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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신간리뷰] 춤추는 식물 외

글·월간산 서현우 기자
  • 입력 2018.07.12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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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사에 등장한 식물의 변천사
춤추는 식물
리처드 메이비 지음. 김윤경 옮김. 글항아리. 504쪽. 2만8,000원.

21세기 현재, 한 개인에게 있어 식물은 그저 먹거리나 장식용에 불과하다. 사회로 단위를 확장하면 식물은 ‘자연 자본’이자 ‘복지 서비스’로 상품적 지위를 가질 뿐이다. 하지만 인류가 지구에 등장한 이래로 식물은 자연 그 자체에서 농작물로, 심지어 종교적인 숭배 대상에 이르기까지 인류사의 발전에 따라 함의를 변화시켜 왔다.

책은 4만 년 전 구석기시대부터 식물의 의미사를 추적한다. 구석기 시대 동굴 벽화에는 식물보다는 동물이 주로 등장한다. 식물은 야생 그대로의 자연이었기 때문이다. 신석기 시대 들어 농경이 시작되면서 비로소 식물은 인류의 세계로 들어온다. 이때부터 나무를 섬기는 토테미즘이 발전한다.

중세에는 약초와 독초를 구별하며 식물에 상품적 가치가 부여되기 시작한다. 동양에서는 인삼이 귀한 약초로 거래됐다. 식민지 개척 시대에는 제3세계의 식물이 탐험가들의 전리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무분별한 채취로 멸종되는 식물의 수난사가 시작된 시기기도 하다. 목화의 발견으로 의복의 역사가 대전환점을 맞기도 했다.

식물을 중심에 놓고 쓴 인류사를 춤추듯 탁월하게 풀어내 매우 흥미롭다. 방대한 역사지만 지루하지 않게 저자의 사적인 경험담과 사진까지 곁들였다.


숲의 눈으로 인간을 보다
숲은 생각한다
에두아르도 콘 지음. 차은정 옮김. 사월의책. 458쪽. 2만3,000원.

‘숲이 생각한다’는 표현은 단순히 문학적인 수사가 아니다. 나무가 주변 환경에 따라 화학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일컫는 말도 아니다. 숲의 지능은 숲 속의 생태계가 상호 연결된 관계망 속에 존재한다. 인간만이 생각과 느낌을 갖고 있다는 사고는 인간중심주의적 편견이다.

인류학자인 저자는 아마존 숲의 루나족의 애니미즘에서 특별한 통찰을 얻는다. 루나족은 엎드려 자지 않고 반드시 등을 대고 잔다. 재규어의 관점에서 엎드려 자면 먹잇감으로 보이지만 등을 대고 자면 정면으로 마주 보는 한 존재로 인식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만물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루나족처럼 생물의 관점에서 인간을 바라봐야 ‘종을 횡단하는 소통 방식’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책은 아마존 숲 속의 인간과 생물을 치밀하게 관찰해 이를 인류학적 상상력으로 재해석한 내용으로 채워졌다. 가령 야자나무 한 그루가 쓰러지는 소리를 들은 양털원숭이가 위험을 피해 도망쳤다면 나무와 원숭이가 하나의 생명 과정으로 대화를 나눴다는 식이다.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인간과 자연을 구별하는 사고를 탈피해 과학기술과 자연과 인간이 평행선상에서 존재의 의미를 가져야 한다는 최근 인문학 트렌드와 궤를 같이하는 책이다. 생태학이 아닌 인류학 책이기에 관련 분야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으면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환경과 기술에 대한 거대한 질문
자연 기계
리처드 화이트 지음. 이두갑·김주희 옮김. 도서출판 이음. 256쪽. 1만5,000원.

‘자연’과 ‘기계’는 배타적인 단어로 여겨진다. 산업 발전의 역사는 기계가 자연에게 승리하는 과정으로 인식됐다. 저자는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를 거부한다. 자연은 하나의 에너지로, 기계는 그 에너지를 변화시키고 발현하는 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인간과 자연을 상호작용하는 관계로 재편하는 인식의 전환이다.

책은 미국 컬럼비아강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를 다룬다. 생물학, 역사학, 인류학, 사회학을 넘나들며 연어와 댐이 서로 투쟁한 역사의 공간으로 재탄생한다. 물론, 단순히 환경보호(연어)와 기술개발(댐)의 대립이 아니다. 연어를 인간의 에너지원으로 보고, 식량 에너지에 대한 소요가 댐이 생산하는 전기 에너지로 변화하는 과정이라고 해석한다.

저자는 에너지의 차원에서 인간이 자연과 관계 맺는 방식을 고찰하며 기술을 사용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인간과 자연을 이분법적으로 분리하지 않고 서로 재창조하며 상호 작용하는 관계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간척, 4대강 사업, 가리왕산, 설악산 케이블카 등 각종 환경문제에 있어 보호와 개발의 이분법으로 일관해 온 한국에 있어 통렬한 관점을 제공하는 책이다. 인간과 자연이 ‘자연 기계’라는 하나의 유기체라는 사실로부터 새롭게 출발하면 혁신적인 논의를 도출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이 든다.


