 돌로미테의 모든 산이 두꺼운 눈으로 덮였다. 이 와중에 포르도이 정상에서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하는 진도 아리랑이 울려 퍼졌다.

강종숙(제이에스투어 대표)씨가 유럽 성탄 야시장 조사차 3명의 선배 부부를 비롯한 친구들과 함께 왔다. 12월 21일 뮌헨에 도착한 일행은 성탄 야시장이 시작된 독일의 뉘른베르크, 뮌헨, 잘츠부르그, 인스부르크, 볼차노와 메라노 상탄 야시장을 보며 어린 아이처럼 즐거워했다.

우리의 성탄은 특별했다. 이솝 이야기의 백설공주와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주인공이 되었고, 일곱 난쟁이가 되기도 했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한 크리스마스트리가 길에 깔려 있었고 산간 지방의 토속품이 통나무집에 진열되어 있었다. 이솝 이야기 속 주인공들이 살아 나와 춤을 추었다.

오후 4~5시가 되면 어두워진 유럽의 겨울 날씨에 성탄 야시장은 은은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이럴 때 뜨겁게 달궈진 와인 한 잔을 마시면 온 몸과 뇌가 녹아 들어갔다. 매일 오전에는 설피산행, 썰매산행, 눈 마차 산행, 스키를 즐겼다. 다양한 산행을 했지만 지겹지 않았고, 하루 종일 함박눈이 내리는 온천에서 몸과 마음을 모두 풀었다. 돌로미테 파노라마가 보이는 야외 온천에서 말이다.

일행 중 한 명인 장임진씨는 “재미있다는 표현밖에 할 수 없음이 안타깝다”며 “돌아서면 더 해볼 걸 하는 아쉬움이 남을 정도로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성취감을 느낀 시간이었다”고 했다.

포르도이 정상 일대에서 셀라산군의 웅장한 파노라마를 배경으로 설피산행을 즐기는 강종숙씨와 장임진씨.
포르도이 정상 일대에서 셀라산군의 웅장한 파노라마를 배경으로 설피산행을 즐기는 강종숙씨와 장임진씨.

며칠째 폭설이 내렸다. 이탈리아 북부 곳곳에 눈사태 위험으로 고립되는 마을이 생길 정도였다. 마터호른이 있는 체르비니아에서는 1만 명의 여행객이 고립되었다는 뉴스가 국내에도 보도되었다. 자욱한 안개와 심한 눈 속에서 우리는 산펠레그리노 고개에서 말 두 마리가 끄는 눈 마차에 올라탔다. 말의 덩치는 매우 컸다. 중세시대 전쟁 때 대포와 군수 물자를 나르던 말의 후예들이라고 마부는 자랑한다.

이런 말을 10마리나 가지고 있는 그는 자식처럼 사랑하고 있었다. 무거운 마차를 끄는 말이 불쌍해 보였지만, 마부는 “이 품종의 말들은 이렇게 힘을 써야 행복하다”고 알려준다. 마치 우리 산악인들이 산에서 힘을 탕진해야 행복감에 젖는 것처럼 말이다.

장미공원이라 불리는 로젠가르덴의 석양을 맞으며 썰매를 즐기는 이탈리아인 가족.
장미공원이라 불리는 로젠가르덴의 석양을 맞으며 썰매를 즐기는 이탈리아인 가족.

장임진씨는 돌로미테의 설경이 너무 아름다워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 않고는 버틸 수 없었다고 말한다. 특히 “아름다운 노을을 바라보며 달렸던 그 길, 환상적인 그 순간을 떠올리면 지금도 환희에 젖어든다”고 미소 가득한 얼굴로 이야기한다.

평소 산행 경험이 없었던 장임진씨는 돌로미테에서 다양한 겨울산행의 매력에 깊게 빠져 들었다. 깊은 눈에 빠져들어가듯, 백설공주와 잠자는 숲 속의 공주가 되어 왕자를 기다리는 것처럼 몽환적 현실의 잠에서 일어나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장임진씨는 한국에서 돌로미테 여행을 오기까지 고민이 많았지만, 지금 너무 행복하다고 말한다.

눈이 깊게 쌓인 요크린 산기슭의 마을 풍경.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썰매를 가지고 심설산행을 하고 있다.
눈이 깊게 쌓인 요크린 산기슭의 마을 풍경.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썰매를 가지고 심설산행을 하고 있다.

“친정 엄마가 폐렴과 뇌종양으로 투병 중이에요. 병간호를 하면서, 밤새 무슨 일이 있을까 걱정돼 잠 못 이루는 날이 많았어요. 엄마의 상태가 많이 좋아져 한시름 놓고 결정한 여행이 이곳 이탈리아 돌로미테였어요. 오는 와중에도 ‘내가 잘 한 걸까?’하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하루하루가 너무 즐겁고 감사해요. 귀국하면 다시 지치고 힘든 상황에 처할 수도 있겠지만, 그때 다시 여행을 떠나야겠어요. 어쩌면 그 여행은 돌로미테와 티롤 알프스가 될 것 같아요.” 

강종숙씨가 흥에 겨워 손을 흔들며 썰매를 타고 있다.
강종숙씨가 흥에 겨워 손을 흔들며 썰매를 타고 있다.

제이에스투어의 대표이자 경희대 관광학과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강종숙씨는 “정말 나도 모르게 ‘이렇게 좋을 수 있을까’하는 감탄만 터져 나왔다”고 생기 넘치는 얼굴로 말한다. 그는 “전 세계에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거의 없다고 자부했고, 여러 방송사와 함께 여행 관련 방송을 수 없이 만들었지만, 티롤 알프스와 돌로미테의 겨울 풍경은 처음 접해 보는 문화 충격이었다”며 “달력에서 보았던 풍경 속에 내가 있었고, 길고 길었던 여행의 종착역에 도착한 기분이었다”고 설명한다.

(윗쪽 사진) 썰매 마차를 타고 돌로미테 설산으로 가는 한국에서 온 일행들. 설산을 즐기는 색다른 경험에 다들 어린아이처럼 들떴다. 
(아랫쪽 사진) 썰매 마차를 타고 올라 간 산펠리그리노 산장 내부. 역사가 깊은 성당의 식당처럼 고전적이며 우아한 모습이었다.
(윗쪽 사진) 썰매 마차를 타고 돌로미테 설산으로 가는 한국에서 온 일행들. 설산을 즐기는 색다른 경험에 다들 어린아이처럼 들떴다. (아랫쪽 사진) 썰매 마차를 타고 올라 간 산펠리그리노 산장 내부. 역사가 깊은 성당의 식당처럼 고전적이며 우아한 모습이었다.

나 역시 고향과 같은 돌로미테의 설경에 취해 <서편제> 속의 판소리꾼이 된 듯 자유로운 노랫말이 터져 나왔다.

스노슈즈(설피)를 신고 눈을 휘날리며 심설 트레킹을 즐기는 강종숙씨.
스노슈즈(설피)를 신고 눈을 휘날리며 심설 트레킹을 즐기는 강종숙씨.

“한 발이 깊은 눈에 빠지니 몸이 넘어지려고 한다네. 다른 한 발을 깊은 눈에서 빼려고 하니 몸이 균형을 잃고 또 넘어지려고 한다네. 이리 힘들지만, 어찌 이리 좋단 말인가. 어이 이리 신명 난단 말인가. 넘어지고, 자빠지고, 뒤로 넘어지고, 앞으로 넘어지고, 옆으로 넘어질 것 같으니 날 좀 살려주소. 날 좀 날려주소, 날 좀 잡아 주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이게 판소리인가, 저게 눈소리인가, 난리가 났네, 이래도 눈, 저래도 눈이라면 눈이 녹거든 가소, 내 영혼은 여기 남으려 하는데 내 육신은 왜 가야 한단 말이오.”

“포르도이 신설 깊은 눈가루를 휘날리며 환희에 젖은 게, 득음을 한 송화를 만나는 것 같다네. 마르몰라다의 고봉을 뒤로 장구 치며 신명난 게 동호를 만난 것 같다네. 둥실 둥실 춤을 추며 눈가루를 날리는 게 아비 유봉이 춤추는 것 같다네.”

“‘이것아! 가슴을 칼로 저미는 한이 사무쳐야 소리가 나오는 법이여’하며 한탄을 쏟아붓는 아비의 처절함이나, 눈 먼 송화의 애타는 아비 사랑이나, 누나를 잃은 동호의 가슴 절절히 울려 퍼지는 한이 모두 하얀 눈가루로 승화되어 포르도이 하늘을 날아간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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