한국의 모든 버섯을 담았다
버섯대사전
정구영 지음. 아이템북스. 526쪽. 3만 원.

동서양을 막론하고 버섯은 고대로부터 귀한 약재이자 보양 음식 재료로 사랑받아 왔다. 불로장생을 염원했던 진시황은 영지버섯을 불로초로 여기고 즐겨 먹었다. 현대에는 버섯의 효능이 과학적으로 입증되기 시작해 새로운 차원의 신약으로 발돋움했다.

약초연구가인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버섯에 대한 모든 궁금증을 풀었다. 버섯에 대한 상식과 효과, 구조와 근거 없는 낭설까지 전반부에서 모두 다룬다. 색깔이 화려하면 독버섯이라는 속설은 근거가 없고, 독버섯을 구분하는 방법은 요오드 용액을 떨어뜨려 포자의 벽이 암녹색으로 변하는지 확인하거나 조직의 미세 구조를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것뿐이라고 한다.

후반부에는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건강에 유익한 버섯 89종, 식용버섯 88종, 이색버섯 47종, 식용·약용·맹독성이 알려지지 않은 버섯 100종, 치명적이고 맹독성이 강한 독버섯 100종, 자료가 없는 버섯 76종, 총 500종을 실었다. 버섯 사진과 서식 환경과 모양 등을 자세히 수록했다. 더불어 식용 및 약용 여부, 성미와 효능, 약리 작용까지 전부 담았다.

버섯이 기능성 식품으로 관심을 받는 만큼 중독 사고도 많이 발생하고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 따르면 2012~2016년 독버섯으로 인한 중독사고 환자 수는 75명으로, 이 중 7명이 목숨을 잃었다. 버섯에 대해 정확히 알고 싶다면 읽어야 할 책이다.


인류 최초의 신은 여자였다
여신을 찾아서
김신명숙 지음. 판미동. 592쪽. 1만9,500원.

그리스의 가이아나 바빌론의 티아마트, 중국의 여와와 한국의 마고같이 세상과 인간을 만들어 낸 태초의 어머니들은 신화로 남아 있는 여신숭배의 역사를 보여 준다. 최초의 사회 형태도 모계씨족사회였다.

저자는 그리스의 크레타섬 여신 순례를 비롯해 제주도·지리산·경주 등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10년간 국내외 다양한 여신문화를 답사했던 이야기를 책에 담았다. 크레타 여신순례에 참여해 웅장한 딕티산의 딕티나, 그리스 본토와 달랐던 크레타 제우스, 미노아 바다의 여신 등을 새롭게 조명해 고대 여신신앙에 관한 독자의 이해를 높인다.

또한, 전국 곳곳을 다니며 잊혀졌거나 왜곡된 한국의 여신들을 새롭게 발굴해 냈다. 이를 위해 현재도 여신신앙이 활발하게 살아 있는 제주도에서 신당을 방문하고, 하늘의 여신인 성모천왕이 있는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기도 한다. 개양할미, 마고할미, 바리공주, 심청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얼핏 알고 있던 한국 여신에 관한 이야기를 더욱 깊게 풀어놓았다.

현대인들에게 낯설게 느껴지는 ‘여신’이 오늘날까지도 곳곳에 생생히 남아 있다는 사실을 전해 주는 책이다. 크노소스궁을 여사제가 모시던 성소로 해석하기도 하고 첨성대가 신라의 여신상이라고 보는 등 독특한 시각도 제시된다. 페미니즘에 대해 반감이 있다면 수긍하기 어려운 책일 수도 있다.


국내 유일의 오름 트레킹 가이드북
오름 오름
박선정 지음. 미니멈 출판사. 544쪽. 1만9,800원.

한반도에서 가장 이국적이고 매력적인 섬인 제주에만 있는 오름. 이 오름이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의 정점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제주에서

6년간 살면서 오름 탐방의 모든 경험과 사진을 차곡차곡 모았다.

오름 관련 책은 많다. 아름다운 오름 사진과 화려한 미사여구로 가득하다. 하지만 오름의 특징이 무엇이고, 어떻게 찾아가고, 어디로 오르며, 언제 가장 아름답고, 무엇을 준비하고 어떤 걸 피해야 하는지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대부분의 오름은 무성한 숲에 가려져 있어서 전체 모양을 가늠하기 쉽지 않은데 제대로 설명해 주는 이가 없다.

이 책은 저자가 직접 걸어서 오르며 오름을 찾고자 하는 이가 가장 필요할 만한 정보와 노하우를 전부 수록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찾아가기 힘든 오름도 무수한 시행착오 끝에 최선의 방법을 찾아 정리했다.

트레킹 코스와 준비물, 소요시간까지 전부 정리하고 여행자를 위해 가장 효율적인 트레킹 일정도 편성했다. 더불어 오름 주변에 체험시설과 이벤트까지 담아 더욱 풍성한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직접 찍은 수 백 장의 사진과 정성들여 그린 지도가 눈길을 끈다. 오름에 대한 상세한 정보와 더불어 충실한 가이드를 실었다. 오름 트레킹에 관한 모든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책이다.


안나푸르나부터 임자체 아일랜드 피크까지
70세 청년 김순식의 트레킹 일기
김순식 지음. 더북컴퍼니. 488쪽. 1만 8,500원.

쉰다섯 살 때 남편이 속해 있는 산악회를 따라 첫 산행을 했던 저자는 그 첫 산행이 온통 자신과의 싸움이었다고 기억했다. 산에 대한 기억 없이 더 올라갈지 내려갈지 갈등했다고 한다. 하지만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자마자 다시 산을 오르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렸다. 완주했다는 성취감이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고산에 취약한 남편이 더 이상 높은 산에 갈 수 없게 되자 혼자 여행했다. 꾸준히 시간 단위로 일기를 썼다. 남편에게 하루하루의 일정을 실감나게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흔이 되어 더 이상 원정 산행을 떠나기 힘들어지자 막내딸과 함께 트레킹 일기를 정리해 세상에 내놓게 됐다.

책은 안나푸르나부터 칼라파타르, 킬리만자로, 티베트, 산티아고 순례길, 존 뮤어 트레일 종주, 파키스탄 히말라야 트레킹, 임자체 등반까지 전 세계를 누빈 기록을 일기 형식으로 담았다. 일기는 전반적으로 담담한 문체지만 이로 인해 가끔씩 감정이 터지는 대목에서 흘러나오는 저자의 뜨거운 정열이 더욱 돋보이게 해준다. 아름다운 사진들이 행간을 가득 채워 준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포기하려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이다. 다시 열중하고, 시작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아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라면 저자의 열정을 엿보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나무 없이는 나도 없다
행복한 나무
신준환 지음. 지오북. 240쪽. 1만6,000원.

전 국립수목원장이자 산림생태학자인 저자가 나무를 통해 우리 삶의 진정한 성찰과 행복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나무는 자기완성의 진정한 모습을 가장 잘 보여 주기 때문이다. 다른 자리를 바라지 않고 영겁의 세월을 한 자리에서 묵묵히 버텨내고, 많은 것을 욕심 부리지 않으며 죽어서도 생명의 보금자리가 된다. 광합성을 통해 태양과 지구를 연결하는 매개체기도 해 전 우주의 연결을 실현하는 존재기도 하다. 저자는 행복은 이러한 관계 속의 교류와, 교류를 통한 자기완성에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책은 민족의 역사에 가장 먼저 나타난 나무로부터 출발한다. 삼국사기의 박혁거세 17년조 기록에 따르면 뽕나무와 소나무다. 그러나 동명성왕의 비인 유화柳花 부인의 이름을 생각해 보면 버드나무가 더 오래됐을 수도 있다. 이처럼 책은 신화와 역사 속에 나타난 나무 이야기를 이채롭게 풀어낸다. 최근의 산림치유 열풍과 옛 조선 선비들의 유람을 겹쳐 분석하기도 한다.

나무도 자라면서 살이 터지고 아물기를 반복한다. 책은 마음의 병을 가지고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상처를 마주하고 건강한 행복을 이루는 방법을 제시한다.

낙락장송도 미생물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것처럼 사람과 자연이 더불어 나아가며 사는 길이다.


걷고 성찰하는 알피니즘 여행
산책 여행
하루재클럽 지음. 하루재클럽. 240쪽. 2만 원.

산책散策이 아닌 산책山冊 여행이다. 해외 산악도서 출간에 앞장서는 하루재클럽에서 펴낸 등산서적 10권을 분야별로 나누어 소개하는 책이다. 사람(등반가), 역사(등반사), 이야기(등반기)를 통해 진정한 알피니즘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성찰해 보는 여행서다.

하루재클럽에서 출간한 산악도서들은 전부 굉장한 걸작들이다. 하지만 일반인에게는 부담스러울 수 있는 물리적 두께와 내용적 깊이를 자랑하기도 했다. 이 책은 산악 세계에 존재하는 명작과 위인전을 엄선해 수록했다. 각 책마다 저자의 서문과 역자 후기, 서평이 덧대어 있어 원본에 비해 줄어든 분량 속의 함의를 낱낱이 밝혀 준다.

등반사로는 라인홀트 메스너의 <세로 토레>, 모리스 이서먼의 <히말라야 도전의 역사>, 버나데트 맥도널드의 <Freedom Climbers>가 수록됐으며, 등반기로는 조지로우의 <에베레스트 정복>, 프랭크 스마이드의 <꽃의 계곡>,

<캠프 식스>가 실렸다.

등반가 자서전은 리오넬 테레이, 메스너, 엘리자베스 홀리 여사, 리카르도 캐신을 다룬다.

히말라야 초등의 역사와 등산 양식의 질적 수준을 혁신한 장엄한 기록들을 두 손안에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가혹한 시대상과 환경을 이겨낸 처절하지만 아름답고, 교훈적인 이야기들을 통해 알피니즘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를 제공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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